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각의 하루

파도와 맞싸웠던 정박선의

따개비 두드려 깨는 손이

반세기 묵혔던 영사기를 돌린다

풍랑 헤치느라 실종된 남자의 다리가

박봉의 발판에 하루를 밀어 올린다

밧줄에 목숨 매단 하루, 또 하루

망치의 울림 멎은 저물녘

난청의 기억을 보듬은 하루가 난간을 놓으면

멀어지는 도선 따라

호루라기 소리가 달려온다

등댓불 닿지 않는 교각 아래

구조대의 물갈퀴가 물속의 하루를 건져내면

끼니 놓친 뱃속이 허기로 불어있다

도크에 쏟아놓은 하루의 노동 속

불어터진 면발이 바닥에 널린다

육중한 기어 소리에

기지개 켜는 영도다리는

하루를 기다리던 그림자에 쿨럭,

묵은 기침이 떠받치는 힘으로

햇무리 속으로 사라진다

영도다리

직조된 색색의 솔기마다

짜거나 매운 이야기가

한숨처럼 걸려있다

전쟁 통에 두고 온 엄마에게 지은 죄

해마다 꺾어 모은 회초리에 몰린다

체머리는 북녘을 향한 고질병

다리 위 약재로도 고치지 못해

점바치를 찾아든다

불면의 세월 이겨낸 주술로도

콜레라의 신열을 떨궈내지 못한다

껌딱지 더께 이룬 길을 따라

해무 속에서 울린 뱃고동 신호로

안개가 허기진 난간을 삼킨다

좁힐 수 없는 높이를

구급차 사이렌이 메우면

고막을 때리던 파도소리가

날품팔이 삶의 경계를 굵게 긋는다

고향길은 곧지 않다는 듯

깊이 모를 물속 한 바퀴 순찰하고 온 남자를

군용 모포가 감싸면

모자반의 눈물이 하늘을 가린다

흑백 필름을 거꾸로 돌린 한기가

언 손을 난간 위로 끌어당긴다

주먹밥의 포만감이 밀려드는 다리 위

핏발 선연한 남자의 귀에

고향 꿈도 그리워, 색소폰 소리가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