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다리에 머무는 달

한민족의 비극, 한국전쟁은 수많은 피난민을 부산으로 모여들게 했고, 그 중엔 가족과 다름없는 애완동물을 차마 전장에 남겨두지 못해 피난행렬에 함께한 경우도 있었다. 아라 역시 주인을 따라 부산으로 온 수고양이였다. 코리안 숏헤어, 흔히 한국 길고양이라 불리는 아라는 몸의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검은색 줄무늬를 지녔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고 애교가 많은 아라는 주인가족, 특히 동물을 좋아하는 열 살배기 막내딸, 금순에겐 소중한 친구였다. 머릿니투성이인 단발머리에 닳아서 해진 옷과 신발, 금순은 가난한 피난살이에도 불구하고 아라와 함께라면 웃을 수 있었다. 금순의 해맑은 웃음은 삶에 찌든 판자촌 피난민들의 근심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비타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금순은 판자 너머로 억척스러운 이웃집 아주머니의 큰소리를 들었다.

“이 썩을 놈의 도둑고양이!”

단단히 화가 난 이웃집 아주머니는 날쌔게 도망치는 아라를 쫓아서 금순 댁까지 들어와 역정을 냈다.

“저 못된 도둑고양이 좀 보소! 금순 댁! 고양이 단속 제대로 하라고 몇 번을 말했노!”

수척한 얼굴의 금순 어머니가 놀란 얼굴로 나와 사연을 물었다.

“아라가 무슨 사고를 쳤어요?”

“글쎄 저 고양이가 우리 밥을 훔쳐 먹었다 아이가! 울 애들 먹일 밥인데, 우야면 좋노. 아유, 속상해서 정말!”

이웃집 아주머니는 분통을 터트렸다. 물과 음식이 턱없이 부족해 하루 한 끼 식사조차 변변찮은 궁핍한 피난살이 속에서 밥을 도둑맞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흥분한 아주머니는 거친 말들을 쏟아내며 금순 어머니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냈다. 어찌 보면 사소한 일이지만 전쟁은 이웃 간의 정마저 메마르게 만들었다. 작은 실랑이는 급기야 고성이 오가는 사태로까지 번졌고, 울화가 치민 금순 어머니는 고양이 아라를 번쩍 들어 안고는 집 밖으로 패대기쳤다.

“나가! 나가서 훔쳐 먹든, 굶든 알아서 해!”

주인집 아주머니는 아라에게 분풀이를 해대며 ‘쾅’ 문을 닫아버렸다. 판잣집 안에서 금순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어린 딸을 다그치는 엄마의 날 선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닫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졸지에 거리를 떠도는 길고양이 신세가 돼버린 아라는 고개 떨군 채 판자촌 고개를 슬금슬금 내려왔다. 피난살이에 찌든 이곳 사람들은 길고양이에게 자비를 베풀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바깥세상은 혹독했다. 매섭게 휘몰아치는 칼바람이 털 속을 파고들었고, 배고픔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잔뜩 움츠린 채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걷던 아라의 걸음이 멈춘 곳은 부산의 명물로 유명한 영도다리였다. 얼어 죽을 것만 같은 아라는 찬바람이라도 피하고자 다리 밑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이미 세 마리의 길고양이가 모여 있었다. 순백색의 긴 털과 푸른 눈의 암고양이(이하 설이), 은빛을 띤 푸른색 털과 에메랄드빛 눈의 매혹적인 암고양이(이하 소라), 온몸에 털이 없어 가죽만 보이는 수고양이(이하 동이)가 그들이다. 서로 몸을 밀착해 체온을 유지한 채 생선을 뜯어먹던 길고양이들은 접근하는 아라를 노려보며 경계했다.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려는 고양이의 본능이 발동한 것이다. 셋 중 새하얀 털과 오묘한 매력의 푸른 눈이 눈에 띄는, 암고양이 설이는 적대감보다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낯선 아라를 바라봤다.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 아라에게 측은한 마음이 든 설이는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아라는 다른 고양이들의 눈치를 살폈다. 설이는 동료에게 동조를 구하는 눈빛을 보냈고, 허락의사를 얻어냈다. 설이의 배려 덕분에 아라는 다행히 무리 틈에 낄 수 있었다. 밀착한 서로의 온기가 추위를 견딜 수 있게 했다. 설이는 발등으로 생선 한 마리를 아라에게 내밀었다.

