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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22> 닭 부속 요리

‘치킨 세대’는 모른다, 그 시절 지지고 볶은 닭내장 깊은 맛을…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2023.08.29 18:59
- 70년대 부산 양계산업 발전
- 재래시장 생닭집 주변으로
- 부산물 탕·볶음 음식점 성행

- 염통·간·창자·알집·모래집…
- 짙은 육향과 다양한 식감
- 지갑 얇은 서민 술안주 각광

- 日 ‘야키토리’ 꼬치요리 즐겨
- 최근 한국식 석쇠구이 등장

부산 남구 용호동, 오륙도가 바라보이는 경사지 일대에는 한때 ‘용호농장 마을’이 형성돼 있었다. 용호농장 마을의 주민 대부분은 한때 한센씨 병으로 투병했던 이들이다. 이들이 맨손으로 땀 흘려 농장을 일구고 자급자족, 공동생활의 터전을 이뤘던 마을이 용호농장 마을이다. 속명으로 ‘용호동 나환자촌’이 그것이었다.

용호농장 마을은 전국에 산재해 있던 한센인들이 이주해 오면서, 한때 그 주민이 70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큰 마을을 이뤘다. 이들은 황무지를 개간하여 채소를 재배하고 축산시설을 만들어 돼지와 닭 등을 사육하며 마을을 키워 나갔다.

용호농장에서 사육한 돼지가 20만~30만 마리였고, 닭은 연간 200만 마리 이상을 사육했다고 전해진다. 당시의 용호농장의 양계 규모는 부산 시민의 식생활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상당한 것이었다.
닭내장탕은 얼큰한 양념 맛을 바탕에 깔고, 각 재료가 내는 특유의 짙은 육향과 다양한 식감으로 서민의 빈속을 달랬다. 오른쪽 사진은 닭곱창볶음이다. ‘닭내장볶음’이라고도 하는 이 음식은 훌륭한 안주 구실을 해 지금도 더러는 떠올리거나 찾아가서 먹는다.
■양계산업 태동하다

이렇듯 한국전쟁 이후 부산과 대구 등 경상도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양계산업이 서서히 태동해 발전하게 된다. 이에 따른 닭의 소비가 늘어나고 외식 산업 또한 발달하면서, 지금의 치킨 산업의 토대를 형성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가축 중 가장 활발하게 음식화했던 식재료는 단연 닭이다. 농경 국가를 지나오면서 가축 가운데 소는 주요한 노동력이었기에 음식화에는 많은 제약이 따랐다. 그러다 보니 돼지와 닭을 주요 식재료로 활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돼지는 마을잔치 등 많은 이들이 참여하는 대소사의 행사 음식으로 자리 잡았을 테고, 닭은 소소하게 특별한 날 다양한 목적으로 조리해 먹음으로써 조촐하게 축하도 하고 절기에 따라 몸도 보양하는 식재료 중 하나였을 것이다.

■닭곱창·닭내장탕을 아시나요

요즘의 닭요리는 이른바 ‘치킨’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치킨이 정착하기 전까지는 주로 백숙, 통닭 등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중 닭백숙은 집안 어른의 보양식이나 절기 음식으로 제일 앞자리를 차지했다. 삼복 복달임의 대표 음식 ‘삼계탕’ 또한 그러하다.

외식 산업이 발달하면서부터는 전기통닭, 장작 통닭 등 ‘통닭’이 주요 외식 메뉴로 자리 잡기도 한다. 이후 1970년대부터 닭고기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육계산업이 발전하면서 닭고기 소비는 급격하게 늘고 음식의 종류도 다양해진다. 1980년대부터는 기름에 튀기는 프라이드 방식의 ‘치킨’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양계산업이 정착하면서 생닭 보급과 함께 닭 부산물의 소비도 늘어난다. 당시 모래집 염통 간 창자 알집 닭발 등 닭의 내장 부위와 부산물은 버려지거나 헐값에 팔려 나갔는데, 재래시장 한쪽에는 이를 수거해 전문적으로 식재료화하던 점포들이 꽤 있었다.

