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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30> 거제 씸벙게(왕밤송이게)

봄이면 거제 밥상에 피는 ‘바다꽃’…이놈은 내장맛이 9할이라오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2021.03.09 19:51
- 남해에 서식하는 털게의 일종
- 초봄에만 잡히는 귀한 어족
- 수염 많고 꽃송이 같은 외형에
- 지역민들은 ‘씸벙게’라 불러

- 주먹만한 크기 10분만 찌면 돼
- 된장국 끓이면 꽃게탕과 비견
- 고소하고 깊은 맛에 해장 절로
- 조상님 제사 음식으로도 올려

- 어린 시절 즐겨먹던 소울푸드
- 개체수 급감해 지금은 비싼 몸

얼마 전 봄볕 완연한 날, 진해만 가덕수도 쪽으로 가족 나들이를 다녀왔다. 집안 어른과 함께 낚시를 하던 중 우연찮게 ‘털게’를 낚아 올렸다. 온 몸에 오돌토돌한 가시털이 나 있고 등딱지는 둥글둥글 둥근 오각형으로 생겼다. 주로 진해만과 거제, 통영, 고성, 남해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이곳 사람 대부분이 털게라 부르는 이 게의 원래 학명은 왕밤송이게. 커다란 밤송이를 닮아 지어진 이름이다.
찜통에 10분간 쪄낸 씸벙게.
우리나라에는 털게라 불리는 게가 두 종류 있다. 동해를 중심으로 서식하는 털게와 주로 남해에 서식하는 왕밤송이게다. 둘 다 털게과이면서 몸 전체가 작은 돌기와 털로 덮여있어 언뜻 봐서는 구분이 잘 안 간다.

자세히 보면 털게는 비교적 크고 등딱지가 아래위로 둥근 편이고 털이 길고 억세다. 왕밤송이게는 털게에 비해 크기가 작고 등딱지가 오각형을 이루며 좀 더 얼룩덜룩한 모습을 띤다.

■초봄에만 잡히는 왕밤송이게

씸벙게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갯것 중 하나인 왕밤송이게는 1년에 딱 한 철 초봄에만 잡힌다. 제철 또한 산란 전 3~4월로 이맘때쯤이 가장 맛이 좋다. 본격 조업 시기는 1~3월. 이후 수온이 오르는 6월 전후로 모래밭 속으로 파고들어가 여름잠을 잔다. 그래서 유독 봄에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어족이기도 하다.

돌이나 펄이 많은 모래 바닥이나, 해조류 군락지 등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부분 토막 낸 정어리나 고등어 미끼를 넣은 통발에 걸려든다. 통발에 여러 어종과 함께 혼획(混獲)되는 경우가 많은데, 남해군 일대에서는 게통발로 왕밤송이게를 전문적으로 어획하기도 한다.

원래 왕밤송이게는 거제도 연안에서 대량 서식, 한때 그 어획량 또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특히 거제 장목 해안에서 많이 잡혔는데, 한때 그 개체수가 많고 맛이 좋아 거제 사람들이 평소 좋아하던 식재료였다. 그래서인지 거제 사람들은 이 친숙한 왕밤송이게를 거제 토속어로 ‘씸벙게’라 불렀다. ‘수염처럼 보송보송하고 꽃처럼 활짝 핀 모양의 게’란 뜻이다. 경남 지역어로 수염을 ‘씸지’, ‘시~임지’라 부른다. 꽃이 활짝 핀 모습은 ‘벙글다.’라고 표현한다. 이 두 단어를 합친 말이 ‘씸벙게’라는 것.

그도 그럴 것이 ‘씸벙게’를 익혀놓으면 꽃처럼 빨간 것이 둥글고 함박하다. 그리고 등딱지 윗부분에 꽃술처럼 생긴 긴 털이 두 가닥 나 있어, 영락없이 잔털 부숭부숭한 꽃송이 같다. 남해 지역에서는 ‘벙게’라 부르기도 한단다.

거제도에서는 워낙 흔하디흔한 놈이었기에, 장목 유호리 버드레 마을 주민들 말로는 “어린 시절 늘 바다에서 돌을 뒤져 씸벙게와 문어를 잡고 놀다 배가 고프면 고동을 주워 깡통에 구워먹곤 했다.”고 추억한다.

