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다리 아리랑
이 창작물은 소설이 아니다. 담시(譚詩)이다. 즉, 이야기 위주의 시이다. 나아가 시조, 사설시조, 판소리 가락으로 창작한 시이다. 독서용 겸 공연용이다. 사설시조와 판소리 가락에 맞추었기 때문이다. 전체를 판소리 형식의 한마당 공연을 할 수 있게 구성했다. 1,3,4장의 평시조 4수는 정가 시조창을 할 수 있게 가미하였다. 소리꾼 한 명(필요시 시조창 전담 한 명 추가), 고수 1명만 있어도 이야기를 이끌어 갈 수 있다. 창(소리), 아니리(사설), 발림(몸짓)의 판소리 가락 한마당으로 이야기를 엮어 놓았다. 결국, 소설과 시, 시조(사설시조)와 판소리 가락, 정가와 판소리 한마당, 읽기와 공연(어미의 변형 필요)의 융합이다. 부산 토속어와 판소리와의 결합이기도 하다. |
프롤로그
영도다리는 시대의 아픔을, 전란의 슬픔을 안다.
만남과 헤어짐의 애환이 서린 피난민을 안다.
영도다리는 진실을 안다.
“야, 이 노무 손아! 속에 천불이 난다, 천불.”
“찬물 한 바가지 뜨다 주꾸마! 불 꺼이소.”
“내 배로 니 같은 손을 왜 놨능가 모르겠다카이.”
“어머이가 내는 영도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 안 켔나.”
“맞다. 퍼득 영도다리 밑에 가서 니 어마이 캉 살그라 마.”
“그래, 갈꾸마. 잘 묵고 잘 사이소.”
“아구야, 무시라 무시…….”
영도다리는 다리 밑의 진실도 안다.
영도다리 밑 파도는 수난을 안다.
민족의 피를 빨아 먹은 만행을 안다.
용두산도 알고
봉래산 삼신할매도 안다.
부산항을 품은
영도다리
끄덕끄덕 일어선다.
1
용꼬리 깔고 앉은 저 산은 뭐꼬?
청학의 발목 잡은 저 다리는 뭐꼬?
파도가 승천을 꿈꾸며 울부짖는 바다여.
승천하던 용머리가 피 토하며 울어 대고
날갯짓하던 청학이 파닥대어 보아도
유유히 하늘을 나는 꿈 힘겹기만 하구나.
용미산이 사라진 뒤 용미나루도 온데간데없다.
봉래나루가 한산하다. 몇 해 전, 뭍과 맞닿는 다리가 놓여졌다. 일본인들이 청학이 날지 못하게 발목을 묶어 놓은 형국이다. 큰 배가 지날 때면 다리를 들어올린다. 신기한 구경거리로 여기는 사람들도 모여든다. 봉래나루와 용미나루를 잇는 나룻배의 번성함은 바닷물 속에 잠겼다. 다리를 건설할 무렵, 소나무와 왜가리가 잘 어울린 용미산 그 자리에 새로운 산이 깔고 앉았다. 용미산의 흙과 돌덩이는 매축에 사용하였다. 결국, 다리의 깔찌가 된 것이다.
봉래나루와 용미나루를 잇는 통통 나룻배는 거덜 났다. 나룻배의 명맥만은 잇고 있다. 노를 저어 옛 용미나루까지 오고가는 작은 배, 힘겨워 보여도 바다의 축복이다. 일본인이 경영하는 남항나루와 자갈치나루를 잇는 나룻배를 타는 것을 매국이라 여기는 애국자들이 애용한다. 남항과 자갈치를 잇는 나룻배는 승객이 줄지 않아 운항이 순조롭다. 통통 울어 대는 엔진을 단 통통배, 섬사람들이 뭍으로 나오는데 시간을 많이 단축해 주기 때문이다.
