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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고쳐가며 정우성 캐스팅…절친인데도 몇 번을 거절하더라”

‘헌트’로 감독 데뷔한 이정재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 | 2022.08.10 19:35
- 스파이 색출하는 첩보액션영화
- 정우성과 23년 만에 투톱 출연
- “감독 못 구해서 직접 나서게 돼
- 4년간 원고 16번 이상 고치기도
- 주연 작품 개봉할 때만큼 떨려”

요즘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배우는 이정재다. 지난해 전 세계를 강타한 ‘오징어 게임’으로 글로벌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또 지난 5월에는 자신의 첫 감독 데뷔작 ‘헌트’가 제75회 칸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 공식 초청돼 3000여 관객의 기립 박수 속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가졌으며, 10일 개봉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영화 ‘헌트’로 감독 데뷔한 이정재. 75회 칸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 공식 초청된 ‘헌트’는 ‘태양은 없다’ 이후 절친 정우성과 23년 만에 함께 출연해 더욱 의미가 있다.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재는 “좋은 시기에 태어났다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의 모든 산업과 문화를 세계 시장에서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난 것이 행운이다. 또 이 일을 30년 하다 보니까 혜택을 받는 느낌도 있다”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30년간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경험했던 모든 것을 담아 연출한 ‘헌트’는 1983년을 배경으로 정보조직 내에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와 김정도가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하며 펼쳐지는 첩보 액션 드라마다. 이정재는 “아무래도 연출을 겸한 건 처음이어서 더 떨릴 줄 알았는데 주연 영화 개봉할 때와 비슷하다. 왜 비슷한지 생각해 보니 작업을 다 끝내고 내 손을 떠났다는 생각이 들어서인 것 같다. 이제 판단은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한다”며 첫 연출작을 내놓는 소감을 담담하게 말했다.

이정재가 원래부터 연출의 꿈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니다. 과거에 여러 번 만났을 때도 연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고개를 젓기도 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연출을 한다는 것은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는 것으로 연결되는데, 시나리오는 창작의 영역이어서 엄두가 안 났다”고 했다.

1983년을 배경으로 조직 내 스파이로 서로를 의심하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와 김정도가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하며 벌어지는 스파이 액션 영화 ‘헌트’.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그랬던 그가 메가폰을 쥐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영화 ‘태양은 없다’ 때부터 연출에 대한 관심을 보여온 정우성과 제작사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시나리오를 구하다가 ‘남산’이라는 시나리오를 만나게 됐다. 감독을 구하다가 실패해 자신이 직접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이정재는 “잘 풀면 멋진 스파이 액션 영화가 나올 것 같아서 4년 동안 ‘남산’ 시나리오를 16번 이상 고쳐 썼다. 처음에는 원톱 주연이었는데 투톱 주연으로 바뀌고, 액션과 주변 인물도 많이 늘어났다”며 원작을 각색할 때 바뀐 부분을 설명했다.

시나리오 각색과 함께 가장 큰 공을 들인 것은 바로 정우성의 캐스팅이었다. ‘헌트’는 절친이자 함께 매니지먼트 회사와 제작사를 운영하는 정우성과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 만에 함께 출연한 영화다. 절친이라고 해서 정우성이 무조건 출연한 것은 아니고, 몇 번 고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정재는 “‘친하니까 같이 하는 거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거절을 셀 수 없을 만큼 당했다. 다섯 번인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친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었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참여 결정부터 완성까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며 “처음 투톱 액션을 생각했을 때부터 상대는 정우성 씨였고, 그만큼 그의 캐스팅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헌트’는 액션 스파이물을 표방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서로 다른 신념을 갖고 있는 안기부의 국내외 파트 팀장 두 명이 서로 다른 상황 속에서 대통령 암살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이정재는 “사실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부분인데 ‘잘못된 신념에 대한 이야기’라는 주제를 잡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며 두 인물에 보다 집중해주길 바랐다.

또 1983년을 배경으로 한 ‘헌트’는 그 해 일어난 이웅평 귀순과 아웅산 테러 사건을 사실과 조금씩 다르게 다룬다.

이에 대해 이정재는 “테러가 일어난 장소를 다른 나라로 바꾸고 좀 더 많은 상상력을 넣어서 훨씬 더 영화적으로 풀어내면 좋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그러면 개봉했을 때 역사 왜곡이나 너무 재현했다는 시선이 많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좀 주저하기도 하고 겁이 많이 났다”며 속내를 밝혔다. 이어 “박평호와 김정도, 두 인물이 어떤 남자이기를 바란다는 마음이 딱 생기면서부터 좀 더 과감하게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지금의 시나리오가 영화로 이제 나왔다”며 “그러다 보니까 특히 아웅산 테러 사건은 당연히 다른 나라로 바꿔야 했다. 또 당시 행사장 내 내빈들이 폭탄 테러 직전에 버스를 타고 현장을 빠져나가는 장면을 명확하게 그렸다”고 다시 한번 영화적 허구 장면임을 강조했다.

감독의 첫 발걸음을 ‘헌트’로 멋지게 내디딘 이정재의 차기 연출작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그는 “‘헌트’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4년간 ‘대립군’ ‘신과 함께’ 1·2 ‘보좌관’ ‘사바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오징어 게임’ 등 7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제 연기를 좋아해 주시는 관객분이 계시니까 연기를 계속 보여드려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열심히 해야 하는데, 과연 그런 상황에서 시나리오 쓰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든다”며 연출은 못할 것 같다는 뜻을 내비쳤다. 다만 “정말 좋은 시나리오가 온다면…. 그런데 좋은 시나리오를 저한테 (연출하라고) 주겠나”며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헌트’를 본 관객이라면 이정재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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