이렇게 장만한 닭 부산물은 서민이 즐겨 먹는 음식들의 고마운 식재료가 되었다. 그 대표적인 음식이 ‘닭 내장탕’ ‘닭 곱창볶음’ ‘닭 뼈 곰탕’ ‘닭똥집 볶음’ ‘닭발 구이’ 등이다. 닭 부산물을 사서 직접 조리해 먹기도 했지만, 여느 백반집이나 실빗집 등에서 싼값에 흔하게 먹어 왔던 것이 닭 부산물 음식이었다.
■싸고 다채로운 맛의 향연

불 위에서 익어가는 닭 특수부위 숯불구이.
특히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분포했던 생닭 가게 주변으로는, 통닭과 더불어 닭볶음탕이나 닭 내장탕을 파는 식당들이 흔했다. 이들 음식은 대부분 매운 양념을 쓰기에 얼큰하면서도 부산물 특유의 짙은 육향과 다양한 식감으로, 호주머니 가벼운 술꾼들의 단골 안주이기도 했다. 여기에 밥이나 사리를 넣어 볶거나 끓이면 끼니까지 해결했던, 참 착한 음식이기도 했던 것.

흔히 ‘닭도리탕’으로 부르던 ‘닭볶음탕’에는 먹기 좋게 토막 낸 닭 한 마리와 내장 염통 알집 모래집 등을 한데 넣어 끓여 먹었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깔끔한 맛보다는 투박하고 짙고, 걸쭉한 맛이 더 났다. 그러나 대부분 서민은 닭의 부산물로 만든 내장 볶음, 내장탕 등으로 술추렴을 했다.

소주 한 잔 털어 넣고 숟가락으로 ‘닭내장탕’을 휘휘 젓다 보면, 재수 좋게 달걀이 되기 전인 탱글탱글한 노른자가 얻어걸리기도 한다. 달걀 한 알이 귀하던 시절이라 알집 노른자의 고소한 맛에 그저 흔쾌했던 시절이었다.

‘닭곱창볶음’으로 불리는 ‘닭내장볶음’은 닭 부산물을 직접 볶아내기에 육향이 강하고 묵직하다. 그래서 호불호가 갈리는데, 제대로 먹는 사람들은 거의 중독 음식처럼 강렬하고 짙은 맛에 흥겨워한다. 은근한 불에서 점점 짙어지는 부산물은 각각의 맛을 더욱더 진하게 발현하기에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염통은 고기 향이 진하면서도 쫀득쫀득하고, 간은 끝 갈 데 없이 고소한 맛을 내며, 창자는 아삭거리는 맛이 끝까지 계속된다. 모래주머니는 능히 아는 맛 그대로 꼬독꼬독 버팅기는 식감이 좋다.

■염통 간 연골 껍질 모래집…

포장마차가 골목 곳곳을 차지하고 있던 시절, 자주 먹던 술안주 중에는 닭똥집과 닭발이 있었다. 모래주머니를 먹기 좋게 잘라 마늘 땡초에 소금 한 꼬집 넣고 볶다가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리면 최고의 ‘똥집볶음’이 된다. 얼얼한 양념을 빨갛게 바른 닭발을 석쇠에 구워낸 ‘닭발구이’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포장마차 단골의 술안주였다.

부산은 닭 부산물로 이렇게 다양한 음식으로 만들어 먹어 왔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도 요리를 해 먹어 왔다. 그중 대표적인 음식이 일본 숯불 닭요리인 ‘야키토리’로, 오래전부터 일본과의 음식문화 교류가 빈번했던 지정학적 환경의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이 야키토리는 닭 한 마리를 15~20여 부위로 세분하고 정형하여 꼬치에 꿰어 숯불에 구워내는 음식이다. 각각의 맛깔과 육향, 식감 등이 달라 서로 비교하면서 먹는 맛이 있기에 두꺼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들 부위 중 부산물로 취급하는 닭의 껍질 목살 염통 간 연골 꼬리 등도 포함되어 있는데, 숯불에 구워내는 특유의 맛과 풍미가 제법 괜찮다. 요즘은 이들 부위를 석쇠 위에 직접 구워서 먹는 ‘한국식 야키토리’인 ‘닭 특수부위 숯불구이’로 변주되어, 젊은 층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기도 하다.

■현대 치킨 문화의 밑바탕

한 집 건너 한 집이 치킨집인 요즈음이다. 그러나 풍요 속의 빈곤이란 말이 실감 나듯이 이제는 ‘추억의 음식’으로, ‘음식문화사 속 한 줄의 기록’으로 묻히고 있는 닭 부속 요리들이다. 비록 닭 부산물을 이용한 특수부위 요리가 새로이 유행이긴 하지만, 서민들 싼값의 단백질 공급원이면서 술꾼들 추억의 술안주이기도 했던 우리 전통의 닭 부속 요리가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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