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영도다리

Ⅰ. 기도

전쟁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영도다리 난간을 잡고 선 금순은 약속을 어긴 현민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다가도 혹시 무슨 사고라도 당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는 가슴이 콩콩 뛰며 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영도의 봉래산을 힘겹게 넘어와 뜬 보름달을 보며 금순은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달님, 제발 우리 현민씨 아무 사고 없이 돌아오게 해주세요.’

밝게 빛나는 달은 아무 대꾸도 없었지만 금순의 기도는 계속되었다. 매월 뜨는 보름달은 이처럼 밝게 빛났지만 금순의 마음에는 달이 없는 캄캄한 밤만 계속되었다. 금순의 등에서 칭얼거리던 아들 민수는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다. 금순은 자정이 다 되어서야 여인숙으로 돌아왔다. 국밥 한 그릇을 사서 민수와 나누어 먹고 현민을 기다렸기에 허기도 지고 다리에 힘도 빠졌다. 민수를 방바닥에 뉘고 자신도 푹 쓰러진 금순은 손가락도 까닥하기 싫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더니 눈자위를 타고 흘러내렸다. 어둠이 꽉 찬 방에 민수와 단 둘이 누워있어서 그런지 한여름인데도 등짝에 냉기가 돌았다. 민수의 이불을 다독여주고 금순도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머릿속에서 부모님과 현민의 얼굴이 번갈아 지나갔다.

Ⅱ. 이별과 탄생

박현민과 이금순은 함경도 장진이라는 깊은 산골 같은 동네에서 한 살 터울로 태어나 같이 자랐다. 하늘아래 첫 동네이고 바깥세상과 별 교류가 없던 오지였기에 양가 부모님은 둘을 혼인시키기로 합의를 했다. 그런 와중에 전쟁이 터졌다. 그리고 미군이 장진까지 북진했다가 장진호전투에서 패하자 후퇴를 결정하면서 그들의 운명은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 늙은이들은 고향을 버리고 남쪽으로 갈 수 없으니 너희들 둘이라도 미군을 따라 남쪽으로 가거라.”

“어떻게 부모님을 두고 저희들만…….”

후퇴하는 미군을 따라 젊은 두 남녀를 남으로 내려 보내기 위해 양가 어른들이 모여 그들을 설득하는 데 며칠이 걸렸다.

“너희들은 양가 부모가 허락했으니 둘이 합방하여 산다고 해도 남부끄러울 것이 없느니라. 그러니 남쪽으로 내려가면 냉수 한 그릇이라도 떠놓고 식을 올리고 같이 살거라.”

양쪽 집안 어른들은 고향을 떠나는 두 젊은이에게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부모 곁을 떠나야 하는 그들의 마음은 여간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미군이 영원히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잠깐 후퇴했다가 다시 온다고 하잖니? 그리고 남북통일을 시켜준다고 하니 그 말을 믿고 잠시 떠나 있거라.”

현민이 고향을 떠나는 것은 자유를 얻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인민군 징집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전세가 불리해진 공산당이 젊은이들을 모아 인민군대에 편입시킨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처음 공산당 세상이 되었을 때 동네의 몇몇 젊은이들이 들떠 인민군에 자원해 낙동강에서 국군과 싸우다 죽었다는 연락이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니 고향에 그대로 남아 있으면 인민군에 입대해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르는 판국이었다. 두 사람은 남으로 떠나기 전 고향의 모든 풍경을 가슴에 담았다. 자신이 살던 토담집은 물론 뒷산과 앞산은 물론 개울까지도……. 바로 다시 온다고 부모님과 약속은 했지만 그리 쉽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국 현민과 금순은 어른들의 강요와 앞날의 불안으로 양가 어른들을 남겨 논 채 엄동설한에 몇 날을 걸어 흥남에 도착했다. 그들은 갈 곳이 없어 여인숙에 머물기도 하고 남의 집 문간방을 얻어 잠을 자기도 했다. 부모님들도 허락한 사이였기에 한 방에서 자는데 별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두 사람은 듣지도 보지도 않던 남의 집 사랑채에서 첫날밤을 치렀다.

“금순이 사랑해.”

“…….”

고향에서 둘은 저녁마다 만나는 사이였지만 한방에 누워 서로의 몸을 섞어 사랑을 나눈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첫날밤을 보낸 현민은 무척 미안해 금순의 귀에 대고 중얼거렸다.

