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를 찾아서 <7> 한무종가 배병호 종사

韓武道-"이기는 게 무술의 목표" …군더더기 다 뺀 실전 무공

대대로 전해온 집안 무술 … 무법 호신법 혈법 등 구성

"권력에 밉보여 한때 시련"…원형 훼손 기술접목 거부

  • 국제신문
  • 글=염창현 기자 haorem@kookje.co.kr
  •  |  입력 : 2007-06-07 18:59:04
  •  |  본지 27면
   

한적한 시골도로를 반 시간 남짓 달렸을까. 주위 풍경에 지루해 질 무렵, 학교건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은 문을 닫은 합천군 청덕초등학교 소례분교 터. '心淸事達'이란 굵직한 글귀가 방문객을 맞는다. '마음이 깨끗하면 모든 일이 이뤄진다'라는 뜻. 가훈이다. 현관 옆에는 '天下武本'이라 적힌 자그마한 탑이 서 있다. 순간 무도인의 체취가 흠씬 느껴진다. 다시 들을 수 없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대신하듯.

한무종가(韓武宗家). 120년을 이어져 내려온 한무도의 총본산. 머리를 뒤로 묶은 다부진 체격의 남자가 악수를 청해온다. 묵직한 손아귀 힘이 전해진다. 팔뚝은 나무둥치 마냥 굵고 억세 보인다. 무산(武山) 배병호(54) 대한한무도협회 연무총재 겸 한무종가 6대 종사. 말 한 마디 한 마디마다 종가의 얼을 지키려는 자존심이 묻어 나온다.

"한무도는 저에게 철학이며 종교입니다. 모든 것이기도 합니다. 한무도가 없이는 돈이나 명예는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선대의 유지를 받든다는 것은 아주 뜻있는 일입니다".

   
#무도인은 무술로 말한다

한무도(韓武道). 1888년 배 종사의 증조부인 기산 배성전 선생이 집대성했다는 무술. 오랜 세월 집안의 장손에게 전해져 왔다는 가전비법.

배 종사를 만나기 앞서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알게된 한무도에 대한 지식은 이런 정도로 빈약했다. 사실 누군가로부터 한무도라는 무술이 있다는 귀띔을 받기 전까지는 존재 자체를 몰랐다. 분명한 기자의 과문 탓. 알고 본즉 전국과 해외에 꽤 많은 숫자의 도장이 있었다.

120년을 이어져 왔다면 필시 예사무술은 아닐 터. 근데 왜 한무도라는 이름이 낯설게만 느껴진 것일까.

"선대의 정신문화를 잇는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남이 알아주는 것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실력 없는 사범들을 양성해 무작정 세를 불린다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또 무술은 머리로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검증된 실력으로 해야죠."

외부 입김으로부터 무술종가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배 종사의 노력은 각별하다. 몇년 전 부산 모 지역에서 무술대회가 열렸을 때 지역 국회의원이 대회사를 하길 원했다. 배 종사는 이 요청을 단호히 거절했다. 무술인 행사와 아무 관련이 없는 정치인이 끼어들어서는 안된다는 이유에서였다.

한무도는 타법 호신법 검도법 혈법 무법 등 5법으로 구성된다. 타법은 손발을 이용한 타격을 일컫고 혈법에는 기수련과 양생 등이 포함된다. 무법은 무도인의 자세 등 무의 철학적 받침이 되는 이론 등을 말하며 호신법은 말 그대로 상대방의 공격에 자신을 지키는 자기 방어술이다. 검도법(劍刀法)은 검법과 도법으로 나뉘며 기법에 따라 타법(打法) 자법(刺法) 참법(斬法) 등이 있다.

배 종사가 한무종가 앞뜰에서 시연에 나섰다. 동작은 아주 간결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것이 어찌보면 춤을 추는 듯하다. 기자 일행 중 한 사람의 공격을 쉬이 흘려 버리고는 순식간에 제압을 한다. 발 동작도 깔끔하다. 화려한 동작은 없는 대신 정확하게 상대방의 급소를 타격한다. 한무종가의 도장 벽에 새겨져 있는 '공격은 그림자처럼, 방어는 깃털처럼'이란 표현이 그제서야 피부에 와닿는다.

무술 문외한인 기자가 보기에 한무도의 장점은 빠른 발놀림 즉, 보법(步法)에 있는 듯하다. 한시도 한 자리에 있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칼을 쥔 자세에서는 보법이 더욱 돋보인다.

"한무도는 다른 무술에 비해 가식된 동작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과도한 자세나 형(形), 각진 자세도 없습니다. 모든 동작이 평상적인 자세에서 이뤄집니다. 한무도에서 보법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 보법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수십명과 싸워도 맞지 않고 피할 수 있습니다."