사십 년 전, 절영도진의 해체로 국마장이 문 닫았다. 국마장 마부와 마의들은 뭍으로 나가 뿔뿔이 흩어졌다. 이곳을 떠나지 못한 마부 한 명이 봉래나루 마을에 삶의 터전을 잡았다. 국마장을 폐쇄하기 전, 울타리를 벗어나 야생마처럼 뛰어다니던 말을 다 포획하여 관청에서 처분하였지만, 한 마리만은 포획할 수 없었다. 망아지임에도 너무 빨라서 잡을 수가 없었다. 이를 탐낸 마부는 매일같이 봉래산 곳곳을 누비며 잡으러 다녔다. 포획하는데 한 해 꼬박 거렸다. 마부는 이 말을 이용해 장사꾼의 짐을 나루터까지 운반하는 일을 하면서 입에 풀칠하다 보니 떠나지 못하고 정착했다. 그해 갑오년에 신분제가 사라졌다. 마부는 그 천한 신분을 벗어던져도 될 법도 한데 마부로서의 삶을 거부하지 않았다. 태생은 양반이나 마부로 뼈가 굵었기 때문이다.
파도를 헤쳐 나가는 어부의 삶도 마다하지 않았다.
2
마부는 두 해 전, 중풍이 들어 거동이 힘겹다.
봉래나루는 마부의 집과 머리카락이 날려서 닿을 듯 가깝다. 그래도 노인의 발걸음은 힘겹기만 하다. 건너편 용두산 기슭에는 마부의 아내가 산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가까이 살면서도 두 해 동안 서로가 소식만 전해 듣고 왕래가 없다. 마부가 중풍을 앓은 뒤부터다.
마부는 봉래마을 나루터 물푸레나무 아래에 앉아 넋을 잃고 있다. 바다 건너 옛 용미산이 자리하던 부산부청을 바라보기도 하고, 멀리 용두산을 바라보기도 한다. 부산부청은 바다에서 뭍으로 오르는 용의 꼬리를 누르고 앉은 새로운 산이다. 용두산이나 봉래산에 올라 부산부청을 내려다본 적이 있다. 영락없이 산의 형상이다. 부청 건물이 뫼산(山) 자 형상을 하고 용이 날지 못하게 버젓이 눌러앉았다. 물푸레나무는 오백 년이라는 수령에 걸맞게 풍성하고 아늑하다. 어머니 품처럼 봉래마을을 포근히 감싸 안고 있다. 마을에서는 이곳 물푸레나무와 용미나루 물푸레나무가 한 쌍이라 여겨왔다. 그러나 용미나루 물푸레나무는 용미산과 함께 사라졌다. 이때 잘려나간 밑동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섬마을 사람들은 다리 공사를 강행하면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믿어 왔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인들이 고약하게도 밀어붙이기식 공사를 강행했다. 우리 백성이 많이 죽어나갔다.
죽음을 비밀에 부쳐 쉬쉬하며 완공했다.
3
삐꺽대는 나룻배 엉금엉금 기어온다.
서쪽 하늘 붉게 물든 석양의 풍선을 등 뒤에 매달고,
파도가 빚은 갯바람을 흔들어 대며 다가온다.
첨벙첨벙 뱃머리가 뿜어내는 소리마저도 갯바람을 간질인다.
저녁노을에 붉게 물든 바닷물, 그 위에서 반짝반짝 윤슬이 한바탕 노닌다. 어느 순간에는 눈이 부신다. 저녁노을 빛을 흔들며 갈매기 한 쌍이 높이 난다. 원앙보다 금실이 더 좋다는 갈매기 한 쌍, 높게 날갯짓하며 날아와 모래톱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갈매기는 정복자처럼 좁은 모래톱을 누빈다. 부리를 비비대며 사랑을 나눈다. 나루터의 해거름은 한 폭의 수채화.
노 젓는 소리마저도 알알이 박힌 수채화.
마부와 죽마고우인 김 노인이 나룻배에서 내린다.
김 노인은 어부로 잔뼈가 굵었다. 물푸레나무 아래 앉은 마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다가선다.
“건강이 좋아 보이구만…….”
“많이 좋아졌다 아이가.”
김 노인은 마부 앞에 쪼그려 앉아 마주한다. 그리고 바다 건너 노인의 아내 소식을 전한다.
“이보게, 자네 안사람이 겨우 걷기 시작했는기라.”
“무슨 말인데?”
“작년 가을에 자네처럼 중풍이 들어 꼼짝달싹 못했다 아이가. 이제 겨우 지팡이 짚고 걷는다 카더라.”
“우째, 이런 일이!”
“건강 조심하거래이!”
