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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48> 창녕 우포늪 붕어밥상

밥도둑 붕어찜에 월척붕어 뽀얀 곰탕까지 ‘우포늪 보양식’
최원준 음식문화칼럼니스트 | 2021.12.28 19:52
- 습지 주민이 낚은 우포늪 생선
- 인근 식당서도 맛볼 수 있어
- 가마솥에 온종일 쪄내는 붕어찜
- 푹 곤 붕어백탕이 늪지 고유 음식
- 전통방식 조리 이젠 찾기 어려워

저물어가는 한 해를 정리하기 위해 창녕 우포늪을 찾았다. 하늘은 유난히 새파랗고 명징했다. 물 위의 철새들은 반짝이는 윤슬 주위를 맴돌며 한창 자맥질 중이다. 드넓은 물빛을 바라보며 산책길을 호젓하게 걷는다. 일상의 모든 시름과 후회와 희로애락들이 주마등같이 부질없다. 참, 잘 왔다.
창녕의 향토음식인 우포늪 붕어찜.
우포늪. 우리말로 소벌못. 람사르협약으로 보호받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습지 중 하나. 천연기념물 제 524호로 둘레 7.5㎞, 전체 면적 231만㎡에 이르는 광활한 면적의 국내 최대 내륙습지이기도 하다.

창녕군 대합면 이방면 유어면 대지면 등 4개의 면에 걸쳐 자리하고 있는데 인근의 주민들에게는 태(胎)를 묻은 젖줄과도 같은 곳이다. 한때 열악한 환경 속에서 끼니를 걱정하던 시절, 이 우포늪은 그 넉넉한 품으로 사람들을 거두고 먹였다. 잉어 붕어 장어 가물치 등 늪에서 나는 온갖 물고기를 넉넉하게 내어주었던 것이다.

우포늪 전경.
그래서 우포늪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이곳에서 나는 물고기를 주식 삼아 다양한 음식을 해먹었다. 잉어와 장어 가물치 등은 보양음식으로, 비교적 개체수가 많고 몸집이 작은 붕어는 밥상 위 다양한 형태의 반찬으로 올랐던 것이다.

때문에 지금까지도 창녕에는 옛날에 먹어왔던 붕어찜, 붕어조림, 붕어매운탕 등 붕어로 만든 음식들이 ‘향토음식’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이렇게 밥 삼아 먹던 붕어이니 조리법 또한 발달했을 터. 다른 지역의 붕어요리와는 확연히 다른 독특한 맛을 지니고 있다.

우선 붕어찜은 가마솥에 넓적넓적하게 썬 무와 양념된 무청을 넉넉하게 깔고 맛이 든 중치의 붕어를 올리고, 그 위에 다시 무를 덮어 나무장작으로 불을 땐다. 적당히 익으면 약한 불로 하루 종일 은근하게 익혀낸다. 그러면 뼈가 물러져 따로 가시를 발라낼 필요 없이 통째로 머리부터 꼬리까지 먹을 수가 있다.

붕어곰탕 한상차림.
또 한 가지는 붕어백탕. 붕어를 들기름을 두른 가마솥에서 익힌 후 물을 붓고 10여 시간을 푹 고듯이 끓여내는 음식이다. 붕어백탕은 우포늪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보양의 음식이다. 붕어 이외에도 잉어, 가물치 등을 함께 고아 보약 대신 집안 어른께 올리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 붕어를 사골곰국처럼 고아 먹어왔던 것이다.

우포늪 일대에는 일정 가구들에 한해 우포늪의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어업권을 인정하고 있다. 때문에 우포늪 부근의 몇몇 식당에서는 ‘우포늪 산’ 물고기 음식을 맛 볼 수가 있다. 특히 우포늪은 생태정화기능을 가지고 있어 물이 깨끗하고 건강해 이곳의 물고기들은 따로 해감을 시키지 않아도 비린 맛이 없고 흙내 또한 나지 않는다고 한다.

