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아이스 클래스급의 LNG선. 아이스 클래스란 쇄빙선박이 지나간 후에 뒤따라 극지 해역을 운항할 수 있는 선박. 대우조선해양 제공

- 쇄빙유조선·드릴십 등 반짝 특수
- 발주사 요구 100% 충족 못해
- 외국 기술자문 받아 선박 건조

- 심해해양공학수조 2016년 완공
- 극지용 기술 개발 숨통트일 듯
- 정부 부처·기업 투자 확대해야

극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내 조선사들의 극지용 쇄빙선, 자원 탐사선, 해양플랜트 유치전이 활발하다.

하지만 외국 해운사들이 세계 최고의 조선 기술력을 보유한 국내 조선사에 극지용 선박들을 맡겼는데 한국 기업들의 극지용 기술력과 인프라 부족 탓에 한국 기업들이 다시 외국에 세세한 기술 자문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해양수산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련 부처와 기업이 힘을 합쳐 기술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 조선사, 극지용 선박 유치전

2007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세계 최초로 건조한 극지용 드릴십(시추선) '스테나 드릴막스(Stena Drillmax)'. 삼성중공업 제공

국내 3대 조선사인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은 해외에서 들어오는 극지용 선박에 대한 수주 및 경쟁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북극항로가 개척되고 북극 연안국들의 수요가 높아지면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진 한국에 주문을 쏟아냈다.

삼성중공업은 2007년 세계 최초로 양방향 쇄빙유조선을 건조했다. 이 선박은 얼음 산맥에 막혀 고립되면 추진기를 180도로 돌려 후진해 주변의 결빙된 얼음을 깨면서 자체적으로 새로운 항로를 찾아 나아갈 수 있는 극지용 쇄빙유조선. 러시아 북부의 바랜디 유전과 무르만스크 항구 사이의 바렌츠해를 오가는 항로에 투입됐다. 삼성중공업은 또 세계 최초로 극지용 드릴십(선박 형태의 원유 및 가스 시추 설비) 건조에 성공했다. 2012년 3월 스웨덴 스테나사에 인도한 스테나 아이스막스호가 바로 그것. 수주 당시 선가만 9억4600만 달러에 달해 드릴십(시추선) 발주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바 있다.

대우조선해양이 2013년 러시아 선사로부터 총 6조 원에 이르는 LNG 쇄빙 운반선 16척을 한꺼번에 수주했다.

현대중공업은 2011년 8월 세계 최대 규모의 극지용 쇄빙 상선을 개발했다. 현대중공업은 당시 캐나다 IOT연구센터 빙해수조에서 19만t급 쇄빙 철광운박선에 관한 최종 선형 성능 검증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하지만 현재까지 쇄빙 상선 수주 실적은 없다. 해운사의 발주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해운사들이 쇄빙 상선을 운용하거나 선박운용 계획을 세운 단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극지 광산 개발 같은 특정 프로젝트만 간혹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들어 외국 해운사들의 주문이 주춤한 상태다. 러시아 등이 국내에 발주했다가 국내 기업들이 러시아의 요구를 100%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국내 기업이 물량을 받아 다른 나라에 기술력을 알아보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 극지용 선박 개발을 위한 필수 인프라인 심해공학수조가 없는 데다 조선 경기 불황으로 기업이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를 적게 한 탓으로 분석된다. 기업의 준비가 부족했다는 얘기다.

극지공학 전문가인 한국해양대 최경식 해양공학과 교수는 "한국이 (조선) 능력이 앞서지만 극지 운항을 위한 특별한 기술을 전부 '커버'하지는 못하고 있다"면서 "극지 이슈를 확산시키고 실익을 챙기려면 이제 실질적인 기술 능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기업들도 2, 3년 뒤를 내다보면서 기술 및 인력 투자에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부산에 심해공학수조 건립

삼성중공업 극지운항용 양방향 쇄빙유조선 '바실리 딘코프'. 삼성중공업 제공

해양수산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조선 3사와 함께 총사업비 839억 원을 들여 부산 강서구 생곡지구에 세계 최대 규모(길이 100m·폭 50m·수심 15m)의 심해해양공학수조를 2016년까지 건립하기로 했다. 심해해양공학 수조는 심해 해양플랜트 핵심설계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심해환경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인프라다. 이 수조가 건설되면 국내 조선사가 극지용 선박을 개발하기 위해 외국에 나가서 실험하던 것을 이곳에서 할 수 있게 된다.

조선사 관계자는 "극지용 자원 탐사선 개발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심해공학수조에서의 테스트가 필요한데, 국내에는 없다. 해외에서 테스트를 해야 하지만 세계적으로도 몇 곳 없으므로 원하는 일정에 테스트하기 어려워 애로를 겪어왔다"고 지적했다.


# 한진重 쇄빙연구선 노하우 사장 위기

- 국가차원 인프라 확충 없어…극지 자원 주도권 경쟁 치열
- 전문가 "2척 이상 선대 꾸려야"

국내 최초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건조한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은 최첨단 쇄빙선 건조 노하우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국내 최초의 쇄빙연구선이라는 명예와 함께 이를 건조하면서 쌓은 기술 노하우가 값지다고 여겨 손해를 감수하고 수주했지만, 쇄빙연구선에 관한 추가 주문이 이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 정철상 상무는 16일 "영하 50도에서 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강판을 확보하는 것부터 만만치 않았다. 일반적인 배에서 구경조차 하기 어려운 수십 가지의 장비는 말할 필요도 없다. 회사의 입장에서도 사실상 정상적인 마진을 기대한 사업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세계 유수의 쇄빙연구선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성능을 갖춘 아라온호를 건조하기 위해 사업비(1080억 원)를 훨씬 초과하는 비용을 기술 개발에 쏟아부었는데 추가 수주가 없어 최첨단 기술 노하우가 사장될 판이어서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한진중공업은 국내 중형 조선소로서 중국에 잠식당하는 일반 상선보다 쇄빙선과 같은 특수선 시장에서 활로를 모색하고자 뛰어들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다. 선진국과 일부 업체가 독점한 특수장비를 국산화하고 생산성을 높여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지닌 제품군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국가 차원의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아서다.

지난달 12일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준공으로 우리나라는 남극 대륙에 2개의 상주 연구기지를 건설한 세계 10번째 국가에 이름을 올렸지만, 그런 위상에 걸맞은 극지연구 인프라 확충과 지원이 뒤따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한 해 아라온호는 311일을 해상에 머무르며 수송 및 연구활동을 수행했다. 남북극해를 한 척의 배가 오가면 얼마나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남는다. 한 척의 쇄빙선마저 사고나 고장, 점검으로 운항할 수 없을 때 벌어질 심각한 상황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극지 전문가들은 "세계적으로 북극항로 개척과 극지 자원에 관한 주도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쇄빙연구선은 총성 없는 영토전쟁의 척후병 역할을 하는 만큼 2척 이상으로 선대를 꾸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았다. 다행히 정부는 남극 장보고기지 준공을 계기로 올해 안에 제2 쇄빙연구선 기획연구를 위한 공고를 내고 건조를 위한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