배 종사가 기거하는 합천군의 한무종가에는 주말이면 많은 무도인들이 찾아온다. 그 가운데는 타 무술 수련자들도 적지 않다. 배 종사는 "정제된 수련에서 나오는 자신감"이라는 표현으로 문호개방의 의미를 설명한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고수들끼리 얼굴을 맞대는 이상, 수 겨루기를 피할 수는 없는 일.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즉시 돌아오는 의외의 대답.

"한번 붙어보자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무술인들에게 그 정도의 호전성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승합차에 어린이들 태우고 다니면서 도장 운영하는 게 요즘 무술 아닙니까."

#강해야만 이긴다

배 종사가 무도인의 길로 들어선 것은 필연이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로부터 틈틈이 지도를 받았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등을 거치면서 한무도는 사실상 명맥만을 유지해 온 상태. 이에 배 종사는 원형을 해치지 않은 채 한무도를 현대적으로 바꾸자는 생각에 1982년 대한한무도협회를 발족한다. 협회는 발족했지만 당시 시대상황 때문에 배 종사는 권력층으로부터 미운 털이 박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이던 전경환 씨가 당시 우리나라 무술계 장악을 위해 관변무술단체를 만들어 한무도에도 동참을 요구했습니다. 그 제안을 거절했더니 은연 중에 협박이 들어오더군요. 그 때부터 무도인이 정치 쪽에 관심을 가지면 안된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지요."

한무도는 철저하게 실전무술을 추구한다. 무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승리이기 때문이다.

배 종사와의 만남 이후 찾은 부산 사하구 구평동의 무산검도장. 얼마나 실전적인지를 보기 위해서였다. 약간의 단체 수련 뒤 사범들이 대련에 들어갔다. 한 사범은 두 개의 짧은 죽도를 든 이도류(二刀流) 검법을 구사했고 또 한 사범은 긴 칼로 맞섰다. 인정사정없는 공격. 상대방을 가격하는 죽도소리가 도장을 가득 메운다. 게다가 얽히면 떨어지는 다른 검도와 달리 발차기가 무차별적으로 가해진다. 서로간에 한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글러브만을 낀 대련에서도 마찬가지. 얼굴을 제외한 모든 신체부위에 주먹과 발이 날아든다. 안쓰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참관을 하던 외국인 수련생과 여성들도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는듯 수시로 고개를 돌렸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겨야 하기 때문에 모든 공격이 가해지는 것이 한무도"라고 배병채 총관장이 귀띔을 한다. 배 총관장은 배 종사의 동생. 오랫동안 해외 도장을 개척하는 데 주력했다.

모든 무술은 시대에 맞게 조금씩 변하게 마련. 그러나 전통무술임을 자부하는 한무도는 원형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기술의 접목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취한다. 도장 경영이 어렵다보니 일부긴 하지만 몇몇 도장에서 한무도 외에 여러가지 무술을 같이 가르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근데 하필 그 무술이 일본식 검도. 몇번의 경고에도 개선될 움직임이 없자 배 종사는 최근 해당 도장을 파문했다. 자연스러운 가운데 모든 기법이 이뤄지는 한무도의 검도법은 일본식 검도와는 전혀 다른 것. 그럼에도 일본식 검도를 따라간다면 한무도의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는 논리에서였다.

전통을 고수하는 한무도의 일인자답게 배 종사는 최근의 무술계 풍토에 대해서 일침을 가한다. "요즘은 어디가서 무술한다고 하기도 부끄럽습니다. 도장이 난립하는 것은 차라리 낫습니다. 경쟁의 원리에 따라 강해서 이기면 되니까요. 그러나 자질도 없는 사람들이 설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어떻게든 무도계가 정화되어야지요." 그러면서 배 종사는 한마디를 더 던진다. "한무도는 신비하다거나 흥미롭다는 개념으로 보면 안됩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문화로 이해해 주십시오."

■한무도의 원리
- 상대 공격력 물처럼 되돌려 반격

한무도는 배병호 종사의 증조부인 기산 선생이 17세때 경주 기림사에서 부운스님으로부터 타법과 호신법 등을 익히면서 시작됐다. 이어 기산 선생은 1888년 '기산서숙도장'을 열어 후진을 양성한다. 이 무술은 전환 역류 심화라는 3대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상대 공격을 흡입 또는 튕겨낸 뒤 물처럼 흘려 보내며, 상대의 힘을 이용해 되돌려 준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배 종사의 설명에 따르면 한무도의 동작에 과장된 것이 없는 이유는 기산 선생이 고관대작을 지낸 선비의 집에 기숙하면서 사대부 자제들을 가르친 때문이다. 극히 절제된 동작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점이 평민층에서 전해지던 여러 무술과의 차이다.

6대로 이어진 한무도는 배 종사(직계로는 4대) 이후에도 계속 장손에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군복무 중인 배 종사의 맏아들 역시 선대의 유지를 따르겠다며 한무도를 수련하고 있다.

사진=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