김 노인은 나쁜 소식을 전하고서 마음이 아파서인지 마부의 어깨를 툭툭 치고서 서둘러 등을 보이며 사라진다. 나룻배에서 내린 마을 사람들은 땅거미를 등지고 하나둘 집으로 향한다. 마부는 아무 말 없이 땅거미 다 질 때까지 바다 건너 마을을 바라보다가 지팡이에 힘을 실어 휘청거리며 일어선다.
집에 돌아와 저녁상을 물린 뒤, 가슴이 조여드는 듯 답답해서 목침을 베고 평상에 눕는다. 김 노인에게 들은 아내의 소식 때문에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서쪽 하늘에는 어둠이 깔리고 북쪽 하늘에는 북극성이 반짝반짝 빛을 내뿜는다. 북쪽 하늘에 빛나는 별, 북극성은 유난히도 밝게 반짝인다.
마부는 ‘내일 날씨는 맑겠는 걸…….’ 하고 생각한다. 서쪽 하늘 저녁노을과 유난히 밝은 북극성, 그리고 높이 나는 갈매기를 보고, 날씨가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마부는 날씨 관련 속담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저녁노을은 맑음’, ‘갈매기 낮게 날면 비’, ‘서산에 구름이 걸리면 비’, ‘아침 비는 그날 중에 갬’, ‘여름에 남풍 불면 맑음.’ 등등 수많은 속담을 외고 있다.
마부는 두어 시간 가량 누워 하늘에 자신의 힘겨운 삶을 겹쳐서 그려 놓고 되돌아본다. ‘오늘은 유난히 북극성과 북두칠성이 반짝반짝 빛나는군! 꼭 겨울밤 하늘의 별처럼…….’이라며 중얼댄다.
잠시 뒤, 눈을 감는다. 자꾸자꾸 아내 얼굴이 떠오른다.
마부의 눈가에는 우수가 깃든다. ‘내일,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몇 번씩이나 잠꼬대처럼 내뱉으며 잠을 설쳐 댄다. 밤이 깊어지자 강한 바람이 불어 닥친다. 마부는 ‘여름비는 소잔등을 가른다.’는 속담을 떠올린다. 눈을 번쩍 떤다.
‘이상하네. 서산에 먹구름이 걸리잖아! 여름비는 워낙 국지성이라 그 마음을 누가 알랴마는…….’
북극성과 북두칠성을 삼켜 버리는 먹구름
순식간 서쪽 하늘을 뒤덮고서 북쪽 하늘의 북극성과 북두칠성을 삼켜 버린다. 먹구름은 하늘에 별빛 하나 남기지 않고 모든 빛을 야금야금 먹어 치운다. 남쪽 하늘 한가운데에 뜬 반달은 가장 늦게 빛을 잃어 간다. 달빛은 먹구름의 뱃속에서 소화되듯 서서히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별빛을 살라먹어도 허기진 먹구름
멀리 청개구리 울음소리 유난히 요란스럽다.
‘청개구리 슬프게 울면 영락없이 비가 내린다.’는 속담, 바닷가 사람들에게는 상식이다. 마부의 집 뒤, 대밭에는 먹구름 따라 달려온 바람이 스산스레 댓가지를 흔든다. 무당이 대를 잡고 흔들어 대는 것보다 더 크게 대밭에 소리가 인다. 마치 잡귀들이 대밭에서 장난치는 듯하다.
‘한바탕 쏟아질 모양이야. 변덕쟁이 날씨는 못 말려.’
마부는 평상에서 일어나 마루에 오른다. 그리고 목침을 베고서 스르르 눈을 감는다. 잠시 뒤, 소나기가 한 바탕 푸닥거리를 하고 지나간다. 마부는 밤새 잠 못 이루고 뒤척인다.
하얀 밤 아내 생각에 깃든 우수 무겁다.
동이 트자마자 나루터로 향한다.
뱃사공 조 씨 집 사립문을 흔들며 그를 불러낸다.
“여보게, 조 씨, 조 씨!”
“예, 영감님.”
“바다를 건너갈 낑까네, 좀 도와도.”
“영감님, 억수로 일찍 왔네예? 쪼매만 기다려 주이소.”
“그래, 내사 마, 기다란다.”
조 씨는 마부의 행동을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늙은이 마음이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는 말의 뜻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는 조 씨, 마을 노인들의 사정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
“내 죽기 전에 마누라 얼굴은 한번 봐야 안 되겠나…….”
