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노]피해자는 증발되지 않았다

이노성 기자 nsl@kookje.co.kr  |  입력 : 2022-04-10 21:54:51
2020년 7월 믿기 힘든 통계가 발표됩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1994년~2011년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건강 피해 경험자가 67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발표. 또 가습기살균제 연관 질병 사망자가 1만4000명대라고 덧붙입니다. EBS는 2016년 6월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조명한 프로그램을 방영합니다. 성준이의 사연은 많은 시청자를 울렸습니다. “열네 살 성준이에게 책가방보다 중요한 건 산소통이다. 한 살 때 중환자실에서 11개월을 보낸 성준이는 목에 산소 공급 호스를 달아야 했다. 지금은 호스를 코로 옮겼다.” 성준이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오는 22일 가습기 살균제 비극을 다룬 영화 ‘공기살인’이 개봉합니다. 어느 날 대형병원 교수 정태훈(김상경 분)과 한길주(서영희)에게 시련이 닥칩니다. 6살 아들이 폐가 굳어버리는 급성 간질성 폐 질환 진단을 받은 것. 원인은 ‘불명’. 아들 간호를 위해 짐을 챙기던 길주마저 갑작스럽게 사망. 길주의 동생 영주(이선빈)는 5개월 전 건강검진에서도 별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던 언니가 아들과 비슷한 증상으로 죽음에 이른 데 의문을 품고 원인을 찾아 나섭니다. 원작은 소재원 작가의 소설 ‘균’.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 처음 출시돼 1000만 병이 팔렸습니다. 그 위해성은 원인불명 폐 질환으로 입원한 서울의 산모 4명이 2011년 사망할 때까지 17년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세계 최초의 환경 보건 사건이자 최악의 참사인데도 원인 규명은 느렸습니다. 책임자 처벌이 너무 가볍다는 비판은 지금까지 끊이질 않습니다. 11년 만에 나온 피해 구제 조정안도 제조·유통 9개 기업 중 2곳이 거부해 무산될 위기.

법정 공방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대법원은 최근 가습기살균제 속 유해 물질을 제대로 라벨에 표시하지 않은 일부 기업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부과한 시정명령과 과징금이 정당하다는 판단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공기살인’ 포스터에 이런 문구가 있더군요. ‘증발된 범인, 피해자는 증발되지 않았다’.
영화 ‘공기살인’ 스틸컷. TCO㈜더콘텐츠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