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이 국민감정 이길 수 없더라
- 소녀상처럼 막을 방법 없어”
- 한일 외교갈등 비화될 소지도

부산 일본영사관 앞 강제징용노동자상 설치 문제를 두고 행정당국과 시민사회단체가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부산 동구가 노동자상 설치를 강제로 막지는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삼석 동구청장은 18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법이 국민 감정을 이길 수 없다”며 “민주노총에서 설치한다고 하면 소녀상처럼 설치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문제는 외교부에서 풀어야 하고 기초단체는 힘이 없다”며 “그런 걸 떠나 국민적 감정이 앞선다. 지난해 소녀상을 들어내 동구가 많은 뭇매를 맞지 않았느냐. (노동자상을 불법으로 설치해도) 절대 다시 못 들어낸다”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방침에 대해 “허가는 아니다. 허가는 공식적으로 설치 주체가 관공서에 신청해서 구가 내주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노동자상을 허가받지 않고 설치한다면) 소녀상처럼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 설치 예정지인 일본영사관 앞 도로는 ‘부산광역시 도로 점용허가 및 점용료 등 징수 조례’에 따라 담당 구청장에게 점용허가가 위임돼 직접적인 관리 책임은 동구에 있다. 동구청장이 이 같은 입장을 밝힘으로써 노동자상은 다음 달 1일 노동절에 계획대로 설치될 가능성이 커졌다. 노동자상 설치를 주도하는 적폐청산·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는 지난해 9월부터 모금운동을 벌여 1억 원이 넘는 금액을 모았다.

동구청장의 이런 입장 발표에도 갈등은 남아 있다. 외교부는 지난 17일 민주노총 등에 공문을 보내 노동자상 위치를 두고 “남구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등 적절한 장소에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혀 정부가 어떻게 개입할지가 변수로 남아 있다.

민주노총 외에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자연합회도 일본영사관 앞에 노동자상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피해자연합회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당한 당사자들과 유족으로 구성된 단체다.

지난해 3월부터 노동자상(가로 2ｍ, 세로 2ｍ, 높이 4ｍ) 제작에 들어갔다. 현재 거의 완료된 상태로 그 무게만 20ｔ에 달한다. 노동자상에는 강제징용 역사와 그들이 당한 고통 등에 대한 문구가 담길 예정이다.

피해자연합회는 일본영사관 앞을 비롯해 서울 2곳(국회 앞, 일본 대사관 앞)과 광주역에도 각각 노동자상을 설치할 계획이다. 같은 장소에 설치 예정인 민주노총과는 다른 성질의 노동자상임을 강조했다.

이렇게 되면 일본영사관 앞에 두 개의 노동자상이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당장 일본이 반발할 것으로 보여 양국 외교 갈등으로 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부산시 박석환 주민자치팀장은 “일본과의 외교적 관계를 고려했을 때 향후 마찰 소지가 있는 일본영사관 앞보다는 남구의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 오히려 노동자상의 의미를 살리는 데 적합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