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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31> 경남 고성 ‘총쟁이국밥’

개운한 염소국밥 한입 꼬독꼬독 고기 가득…고성의 인심 담겼구려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2021.04.06 19:43
- 포수집안 여인이 쇠고기로 끓여
- 장터에서 팔던 게 ‘총쟁이국밥’
- 넉넉한 인심에 외지까지 입소문
- 국밥 동냥 대접받았던 거지들
- 그 여인 죽자 찾아와 곡 하기도

- 오늘날 ‘총쟁이국밥’이라 함은
- 염소고기로 끓인 국밥을 의미

- 꼬들꼬들 흑염소 석쇠불고기에
- 구장술 곁들이니 밤 깊어가네

음식은 맛으로 먹는 것이지만 눈으로도 먹고 귀, 코, 그리고 촉감으로도 먹는다. 오감의 감수성을 총동원하여 맛을 탐구하는 것이 ‘먹는 행위’, 식사(食事)인 것이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차가운 이성이 아니라 풍성한 감성이 주관하기에 맛의 세계는 더욱 풍요로워진다. 그만큼 정량화되지 않고 주관적인 개념이 앞서는 것이 음식의 영역이다.
경남 고성의 염소국밥. 고인이 된 박덕선 할머니가 처음 고성장에서 말아 판 ‘총쟁이국밥’의 대를 이 염소국밥이 잇고 있다.
가장 감상적인 감각이 실재하는 행위이기에 인간 희로애락이 얽힌 재미난 이야기 또한 덧입혀지기도 한다. 지역의 오래된 음식이거나 특별한 식재료로 조리한 음식 등은 그들만이 가지는 스토리텔링이 있다.

그 음식 속 스토리가 음식의 맛을 더욱 짙고 걸쭉하게 만든다. 최근 찾아가 맛있게 먹은 음식도 음식 속 이야기가 참으로 재미지다. 경남 고성의 ‘총쟁이국밥’과 ‘월평리 구장술’에 얽힌 이야기이다.

예부터 우리네 장터에는 맛있고 후한 인심의 장터국밥집이 한둘씩은 있었다. ‘국밥 먹으러 장에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장날과 국밥’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이다. 장 보러 온 사람이나 장에 팔러 온 장꾼이나 국밥 한 그릇 뚝딱해야지만 ‘볼 장 다 본 것’이다.

■고성장 인기 많던 ‘총쟁이 집’ 국밥

양파 위에 올린 뒤 직화로 구워 불향이 그윽한 흑염소 불고기.
고성장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전쟁 이후 고성장에는 총쟁이(포수) 집안의 여인이 큰 가마솥을 걸어놓고 국밥을 팔았다. 그 맛이 너무 좋아 고성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의 사람들도 장날이면 이 여인의 국밥을 먹으러 일부러 장을 찾곤 했다.

당시 상호를 걸어놓고 영업을 하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총쟁이 집안 여인이 하는 국밥집이라고 ‘총쟁이집’, 그리고 그 국밥을 ‘총쟁이국밥’이라 불렀다. 지금은 고인이 된 박덕선 할머니가 총쟁이집 주인장이었다.

박 할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은 데다 인심도 후해 언제나 국밥을 넉넉하게 말아주기로 유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거지들에게도 문전박대하지 않고 고기 넉넉히 넣은 따뜻한 국밥을 매번 먹이는 인정을 베풀었다.

주위 장터 사람들에게도 “고기 몇 모타리에 국물 쪼매만 더 부으먼 되는 거로 머 그리 야박하게 구노?”하며 거지 타박을 말리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총쟁이집 인심은 고성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고, 총쟁이국밥 한 그릇 안 얻어먹어 본 고성 거지가 없을 정도였다.

“고성에서 ‘총쟁이집’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소고기국밥을 잘 끓였는데 맛도 좋고 인심이 좋아서 장날이면 가게 앞에 길게 줄을 섰지요.” 어린 시절 고성장터에서 자란 고성토박이 임강백(79) 씨의 말이다.

그러다보니 박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고성의 거지들이 개울가에서 몸을 깨끗이 씻고 천과 대나무막대기로 만장을 갖춰 장례에 참여했다고 한다. 으레 초상이 나면 각설이패들이 음식 구걸하러 오는 경우는 있어도 곡을 하러 오는 경우는 드문 법. 그만큼 고성 사람들은 고성의 맛과 인심을 이야기할 때 박 할머니의 ‘총쟁이국밥’을 빠트리지 않는다.