“예식이라도 치르고 첫날밤을 보냈어야 했는데……."

“괜찮아요. 양가 부모님께서도 허락하셨고 남쪽으로 가면 어차피 같이 살아야 할 텐데요. 뭐…….”

첫날밤을 치른 금순은 수줍게 대답했다. 현민은 그런 금순이 사랑스러워 꼭 안고 밤을 보냈다.

흥남부두에는 북쪽의 각 지방에서 몰려든 피난민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까지 금순은 그렇게 많은 사람을 본적이 없었다. 사람끼리 뒤섞여 잘못하면 서로 잃어버리기 십상이었다. 현민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금순의 손을 잡으며 당부의 말을 했다.

“금순이, 만약 무슨 일이 있어 우리 둘이 헤어지게 된다면 부산에서 만납시다. 부산에 영도다리라고 있다는데 그곳에서 보름날에 만납시다.”

조선시대 귀양지였다는 산간벽지 장진에서 낳고 자란 그들이 부산의 영도다리를 알 턱이 없었다. 다만 부산에는 영도다리라 불리는 다리가 있는데 하루에 한두 번씩 다리가 위로 들린다는 것을 입소문을 통해 들었던 것이었다. 그런 소문난 다리이기에 비록 보지는 못했어도 누구나 알 것 같아 영도다리를 약속장소로 정한 것이었다. 날마다 밀려드는 피난민의 행렬은 끝이 없었다. 남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흥남부두에서 배를 타야만 했다. 그러나 그 배를 얻어 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현민은 하루라도 빨리 배를 타기 위해 이곳저곳으로 다니며 소문도 듣고 손도 써보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을 태울 배가 흥남부두에 도착했다. 피난민들은 서로 배에 먼저 타려고 밀고 당기며 뒤엉켜 싸우기도 했다. 현민과 금순도 간신히 줄을 지어 배를 타려는데 갑자기 미군이 현민의 얼굴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가로막고 섰다.

“조사할 것이 있으니 잠시 사무실로 갑시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미군의 말을 통역을 해주는 한국 사람이 있었다. 현민은 저항을 했으나 여럿이 몰려들어 그를 제압했다. 현민이 잡혀가자 금순도 따라 내리려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뒤에서 꾸역꾸역 미는 바람에 떠밀리다시피 배에 올랐다. 금순은 멀리 미군에 끌려가는 현민을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굴렀다.

“금순이, 보름날 꼭 영도다리에서 기다려. 내가 바로 따라 갈 테니까.”

현민은 금순을 바라보며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현민은 미군에 끌려 부두 사무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아련할 때쯤 금순이 탄 배는 부두를 떠나고 있었다. 산골에서 나고 자라 읍내 소학교에 다닌 경험이 전부인 금순은 현민도 없는 낯선 곳에서 닥쳐올 앞날이 불안하기만 했다. 그런가하면 미군에 끌려간 현민의 안위가 걱정되어 온몸이 저려왔다. 눈발이 휘날리는 뱃전에서 금순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사람들을 빼곡하게 실은 배는 힘에 부치는지 그리 빠른 것 같지는 않았다. 배 안에서도 질서를 지키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투고 싸움이 잦았다. 그래도 날짜는 지났고 배도 앞으로 나아갔다. 추위와 배고픔에 많은 사람들이 시달렸다. 그러나 금순은 배고픔도 잊었다. 현민의 걱정보다 더 큰 어려움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직 현민의 생각이 전부였다.

거제도라는 섬에 도착하자 배에서 내린 사람들은 마치 갈 곳이라도 있는 듯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일부는 수용소에 머물며 갈 곳이 정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금순도 수용소에 머물며 현민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데 며칠 후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다음에 오는 배는 거제로 오지 않고 부산으로 직접 간다네.”

그 소문을 듣자 금순은 현민이가 자신보다 먼저 부산에 도착해 영도다리에서 기다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금순의 머릿속에는 오직 부산의 영도다리만 맴돌았다. 그곳이 최종적으로 갈 곳이고 그곳에서 현민을 만나야 했다. 금순은 거제수용소를 나와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의 영도다리에서 뒤따라온 현민만 만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다리 이름을 잘못 기억하고 있는가 걱정되어 현민의 외치는 소리를 몇 번이나 되뇌어 보았는지 모른다.

