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초유의 대법관 ‘서면 제청’

박주현 기자 qkrwngus30@kookje.co.kr  |  입력 : 2026-08-24 08:57:24
조희대 대법원장이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면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를 조율 없이 청와대에 서면으로 제청하면서, 청와대와 대법원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았습니다. 대통령 ‘대면 제청’이 관례지만, 이번 사례는 헌정사 초유입니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과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와 김성수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제청했습니다.

이제껏 대법원장은 최종 후보를 놓고 청와대와 협의를 거친 후 대통령을 찾아가 대법관 최종 후보를 임명해 줄 것을 요청해 왔습니다. 조 대법원장은 관행을 뒤엎고 사전 협의 없이 청와대에 후보를 임명해 달라고 서면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청와대는 이를 놓고 “협의를 건너뛴 유례 없는 일방 통보”라고 규정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청와대는 특히 조율되지 않은 손 부장판사에 대한 제청을 반려하고 재제청 요구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은 이에 대해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헌법에 따라 대법원장은 대법관 후보를 제청할 권리가 있고 거기에 따라 대통령과 국회는 각각 임명권과 동의권을 행사하면 된다”고 밝혔습니다. 노 처장은 ‘역대 대법원장은 왜 청와대와 소통해 가며 제청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원만한 임명이 이뤄지기 위해서”라면서도 “대법원장은 본인의 판단에 따라서 제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청와대와의 조율은 관례일 뿐 헌법상 문제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헌법에서는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진실 공방도 펼쳐졌습니다. 노 처장은 국회에서 “청와대에 대법원장과 대통령 간의 만남을 요구했지만 기회를 얻지 못했다”, “서면 제청 방식은 민정수석과 협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성기홍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노 처장의 주장을 향해 “사실이 전혀 아니다”고 반박했습니다. 성 수석은 “대법관 제청의 일반적인 사항에 대해 논의한 사실은 있지만, 서면 제청 여부 등 구체적인 제청 방식에 대해선 협의 자체가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애초 청와대와 대법원은 수개월 전부터 대법관 임명을 놓고 평행선을 달려왔습니다. 청와대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인물 가운데 여성 법조인이자 진보 성향인 김민기 고법판사를 1순위로 고려했으나, 대법원은 김 고법판사가 오영준 헌법재판관의 배우자라는 점 때문에 임명에 부정적이라고 알려졌습니다. 결국 인선이 지연되면서 5개월 넘게 대법관 공석 사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권은 서면 제청 사태를 두고 ‘대통령 패싱’이라며 대법원에 대한 공세를 펼쳤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는 “대법원장이 잘못했으면 대법원과 사법부가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국민 앞에 대법원장이 잘못했다고 이야기하는 게 맞다”며 조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조 대법원장 탄핵도 거론되는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