“먹으렴. 자갈치시장에서 몰래 훔쳐온 거야.”

배고픔에 쓰러지기 직전인 아라는 게걸스럽게 생선 한 마리를 뚝딱 먹어치웠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설이가 물었다.

“넌 어디서 왔니?”

“서울. 주인가족과 함께 내려왔어.”

“그런데 왜 길고양이 신세가 됐어? 주인이 널 버린 거야?”

아라는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그게... 이웃집 밥을 훔쳐 먹다가 그만...”

고양이들이 키득거리자 아라가 억울함을 토로했다.

“5년을 가족처럼 지냈는데 밥 좀 훔쳐 먹었다고 거리로 내쫓는 건 너무하잖아. 게다가 이 추운 날씨에.”

털이 없어서 더욱 추워 보이는 돌연변이 고양이, 동이가 냉소적으로 말했다.

“가족? 흥! 웃기지 마. 당장 내일의 생사조차 모를 인간들이 동물에게 애정을 줄 것 같아? 천만에. 지금 우리가 낄 틈은 없어.”

툴툴대는 동이의 하반신을 본 아라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부상으로 다리를 잃은 상이용사처럼 왼쪽 앞발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리가...”

동이가 얼굴에 주름이 잡히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눈앞에서 터지는 포탄 본 적 있어? 죽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야.”

무리 중 제일 나이 많은, 은빛 푸른색 털의 암고양이 소라가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아직 젊은데 평생 불구자로 살아야 한다니... 그 몸으로 연애나 제대로 하겠어?”

소라의 얄미운 참견에 동이의 심기가 불편했다. 애써 감정을 억누르느라 일그러진 동이의 표정을 본 소라가 이번엔 달래듯 말했다.

“안타까워서 그래. 짧은 한평생, 맘껏 즐기지도 못하고. 말은 안 해도 속은 썩어 문드러졌을 걸. 어휴, 남 걱정할 처지가 아냐. 내 팔자는 또 어떻고.”

이번엔 소라가 한 많은 사연을 풀어놨다.

“전쟁이 나자 주인집이 폭격을 맞았어. 주인가족뿐 아니라 내 짝과 세 아이까지 몰살당했어. 나만 집 밖에 있다가 간신히 살아남고. 졸지에 전쟁 과부 신세가 된 거지. 원통해서 미칠 것 같더라고. 그냥 죽어버릴까 생각도 했어.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자살하려고 쥐약 먹은 쥐도 잡아먹어 봤는데, 웬걸. 후유증으로 털만 좀 빠졌을 뿐, 안 죽더라.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져도 봤지만 멀쩡하더군. 죽기도 쉽지 않았어. 그제야 살아야 할 운명이란 걸 깨달았지. 무너진 집을 떠나 무작정 떠돌다 피난행렬을 따라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소라의 에메랄드빛 눈망울에 깊은 슬픔이 묻어났다. 동료의 사연에 감정 이입된 설이가 마지막으로 사연을 털어놓았다.

“난 말야, 피난길에서 주인을 잃어버렸어. 수많은 피난민으로 혼잡해 찾을 엄두조차 낼 수 없었어. 최종목적지인 부산에 도착하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안고 내려왔어. 그런데 몇날 며칠을 찾아 헤맸지만 허사였어. 행여나 하는 바람으로 여기에 있는 거야. 이 다리가 부산에서 제일 유명하다고 해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설이의 푸른 눈망울이 눈물을 머금었다. 길고양이와 어울리지 않는, 격조 있는 생김새의 그녀는 아라의 슬픔을 배가시켰다.

“너무 걱정 마. 가족을 다시 만나게 될 거야.”

아라의 따뜻한 위로의 말에 설이는 미소 지었고, 조금씩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 호감을 느낀 설이와 아라는 서로의 머리를 비비며 목에서 가르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고양이가 행하는 애정표현이었다. 아리따운 설이의 마음을 얻은 아라는 서글픈 현실도 잊은 채 행복감을 느꼈다. 영도다리 아래에 모인 네 마리의 고양이는 제각기 가슴 아픈 사연을 품은 채 서로에게 마음을 의지하고 있었다.

“안녕들 하신가!”

