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거돈은 안 된다’ 정서 대변한
- 순혈주의·판 깔아주기 논란 증폭
- 당 지지율·경선 흥행 우려 등
- 위기 의식 반영 아니냐 분석도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부산진구의회 의원과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 등이 23일 오후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의 부산시장 선거 출마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곽재훈 전문기자 kwakjh@kookje.co.kr

더불어민주당 소속 부산지역 기초의원 일부가 23일 김영춘(사진) 해양수산부 장관의 부산시장 선거 출마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자청하면서 ‘순혈주의’ 논란이 제기됐다. 현재 불출마 입장을 고수하는 김 장관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이러한 논란은 증폭될 전망이다.

■ 김영춘 되고, 오거돈 안 된다?

손용구·배용준 부산진구의회 의원 등 부산지역 구의원과 지방선거 출마예정자 등 13명은 이날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장관의 시장 선거 출마를 촉구했다. 이들은 “김 장관의 시장 출마는 주민의 엄중한 명령이자 간곡한 부탁”이라며 “부산을 세계해양도시의 중심으로 도약시킬 적임자로서 소임을 다해주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지역 정치권은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부산시장 후보 자리를 내줄 수 없다’는 민주당의 ‘본심’이 드러난 것으로 분석한다. 현재 민주당 시장 후보군 중 출마 의사를 밝힌 인사는 정경진 전 부산시 행정부시장뿐임에도 이들은 김 장관에게만 출마를 촉구했다. 결국 오 전 장관이 민주당 후보로 나서는 것을 용인할 수 없는 민주당의 정서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민주당 부산시당 기초의원협의체 회장인 김시형 중구의회 의원은 “전체 기초의원 58명 중 김 장관의 지역구인 부산진구 구의원을 중심으로 한 일부 의원의 자발적인 회견이다. 당론은 아니다”며 돌출행동으로 선을 그었지만 민주당의 ‘김영춘 추대’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이는 지난 19일 자유한국당이 부산진갑 당협위원장으로 정근 그린닥터스 이사장을 배제하고 권기우 변호사를 내정하면서 김 장관이 부산진갑 보궐선거에 대한 부담감 없이 시장에 출마할 ‘정치적 공간’이 열렸기 때문(본지 지난 22일 자 7면 보도)으로 보인다.

한국당의 당협위원장 공모 결과가 발표된 날, 부산지역의 모 국회의원은 원외 지역위원장과 자리를 함께하며 김 장관이 시장 선거에 출마하도록 독려하자고 뜻을 모으기도 했다. 이번 기자회견이 그 연장선은 아닐지라도 ‘오거돈보다는 김영춘이어야 한다’는 당내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2014년 시장 선거에서 김 장관이 단일후보로 오 전 장관을 지지하고 선거를 접었던 빚이 남아 있다. 김 장관이 본인 스스로 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고 주변에서 출마 촉구가 이어지는 것은 결국 오 전 장관에게 출마를 포기하라는 무언의 압력과 같다”고 말했다.

■ 김영춘의 침묵, 혼란만 자초

김 장관은 시장 선거 불출마 입장만 거듭 밝혔다. 앞으로 이에 관한 침묵이 길어질수록 오해와 논란도 커질 전망이다.

김 장관에 대한 출마 촉구가 당 차원의 ‘판 깔아주기’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최근 불출마를 선언한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경우 지지자들이 출마를 채근했지만, 김 장관은 선출직 의원들이 출마를 촉구하고 나서면서 당심이 작동하고 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오는 26일에는 ‘김영춘 장관을 사랑하는 해양수산인의 모임’이라는 단체가 시장 선거 출마를 촉구하는 회견을 준비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 자체가 유권자에게는 김 장관의 출마가 본인이 원치 않는 ‘억지 춘향’식으로 비춰지면서 본선에서 마이너스 효과를 낼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최근 김 장관에 대한 출마 촉구는 민주당의 위기 의식이 투영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가상화폐 대처와 평창동계올림픽 단일팀 논란 등으로 지역에서 민주당의 지지세가 확연하게 꺾이는 게 확인된 데다 이 전 수석의 불출마 선언으로 민주당 시장 경선 분위기 자체가 가라앉았다. 여기에 영입 인사인 오 전 장관이나 정 전 부시장이 바람을 타고 부상하면 상황이 급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근 일련의 ‘김영춘 추대’ 움직임은 이런 다급한 분위기를 반영한 결과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윤정길 기자 yjk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