우포 토박이로 우포늪의 옛 전통방식대로 붕어찜을 조리하던 할머니의 식당을 찾았으나, 전통방식 조리법의 곤고함이 여간 아니어서 가게를 접었다고 한다. 대신 마을의 몇몇 군데의 식당 중 한 곳에 들러 붕어찜을 주문한다.

붕어곰탕을 가마솥에 푹 끓이고 있다.
전골냄비에 가득하니 붕어찜이 차려진다. 김이 슬슬 오르는 냄비에는 무청 대신 콩나물 정구지 등 거섶이 층을 쌓고 있다. 이를 걷어내니 손바닥만 한 붕어 세 마리가 통째로 고스란 하다.

통통한 놈으로 골라 개인 접시에 담는다. 붕어찜 한 접시에 벌써 마음이 넉넉해진다. 우포막걸리 한 잔에 붕어 살점 한 점 집어 올린다. 붉은 빛이 살짝 도는 살점이 강렬하게 식욕을 돋운다.

한 점 입에 넣어 맛본다. 우선 살이 담백하니 좋다. 씹다보니 단맛이 슬슬 올라온다. 민물생선 특유의 진한 맛이다. 쫄깃하면서도 씹을수록 부드럽게 부서진다. 가시가 성가시긴 해도 발라먹는 재미로 치자면 이 또한 재미지기도 하다.

국물은 달큰하면서도 매운 양념에 칼칼하다. 가끔 밭은기침이 나올 정도로 맵싸하다. 불에 졸이면 졸일수록 국물은 진하면서 걸쭉해진다. 고기를 적셔먹으니 독특한 소스 같기도 하고 밥에 얹어 먹으니 잘 숙성된 양념장 같기도 하다.

대가리살도 발겨 먹는데 꼬들꼬들하면서도 고소한 것이 꽤나 괜찮다. 뱃살 부분도 살이 넉넉하고 진한 맛을 낸다. 얼갈이 시래기 콩나물 등속도 붕어와 양념 간이 듬뿍 배고 어우러져 고소하고 짭조름한 것이 기어이 밥 한 공기를 부르고야 만다.

식당을 나와 붕어백탕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았으나 이 또한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비슷한 음식을 취급하고 있는 식당을 수소문 해 간 곳이 창녕 부곡의 ‘조선어탕’. 이곳에서 ‘붕어곰탕’을 만났다.

“어부가 잡은 10년 이상의 월척급 참붕어를 내장만 제거한 뒤, 산채로 들기름에 익힌 다음에 도라지 생강 메주콩 등을 넣고 뼈가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푹 고아 상에 냅니다.” 김수한 사장의 설명이다.

슬슬 끓는 붕어곰탕이 상에 오른다. 뽀얗기가 마치 사골 곰국 같다. 소금 간을 하고 붕어곰탕 한 술 떠먹어 본다. 진하다. 그리고 고소하다. 붕어 특유의 묵직한 뒷맛은 남지만 그다지 비리지는 않다.

고소한 맛 뒤로 파 향이 은은하게 나면서 신선함을 더한다. 붕어곰탕 위로 송송 썰어낸 파 때문에 향긋한 맛이 살아 오르는 것이다. 몇 술을 떠먹으니 속까지 풀리는 느낌이다. 붕어곰탕에 밥을 만다.

서서히 밥에 붕어곰탕이 배며 그 고소함은 배가되고 국물은 찰기를 더해 든든해진다. 고소한 국밥을 새콤한 묵은 김치와 곁들여 먹으니 이 또한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그릇을 다 비우고 나니 보양식 한 그릇 먹은 듯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우포늪이라는 청정 자연환경에 기대어, 깨끗하고 건강한 밥상으로 평생을 살아온 우포늪 사람들. 우포늪의 보존과 함께 그들의 음식문화 또한 우리네 밥상 위에서 오래도록 풍성하게 올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인 · 음식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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