“영감님, 몸이 편찮은 뒤부터 저 다리를 건너보지도 못하고, 뭍에 나가 보지도 못했을 낀데요?”
“벌써 두 해가 넘었다 아이가.”
“쪼매만 기다려 주시이소?”
마부는 지팡이에 의존하여 물푸레나무 아래로 힘겹게 발길을 옮긴다. 물푸레나무 앞에서 주먹돌을 하나 주어 들고 나무 위를 올려다본다. 찌푸린 날씨 때문에 울음소리를 감춘 매미를 찾는 듯 한참을 올려다본다. 물푸레나무 아래 돌탑에 주먹돌을 하나 올리기에 앞서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하는 행위이다. 마을과 가정의 평안을 기원한다.
평온한 물푸레나무의 자태 가슴 깊이 새긴다.
4
물푸레나무 허리춤에 새끼줄이 울긋불긋
마디마다 오색의 천 조각이 나풀나풀
세 아름 당산나무의 품 안에서 살으리라.
나루터가 번성할 때나 지금이나 마을의 품이다.
매년 정월 대보름, 물푸레나무 앞에서 용왕제 별신굿을 벌인다. 마을 지킴이 신과 마을 사람들의 만남의 축제. 당산나무에 얽힌 전설은 마을 신앙. 그것은 마을 지킴이 신앙이다.
‘봄에 나무 애잎이 위에서 아래로 나면 풍년, 나무가 윙윙 울면 태풍, 까치 떼가 날아들어 울면 풍어와 경사, 까마귀 떼가 날아들어 울면 초상, 구렁이가 밖으로 나와 바다를 건너 헤엄쳐 가면 큰 태풍, 구렁이를 죽이면 물난리와 줄초상, 밑동 아래에는 붉은 피가 흐르는데 밖으로 솟아나 흐르면 큰 재앙…….’
마부는 자연의 섭리라 여기며 살아왔다.
마부는 미신이라기보다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것이다.
조 씨는 노인이 배에 오르기 쉽게 뱃머리를 바싹 끌어올린다. 뱃머리가 모랫바닥에 닿는다. 마부를 부축하여 태운다. 조 씨는 다시 내려 뱃머리 앞에 선다. 그리고 두 팔로 힘껏 뱃머리를 밀고서 올라타자 나룻배는 출렁인다.
조 씨는 윤슬을 간질 듯 천천히 노를 젓는다. 찌푸린 날씨에 짓눌려 매미와 물새조차 울지 않는 조용한 아침이다. 조용한 호수처럼 둘은 아무런 말없이 침묵한다. 말이 없어도 눈빛과 마음으로 말을 주고받고 있음이다. 나룻배는 침묵 속에서 첨벙첨벙 물을 가르는 노 젓는 소리를 내뿜으며 건너 옛 나루터에 닿는다.
침묵하던 마부는 일어서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연다.
“조 씨, 이곳은 간밤에 소나기가 내리지 않았나 보네?”
“땅이 말짱하이 참 얄궂네요.”
“우리 마을은 촉촉이 젖었는데……. 섬과 뭍이 몇 발짝 차이라꼬 참 얄궂기도 하데이.”
마부는 조 씨의 부축을 받으며 나룻배에서 내린다.
“영감님, 조심해서 잘 다녀오이소.”
“고마워, 자네나 조심하게!”
조 씨는 대나무 깃대를 가리키며 “나중에 저 빨간 깃발을 올려 주이소.”라고 말을 건네자, 마부는 “알았다 카이.”라며 낮은 목소리로 응답한다.
양쪽 나루터 간의 폭이 넓은 편이라 젊은 사람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잘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건널 사람이 있다.’는 표시로 빨간 깃발을 올린다. 이를 보고 구멍가게를 하는 뱃사공 조 씨가 바다를 건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다.
마부는 허든거리며 힘겹게 아내 집으로 향한다. 이른 아침이라 마을 사람들의 인기척은 없고 강아지 짖는 소리가 마을을 뒤덮고 있다.
‘초복을 무사히 넘긴 녀석들 요란도 하네! 말복까지 잘 넘겨 보거라.’
길에는 개미 떼가 새까맣게 줄을 지어 이동하고 있다. 소나무가 무성한 용두산 자락 언덕 방향의 대이동이다.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개미 떼가 바삐 움직이는 것을 마부의 눈은 놓치지 않는다.
