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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말자 씨가 2023년 6월 5일 국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국제신문 DB |
남성의 혀는 1.5㎝ 정도 잘렸습니다. 소녀는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말 그대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본능 같은 것이었습니다. 경찰은 소녀의 정당방위를 인정했죠. 그러나 검찰 조사에서 뒤집힙니다. 소녀는 영장 없이 구속됐습니다.
“소환장을 받고 1964년 7월 1일 검찰청에 갔는데 한 평쯤 되는 방에 저를 가뒀어요. 보이는 건 조그마한 창살과 벽뿐이었습니다. 문은 여닫을 때마다 쇳소리가 났어요. 그곳에 가자마자 수갑을 차고 죄수복을 입은 채 조사받았죠.”
소녀는 6개월 12일간 구금됐습니다. 결국 중상해 혐의로 기소됐고, 이듬해 1월 부산지법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합니다. 재판부는 “혀를 끊어버림으로써 일생 말 못 하는 불구의 몸이 되게 하는 것은 정당한 방위의 정도를 지나쳤다”고 판시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장면입니다.
오히려 성폭행을 시도한 남성은 강간미수를 제외한 특수협박 혐의 등만 적용돼 소녀보다 가벼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죠. 소녀는 ‘젊은 총각의 인생을 망쳐버린 표독한 처녀’라고 말도 안 되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소녀는 이후 이 사건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습니다. 수십 년 세월 가슴속 한으로 품었죠.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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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5월 6일 부산지법 앞에서 최말자 씨와 여성단체가 재심 청구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국제신문 DB |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최 씨에게 가혹했습니다. 2021년 2월과 9월 1, 2심 재판부는 최 씨의 청구를 잇따라 기각합니다. ‘반세기 전 사회문화적 환경은 오늘날과 다르다’ 또는 ‘무죄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게 기각 사유였습니다.
다행히 대법원 판단은 달랐습니다. 지난달 18일 대법원은 “최 씨가 불법 구금 상태에서 조사받았을 가능성이 크고, 공소시효가 만료됐더라도 형사소송법상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로 간주될 수 있다”며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최 씨에게 재심의 길이 열린 겁니다. 대법원은 “재심은 확정된 유죄 판결의 중대한 오류를 바로잡아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비상 구제 절차”라고도 덧붙였습니다.
드디어 22일 부산고법에서 최 씨 재심 청구 사건의 파기환송심 첫 기일이 열렸는데요. 검찰도 재심 개시 의견을 낸 만큼 60년 전 최 씨의 행동이 정당방위였는지, 또는 당시 판결이 강압 수사에 따른 잘못된 결론이었는지 조만간 판가름 날 것 같습니다.
정당방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늘 논쟁거리입니다. 최 씨 사건은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은 대표적 사례로 형법학 교과서와 ‘법원 100년사’에 수록되기도 했는데요. 예전과 지금의 국민 정서, 법 감정이 다르다면 판례도 바뀌어야겠죠. 부디 반세기 전 열여덟 살 소녀의 원통함이 이제라도 풀리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