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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스토리 <6> 김현겸 팬스타그룹 회장

눈치 안 봤다, 먼저 움직였다…가는 족족 화물·여객 새 뱃길 열었다

  • 국제신문
  • 최원열 선임기자 cwyeol@kookje.co.kr
  •  |  입력 : 2014-11-24 19:44:53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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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겸 팬스타그룹 회장이 부산 중앙동 사옥 내 대형 홍보사진을 배경으로 추진중인 호화크루즈 사업을 설명하며 활짝 웃고 있다. 험한 파고를 거침 없이 헤쳐나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읽혀진다. 백한기 선임기자 baekhk@kookje.co.kr
- 부산항 보며 선장 꿈꾸던 소년
- 시력제한 탓 해양대 진학 좌절
- 한때 토목사업·유자장사 '외도'
- 실패에서 소중한 경험칙 배워
- 연매출 2000억 그룹 회장 우뚝

- 주저하지 않고 선제적인 대응
- 위기 때마다 기업 지켜낸 저력
- 10년 후 정통크루즈 사업 목표

남극 사진을 보면 펭귄떼가 빙산 위에 길게 늘어서 있는 장면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먹이를 찾아 바다로 나섰지만 선뜻 뛰어들지 못한다. 바다사자와 같은 무서운 포식자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한 마리가 먼저 다이빙을 하면 너도나도 기다렸다는 듯이 뒤따른다. 마케팅에서도 마찬가지. 새 상품이 나왔을 때 소비자들은 머뭇거리다가 입소문이 나면 그때서야 구입에 나선다. 이른바 펭귄 효과라는 것으로 유독 한국인들에게 강한 듯하다. 미국인은 성능, 독일인은 기능과 내구성, 프랑스인은 디자인을 중시하는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눈치'를 본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소비자의 입장일 뿐. 생산자인 기업들이 이랬다간 망하는 지름길에 들어선 것과 같다. 증시에서 '상투를 잡는'거나 다름없다. 팬스타 그룹을 이끄는 김현겸(53) 회장은 그 대척점에 있다. 그룹 안내문을 보면 그의 성향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먼저 생각하고, 먼저 움직인다'. 고객 마음을 읽고 선제적으로 나서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 나서거나 하는 것 봐서 움직이는 건 팬스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문구 역시 펭귄 효과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일은 늘 고되고 험난하다. 수많은 벽을 넘어야 하고, 곳곳에 널린 가시들에 찔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력과 실력으로 기업을 키워나가기 위해 멈춰선 안 된다. 고진감래라고, 기회와 보람이 찾아오는 기쁨을 누려야 하지 않겠나. 마라톤 경기에서 엄청난 고통을 마다하지 않고 뛰는 이유가 뭘까. '러닝 하이(running high)', 다시 말해 극통을 이겨내는 순간 찾아올 극치감을 맛보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런 점에서 미래지향적인 기업인들은 마라토너와 닮은 점이 많다. 상투를 잡거나 물타기나 해서는 그런 경지에 오르기가 불가능하다.

김 회장도 여느 성공한 기업가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역경을 넘겼다. 중앙동 출생 부산 토박이인 그는 유복하게 자랐다. 아버지가 철도공무원 출신인 데다 거제에 어장까지 가진 잘사는 집안 덕을 봤다. 하지만 빚보증에 헤픈 씀씀이로 인해 야간 중학교를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학교 아래 부산항을 보면서 바다를 꿈꾸게 된 게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지요." 중학생 김현겸은 가난이 철들게 한다는 이치를 깨쳤다.

당시 '파이프를 문 마도로스(선장)'는 청소년들의 로망이었다. 바다로 눈을 돌린 김 회장도 마찬가지. 하지만 해양대 진학의 꿈은 뜻밖에 물거품이 됐다. 시력 제한에 걸린 것이다. 중동 특수를 누리던 때라 그는 건설업으로 눈을 돌려 토목학을 택했다. 돈이나 왕창 벌자고 마음먹은 결과다. 그런데 이마저도 양심에 찔려 무역 쪽으로 틀었다. "토목사업으로 돈을 벌려면 어쩔 수 없이 흙이나 자재를 속여야 했으니까요."

뜻밖의 제안도 받았다. 고교 때 학도호국단 간부를 지낸 데다, 거리시위에 앞장섰던 그에게 당시 유명정치인 측에서 보좌관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월급이 100만 원이라니 귀가 솔깃했어요. 당시 잘나가던 선사 직원이 40만 원 받던 시절이니 당연하죠". 고민 끝에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결정을 내리곤 과감히 뿌리쳤다.

김 회장에게 인생 교훈을 던져준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서울 명동 찻집을 대상으로 한 유자 장사였다. 유자를 싼 값에 받아 배로 되팔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 서자 그는 친구들과 함께 루트세일(배달판매)에 나섰다. 하지만 아뿔싸, 당시에도 '갑질'이 있었을 줄이야. 다방 주방장들이었다. 이들을 통하지 않으면 판매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주방장 계모임에 찾아가 그들을 사로잡았고 사업은 대박으로 이어지는 듯했다.