‘개미 떼가 이동하는 모습을 보니, 큰비가 오낑가 뵈.’
마부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터득한 자연의 현상으로 기상을 예측하고 있다. 풍이 든 노인의 팔다리가 더 무겁다.
마부는 사립문을 열고 들어선다.
“여보, 여보! 나요.”
마루에 목침이 놓여 있다. 습도가 높은 여름밤이라 마루에서 잠을 잤던 모양이다. 아내는 부엌에서 엉거주춤 걸어 나온다. 예전과 달리 얼굴이 바삭 마르고 창백해 보인다. 한때 마부의 바람둥이 짓 때문에 삼십 년 넘게 별거했지만, 왕래하는 것을 단절하지는 않았다. 두 해만에 만나는 내외답지 않게 서로가 평상의 상태로 대한다. 이들에게는 시간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서로가 늘 마음속에서 숨을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부의 아내는 아직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건장하게 보인다.
“곡주 한잔 내어 주소.”
“아침부터 무슨 술…….”
“2년 만에 보는데 술 한 잔이 없어서야…….”
아내는 한숨을 쉬며 부엌으로 들어간다. 예전에 그 곱고 예쁜 미소는 찾아볼 수가 없다. 미소는 삶에 찌든 주름살 속으로 숨어 버린 듯하다. 마부는 자신도 함께 늙어 간다는 것을 잊은 듯 “많이 늙었데이.”라며 말을 끄집어낸다.
“세월을 잡을 수가 있나요.”
“세월을 잡을 수만 있다면,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겠능교? …….”
마부는 말꼬리를 흐린다. 아내는 부엌에서 한참 동안 또닥거리며 술상을 차린다. 얼마 뒤, 술상을 들고 나온다. 술상에는 곡주 한 주전자, 회 한 접시, 마늘과 풋고추 몇 개, 된장과 고추장 종지, 술 사발 두 개, 젓가락 두 쌍이 전부이다. 마부의 눈에는 아주 풍성하게 보인다.
“이른 아침부터 미안하데이.”
“어제 잡아 물독에 넣어 둔 생선이에요. 맛있게 드이소.”
중풍으로 온갖 것을 다 먹어 본 마부는 첫눈에 빛깔을 보고 무슨 회인지 알아차린다. 마부는 한 점을 고추장에 찍어 입에 넣고서 맛을 음미한다.
“이렇게 좋은 안주를……. 고마운 일이데이.” 하고는 마부가 슬쩍 화제를 돌린다.
“아침부터 먹구름이 산기슭에 내려앉아 있는 것을 보아 하니, 한바탕 쏟아질 것 같소. 멧비둘기도 뒷산에서 슬피 울고…….”
“그을게, 사십 년 전, 갑오년 그해의 태풍 때처럼 참 조용도 하데이. 이래 조용한 아침도 다 있네…….”
“그 태풍을 기억하는 걸 보이, 아직 정신이 말짱하이 보이네. 하하하…….”
마부는 2년 만에 술을 마신다. 건강 때문에 술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다. 한 사발 시원스레 들이키는 얼굴에서 감회에 찬 미소와 함께 밝은 빛이 흐른다. 한 잔의 술에 얼굴이 붉게 물든다. 바닷가 남정네가 다 그렇듯, 마부도 중풍이 들기 전까지는 술 꽤나 마셨다.
“횟감이 싱싱해서 쫄깃쫄깃 입에서 녹는기라. 고고 맛 좋테이.”
“맛있게 잡숫고, 얼릉 병이나 나으소 마!”
“뼈가 더 좋은 긴데 푹 고와서 드이소.”
“나도 묵을 줄 아요.”
“얼굴 안색이 왜 그런능교?”
“피곤해서…….”
서로가 갑오년 태풍 때 잃은 자식과 친지들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주전자 술이 다 비는 동안, 마부는 안주에 눈독을 들이며 은근히 술을 많이 마신다. 마부의 혈색이 단풍잎처럼 울긋불긋 돋는다.
마부는 얼큰한 상태에서 일어난다.
“한바탕 쏟아지면 몽 간다. 일어나야 제. 다음에 또 올끼라.”
아내는 사립문까지 따라 나온다.
“그냥 들어가요.”
“그 몸으로 우에 갈라꼬 그라능교?”
“갈 수 있다 카이. 얼릉 들어가기나 하소.”
