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과후 수업 전과정 놀이 중심으로 구성
- 과일 실꿰기·곤충 도장 찍기 등 통해
- 자연스럽게 셈법 배우고 과학 공부도
- 자발적 배움에 대한 동기 만들어줘

“이것 보세요, 손 안에 콩벌레가 있어요. 저기에서 찾았어요.”

뙤약볕이 내리쬐던 지난 12일 오후 4시 부산 강서구 송정유치원 뒷마당. 6살(만 4세) 아이 10여 명이 평상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방과후수업반인 아이들은 화단에 심어진 봉숭아의 꽃과 잎을 따 봉숭아물을 들이기에 바빴다. 어떤 아이는 돌멩이를 들고 잎과 꽃잎을 찧고, 또 다른 아이는 이미 찧은 잎을 손가락 위에 올려두고 물이 들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도저도 재미없는 아이들은 여기저기 둘러보며 벌레를 잡기도 했다.

같은 시각 유치원 앞마당 흙놀이터에서는 20여 명의 7세(만 5세) 아이들이 흙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어떤 아이는 물을 퍼다 나르고, 어떤 아이는 흙을 퍼내 성을 만들기도 했다. 바로 옆 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서너 명의 아이들이 통에 물을 담아 뿌리며 물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교육부가 선정한 놀이유치원인 부산 강서구 송정유치원에서 어린이들이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이기 위해 봉숭아꽃과 잎을 찧고 있다.

■놀고 또 논다

지난해 문을 연 송정유치원은 교육부가 선정한 놀이유치원이다. 교육부는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과도한 사교육 문화를 개선하고 교육패러다임을 전환하고자 올해 초 놀이유치원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부산에서는 송정유치원을 포함해 5곳이 놀이유치원으로 선정됐으며, 이들 유치원은 1년간 사업비를 받아 방과후수업을 놀이과정 중심으로 운영하게된다.

송정유치원 역시 놀이유치원의 취지에 따라 방과후 전 과정이 ‘놀이’ 중심으로 짜여졌다. 현재 송정유치원에서는 190명의 재원생 중 107명이 방과후 수업을 받고 있다.

송정유치원의 만 4세 방과후 과정반 월간계획을 보면 크게 ‘함께하는 놀이’와 ‘자유 놀이’로 나뉘어진다. ‘함께하는 놀이’는 놀이 장소를 중심으로 ▷흙마당 놀이 ▷운동장 놀이 ▷텃밭놀이 ▷신체활동 ▷쉼놀이로 다시 나뉘어지며 매주 다른 주제로 운영된다. 예를 들어 운동장 놀이를 보면 첫 주엔 꼬불꼬불 달리기, 둘째 주엔 물그림 그리기, 셋째 주엔 시냇물 건너기를 한다. 텃밭놀이 역시 여름꽃 따기, 오이팩 하기, 텃밭 물주기 등으로 구성돼 있다.

‘자유 놀이’는 언어 과학 수·조작 등 교육과정과 연계돼 운영되긴 하지만 바탕에는 놀이가 깔려있다. 여름 과일 실꿰기 등을 통해 수·조작 영역을 배우고, 여름곤충 도장찍기로 과학 공부를 하는 식이다.

반마다 조금씩 다르긴 해도 보통 아이들은 정규과정을 마친 이후 오후 2시부터 한시간가량 흙마당 운동장 텃밭 등을 돌며 자연 놀이를 하고, 간식 먹고 난 후엔 좀 더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마사지놀이나 책놀이 등 쉼놀이를 하게 된다. 장희영 원감은 “교사는 아이들이 놀 때 자극을 주는 역할에 한정된다. 흙놀이를 할 때 ‘오늘은 흙공을 한 번 만들어보는 건 어때’라고 던지는 정도”라며 “교사가 주도적으로 나서면 아이들은 놀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놀이에서 답을 찾다

	흙놀이터에서 흙놀이를 하고 있는 어린이들.

교육부가 놀이유치원 사업을 시작한 것은 현재 유아교육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현행 상당수 유치원은 정규 교육과정을 마친 이후 시작되는 방과후과정에 한글 영어 등 학습·교육 위주의 수업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 같은 방과후수업이 저렴한 가격에 수업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옹호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는 주입식 교육이 다양한 교육을 받을 유아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교과 중심 수업을 배제하고 아이들이 수건돌리기 고무신던지기 윷놀이 딱지치기 줄다리기 등 다양한 놀이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놀이유치원 사업을 도입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놀이만으로는 초등학교 입학을 위한 기본 소양을 쌓기 어렵다는 우려를 표하는 것도 사실이다. 장 원감은 “입학설명회 등을 통해 꾸준히 유치원 교육과정과 취지를 설명했지만 그래도 불만을 가진 학부모들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부산시교육청 유초등교육과 박선애 유아교육팀장(장학관)은 “숲에 가서 나뭇가지와 솔방울을 가져와 나눠가져 놀면 그것이 바로 수세기 수업이다. 실제로 아이들은 산에서 큰 돌을 들어 올리기 위해 자연스럽게 지렛대 원리를 배운다. 교실에서 공책 펴놓고 더하고 빼는 수업은 추상적일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장 원감도 “놀면서 스스로 배운다. 배 만드는 법을 가르치려면 바다를 그리워하게 만들라는 말이 있듯이 동기만 있으면 배우게 되는 것”이라며 “놀이를 통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서 실제로 힘없고 유치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도 생기가 돌아 부모가 놀란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박 장학관은 “놀이수업을 위해서 중요한 요소인 교사의 역량을 끌어올리고 다양한 놀이 중심 교육과정을 만들어내는 데 중점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 하송이 기자 songya@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