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노] 중동전쟁의 핵심은 '기름값'입니다

김희국 기자 kukie@kookje.co.kr  |  입력 : 2026-04-14 07:21:24
지난 2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휘발유·경유 가격 안내문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중동전쟁이 이상한 양상으로 흘러갑니다. 애초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할 때 내세운 명분은 핵 개발 억제였습니다. 그런데 38일 간의 전쟁을 치르고 종전 협상 후 남겨진 것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뿐입니다. 핵 개발 억제는 까맣게 잊혔습니다.

이제부터 중동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 키워드는 ‘기름값’입니다. 여기엔 미국과 이란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얽혀 있습니다. 미국은 높은 기름값을 견뎌야 하고, 이란은 반드시 원유를 팔아 기름값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과 이란 외에도 전 세계가 기름값에 직간적접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수능 킬러 문항 같은 아주 복잡다단한 문제입니다.

먼저 미국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부터 이틀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진행된 이란과의 종전 협상이 결렬되자 호르무즈 해협을 오가는 모든 선박에 대해 봉쇄 절차를 개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미 중부사령부는 13일 오전 10시(한국시간 13일 오후 11시)부터 봉쇄 명령을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는 핵심 요지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이란의 핵심 카드였는데, 오히려 미국이 꺼내 다소 의외입니다.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이란의 주요 자금원을 차단해 압박 수위를 극대화하려는 게 미국의 의도로 분석됩니다.

미 CNN 방송에 따르면 이란은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된 뒤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선박당 최대 200만 달러의 통행료를 받는 대가로 일부 유조선의 통행을 허용했습니다. 또 이란은 전쟁 기간 하루 평균 185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했습니다. 이는 직전 3개월보다 하루 평균 10만 배럴 증가한 규모입니다.

특히 미국은 지난달 유조선에 실린 채 해상 대기 중이던 이란산 원유를 한 달간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이를 통해 시장에 공급된 이란산 원유는 약 1억4000만 배럴로, 전 세계 수요를 약 1.5일간 충당할 수 있는 규모라고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추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란은 국제 유가 기준인 브렌트유 가격에 프리미엄을 붙여 자국산 원유를 판매하며 막대한 수익을 확보해 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주로 중국에 국한됐던 판매처가 서방 국가들로까지 확대됨으로써 보다 원활하게 전쟁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차단함으로써 이란 경제의 숨통을 막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시간입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이란 경제뿐만 아니라 미국과 전 세계 경제에도 타격을 줄 것이 명확합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국제 유가의 기준점 역할을 하는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한국시간 13일 오전 9시12분 기준 전장(10일) 종가보다 약 8.7% 뛴 배럴당 103.44달러로 나타났습니다. 다른 지표인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도 같은 시각 104.93달러로 전일보다 약 8.7%가 치솟았습니다.

이제 무언가 보이지 않습니까. 주유소 입구에 적힌 휘발유와 경유 가격 안내판 말입니다. 우리 정부는 지난 10일 0시부터 적용되는 석유 최고가격제 3차 가격을 동결했습니다. 휘발유는 ℓ당 1934원, 경유는 1923원, 등유는 1530원입니다. 우리 정부가 아무리 노력해도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되고 유가가 오르면 결국 기름값도 뛸 것입니다.

우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미국도 비슷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을까지 유가와 휘발유 가격이 하락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럴 수도 있고, 동일할 수도 있으며, 아마도 좀 더 높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런 답변에 대해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6주 전 이란에 대한 공격 결정에 따른 잠재적인 정치적 파장을 이례적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여기서 가을은 아마도 11월 치르는 미국의 중간 선거를 겨냥한 것 같습니다. 전쟁으로 기름값이 상승해 미국 내에서 반전 여론이 들끓는다면 트럼프 대통령에겐 정치적인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현재도 미국 기름값은 심각합니다. 연료 가격 분석업체 가스버디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 내 대부분 지역의 휘발유 가격은 4월 들어 갤런(약 3.78ℓ)당 4달러(약 6000원)를 넘어섰습니다. 갤런당 4달러는 미국인들이 고물가를 피부로 느껴 소비 행태를 바꾸는 등 심리적 기준선으로 인식됩니다. 미국도 중동전쟁 직전인 2월까지만 해도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3달러를 넘지 않았으며, 지난 1년간 갤런당 3.25달러를 넘은 적도 없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가미한다면 10년 전 캘리포니아주의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2달러대였습니다. 우리와 비교하면 너무 싸서 놀랐던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 심지어 애리조나주에선 갤런당 1달러대로 팔기도 했습니다. 그런 기름값이 대폭 뛰었습니다. 차가 없으면 일상생활이 어려운 미국인들에게 기름값은 굉장히 예민한 부분입니다.

이란도 미국의 약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종전협상단 대표를 맡았던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은 엑스(X·옛 트위터)에 워싱턴의 휘발유 가격을 보여주는 지도를 올리고 “현재 가격을 즐기라”며 “이른바 ‘봉쇄’로 인해 곧 (갤런당) 4∼5달러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조롱했습니다.

이제부턴 시간과 함께 명분, 여론 싸움입니다. 전 세계가 예전보다 훌쩍 뛴 기름값 앞에서 누구를 비난하겠습니까. 이란이겠습니까. 아니면 트럼프 대통령이겠습니까.

끝까지 버티는 쪽이 중동전쟁의 진정한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우리 입장에선 너무 허탈합니다. 주유소에 갈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짜증이 몰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