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없이 영도다리를 배회하며

"점 한번 보이소! 점 한번 보이소!"

영도다리 아래의 노점에서 점을 보는 점바치 할머니들이 지나가는 피난민들의 바지 자락을 붙잡는다.

정만수는 점바치로부터 "가족을 찾을 수 있다. 꼭, 찾을 수 있다."라는 명쾌한 점괘를 듣고는 쉼없이 영도다리를 배회하고 있다.

그는 한양의 부잣집 출신으로 한강 이북 명륜동에서 방앗간을 하면서 아내와 7살, 5살의 아들 둘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다 6.25사변이 터지고 말았다.

점점 가까워지는 포성과 총성의 공포에 더 이상 집을 지키지 못하고 허겁지겁 피난의 보따리를 쌌다. 남쪽 행 기차표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구하지 못하고 보퉁이를 메고, 이고, 피난길을 걸어서 떠나게 되었다.

피난길은 험하였다. 들리는 풍문에 "남쪽에 가면 팔금산(八金山)이 있는데, 거기에 가면 안전하게 살 수 있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라도 피난 대열에 이탈할 수 없었다. 하늘에서 벼락과 같은 폭음소리가 이어지고, 날은 저문데도 팔금산으로 가는 피난행렬은 이어졌다.

어느 날 강어귀에 도착했으나 강을 건너는 다리는 이미 폭격으로 끊어져 있어 10여 명 탈 수 있는 나룻배에 숨겨둔 비상금을 주고 겨우 탔으나, 이것마저 비행기의 폭격으로 그만 배는 뒤집혀지고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난리 끝에 헤어지지 않기 위해 꼭 잡았던 가족들의 손은 다 놓치고, 정만수 혼자 헤엄쳐 나왔지만 이내 정신을 잃게 되었고, 정신을 차리고 깨어보니 사랑하는 가족들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가족들이 죽었을까? 살았을까? 강둑에서 며칠을 울며 기다렸지만 찾을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피난행렬을 따라 온 것이 어느듯 이곳 부산 영도다리까지 오게 되었다.

영도다리에 가면 혹시나 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지, 아니면 가족들의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을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버리지 못하고 쉼없이 영도다리를 배회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인근의 갯가에서 잡아온 고기를 장만하여 주기도 하고, 지게 운반을 하며 겨우 생업을 이어 갔다. 잠은 해가지면 영도다리 아래에 점바치의 노점들이 철수를 한다. 그때서야 잘 곳을 찾아 거적을 깔고 새우잠을 청했다.

이러한 잠자리도 상급, 하급 자리가 있기에 늘 자리 다툼에 왁자지껄 하였다. 간혹 단속반이 나오는 날이면 몽둥이로 두들겨 맞아야 질서가 잡히곤 하였다.

만약 상급 자리에서 하급 자리로 밀려나 누워 잠을 자고 있으면, 아침이 되어 다리위에서 지나가는 사람이 오줌을 누면, 바람과 함께 종종 오줌 세례를 받기에 더욱더 자리다툼은 치열하였다.

그의 숙소가 영도다리 밑이었지만 정만수에게는 "영도다리에서 가족을 만날 수 있다."라는 점바치의 점괘가 있었기에 행복한 숙소가 되었고, 하루 종일 품팔이 노동에 시달려도 '가족을 찾을 수 있다.'라는 신념에 그는 매사가 어렵지 않았다.

당시, 영도다리는 전쟁으로 인한 배고픔과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투신자살하는 경우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그때마다 죽은 자의 영혼에 대한 ‘천도제’가 가끔 있어 무당들이 굿을 하고 나면 음식과 과일은 그대로 두고 갔 다.

정만수는 그 음식이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고마운 것으로 오히려 죽는 자에 대한 안타까움보다 오늘도 영도다리에 사람이 빠져 죽는 사람은 없는지 은근히 기다려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만수는 누군가 버려둔 구두닦기통을 하나 줍게 되었다.

그는 이것을 새것으로 고쳐 만들고, 구두닦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영도다리의 한자리에 머물며 일 할 수 있는 것은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기대감이 높기 때문에 그는 더없이 즐거웠다.

영도다리에 오는 이산가족마다 가족을 찾기 위해 대부분 다리 밑 점바치를 찾기에 노점판을 펴는 골목 입구에 자리를 잡고, 그는 열심히 구두를 닦았다.

구두약을 아끼느라 침을 바르고, 열심히 문질렀다. 광택이 나지 않으면 또 침을 발랐다. 그러다 손님에게 발길로 걷어차이기도 했다.

그렀듯이 구두닦이 인생이 그리 순탄하지 않았으나 '봉선화 점바치'의 "가족을 찾을 수 있다."라는 점괘를 꼭 믿었기에 어떠한 어려움도 참을 수 있었다.

