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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읍성 왜 배 모양일까? 방어전략 숨어 있었네

조선의 읍성 - 이일갑 지음/국학자료원/4만5000원
오광수 기자 inmin@kookje.co.kr | 2021.11.25 19:45
- 남해안 성곽 평면 모양 각양각색
- 사각형은 신분 질서 유지에 바탕
- 군선 구조 차용한 배 모양 읍성들
- 마을의 번영·안녕 염원 담기기도

우리나라는 예부터 ‘성곽의 나라’로 불렸다. 그만큼 성곽이 많았다. 산에도(산성), 바다와 가까운 곳에도(연해읍성) 성곽들이 자리 잡았다. 이들의 상당수는 자연을 닮았다. 집채보다 큰 바위가 있으면 이를 성벽으로 삼기도 했다. 그래서 성곽의 평면 모양은 네모난 것, 둥그런 것, 배 모양, 사다리 모양으로 각양각색이다. 바위와 하천 등을 끼고 비뚤비뚤…. 그래서 부정형(不定形)으로 이뤄진 남해안 지역 읍성의 평면 형태가 자연환경에 의한 것이라는 환경결정론적 견해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사정만 있었을까.
하늘에서 본 기장읍성 일대. 반달 모양의 성곽 쪽이 남문 터다. 남벽 아래의 하천은 성을 처음 쌓을 때 자연해자로 이용되다가 훗날 성벽 확장 때 성 안으로 편입됐는데, 이 때문에 남벽 앞에 새로 해자를 판 것으로 보인다. 이일갑 원장 제공
이 점이 궁금하다면 (재)시공문화재연구원 이일갑 원장이 쓴 ‘조선의 읍성-남해안 지역을 중심으로’(국학자료원 간)를 펼쳐 보라. 읍성(邑城)은 지역의 주요 거점에 군사적인 기능과 행정적인 기능을 복합해 쌓은 성곽이다. 읍성은 각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중심지의 역할을 했다. 그래서 읍성을 들여다보면 당시 시대상을 알 수 있다. 상당수가 돌무더기 정도로 남아 있던 읍성에서 조선 시대 역사·문화 콘텐츠를 캐낼 수 있다. 이 원장은 책에서 “조선 시대 읍성 축성과 방어시설 한 단면을 파악하여 문헌사(文獻史)에 누락된 자료를 보완하고 당시 정치, 경제, 사회상을 복원하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고 했다. 책에서 다룬 남해안 지역 읍성은 다른 지역 읍성들과 비교할 때 고고학적 조사 자료가 풍부하다. 남해안 지역 읍성을 통해 조선 전체 읍성의 면모를 복원하는 셈이다.

앞서 언급한 ‘과연 이러한 사정만 있었을까’로 돌아가 보자. 이 원장은 남해안 지역 읍성(연해읍성)의 평면 모양에 따라 방형(네모난 모양), 원형(둥근 모양), 주형(배 모양), 제형(사다리 모양)으로 구분했다. 그런 다음 읍성이 이런 모양별로 쌓아지게 된 까닭을 따져봤다. 먼저 방형의 경우다. 김해읍성 웅천읍성 남해읍성 언양읍성 함안읍성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원장은 네모난 평면 모양이 상위 군현과 군사 지휘 체계상 최상위급 지휘관이 있는 읍성에만 적용됐다고 봤다. 지형적 조건보다는 유교적 신분 질서에 기초한 행정체계의 질서를 잡는 데 무게를 뒀다는 것이다. 종전의 환경결정론적 견해를 다시 따져보게 되는 대목이다.

이 원장은 남해안 지역 읍성을 쌓았을 때 평면 모양이 결정된 것은 자연환경에만 기인하는 게 아니고 읍성의 평면 모양에 적합한 자연 지형을 정해 성을 쌓았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조선 전기에 중앙권력에 의해 일관되게 추진되는 축성 사업이 단순히 국방 문제 이외에도 유교적 신분 질서 사회의 유지에 바탕하여 지방통제를 통한 왕권 강화라는 당시 위정자들의 현실 인식에 따른 것으로, 통일된 축성 규식과 평면 형태의 일관된 적용이 남해안 연해읍성에서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주형의 읍성이다. 종전에는 삼태기형 타원형 삼각형 부정형 등으로 명명됐다. 기장읍성 고현성 고성읍성 울산병영성 영산읍성 등이 이에 속한다. 이런 모양의 읍성이 출현하게 된 까닭에 관해 흥미롭게 해석했다. 이 원장은 성을 쌓을 때 방어의 사각을 최대한 줄이려고 만곡과 돌출을 시행하고 방어의 전면 쪽도 좁혀 방어력을 극대화하려는 차원에서 당시 병선(한선·韓船)의 구조를 차용했다고 봤다. 이 시기는 주로 성종조를 거쳐 16세기 말까지다. 병선의 건조와 수리를 통해 축적된 도면과 기술력이 읍성의 축성 도면 작성에도 일정 부분 반영됐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 원장은 풍수지리사상(행주형)도 읍성 축조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행주형이란 사람과 물산, 금은보화를 싣는 것으로, 부(富)를 상징하는 풍수형. 이 원장은 “전형적인 행주형에 해당하여 굳이 풍수지리적인 보완이 필요치 않은 강릉읍성이나 안동읍성에 반해 고현성이나 영산읍성은 입지 지형의 풍수적(風水的) 약점을 보완하고 고을 안녕과 번영을 바라는 염원에 따라 그 축조 방향에서도 동쪽과 북쪽으로 배가 떠나는 형국, 즉 힘 있는 배의 형상을 하는 주형으로 축조된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조선 전기 읍성의 신축 때 유행했던 일종의 축성 패턴이었다는 것이다. 연해읍성 대부분이 조선 개국 이후 신축된 것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래저래 볼 게 많은 책이다.

오광수 기자 inmi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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