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노] 외국인이 돼서 찾은 ‘고향 부산’

권혁범 기자 pearl@kookje.co.kr  |  입력 : 2025-10-30 08:32:48
‘제1회 글로벌도시관광서밋’에 참석하려 반세기 만에 부산을 찾은 미아 뉘에고르드(Mia Nyegaard) 덴마크 코펜하겐 문화여가시장. 부산에서 태어난 뉘에고르드 시장은 두 살 때인 1976년 덴마크로 입양됐다. 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
21년 전 여름. 30대 후반 미국인 여성이 부산 한 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를 요청해 왔습니다. 옆자리엔 남편도 앉았습니다. 그녀는 매우 초조해 보였습니다. 남편은 그런 그녀를 따뜻하게 감싸안았습니다.

그녀는 미국인이지만, 한국 이름을 썼습니다. 다만, 우리말을 전혀 할 줄 몰랐고 영어로 말했습니다. 그녀는 1972년 9월 세 살 어린 동생과 함께 부산 S보육원에 맡겨졌습니다. 이후 여섯 살이던 이듬해 4월 미국으로 입양됐죠.

이건 그녀의 기억이 아닙니다. 그녀는 출생과 유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저 입양 서류에 남은 기록으로 부산에서 태어났다고 추측할 뿐. 아버지가 병으로 숨지고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보육원에 깃들게 됐다고 서류에 적힌 글로만 알 뿐.

그녀는 32년 만인 2004년 부산을 찾았습니다. 혈육을 만나고자. 낳아 준 어머니에게 남편과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그런데 ‘낯선 고향’ 부산에서 막막했나 봅니다. 남편과 함께 부산 곳곳을 뒤졌지만, S보육원은 문을 닫고 없었죠. 그녀는 답답한 마음에 머무르던 호텔 지배인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이 지배인이 ‘아는 기자’에게 연락한 거죠.

호텔 로비에서 마주한 그녀는 “미국에서 학교에 다니며 동양인이라고 따돌림당하는 등 서글픈 일을 많이 겪었다. 그때마다 친부모님이 보고 싶고 나의 ‘뿌리’가 궁금했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녀의 사연을 기사로 썼고, 출국일이 임박했기에 미국 집 주소와 이메일을 함께 적었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놀라운 일이 벌어졌죠.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그녀의 사촌오빠가 전화한 겁니다. 둘은 호텔에서 만났고, 빛바랜 사진 몇 장으로 친척임을 확인했습니다.

어머니는 행방을 알 수 없어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출생과 유년의 흔적을 찾았고, 친부모에 관해 알게 됐죠. 그녀는 역시 입양된 동생과 함께 아버지 기일에 부산을 다시 찾겠다고 약속한 뒤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큰 선물을 안고 간다”며 밝게 인사를 건네기도 했습니다.

21년이 흘렀습니다. 2025년 가을 또 한 명의 외국인 여성이 ‘고향 부산’을 찾았습니다. 두 살 때인 1976년 1월 부산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미아 뉘에고르드(Mia Nyegaard) 코펜하겐 문화여가시장. 이번 방문은 부산시와 글로벌도시관광진흥기구가 개최한 ‘제1회 글로벌도시관광서밋’에 참석하며 이뤄졌습니다.

뉘에고르드 시장은 ‘21년 전 미국인 여성’과 달리 눈물의 서사도, 드라마도 없었습니다. 그저 일하러 부산에 왔을 뿐. 뉘에고르드 시장은 “한국에 간다고 하니 친구들은 반가워했지만, 나는 일하러 왔고 그에 충실할 뿐”이라며 “입양인의 경험은 모두 다르므로 정형화한 선입견에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담담한 속에 애틋함이 살짝 묻어나긴 했는데요. ‘1975년 1월 11일’ 날짜와 함께 ‘동래구 청룡동 ○○번지 ○○의원’ 주소가 적힌 사진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그러면서 “혹시 시간이 된다면 내가 입양 보내졌던 곳에 한 번 들러볼까 해서 서류를 사진으로 찍어 왔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에서 사 가고 싶은 기념품으로 인형을 꼽기도 했는데요. 뉘에고르드 시장은 “어렸을 때 내가 한국에서 입양됐다는 사실을 안 친구 어머니가 한복 입은 인형을 선물해줬다. 처음으로 나와 닮은 인형을 받고 꽤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며 추억을 꺼냈죠.

한국인이었지만, 이젠 외국인이 돼 부산을 찾은 입양인에게 고향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리움일 수도, 상처나 원망일 수도. 뉘에고르드 시장의 방문을 보며 21년 전 미국인 여성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다소 다른 감정을 드러낸 두 여성. 그 마음을 존중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