마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힘겹게 발을 내딛는다. 뒤를 보면 서로가 아쉬움이 남고 마음이 아플 것 같기 때문이다.
아내는 힘겹게 걸어가는 뒷모습을 쳐다보고 안타깝게 여기며 가슴 아파한다. 가슴이 시리고 속이 쓰라린다.
“아이고, 보소! 나루터까지 반나절은 족히 걸리겠소. 조심하이소.”
“들어가요. 얼릉…….”
마부가 나루터에 도달할 때까지 바라본다.
흠뻑 땀에 젖은 마부, 빨간 깃발을 올린다.
잠시 뒤, 나룻배에 마을 사람들이 타고 건너온다. 마부는 죽마고우인 김 노인이 타고 있음을 알아챈다. 나룻배가 도착하자 김 노인은 내다 팔 마른 생선을 가득 담은 지게를 짊어지고 나룻배에서 내린다.
마부는 반갑다는 듯이 먼저 말을 건넨다.
“자네 어디 갈라꼬?”
“비가 한바탕 올 낑갑다.”
“먹구름이 잔득 찌푸리고 있네. 비가 오기는 올 낀가.”
“참, 자네는 어딜 댕겨 오노?”
“…….”
“이 사람아, 그 몸으로…….”
“어쩌겠나?”
“조심해래이.”
마부는 조 씨의 도움을 받아 나룻배에 오른다.
5
먹구름이 내려앉은 바다 위를 밟아 대는 나룻배,
파도를 가르며 천천히 나아갔다. 갈매기 낮게 나는 모습이 마부의 눈에 들어온다.
“조 씨, 저 갈매기를 보거래이! 비가 오겠제?”
“그렁갑네요.”
마부는 물속의 고기 떼들의 움직임과 낮게 날며 먹잇감을 찾는 갈매기 한 쌍을 보면서 나루터에 닿는다.
“조 씨, 고마워!”
“건강 조심하이소.”
“자네, 나룻배나 꽉 묶어 놓게.”
“그럴 참이라예.”
“사십 년 전, 태풍이 불 때, 자네 선친이 묶어 놓은 배가 산산조각 났었지……, 알제?”
“예, 알아예.”
마부는 먹구름이 짓누르고 앉아 있는 집으로 들어간다. 점심을 먹고 나자, 빗방울이 떨어진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마루에 누워 잠이 든다.
마음이 천근만근 잠이 오긴 오나 보다.
꿈속에 푹 빠져들어 허우적대는 마부 보소.
‘봉래나루 물푸레나무 위에 먹구름이 걸린다. 물푸레나무는 윙윙 운다. 장대 같은 소나기가 퍼붓는다. 온통 마당에는 팥죽이 끓듯 흙물거품이 부글부글 끓으며 터진다. 쏟아지는 빗줄기는 양동이로 물을 퍼붓는 듯하다. 빗방울이 아파 보인다. 처마 밑 땅바닥에는 빗방울이 떨어져 구멍이 생긴다. 순식간에 고랑으로 물이 흘려들어 간다. 하늘에서 손가락 굵기의 미꾸라지가 마당에 떨어진다. 구렁이가 토담에서 유유히 나와 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 번개에 맞아 피를 토하며 마당에 꼬꾸라진다. 구렁이가 토해 낸 붉은 피가 넘쳐흘러 아내 집을 휩쓸어 버린다. 천둥소리가 지축을 흔들고, 번갯빛이 하늘을 쪼개어 버린다.’
꿈에서 총천연색 파노라마를 봤능교?
6
마부는 천둥소리와 번개에 화들짝 놀라 눈을 떤다.
꿈에서 보고 느낀 대로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천둥과 번개가 요란을 떨고 있다. 마당에는 흙물거품이 보글거린다. 미꾸라지도 꿈틀거리고 기어 다니고 있다.
“마당에 미꾸라지가 기어 다니잖아! 비가 억수로 오낑가?”
마부는 마당의 미꾸라지를 유심히 보고 있다.
그때 누군가 큰소리로 외치며 뛰어 다닌다.
“나루터 물푸레나무가 번개에 맞아 쓰러졌습니데이. 물푸레나무가 번개에 맞았습니데이…….”
