- 검찰 내사 중에도 청탁 개입 시도
- 추적 피하려 현금 받는 치밀함도
- 확인된 것만 12차례 4억여 원

현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각종 인사 비리에 개입하면서 ‘상왕’처럼 군림한 부산항운노조 전 위원장이 재판에 넘겨졌다. 노조 간부는 물론 현 위원장까지도 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취업·승진 비리를 도운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지검 특별수사부(박승대 부장검사)는 배임수재, 배임수재 미수 혐의로 부산항운노조 전 위원장인 이모(71) 씨를 구속기소했다고 7일 밝혔다. 이 씨는 2012년부터 최근까지 항운노조 취업·승진뿐 아니라 전환 배치, 정년 연장, 비리 구속자 복직 등 각종 인사 청탁과 함께 12차례에 걸쳐 4억여 원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2009년 부산항운노조 위원장에 당선된 이 씨는 선거 과정에서 자금을 마련하려고 구직자와 조합원으로부터 수억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이듬해부터 3년간 옥살이했다. 석방 후에는 3년간 노조 지도위원으로 활동하다가 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조사 결과 이 씨는 2012년 수감 중에도 이른바 ‘빵 동기’의 인사 청탁을 받고 현직 간부를 통해 친·인척을 취업시킨 뒤 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올해 초 검찰이 부산항운노조 채용 비리 내사에 착수한 이후에도 버젓이 취업·승진에 개입하려고 시도했을 정도로 과감한 범행을 일삼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씨는 계좌 추적을 피하려고 청탁 대가는 대부분 현금으로 받았다. 또 타인 명의 고급 승용차를 받아 타고 다녔다.

검찰 관계자는 “이 씨가 퇴직 이후에도 현직 간부나 위원장 등을 통해 인사 청탁을 하고 대부분 성사시켰다”며 “현재 추가 혐의가 포착돼 조사 중이며, 각종 비리로 챙긴 돈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 씨에게 인사 청탁 대가로 돈을 준 이들을 조사하는 한편 이 씨의 수억 원대 부동산을 추징보전 신청했다.

항만업계 관계자는 “일반 회사와 달리 항운노조는 간부 추천으로 취업·승진할 수 있어 이 씨가 퇴직 후에도 기존 인맥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며 “인사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비리는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검찰은 지난 2, 3일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김상식 현 위원장을 한 차례 더 소환한 뒤 신병 처리를 결정할 계획이다. 김 위원장은 검찰 조사에서 “아랫사람이 알아서 했다”거나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부산항운노조 채용과 항만 비리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현재까지 항운노조원 등 13명을 재판에 넘겼다.

최승희 기자 shchoi@kooke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