결과는 참패. 돈다발이 들어오자 흥청망청 즐기기에 바빴다. 나중에 계산하고 나니 빚만 덩그러니 남더라는 것이다. 김 회장은 돈관리에 관한 경험칙을 여기서 배웠다. 번다고 다 내 돈이 아니라는. 88서울올림픽이 열렸던 해 그는 처음으로 해상화물을 중개하는 포워딩 업체에 취업했다. 열심히 땀흘려 최고의 영업사원이 되었지만 2년 만에 관뒀다. 남의 배가 아니라 나의 배와 하드웨어를 갖고 싶었던 열망 때문이었다. 이후 승승장구하며 오늘날 4척의 대형 선박을 주축으로 화물과 여객운송사업을 하는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육상과 해상직원 300여 명에 연 매출 2000억 원을 바라본다.

김 회장은 사실 사업운을 타고났다. 6년 전 리먼 사태와 후쿠시마 대지진, 올해 세월호 참사로 연이어 강타를 당했지만 오뚝이처럼 툭툭 털고 일어섰다. 리먼 쇼크 때는 그룹 전체가 넘어갈 뻔도 했다. "엔고에 선박리스비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여서 일본에서 빌리기로 했는데 돈이 오지 않는 바람에 최대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일본 채권자가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기다려주겠다는 통 큰 결단을 내려줘 일어설 수 있었지요." 이런 와중에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일본노선을 화물 위주의 페리사업을 유지해 망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직원들을 무척 아낀다. 스스로를 팬스타 노조위원장으로 자처하며 노동법을 철저히 지킨다. 특히 여직원들이 결혼이나 출산 때 그만두는 게 안타깝단다. 그래서 팬스타에는 자녀를 2명 낳고 복직하는 여직원들이 많다. 주위에서는 그들을 공무원인 줄 안다고. 영업사원들에게 밖에 나가 자존심 지키며 일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물론 집에 들어갈 때는 "간, 쓸개 다 빼고 잘하라"고 하지만.

김 회장의 시선은 정통크루즈사업을 정조준하고 있다. 지금은 시험단계다. 2만 t급 여객선으로 1박2일 부산연안크루즈를 하고 있는데 이용객이 14만을 헤아리니 성공한 셈. 하지만 방심은 금물.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는 크루즈사업이 수익성 측면에서 아직은 우리나라에 이르다고 판단한다. 관광, 오락성, 그리고 자본력을 두루 갖추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초호화유람선 한 척에 조 단위가 드는데 이에 걸맞는 시장수요를 키워나가는 게 우선입니다. 향후 10년간 자본력을 최대한 축적해서 시작할 겁니다." 요리연구소와 식자재 공급회사, 그리고 전문세탁업까지 사업 분야를 차근차근 넓혀나가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문어발식 확장이 아니라 팬스타 크루즈와 관련된 부문들에 대한 치밀한 업그레이드 전략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2024년쯤 지구촌을 누빌 팬스타 초호화유람선의 등장도 기대해볼 만하지 않을까.


# 김 회장의 경영철학

- 돈 되는 일에 뛰어들되 우선, 의로움을 따져라

   
김 회장에게 무역은 새 길을 만드는 사업이다. 화주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눈을 돌린다. 이 과정에서 그가 최우선 순위로 꼽는 판단기준이 견리사의(見利思義)다. 논어에 나오는 사자성어로 공자의 제자 자로가 온전한 인격체로서의 조건에 대해 물었다. 공자 왈, 지혜와 어짊, 용기의 덕목을 갖춰야 하고 이익을 보거든 옮음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김 회장에게 견리사의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버려야 함을 뜻한다. 돈에도 눈이 있다. 돈만 알면 다른 게 보이지 않는다. 이익이 되는 일에 뛰어들되 의로움에 합당한지를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는 게 김 회장의 사업 철학이다. 내가 하는 사업이 주변에 두루 이득이 되는 지를 꼭 살펴보라고 말한다.

그가 새 길을 내는 일에 심혈을 쏟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팬스타 코리아 랜드 브리지(PKLB)'라는 학술 용어가 있다. 바로 김 회장이 제안한 개척로다. 해상과 육상로를 연결해 시간과 물류비를 대폭 줄이는 방식이다. 중국 산둥에서 일본 오사카로 가려면 한반도 남쪽을 에둘러가야 한다. 이걸 줄이자는 거다. 군산에서 부산까지 육로로 신속하게 이동시키고, 나머지는 뱃길을 이용하면 된다. 더구나 한국은 세계 최고수준의 고속도로 인프라를 갖추고 있고 비용도 저렴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일본에서 중국으로 향할 때는 마산항을 거친다. 이렇게 되니 부산과 군산, 마산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일자리가 창출되고 하역 등 일거리도 늘어나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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