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영의 그림 속 작은 탐닉 <49> 이호련 '오버래핑 이미지'의 치마

보여주는 듯, 보여주지 않는…에로틱한 욕망의 자극

여성의 은밀한 곳을 중심으로

드러내지 않는, 외설스럽지 않은 선에서

감상자의 시선을 묘하게 집중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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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09-01-28 19:41:06
  •  |  본지 21면
   
이호련, '오버래핑 이미지 081201'. 캔버스에 유채, 91×116㎝, 2008
한 여성이 선 채로 치마를 살짝 들어올린다. 미끈한 다리가 노출된다('오버래핑 이미지7503'). 비스듬히 앉아 있는 여성 역시 슬쩍 속치마를 들어 올린다. 그 사이로 탐스러운 각선미와 엉덩이 쪽이 슬쩍 드러난다('오버래핑 이미지081201'). 이들 그림에는 카메라로 시간차를 두고 다중 촬영한 듯 치마를 들어 올리는 동작이 중첩되어 있다. 젊은 화가 이호련의 '오버래핑 이미지' 시리즈는 대개 이런 식이다. 여성의 은밀한 곳을 중심으로 한 그림은 에로틱하되 외설스럽지 않다. 늘 '그만큼'에서 감상자의 상상력과 욕망을 자극한다.

보여주기와 보여주지 않기 사이

그의 그림은 다 '보여준다'. 아니다, 결코 다 '보여주지 않는다'. 아니다, 보여주되 다 보여주지 않는다. 보여준다는 말은 치마를 들어 올려 하체를 보여준다는 뜻이고, 보여주지 않는다는 말은 하체를 드러내되 은밀한 곳은 절대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보여주는 '척'할 뿐이다.

이 시늉에 '오버래핑 이미지'의 묘미가 있다.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더 강하게 감상자의 마음을 건드린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의 '보여주기'는 '보여주지 않기' 위한 보여주기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보여주기와 보여주지 않기 사이에서 놀이한다. 마치 '달'은 보여주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섹시하게 보여주는 식이다.

그렇다면 보여주기가 겨냥한 곳은 어디일까? 그림을 보고 있는 감상자의 에로틱한 욕망이다. 그림은 욕망을 자극하는 선까지만 그려진다. 인체도 '토르소'처럼 얼굴이 없다. 몸과 손과 다리만 있다. 왜 그랬을까? 시선의 집중효과 때문이 아닐까? 얼굴이 없으므로 해서 감상자의 시선은 치마 속으로 집중된다.

치마 속의 에로티시즘과 욕망 사이

사람들은 그림을 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린다. 빤히 드러난 치마 속의 다리 때문이다.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벌건 대낮에 자신도 모르게 꿈틀거리는 욕망이 민망한 것이다.

치마를 슬쩍 올려서 섹시함을 과시하는 포즈는 직접적이다. 하지만 욕망을 자극하는 방식으로는 간접적이다. 예컨대 가랑이를 벌린 여성의 생식기가 그대로 드러난,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1866)이나 최경태의 여학생처럼 이호련의 '에로틱 아트'는 표현이 직접적이지 않다. 보여주는 시늉만 한다.

여성의 몸을 감싸는 치마는 이 시리즈에서 욕망에 관계한다. 따라서 치마 길이가 짧을수록 욕망의 온도는 뜨거워진다. 하지만 욕망을 자극하는 정도 면에서, 치마는 소극적인 도구다. 특정 행위가 가해져야만 치마의 기능은 적극적이 된다. '보란 듯이' 치마를 들어 올리는 행위가 그렇다. 그 순간, 욕망은 죽순처럼 직립한다. 이런 행위의 타깃은 누구일까? 물론 남성의 욕망이다. 그 역시 남성인 이호련의 그림 모델은 남성의 시각으로 호출된 여성들이다. 그녀들은 욕망의 인화성이 높은 몸매의 소유자들이다. 곧게 뻗은 각선미, 군살 없는 몸매, 치마 등도 여성에 대한 남성의 판타지를 따르고 있다.

이 '오버래핑 이미지' 시리즈에서 곱씹어봐야 할 것은 이미지의 중첩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캔버스에 그린 그림은 정적인데, 이미지를 중첩시킴으로써 동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이 이중의 이미지는 여성모델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래서 모델이 치마를 슬쩍 내렸다가 올리거나 올렸다가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가운데 노출된 두 다리를 꼬았다가 편 흔적도 있고, 치마 속의 엉덩이도 드러난다. 이런 동적인 스타일은 에로티시즘과 교접하며 부단히 욕망을 달뜨게 한다.

화가가 노린 것도 이것이 아닐까? 치마 속의 미끈한 각선미로 시각적인 쾌감을 주는 한편 에로틱한 포즈로 남성의 욕망을 직시하게 만들기. 그것이 '오버래핑 이미지'의 의도가 아닐까?

럭셔리한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그림

이 시리즈는 제목이 중성적이다. '오버래핑 이미지'. 상징성으로 도금된 제목이 아니다. 일종의 조형방식을 제목으로 삼았다. 이런 전략은 제목에서 비롯되는 상상력을 차단하면서, 감상자를 그림에만 몰두하게 만든다.

이 시리즈의 모델은 여성 패션지의 화보처럼 색감과 질감이 우아하다. 이 점이 중요하다. 그녀들은 '우아한 포즈'로, 남우세스런 욕망의 발기를 '우아하게 포장'해준다. '오버래핑 이미지'는 남성의 욕망을 밝히는 아주 럭셔리한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그림이다.

(주)아트북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