■거제사람들 추억의 맛

씸벙게를 넣고 팔팔 끓인 된장국은 맛이 깊어서 별도의 육수가 필요없다.
지금은 귀하신 몸이 되어 ‘봄의 별미’로 몇 마리씩 쪄먹는 실정이지만, 당시 거제 사람들은 이 ‘씸벙게’로 봄날 내내 된장국을 끓여먹었다. 봄철 밥상의 주요 식재료였다는 뜻이다. 씸벙게는 게 향이 진하고 은은한 단 맛이 돌기에, 육수 없이 맹물로 국이나 탕을 끓여도 구수하고 시원한 맛을 낸다.

거제 하청 출신 강정자(77)씨는 “거제 하청에서는 봄철이면 늘 밥상에 씸벙게 된장국이 빠지지 않고 올라왔다.”며 “친정아버님께서도 무척 좋아하셔서 맛있게 드시던 모습이 생각난다.”고 말한다.

주산지답게 거제에서는 씸벙게를 제사상에 올리기도 했다. 거제의 특산이면서 조상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이었기에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제사상에도 오르지 못할 만큼 어획량이 급감해 거제 사람들의 아쉬움 또한 크다.

거제도에서 돌아오는 길 중간에 집에서 조리해 먹기 위해 씸벙게(왕밤송이게)를 산다. 진해 용원어시장에도 봄을 맞아 진해만에서 잡은 왕밤송이게가 가게마다 가득하다. 이곳에서는 ‘털게’로 불리는 왕밤송이게를 27번 중도매인 이명훈씨는 ‘성질이 온순해서 사람이 건드려도 공격성을 띠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집게발도 크지 않고 잘 물지도 않아요. 사람이 건드리면 밤송이처럼 동그랗게 움츠려 자신을 보호합니다.”사람으로 치면 내성적인 성격이라는 것이다.

■쪄먹거나 된장국 끓이면 깊은 맛

왕밤송이게를 주방 솔로 빡빡 깨끗하게 씻어준다. 왕밤송이게는 사니질(沙泥質)의 바다 밑바닥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몸체를 깨끗하게 씻어내야만 본연의 진하고 깊은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크기가 성인 주먹만 하기에 끓는 찜통에 10여 분 정도만 찌면 되는데, 찔 때는 배가 위로 향하게 뒤집어서 쪄야 한다. 여타 게보다 내장 맛이 질릴 정도로 짙고 고소하기에 장을 소실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거제 사람들은 ‘씸벙게는 장맛이 9할’이라 할 정도로 내장의 맛을 일미로 친다. 통영 사람들도 이 왕밤송이게를 즐겨먹는데, 정월대보름에 게를 짚으로 묶어 살짝 쪄서 먹곤 했단다.

앞서 말했지만 왕밤송이게는 쪄서 먹는 것도 좋지만 된장국으로 끓여놓으면 꽃게탕과 비견될 정도로 그 맛이 뛰어나다. 워낙 풍미가 좋아 국을 끓일 때 육수가 필요 없을 정도다. 토속된장을 풀고 무, 파, 땡초 등을 넣고 자작하게 끓여내면 해장이 될 정도로 그 국물 맛이 일품이다. 왕밤송이게를 일부는 찌고 몇 마리는 된장국에 넣고 끓여낸다. 가족들과 함께 둘러 앉아 게 다리를 뜯고 몸통 살을 파먹는다. 심지어 입에 물고 쪽쪽댄다. 달고 고숩고 진하다. 보글보글 끓여낸 된장국 한 술 뜨는데, 그 웅숭깊은 시원함이 끝 갈 데가 없다. 온 입 안으로 봄이 출렁이고, 바닷바람이 살랑댄다. 아~ 이렇게 봄은 오는 것인가!

거제 해역 곳곳에서 대량 서식했으나, 지금은 그 개체수가 적어 비싼 대접을 받고 있는 씸벙게. 그런 중에도 남해권역에서는 왕밤송이게의 서식환경 및 생태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일부 지자체에서는 인공종묘생산의 성공으로 방류사업까지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얼마지 않아 이 씸벙게로 넉넉하면서도 맛있는 봄날을 맞을 수도 있겠다.

시인 · 음식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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