마부는 예감이 좋지 않으면서도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힘겹게 일어서서 비를 맞으며 나루터가 내려다보이는 돌담으로 걸어간다. 마부는 돌담 앞에 높이 솟아 오른 접시꽃을 본다. 접시꽃은 마지막 꼭대기까지 꽃이 피어올랐다.
‘접시꽃이 꼭대기까지 피었네. 옛말에 접시꽃이 지면 장마가 끝난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비가 억수로 많이 내리니 원…….’이라며 혼잣말로 중얼댄다.
빨간 접시꽃은 장대비 속에서도 마지막 정열을 품어 내고 있다. 하얀 접시꽃, 연분홍 접시꽃이 소박한 미소로 마부에게 웃음을 보낸다.
마부는 온몸이 비에 젖어 측은하게 보이기도 한다. 물에 빠진 생쥐처럼 불쌍하리만큼 돌담 앞에 우두커니 서서 나루터를 바라다본다. 빗줄기 때문에 희미하게 보인다. 사람들은 바삐 움직이고 있다.
자세히 내려다보니 일본군 포병부대 군용 트럭 대여섯 대가 서 있고, 군인들이 쌀가마에 흙을 채워 넣고서 나루터 주변 방파제를 보강하느라고 쌓아 올리고 있다.
‘군인들이 어디서 온 거지…….’
마부는 눈으로 보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눈앞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비가 내리네…….’
마부는 이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조바심을 느끼기 시작한다. 옆집 박 씨가 삽을 들고서 토담 아래로 지나간다.
“이보게 박 씨!”
“예, 영감님, 우째 비를 맞고 계시능교?”
“저기 나루터에 무슨 일이 있나…… 보는기라.”
“방파제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 캅니더.”
“진짜가! 바다 건너 마을은?”
“이미 방파제가 터져 마을을 휩쓸었다 캅니더.”
“이보게, 나를 나루터까지 데불다 도.”
“영감님, 위험합니더.”
머리를 흔들며 마루로 나오는 마부의 시선이 차갑다.
7
주룩주룩 억수비의 슬픔이 깃든다.
일본군 트럭 한 대가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며 생존자 수색 작업과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마부는 조바심 때문에 안절부절못한다. 가슴이 답답하다. 아내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아랫배의 가스가 차올라 가슴을 압박하는 듯한 심리적 불안감에 휩싸인다. 힘겨운 걸음으로 영도다리를 건너기로 결심한다. 몇 년 전, 개통 후 여러 차례 건너보았지만, 풍을 맞은 뒤부터는 통 건너보지 못했다. 혼자 걸어서 다리를 건너기에는 무리이다. 문득 애지중지하던 청마가 떠오른다. 사람으로 치면 100살이나 먹은 늙은 말이다. 마부는 휘파람 신호를 불어 댄다. 말을 부를 때 하는 신호이다. 그러자 40살이나 먹은 늙은 말이 뚜벅뚜벅 다가온다. 늙을 대로 늙은 말이라 뛰지는 못해도 천천히 걸을 수는 있다. 마부는 있는 힘을 다해 말에 올라탄다. 부산부청 옆 진료소로 향한다. 진료소로 가는 동안 아내에 대한 온갖 추억과 기억들이 머릿속에 펼쳐진다.
마부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이기 시작한다. 아픔과 슬픔이 교차하는 듯한 눈빛으로 진료소 문을 들어선다. 진료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아낙네들의 통곡 소리가 여기저기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울려 퍼진다. 죽은 자와 산 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누가 죽었느냐?’는 질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미 진료소는 ‘마을 줄초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마부는 칠순의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한날한시 ‘마을 줄초상’을 두 번째 경험하는 순간이다. 사십 년 전, 갑오년 태풍 때 동네 아이 다섯 명과 함께 열 살 된 막둥이를 잃었다. 마부에게는 평생 떨칠 수 없는 아픔이었던 그때보다 더한 슬픔이 엄습해 온다.
건너 마을에 친인척이 있는 마을 사람들은 한결같이 ‘시신이라도 온전해야 할 텐데’라는 마음으로 진료소에 모여든다. 그리고 들어서는 순간 슬픔에 휩싸인다. 진료소에 마련된 임시 영안실에는 시신 십여 구가 하얀 천에 가려진 채 나란히 누워 있다. 시신 한 구 한 구, 하얀 천을 들어가며 얼굴을 확인하기 시작한다. 마부의 눈에 들어 온 핏물이 스며든 천을 들어 올리는 순간, 주저앉아 버린다. 다시 한 번 가슴이 터지는 소리를 듣고 만다.