남의 집 문간방을 얻어 잠을 자기도 하고 어떤 때는 버스를 타고 때로는 트럭을 얻어 타며 부산으로만 향했다. 부모님이 쥐어주신 돈을 아끼기 위해 굶기를 밥 먹듯 했다. 그리고 마침내 부산에 처음 발을 디딘 금순은 생전 처음 본 큰 도시에 압도되어 주눅이 들었다. 함경도 산골 장진이라는 하늘 아래 첫 동네에서 우리나라 두 번째 도시인 부산을 처음 보았으니 어찌 놀라자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놀라는 것도 잠시였다. 당장 먹고 잘 곳이 문제였다. 흥남까지 미군을 따라 피난을 오면서는 남의 집 추녀 끝에서 웅크리고 잤다. 흥남에 도착해서는 현민이 금순을 위해 방을 빌려 잤기에 불편한 줄을 몰랐다. 그 때는 현민이 옆에 있었기에 안심도 되었다. 그러나 부산에 도착한 금순은 오직 혼자였다. 더구나 부산은 전국에서 밀려든 피난민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물어물어 여인숙이라는 낯선 방에 몸을 누인 금순은 남으로 내려온 걸 처음으로 후회하게 되었다. 공산당 세상일망정 부모님 모시고 고향에서 편히 살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니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오직 현민만 믿고 따라왔는데 그도 지금은 곁에 없으니 서러움이 복받쳐 올랐다. 긴 피난길에 지치고 거제에서 부산으로 오기 위해 굶고 애태웠던 것이 피곤했던지 잠이 쏟아졌다. 금순은 부모님과 헤어지는 꿈을 꿨고 현민도 여러 번 만났다. 금순은 처음으로 부산에서 아침을 맞았다.

“영도다리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어떻게 가야 하나요?”

여인숙 주인에게 다리의 위치를 물으니 가는 길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여인숙을 나온 금순은 오직 영도다리를 향해 걸었다. 차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고 알려주었지만 금순은 그냥 걷기로 했다. 돈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길을 걷다 미심쩍으면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러기를 여러 번 되풀이 했다. 걷다가는 현기증이 나 잠시 길가에서 쉬기도 했다. 속이 울렁거렸다. 산골에서만 자랐기에 지나는 차에서 내뿜는 휘발유 냄새가 너무 역겨웠다. 영도다리는 금순이 잔 여인숙과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영도다리에 도착한 금순은 쇠 덩어리로 놓아진 다리를 보고 신기해서 한참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오포가 울면서 다리가 들려지는 모습은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동네에 있는 섶다리와는 완전 딴판의 다리였던 것이었다. 다리 위에는 오가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또 다리 난간에 기대어 하늘에 나는 갈매기를 바라보는 사람들, 다리 아래에 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긴 사람들, 모두가 자신처럼 사연이 있는 듯 보였다. 금순은 걱정이 되었다. 하루 이틀 사이에 현민을 만나지 못한다면 큰 문제였다. 낯선 타향에서 가진 돈도 얼마 되지 않는데 어디서 여자 혼자 먹고 자고 한단 말인가? 또 현민을 만난다 해도 돈이 없이 생활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 어떻게든지 돈을 벌어, 먹고 자는 일부터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현민을 만난다 해도 사는 게 손쉬울 것이 아닌가.’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금순은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영도다리의 위치를 확인한 후 여인숙으로 돌아온 금순은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주인집 아주머니께서 하시는 빨래 일을 돕고 나섰다. 혹시라도 잠자리 비용을 깎아 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래, 아가씨는 어디서 왔수?”

“함경도에서 왔는데, 저…… 아가씨가 아니고 결혼을 했어요. 피난을 오다가 남편을 잃었거든요. 서로 헤어지게 되면 영도다리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금순은 자신이 처녀라고 하면 객지에서 살아가는데 혹시나 걸림돌이 될까 해서 결혼을 한 새댁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사실 식만 올리지 않았지 첫날밤은 치루었기에 아가씨가 아닌 건 사실이었다.

“약속장소는 잘 정했네요. 조선 사람으로 영도다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빨래를 널고 나서 금순은 아주머니와 마루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금순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 아주머니 어디 취직할 곳이 없을까요? 돈도 거의 다 떨어져가고……. 남편을 만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서…….”

“아이고, 새댁, 말도 말아요. 피난민이 넘쳐나서 취직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라오.”

아주머니의 말은 듣자 금순은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다.

