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노]막을 내린 카페 ‘헤세이티’의 꿈

이노성 기자 nsl@kookje.co.kr  |  입력 : 2020-12-29 21:48:11
28일 오후 부산 금정구 카페 헤세이티가 폐점을 하게 되어 황경민 사장이 카페 내부를 정리하고 있다. 이원준 프리랜서 windstorm@


영화 ‘내부자들’의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책방입니다. 조승우(우장훈 검사)가 이병헌(정치깡패 안상구)을 데리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헌책방(충북 단양군 적성면 새한서점)으로 피신을 갑니다. 1999년 개봉한 정지우 감독의 ‘해피엔드’에선 책방이 실업자 최민식(서민기)의 안식처로 그려집니다. 영화 ‘변호인’에서는 송강호(송우석 변호사)가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자신이 팔았던 고시책을 다시 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헌책으로 공부해 결국 고시에 합격합니다.

 부산대학교 앞 ‘카페 헤세이티’는 책방이자 전시·공연장입니다. 내부 20평(66㎡)엔 1000권의 만화·시사·철학 서적이 가득합니다. 인문학 강의도 열립니다. 낭만의 아지트 역할을 하던 헤세이티가 10년 만에 문을 닫습니다. 코로나19의 터널이 길어지면서 손님이 줄어든 탓이 큽니다. 무엇보다 황경민(52) 대표의 건강이 상했습니다. 경영난에도 카페를 ‘사수’하느라 스트레스에 시달렸더니 치아 대부분을 뽑고 새로 해 넣어야 할 처지라고 합니다.

 헤세이티가 유명세를 탄 건 2017년입니다. 입간판에 누군가를 위로하거나 고통에 공감하는 글을 적었더니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하나만 소개하겠습니다. ‘바람이 불어서/ 니가 흔들린 게 아니라/ 니가 흔들려서/ 바람이 분 것이다/ 바람을 탓한 자는/ 또 다시 흔들리고/ 흔들림을 탓한 자는 바람 속에서 의연하다.’ 황 대표는 입간판 글귀 200건을 추려 ‘지금, 바로, 여기!’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전복적 상상력과 과감한 기획력으로 일상의 변화를 이끌고 싶다던 황 대표의 꿈은 잠시 멈춥니다. 그는 “건강을 돌보면서 밀린 집필과 영화 제작에 힘쓰려 한다. 헤세이티와 같은 공간이 다시 생겨나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인문학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통로입니다. 헤세이티의 폐점이, 동네책방의 몰락처럼, 인문학의 위기를 보여주는 사건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노성 국제신문 디지털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