■염소국밥와 월평리 구장술

미리 말하자면 지금의 총쟁이국밥은 고성장에서 국밥을 대표하는 ‘염소국밥’을 이르는 말이다. 원래는 고성장의 ‘총쟁이집’라는 국밥집에서 유래되었으나, 이제는 ‘고성의 국밥’으로 보통명사화된 것이다.

예부터 장터국밥에는 빠지지 않는 음식이 있다. 막걸리이다. 넉넉한 장터국밥 한 그릇 뚝딱할라치면 입에 짝짝 달라붙는 막걸리 한잔해야 섭섭지 않다. 고성장에서는 총쟁이국밥과 아주 잘 어울리는 술이 있다. ‘월평리 구장 술’이다. 쌀 좋은 고성에서 빚은 ‘고성 막걸리’를 지칭한다. 이 술 또한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월평리 구장술’은 한량 기질이 있는 고성의 월평리 구장(이장)이 술과 사람을 좋아해 술자리를 즐겨 했는데, 고성 술꾼 중에 이 구장 술을 안 받아 마신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술자리를 가지다 보면 술은 남았는데 안주가 떨어지고, 안주가 남았는데 술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면 술 시키랴, 안주 시키랴 술자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길어만 진다.

월평리 구장과 술을 마시다 보면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늘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유래가 되어 고성에는 ‘월평리 구장술 먹는다’는 식담까지 생겨났다.

이렇게 장터국밥에 막걸리 두어 잔으로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주흥이 도도해지면 주막의 주모에게 시시껄렁한 농지거리도 오고가고 할 게다. 주모에게 슬쩍슬쩍 육담도 건네고 투박한 손 한 번 잡기도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장터 주막의 주모들은 후한 인심과 더불어 야한 농담도 척척 잘 받아넘겨 줘야 장터의 명물 주모가 되는 것이다.

한 술꾼이 이 월평리 구장술을 마시면서, 술은 남았는데 안주가 떨어졌다. 그런데 호주머니에 돈도 떨어졌다. 그래서 애교 섞인 농담으로 “주모, 주모, 안주 조금만 더 주면 안 잡아먹지” 하니 박색의 주모가 “못생긴 나에게 그런 말을 해주니 고맙다”면서 공짜안주를 푸짐하게 제공했다고 한다. 고성의 술 인심을 이야기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이처럼 고성의 음식문화는 ‘총쟁이국밥’과 ‘월평리 구장술’ 이야기 속에 함의되어 있다고 보면 되겠다. 고성군은 이 두 이야기를 입혀 고성의 ‘아홉 가지 맛(九味)’ 중에 ‘총쟁이국밥’과 ‘월평리 구장술’을 포함시켜 고성의 대표음식으로 선정했다.

■진한 국밥에 흑염소 불고기까지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 고성의 ‘총쟁이국밥’은 ‘염소국밥’이 대를 잇고 있다. 당시 고성의 국밥에는 소고기국밥, 돼지국밥, 염소국밥이 각자 맛의 영역을 지키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염소국밥’이 고성의 장터국밥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식당에 들어가 ‘흑염소국밥’을 시킨다. 흑염소국밥과 함께 맛깔스런 상이 차려진다. 가만 보니 맑은 소고기국밥처럼 생겼다. 염소사골과 고기, 내장 부위를 함께 쓰는 것 같다. 국물을 한 술 떠먹어보니 진하면서도 개운하다. 염려했던 염소 특유의 누린내는 없다. 육수에 대파, 양파, 무, 콩나물, 얼갈이 등을 넣고 국물의 균형을 잘 잡았다. 고기를 한 점 먹어본다. 식감이 꼬독꼬독한데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올라온다. 껍데기 부위는 쫀득쫀득하기도 하다.

여기에 ‘흑염소 석쇠불고기’를 더한다. 양파 위에 직화로 구운 불고기를 올려 내준다. 불향이 잘 입혀졌다. 한 점 먹으니 부드러우면서도 달고 고소하다. 육즙도 잘 잡아 씹을 때마다 촉촉한 느낌이다. 나중 주인장에게 들어보니 암컷 흑염소만 사용하기에 육질이 부드럽고 누린내가 없단다.

여하튼 불고기 한 점에 막걸리 한 잔 곁들인다. 마음씨 좋은 구장이 한 잔 술을 권하듯 구장술이 흔쾌하게 넘어간다. 총쟁이국밥 한 뚝배기에 구장술 한 잔이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데운다. 이러구러 고성장은 파할 시간이 지나가는데 타지의 나그네는 월평리 구장술에 반해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한 잔에 또 한 잔을 더하니 고성의 밤이 이득하게 깊어만 간다.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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