“그냥 밥만 먹여주고 잠만 자는 곳이면 되는데…….”

금순은 한숨을 푹 쉬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정말 앞일이 걱정이었다.

“그러면 새댁, 우리 집 일을 거들어 주겠소? 오전에만 빨래와 청소를 하고 오후에는 일이 없으니 새댁 마음대로 하고……. 대신 월급은 줄 수 없고 먹고 재워주기만 할 테니…….”

은순의 부산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몸은 고달프고 마음은 서러웠다. 그런데 금순은 피난길에서의 어려움과 부산에서의 각박한 삶 때문에 자신의 신체 변화에 둔감해 있었다. 현민과 하루저녁의 사랑으로 임신을 한 것을 늦게야 알게 되었다. 혼자 살기도 어려운 판에 아이까지 딸리게 되면……. 금순은 눈앞이 캄캄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주머니와 상의를 하면서 도와주기를 청했다.

“새댁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 어쩌겠어요. 우리 집에서 낳아야지.”

마음씨 좋은 여인숙집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금순은 해산을 할 수 있었다.

“색시, 아들이야.”

금순은 아들의 이름을 박민수라고 지었다. 박민수라는 이름은 아버지의 성이 박 이라서 부르기 좋은 이름으로 민수라고 금순이 직접 지은 것이다. 그 날 이후 금순은 고마운 아주머니를 돕기 위해 여인숙 일을 거의 도맡아 하였다. 한 달에 한 번 오는 보름날은 휴가를 얻었다. 그리고 민수를 업고 하루 종일 영도다리에 멍하니 서있거나 다리를 오고가며 현민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벌써 전쟁이 끝난 지 한참 되었는데 현민의 소식은 깜깜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여인숙 주인을 만나 먹고 자는 일이 해결되었고, 민수도 잔병 없이 자라는 것이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니었다. 비록 금순 자신은 이불 빨래를 하는 어려움이 있고 여인숙 방청소를 해야 하는 고달픔이 있었지만…….

Ⅲ. 운명

흥남부두에서 미군에 끌려간 현민은 인민군의 첩자로 몰려 조사를 받게 되었다. 미군이 들이댄 사진은 현민이 보아도 자신과 너무 닮아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는 인민군 정보장교라고 했다.

“솔직히 말하시오. 왜 피난민에 섞여 남으로 가는지……. 무슨 임무를 띠고 왔소?”

미군의 집요한 취조에 현민은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너무 닮은 인민군 장교의 사진 때문에 간첩의 혐의를 벗을 수 없었다. 미군과 현민의 지리한 공방은 계속되었다. 어제만 해도 멀리서 들리던 포성이 오늘은 아주 가까이에서 들렸다. 미군들도 하나둘 짐을 꾸려 철수하기 시작했다.

“당신을 간첩으로 처형할 수도 있지만 제네바협약을 지키기 위해 살려두고 가는 것이오.”

미군은 현민을 흥남부두 사무실에 임시로 설치된 유치장에 가두어두고 모두 철수하고 말았다. 현민은 정말 기가 막혔다. 인민군 입대를 피해 남으로 가려던 것도, 금순과 행복하게 살려고 했던 꿈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 지경이었다. 미군과 피난민으로 뒤섞여 아비규환을 이루었던 흥남 시내는 아주 고요했다. 미군이 떠나고 인민군이 들어오기 전 몇 시간동안은……. 흥남은 다시 인민군의 손에 들어가고 부두는 시끌벅적했다. 미군이 가두어놓고 떠난 유치장에서 현민을 꺼내 준 것은 다름 아닌 인민군이었다. 그들은 현민을 극진히 대우했다. 그들 나름의 생각은 현민이 인민군을 위해 일하다 미군에 잡혔던 것으로 착각했던 것 같았다. 그들은 현민을 인민군 부대에 배속해 분대장이라는 자리를 주었다. 정말 운명의 장난이었다. 인민군에 입대가 싫어 부모와 고향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지만 급기야 금순도 잃고 현민은 인민군이 되고 말았다.

삼팔선 부근에서 벌어진 전투는 정말 지루했다. 힘의 균형을 이루었기에 누구 한쪽이 일방적으로 밀리지도 않았다. 고지를 뺏기면 이튿날 다시 찾았고, 찾았는가 싶으면 다시 빼앗기는 지루한 공방이었다.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누구를 위해 피를 흘리고 죽어야 하는지 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냥 위에서 시키면 전진하고, 총 쏘고, 그러다 안 되면 후퇴하고, 그런 날이 몇 달간 계속되었다.

