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노]발바닥이 곧 날개다

이노성 기자 nsl@kookje.co.kr  |  입력 : 2021-03-16 21:58:04
오륙도를 바라보며 해맞이공원으로 내려가는 길. 국제신문DB


길의 전성시대입니다. 제주 올레와 지리산을 걷다 부산 갈맷길에서 숨을 고르고 해파랑길로 순례를 떠나는 뚜벅이가 넘쳐납니다. 이제 길과 걷기는 어딘가로 가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목적입니다. 코로나19를 이겨내는 생명력이자 행복을 깨우는 자극제입니다.

한국관광공사가 16일 발표한 걷기여행 실태조사에서 제주 올레(24.9%)와 갈맷길(8.8%) 한라산 순례길(8.1%)이 1~3위에 올랐습니다. 사실 순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국의 걷기 여행길 525곳 모두 독특한 개성을 품고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경남 창녕 남지읍의 개비리길은 낙동강과 가장 가까운 오솔길입니다. 용산마을에서 영아지마을까지 마분산(180m) 낭떠러지를 따라 생긴 길 아래 강이 흐릅니다. 걷기 마니아들이 “소문 내지 말자”고 할 만큼 풍광도 뛰어납니다. 개비리길의 어원은 두 가지. 어미개가 몸이 약한 새끼에게 매일 험난한 비리(벼랑)를 넘어 젖을 먹이고 돌아간 데서 유래(개가 다닌 벼랑 길)했다는 설과 강가(개)+벼랑의 합성어라는 설이 있습니다.

길은 문화입니다. 제주 올레를 걷는 재미 중 하나는 방언이지요. 제주말은 바람에 씻긴 탓인지 ㄴ·ㄹ·ㅁ·ㅇ같은 유성음이 많지요. 어멍(어머니) 아방(아버지) 놀멍(놀면서) 쉬멍(쉬면서) 걸으멍(걸으면서)…. 각지고 날선 것들이 제주에 오면 둥글어집니다. 한여름의 이글거리는 땡볕은 ‘와랑와랑한’ 햇살로 바뀌고 파도는 ‘놀’로 변합니다. 그러다 유성음들이 해안가에 닿으면 가끔씩 ‘깍-’ 쇳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갯깍, 쇠소깍이 그러한 예입니다.

길은 헌신입니다. 제주 올레 7코스 일강정 바당(바다) 중 2.4㎞는 윤성돈(58) 씨가 홀로 개척한 길입니다. 부산에서도 갈맷길 탐사와 보존을 위해 수 많은 걷기 동호인들이 헌신했습니다. 이제 봄입니다. 신발끈 묶고 갈맷길로 나서기 안성맞춤입니다. ‘걸어서/만 리 길을 가본 자만이/겨우 알 수 있으리/발바닥이 곧 날개이자/한 자루의 필생의 붓이었다는 것을.’ 이원규 시인의 시 ‘족필’의 한 구절입니다. 이노성 국제신문 디지털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