또 다른 수고양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메리칸 숏헤어로 알려진, 은색 바탕에 검정 줄무늬가 호랑이를 빼닮은, 마도로스였다. 장대한 기골에 매서운 눈매가 카리스마를 풍기는 마도로스는 거들먹거리는 걸음걸이로 어슬렁거리며 고양이 무리에게 다가왔다. 범상치 않은 낯선 고양이의 등장에 모두 경계하는데, 마도로스가 한쪽 입꼬리를 추켜올리며 이죽거렸다.

“안녕할 턱이 있을까. 빌어먹을 전쟁 탓에 숨이 막힐 지경일 텐데. 이 추운 겨울밤에 다리 밑에 모인 걸 보니 다들 주인한테서 버림받은 게로군. 알만해.”

밉살스럽게 지껄이는 마도로스에게 빈정 상한 아라가 퉁명스레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넌 전쟁과 상관없다 이거야?”

“당연하지. 미 군수 선박 선장의 애완고양이, 그게 바로 나니까. 전쟁을 지원하러 왔을 뿐, 전쟁의 승패에 운명이 좌우되는 너희들과는 태생부터 달라.”

탐탁찮은 표정의 고양이 무리를 거만하게 훑어보던 마도로스의 시선이 설이에게 꽂혔다. 마도로스는 설이의 주위를 맴돌며 수컷본능을 드러냈다.

“순백의 털과 푸른 눈망울... 매력적인 암고양이로군. 이런 곳에서 떨고 있기엔 아까울 만큼. 아가씨, 나랑 같이 놀아볼까?”

설이는 마도로스의 제안에 정색하며 쌀쌀맞게 말했다.

“하룻밤 즐길 암고양이를 찾는다면 잘못 찾아왔네요.”

설이의 거절에도 마도로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마도로스에게는 설이를 자신의 짝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하룻밤의 환락 때문에 이러는 거 아냐. 널 내 짝으로 선택한 거야. 그게 뭘 의미하는 건 줄 알아?”

마도로스는 설이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 지옥 같은 삶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특권을 얻는 거야.”

참혹한 전쟁에 몸서리치는 이 땅의 누구라도 솔깃해질 유혹이었다. 이제 막 설이와 마음을 나눈 아라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마도로스는 자만심에 찬 얼굴로 설이의 승낙을 기다렸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외였다.

“영혼 없는 바람둥이와는 더는 볼일 없을 것 같군요.”

마도로스의 미간이 꿈틀했다. 지금껏 한 번도 자신의 유혹이 거절당한 적 없었던 마도로스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그는 사랑을 쟁취하는 법을 잘 알고 있다. 거절 못할 조건과 끈기만 있으면 흔들리지 않을 여자는 없다는 걸 말이다. 마도로스는 설이 앞에 무릎 꿇고 청혼했다.

“나와 함께 아메리카로 가자. 거긴 전쟁도 없고, 굶주림도 없고, 이렇게 비참하게 버림받을 일도 없어. 나와 우리의 새끼들과 함께 아무 걱정 없이 평생 안락하게 살 수 있어. 아메리칸 드림! 절대 꿈이 아냐. 날 선택한다면 잡을 수 있어.”

마도로스의 감언이설이 통한 걸까? 설이의 푸른 눈망울이 흔들렸다. 설이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음을 알아챈 마도로스는 그녀의 마음속에 품은 기대를 무너뜨릴 직격탄을 날렸다.

“뒤에서 얘기 다 들었어. 여기서 주인을 찾고 있다고? 주인이 널 찾아올 거라 믿는 거야?”

고개 끄덕이는 설이에게 마도로스가 냉정하게 충고했다.

“지금 전쟁 중이란 걸 잊었나본데, 당장 내일의 생사조차 모를 인간들이 애완동물 챙길 마음의 여유가 있을까? 헛된 기대는 버려. 그건 널 죽이는 독이야. 아직도 인간을 몰라? 동물도 자신의 동족은 죽이지 않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 큰소리치는 인간의 꼴을 좀 봐. 같은 민족끼리 죽이는 저들의 만행을 똑똑히 보라구!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이기적인 동물, 그게 바로 인간이야.”

마도로스의 말은 비수가 되어 설이의 가슴을 아프게 후벼 팠다. 감정에 북받친 설이가 소리쳤다.

“내 주인은 달라! 반드시 날 찾아올 거야. 두고 봐!”

