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은 자타공인 대한민국 대표 건설사다. 오는 25일 창립 78주년을 맞는 이 회사 누리집엔 ‘대한민국을 바꾼 길-경부고속도로’란 영상이 있다. 부산~서울 이동시간을 15시간에서 4시간대로 단축시킨 국토 대동맥이다. 1968년 2월 1일 서울~수원 구간 기공식부터 1970년 7월 7일 역사적인 개통식까지 ‘최소 비용’ ‘최단 기간’이란 목표를 현대건설이 이끌었다. 그 배경엔 우리나라 최초이자 현대건설의 첫 해외 프로젝트인 태국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 건설 공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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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인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부지 조성공사가 첫삽도 뜨기 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공사 기간 연장을 요구하면서 수의계약 절차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사진은 가덕도신공항 예정지. 국제신문DB |
이 영상은 실패에서 배우고, 현장에서 답을 찾고, 미래를 꿈꾸는 ‘현대의 DNA’를 강조한다. 태국 공사는 도급액보다 공사비가 더 들었으나 국제공사 표준안 적용 및 신식 장비 운용 기술, 외국 풍토·인력 관리 기법을 배웠다. 고 정주영 선대 회장은 “돈으로 본 손실보다 돈 아닌 것으로 얻은 게 더 큰 벌이”라고 했다.
이를 바탕으로 경부고속도로 7개 공구 가운데 3개 공구를 책임졌던 정 선대 회장은 현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추가 비용을 떠안은 채 공기를 지켰다. 최대 난공사로 꼽힌 당재터널 공사가 그 예다. 충북 옥천군과 영동군을 잇는 이 터널은 소백산맥을 관통한다. 토사층이 문제였다. 개통식을 두 달 앞두고 터널이 절반만 뚫린 상태에서 정 선대 회장이 이른바 ‘주판을 엎는’ 결단을 내렸다. 조강 시멘트를 쓰자는 현장소장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일반 시멘트는 콘트리트 타설 후 양생에 8일이 걸리지만, 조강 시멘트는 이틀이면 충분하다. 조강 시멘트가 함유한 석회나 알루미나 성분 덕분이다. 비싼 가격이 흠이다. 덕분에 개통식 10일 전 터널 공사를 마쳤다. “도로는 혈관이요 자동차는 피다.” 정 선대 회장 신념이 오롯하다.
이게 현대건설 유산이다. 현대건설이 지난해 만든 헤리티지 캠페인 영상 ‘현대건설의 길-위대한 도전’은 “모든 것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현대건설의 시초”란 정 선대 회장 어록으로 시작한다. 이 영상에서도 태국 고속도로 건설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공사를 자랑한다.
가덕도신공항 부지 조성공사와 관련한 현대건설 태도를 보면 영 딴판이 아닌가 싶다. 현대건설은 컨소시엄 주간사로 입찰에 참여했다. 입찰이 네 차례 유찰되는 가운데 공사 기간이 72개월에서 84개월로 늘었다. 10조5000억 원 규모 공사는 지난해 10월 수의계약 대상자로 현대건설 컨소시엄을 선정하면서 한 고비를 넘는 듯했다. 그런데 현대건설이 6개월 동안 검토한 끝에 내놓은 결론이 공사 기간을 84개월에서 108개월로 다시 24개월 연장해 달라는 것이었다. 공사 기간 연장은 정부 기본계획을 바탕으로 한 입찰 조건을 따르지 않았으므로 국가계약법 위반 사항이다. 국토교통부가 현대건설 컨소시엄과 수의계약을 중단하면서 가덕도신공항 추진 절차가 중단된 연유다.
정부가 그동안 5차례 설명회를 열면서 입찰 조건을 공유해왔고, 업계 의견을 받아들여 공기를 한차례 연장한 점을 고려할 때 현대건설 대응을 납득하기 어렵다. 안정성과 품질이란 공사의 전제를 생각한다면 현대건설이 오히려 도전 DNA를 발휘할 좋은 기회다. 현실은 그 반대다. 더 좋은 조건을 챙기려는 밀당인가. 현대건설이 아니면 누가 이 공사를 하겠느냐는 버티기인가. ‘현대건설 부지 조성공사 2년 연장 고수는 수의계약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더 많은 공사비를 요구하려는 의도로 볼 수 밖에 없다’는 시민단체 지적에 답해야 한다.
국토교통부 장관은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규정한 이 사업 시행자다. 국토 균형발전과 국가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하고자 추진하는 사업이다. 착공을 앞두고 건설업체가 공기를 이유로 발을 빼려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국토부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가덕도신공항 조성 공사는 부지 조성을 포함해 모두 13조5000억 원이 들어가는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이라고 한다. 한 치의 흔들림도 허용해선 안 된다.
이런 논란이 일때마다 부산시나 부산 국회의원들은 얼마나 열심히 해결책 모색에 힘을 보탰는지 의구심을 갖는 시민이 많다. 저마다 역할을 했으리라 믿는다. 시민 기대에 못 미친다면 고쳐 생각할 일이다. 부산시장과 국회의원은 선출직이다. 시민 대표로 시민 의사를 반영할 책임이 있다. 부산 한 건설회사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시장이 건설사 대표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의논하는 자리가 한 번도 없었다.” 목소리는 모아야 커지고 의지는 힘을 합칠 때 강해지는 법이다.
부지 조성공사를 현행 84개월 공기를 지켜 올해 6월 착공한다 하더라도 완공은 2032년 6월이다. 108개월 땐 2034년 6월이다. 속절없이 미뤄지는 시간에 ‘적기 개항’을 바라는 부산 시민 애간장이 녹는다.
정상도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