밤마다 가족을 꿈속에서 만나고, 아침이 되면 삶의 활력을 위해 주변을 청소하고,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바다를 산책하기도 하고, 영도다리 위에 자신이 적어 걸어둔 '만남의 글귀'가 바람에 날아가지는 않았는지 확인도 하고 하루 일과를 보낸다.

늦여름 어느 날 그는 구두통을 메고 용두산을 찾게 되었다.

그날따라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행여나 사람들이 모여드니 구두를 닦지 않을까? 기대감속에 198계단을 단숨에 올랐다. 매달 이곳에서는 번호 숫자를 부를 때마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고함 소리도 떠나지 않았다. 애국복권 때문이었다.

일제가 남긴 잔재물로 피난민들에게 애국복권에 당첨되는 것이 고단한 피난생활에 그나마 행운을 한곳으로 몰아주게 되어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복권을 사는 것이 정만수에게도 커다란 삶의 낙이 되었다.

이로써 정만수는 두 가지 큰 희망을 갖게 되었다. 하나는 제일 용하다는 '봉선화 점바치'가 "가족을 꼭 찾을 수 있다."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애국복권에 당첨되는 것이었다.

오늘은 애국복권 발표날이다.

나이가 지긋한 노익장들은 일찍이 양지 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있고, 새 점을 보는 할머니도 계단 옆에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정오가 되자 용두산 중앙에 사이렌이 울리고, 애국복권의 발표가 시작되었다.

복권 진행자가 당첨 번호표가 든 큰 통을 들고, 높은 망루에서 번호표을 뽑아 들고 번호를 부르고 그 옆에 걸어둔다.

"3번, 6번."

정만수도 구두통을 엉덩이에 깔고 앉아 조바심 속에서 자기의 번호가 맞는지 기다리고 있었다.

"1번, 8번."

정만수는 맞아 들어가는 번호에 온몸이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든 애국복권의 마지막 번호는 '4번'이었다.

숨을 죽였다. 마지막 외치는 번호를 "4번."이라 외친다.

꿈인지 생시인지 내가 1등에 당첨되었다!

그는 한동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가만히 눈으로 앞에 있는 번호판을 보고 또 보았다. 분명히 번호가 3, 6, 1, 8, 4번이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와!' 하며 벌떡 일어서 '당첨이다! 당첨이다!'를 외쳤다.

뜨거운 눈물이 줄줄 얼굴을 타고 흘렀다. 가족들의 얼굴이 눈앞에 선연했다.

1달 후 이 당첨금을 찾게 되면 자신의 생활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할 것을 상상하며 그는 또 다른 희망을 간직한 행운의 사나이가 되었다.

'이 복권을 잘 보관해야 한다!'

일정한 숙소도 없이 노숙생활에 행여나 분실하면 어쩔까, 아니면 내 몸에 도둑이라도 들면 어쩌나 하는 노심초사로 복권을 숨기고 또 깊숙이 숨겼다.

모든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고, 갈매기의 나는 모습은 마치 자신의 기개가 거침없이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하루하루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다. 간밤에 노숙자들과 마셨던 소주 한 잔이 이다지도 속을 쓰리게 했고, 아침에 따뜻한 국물이 그리웠다.

조그만 더 참자! 하루만 더 있으면 복권 당첨금을 받는 날이다.

그는 영도다리를 건너면서 자신이 붙여 놓은 '만남의 글귀'를 재확인하면서 이제 구두닦이도 청산하고 가족을 만나 새로운 삶을 출발해야지, 자갈치에 멋진 가게도 차리고, 만날 가족들과 멋지게 행복하게 살아야지...

구두통에게 안녕을 고하며, 영도다리 위에서 구두통을 멀리 바다로 던져버렸다.

그에게는 지긋지긋하고 보기 싫었던 구두통이었다. 구두통은 시원스럽게 물살을 따라 떠내려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차!' 자신의 애국복권이 저 구두통 옆에 숨겨 놓았던 것이 퍼떡 머리를 스친다. 영도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니 쇠사슬 같은 물길이 흐르고 있다.

구두통을 찾기 위해 바다에 뛰어 내리려고 신을 벗고 난간위에 오르자, 그만, 자살방지 단속반의 경찰에 붙잡히고 만다.

"내 복권! 내 복권!" 그는 울고 소리치며 "내 애국복권을 찾아 달라!"며 경찰에 매달렸지만 이미 구두통은 보이지 않았다.

노숙생활의 잠든 도중에 도둑에게 몸수색을 당할 것을 피하고저 복권을 깊이 숨긴다는 것이 구두통 옆 구석에 숨겨 놓았던 것이다. 한 순간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매일 새로운 꿈만 꾸다, 그만 구두통을 1등복권과 함께 영도다리 아래로 던져 버린 것이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였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이후 나 홀로 왔다.

영도다리는 수많은 민족의 애환과 사연을 간직한 채, 오늘도 그 아래로 푸른 물이 유유히 흐르고 배들은 한가히 영도다리 밑을 오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