마도로스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긴, 헛된 희망마저 없다면 삶의 의지도 사라지겠지. 그 맘 충분히 이해해. 근데 이것만 명심해. 지금 너에겐 두 개의 줄이 있어. 하나는 주인과의 연줄, 다른 하나는 나라는 연줄. 과연 어느 줄을 잡는 게 너의 행복을 보장할까. 잘 생각하고 선택해. 시간은 많지 않아. 난 내일 정오에 이 나라를 떠날 거니까.”

최후통첩을 날린 마도로스는 설이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고는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마도로스의 뒷모습을 마뜩찮게 노려보던 동이가 독설을 퍼부었다.

“발정 난 녀석, 니네 나라로 꺼져버려!”

소라는 심란해하는 설이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뭘 망설여? 고상 떨다 굶어 죽어. 나라면 당장 저놈을 선택하겠어. 이 전쟁 통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하겠어. 복이 넝쿨째 굴러왔는데, 안 잡으면 바보지.”

소라의 말이 비위에 거슬린 동이가 찡그린 얼굴로 쏘아붙였다.

“그렇게 양키가 좋으면 따라가지 그랬어. 늙은 암고양이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겠지만.”

“뭐? 나이 많다고 무시하는 거야? 쩔뚝발이 병신 주제에.”

“병신? 이 아줌마가 사나이의 자존심을 건드려!”

소라와 동이는 서로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며 그르렁거렸고, 보다 못한 아라가 소리쳤다.

“그만둬요! 우린 다 같은 처지잖아요. 전쟁만 아녔으면 주인의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을 텐데, 뭐예요 이게, 동료끼리 싸움질이나 하고. 부끄럽지도 않아요?”

할 말 잃은 소라와 동이가 빳빳이 선 털을 눕히며 실랑이를 멈췄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심란해 보이는 설이가 어딘가로 걸어갔다. 아라는 영도다리 난간을 타고 기어오르는 설이를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난간 맨 꼭대기에서 미동도 없이 어딘가를 지그시 응시하는 설이의 모습은 흡사 혼돈에 빠진 인간 세상을 굽어보는 신(神)처럼 보였다. 아라는 설이가 행여나 바다로 뛰어내리려는 건 아닐까 덜컥 겁이 났나. 아라가 쫓아가려는데 동이가 말렸다.

“내버려 둬. 매일 반복되는 일과니까.”

아라는 궁금했다. 저 높은 곳에서 설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설마 마도로스의 유혹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어둠이 침잠한 파도에 달빛이 서글프게 부서졌다. 아라의 어지러운 마음처럼.

새벽녘, 희미한 발소리가 들렸다. 청각이 예민한 고양이들은 일시에 잠을 깨고 발소리가 나는 곳을 주시했지만 캄캄한 어둠에 묻혀 사물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웅크려 있던 설이가 귀를 쫑긋 세우고 말했다.

“날 찾으러 온 주인일 거야.”

“잠깐만.”

아라가 말릴 새도 없이 설이는 어둠 속으로 달려갔다.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둔탁한 발길질 소리와 동시에 설이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놈의 드러운 길고양이!”

달빛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설이의 주인이 아닌, 남루한 옷차림에 커다란 보따리를 짊어진, 초췌한 몰골의 중년 피난민이었다. 삶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보따리를 내려놓고 그 위에 털썩 주저앉은 아저씨는 길게 자란 수염 사이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라는 발길질에 차인 설이에게 곧장 달려가 상태를 살폈다. 고통에 몸을 비트는 설이를 본 아라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아저씨를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공격자세로 하악질을 해댔다. 아저씨가 퀭한 눈으로 성난 아라를 주시했다.

“요놈 봐라. 저 꼴을 보고도 내가 안 무서워?”

아라는 조금의 물러섬도 없이 더욱 사납게 하악질을 해댔다. 겁 없는 아라를 멀거니 바라보던 아저씨가 씁쓸하게 말했다.

“네놈도 목숨 걸고 지켜낼 짝이 있다는 거냐? 그놈 참, 나보다 행복한 놈이구나. 난 없는데. 목숨 걸고 지켜낼 짝도, 가족도... 빌어먹을 전쟁 통에 생사조차 알 수 없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

아저씨의 넋두리를 듣던 아라의 눈에서 살기가 사라지며 하악질을 멈췄다. 그리고는 설이의 상처를 혀로 정성껏 핥았다. 고통 때문인지, 고마움 때문인지 설이의 눈망울이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고양이 한 쌍의 애정 어린 모습을 지켜보던 아저씨는 북받치는 설움에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흐느꼈다. 자갈치시장에서 흘러온 구슬픈 노랫소리는 아저씨의 흐느낌과 뒤엉켜 바다로 흩어졌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던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 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자신의 처지와 닮은 노래에 아저씨의 흐느낌은 더해갔다. 노랫소리는 아저씨의 슬픈 어깨 위로, 설이의 상처를 핥는 아라의 머리 위로, 수평선 너머 새벽 동트는 보랏빛 하늘 위로 나지막이 흐르고 또 흘렀다.