마부의 아내를 발견한 것이다. 노인은 그 자리에 퍼지고 앉아 바닥을 치고 쥐어틀며 통곡을 하기 시작한다.
“아이고, 이게 무슨 날벼락인고……. 아이고, 아이고…….”
마부는 진료소 앞뜰로 힘겹게 걸어 나와서 억수 같은 비가 흥건하게 고인 잔디밭에 주저앉는다. 눈물이 그칠 줄 모르고 흘러내린다. 마부의 얼굴에는 비와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되어 엉망진창이다. 어제 보았던 아내 얼굴이 눈앞을 가린다. 마부는 엉덩이 아래에 깔린 죄 없는 잔디를 쥐어뜯으며 슬픔을 억누른다.
‘아내가 내놓았던 구렁이회의 정체는? 그래 맞아, 물푸레나무에서 나와 헤엄쳐 건너 간 마을 지킴이, 그 구렁이……! 갑오년 태풍이 불 때, 막둥이와 동네 아이들이 물푸레나무에서 기어 나온 마을 지킴이 구렁이 한 마리를 돌로 쳐 죽였었지. 마을 사람들은 봉래나루 구렁이와 용미나루 구렁이를 한 쌍이라 여겨 왔었지. 파도가 잔잔해지면 용미나루 구렁이가 봉래나루로 헤엄쳐 건너가 한 쌍을 이루고 며칠씩 보낸다고 믿어 왔다. 그해에도 물난리……. 맞아, 그놈의 태풍!’
혼자서 중얼거리며 아파하고 괴로워한다.
8
마부는 힘겹게 청마의 등에 올라탄다.
아내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되새기며 격한 바람을 헤집고 옛 용미나루까지 갔다. 그곳에서 내려 방파제까지 허든거리며 걸어간다. 옛 물푸레나무가 잘려나간 밑동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다. 밑동이 갈라져 붉은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눈을 의심하며 쓰려진 나무 그루터기를 살펴본다. 어릴 때, 동네 어르신들로부터 들은 적이 있는 마을의 전설이 떠오른다. ‘붉은 피가 밖으로 솟아올라 흐르면 큰 재앙이 일어난다. 물푸레나무에서 붉은 피가 흐르는 날, 십 리 사방으로 물바다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생생이 기억한다.
마부는 눈을 돌려 거센 파도를 바라본다. 이미 바다 건너 봉래나루 마을은 물바다로 변해 있다. 집채 같은 나무, 돼지, 소, 온갖 것들이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것을 목격한다. 속수무책으로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갑자기 마부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마부의 눈동자에는 마을 방파제가 터지는 것이 들어온다. 파도는 산더미같이 높고 빠르게 마부가 서 있는 옛 용미나루 쪽으로 밀려온다. 방파제에 나와 있던 군인들과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다급하게 뛰어 용두산 자락 언덕 위로 달아난다. 마을만 벗어나면 충분히 목숨을 건질 수 있음에도 노인은 태연히 그 자리에 주저앉아 사르르 눈을 감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스스로 제물이 되기를 자처한 것이다.
달맞이꽃이 여름밤 달빛을 기다리듯 쏜살같이 밀려오는 파도를 기다린다. 순식간에 닥쳐오는 죽음을 겸허히 맞이하는 그 모습은 바로 부처요, 예수다. 죽음을 성스럽게 맞이한다. 밝은 미소를 끌어안고 마음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그 순간 거친 파도가 마부를 덮치고 회오리친다.
에필로그
나루터 지킴이가 누꼬?
국마장 마지막 마부고
나루터 당산나무 물푸레나무고
물푸레나무에 숨어 사는
구렁이의 화신이고 상징 아이가?
맞다. 맞다. 어에(어떻게) 알았노?
그들과 영도다리를 겝치나코(겹쳐 놓고)
찬차이 뚜러지게 보믄(찬찬히 뚫어지게 보면)
영도다리 감싸고도는 파도에 얽힌
현대사의 소용돌이도 보일 끼고
영도다리 건설에 얽힌
백의민족 슬픈 삶
아픈 신음도 들릴 끼다.
여전여상 살아 있어
소용돌이도 계속
울부짖음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