얼굴에 드리운 햇살에 잠 깬 아라는 온몸이 뻐근했다. 밤새 찬바람을 견디느라 잔뜩 웅크려있었던 탓이다. 고양이자세로 기지개를 켜던 아라는 직감적으로 휑한 기운을 느꼈다. 설이가 없음을 알아챈 아라는 서둘러 소라와 동이를 깨웠다.

“일어나봐! 설이가 안 보여!”

세 고양이가 눈에 불을 켜고 영도다리 주변을 샅샅이 살펴봤지만 설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웬일이지? 단 한 번도 이 주변을 벗어난 적 없었는데... 그 양키 녀석 따라간 거 아냐?”

동이가 던진 말에 아라의 심장이 방망이질 쳤다. 밤새 잠 못 이루며 바다를 응시하던 설이의 슬픈 눈망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마도 운명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그녀는 정말 미국행을 선택한 것일까? 아라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어지럽게 서성거리며 말했다.

“발정 난 그놈 꾐에 넘어간 거야. 미 군수 선박 선장의 애완고양이? 그 말을 어찌 믿어. 순 사기꾼 같은 놈!”

“자네, 설이를 사랑해?”

소라의 질문에 아라는 발걸음을 멈췄다. 소라는 마음을 꿰뚫어보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충고했다.

“설이에게도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어.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컷을 따르는 거, 그건 암컷의 본성이야. 진정 설이의 행복을 바란다면, 그냥 내버려둬.”

동이도 거들었다.

“이 전쟁 통에 사랑이라... 훗. 하긴 몸서리나는 현실을 잊으려면 사랑에 취하는 수밖에. 그녀는 무죄야.”

모두가 설이의 선택을 지지했지만 아라는 인정할 수 없었다. 가슴 먹먹한 이 감정이 사랑이란 걸 깨달았기에 이대로 그녀를 머나먼 타국으로 떠나보낼 수 없었다. 정오에 이 나라를 떠난다는 마도로스의 말이 생각난 아라는 쏜살같이 내달렸다. 중천에 떠 있는 태양이 정오가 멀지 않음을 알려주며 아라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영도다리에서 부산항까지의 먼 거리를 쉼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발바닥이 부르트는 아픔을 견디며 마침내 부산항에 도착했을 때, 막바지 출항준비가 한창이었다. 거친 숨을 몰아쉰 아라는 거대한 위용을 뽐내는 미 군수 선박으로 다가가며 설이를 찾았다. 출항준비로 여념 없는 선원들은 한낱 길고양이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설이를 애타게 찾아 헤매던 아라의 시선이 일순 고정되었다. 파이프담배를 입에 문 채 승선하는 미국인 선장을 뒤따르고 있는 두 고양이, 마도로스와 설이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전광석화처럼 날쌘 동작으로 달려간 아라가 설이를 붙잡고 물었다.

“어디가?”

설이는 놀란 기색을 감추며 애써 담담히 말했다.

“보면 몰라?”

“정말로 미국 가는 거야?”

“거긴 전쟁도 없고, 굶주림도 없고, 버림받는 일도 없어. 안 갈 이유가 없잖아.”

“지금껏 영도다리 밑에서 기다린 목적이 이거야?”

“주인이 찾아올 거란 보장이 어딨어? 아니, 애완고양이 따윈 벌써 잊은 게 분명해. 그렇지 않다면 여태 안 올 리 없잖아.”

“올 거야. 반드시.”

“주인을 만나면 그다음엔? 뭐가 달라져?”

“뭐?”

설이가 비애에 젖은 눈망울로 말했다.

“이 나라는 여전히 전쟁의 포화 속에 있을 테고, 또 언제 버려질지 모를 불안감 속에서 살아갈 텐데... 주인의 고된 피난살이를 하루하루 지켜보며 살아가야 할 텐데, 그런 삶이 괜찮니, 넌?”

말문이 막힌 아라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설이는 군수 선박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면, 여기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어. 난 새 삶을 선택한 거야. 속물이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어. 내겐 안정된 보금자리가 중요해. 그래야만 행복하니까. 찬바람 부는 다리 밑은 아니야. 지긋지긋해.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아.”

설이는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아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눈부시게 맑아 더 슬프고, 갈매기 울음소리마저 처량하게 들렸다. 아라는 그저 힘겹게 숨 쉴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곧 배가 뜰 거야. 서둘러야 해.”

아라를 성가신 불청객 보듯 바라보던 마도로스가 재촉하자 설이는 마지막 작별 인사했다.

“우리에게 주인은 한 사람이 아냐. 애정을 주는 사람이 주인인 거지. 이제 내 주인은 이 배의 선장이야. 동물을 가족처럼 사랑해주는 좋은 분이셔. 걱정 마. 난 행복할 테니. 너도 주인 만나 행복하길 바래.”

아라는 떠나는 설이를 붙잡을 수 없었다. 누구보다도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라기에. 설이는 마도로스와 함께 군수 선박에 올랐고, 곧바로 출항했다. 아라는 떠나는 설이에게 외쳤다.

"언젠가 전쟁이 끝나면, 그래서 네가 다시 한국 땅에 돌아온다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

아라는 드넓은 바다를 향해 멀어지는 배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꺼이꺼이 목 놓아 울었다. 진심으로 설이의 축복을 빌며.

설이는 떠났고, 아라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설이가 없는 영도다리는 삭막한 공기를 머금은듯 했다. 소라가 훔쳐온 살 오른 생선도, 말벗이 되어준 동이도 아라의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 없었다. 아라는 설이를 추억하다 그녀가 밤마다 올랐던 영도다리 난간 위로 기어올랐다. 세찬 바닷바람에 자칫 잘못하면 바다로 추락할 것만 같아 자세를 낮추고, 발톱에 잔뜩 힘을 주었다. 난간 맨 꼭대기에 오르니 지금껏 보지 못한 광경이 보였다. 쓸쓸한 바다의 벗이 되어주는 자갈치시장의 정겨운 불빛들, 그곳의 허름한 횟집에서 회 한 젓가락에 소주를 마시며 세월을 한탄하는 애달픈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나지막이 들렸다. 그제야 아라는 깨달았다. 설이가 날마다 이곳에서 지켜본 것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버린 피난민의 고달픈 삶이었다는 것을. 이를 바라보던 설이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시간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고, 미국행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아라는 믿음을 품어본다. 어둠이 짙으면 새벽이 멀지 않듯, 언젠가 저들이 기쁨의 술에 취해 부르는 노래가 여기까지 울려 퍼질 그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시간이 갈수록 이산가족을 찾으려는 수많은 피난민이 영도다리로 몰려들었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영도다리는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되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 끝에 잃어버린 가족과 감격의 상봉을 나누는 사람들, 영도다리 옆 점바치 골목 점쟁이의 예언을 듣고 찾아왔다가 가족과 재회한 사람 등 기적 같은 사연들이 가득했다. 아라는 환희의 눈물, 한탄의 눈물이 얽히고설킨 이곳 영도다리를 묵묵히 지켰다. 혈육을 찾는 피난민의 발길이 뜸해질 때까지 아라는 망부석처럼 이곳에 머물렀다. 수없이 계절이 바뀌고 또다시 여름이 찾아왔을 때, 꿈에도 기다리던 휴전 소식이 들렸다. 비록 종전이 아닌 휴전이지만 피난민들의 주름진 얼굴이 오랜만에 활짝 펴졌다. 머나먼 곳에 있는 설이도 소식을 알까. 이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라의 가슴 한편이 스산함은 어쩔 수 없었다. 아라가 붉은 노을을 닮아가는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을 추스르던 그때, 낯익은 얼굴의 한 소녀가 다가왔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오는 소녀는 다름 아닌 아라의 주인, 금순이었다. 세월 따라 숙녀티가 제법 묻어나는 금순은 다시 만난 아라를 품에 꼭 껴안고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라는 소녀의 품속으로 파고들었고, 따스한 체온을 느끼며 더없는 행복감에 빠져들었다.

오늘 밤, 희망의 보름달이 영도다리 난간 위에 덩그러니 걸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