“휴전한다는 소식이 들리던데요.”

어느 날 현민은 인민군의 정보장교들끼리 하는 말을 들었다. 순간 현민은 돌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아찔했다. 이대로 휴전이 된다면 자신은 영원히 북에 머물러 금순을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캄캄했다. 그날부터 현민은 어떻게든지 인민군복을 벗고 국군에 귀순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러던 어느 봄의 끝자락에 고지 탈환명령이 떨어졌다. 현민은 제일 앞에 서서 국군을 향해 전진했다. 인민군이 고지를 탈환하지 못하고 후퇴한다 해도 그는 돌아가지 않고 국군에 귀순하겠다는 결심을 굳혔기에 앞서서 진격한 것이다. 그 때였다. 국군이 쏜 포탄이 현민의 옆에 떨어지자 팔 한쪽에 찡하는 아픔이 오는가 싶더니 몸이 붕 떴다가 웅덩이에 처박히고 말았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현민이 눈을 뜬 곳은 국군의 야전병원이었다. 현민은 팔에서 통증이 느껴지자 눈을 찡그렸다.

“상처가 너무 심해서 하는 수없이 왼쪽 팔을 잘라냈으니 통증이 심하면 말씀하세요.”

한쪽 팔을 잘랐다는 간호원의 말을 듣는 순간 현민은 자신이 포로라는 생각도 잊고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왼쪽 팔이 저려왔으나 그런 건 대수롭지 않았다. 울다가 소리 지르기다, 악쓰기를 며칠. 얼마나,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울고, 소리를 지른다고, 잘라낸 팔이 붙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후방의 병원으로 후송된 현민은 한동안 말없이 생활했다. 멍하니 하늘만 바라볼 뿐 말도 감정도 잃어버렸다. 팔의 통증은 많이 가라앉아 참을만했다. 현민은 자신의 기구한 운명만 탓하며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렀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도 금순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 현민을 불쌍하게 생각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담당 간호원 김영숙이었다. 그녀 역시 함경도 출신으로 월남을 해서 국군에 몸담아 간호원으로 일하다가 현민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녀도 혈혈단신 남으로 내려와 누구하나 의지할 사람이 없었기에 현민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녀는 현민에게 무척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너무 자학하지 마세요. 죽은 것보다 낫지 않겠어요? 한쪽 팔이 없어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어요.”

“…….”

“이 전쟁에서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그래도 살아남았다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세요.”

그녀의 질책과 때로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현민에게는 한줄기 빛과 같았다. 누구도 믿고 의지할 수 없는 타지에서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간호사를 현민은 이성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두어 달 동안 현민을 간호하는 사이 그의 착하고 순수한 마음에 끌린 간호사 영숙도 그를 환자가 아닌 남자로 대하게 되었다. 현민의 다친 팔이 아물어 퇴원할 때쯤 둘 사이는 이미 연인관계로 발전해 있었다.

한여름의 길목에서 전쟁이 끝났다. 현민은 반공포로석방이라는 명목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금순을 찾아 부산의 영도다리로 달려갈 처지가 되지 못했다. 금순이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고 한 쪽 팔이 없다는 것이 그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팔 한쪽을 잘라냈을 때 이미 금순을 마음에서 떠나보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온전한 모습만 보았던 금순이 한쪽 팔이 없는 자신을 보았을 때 받을 충격을 현민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또 혼약이라는 사슬에 금순을 가두어 그의 자유를 방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불구라는 자신의 육신을 금순의 어깨에 얹혀준다면 둘 다 불행할 것만 같았다. 어쩌면 현민의 팔 한 짝이 날아가면서 영도다리와 금순은 현민의 머리에서 영원히 지워졌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반공포로의 사슬을 끊고 현실에서 존재하는 영숙이와 먹고사는 일에 매달려야 할 처지였다. 결국 현민은 금순이 아닌 영숙과 부부의 연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Ⅳ. 고된 삶

방청소와 이불빨래를 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금순은 한시도 영도다리를 잊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보름날이 되면 괜히 아침부터 마음이 설랬다. 혹시나 오늘은 현민을 만날까하는 마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여인숙의 빨래와 청소를 마치면 민수를 들쳐 업고 한달음에 영도다리로 달려가기를 반복했다. 하루 종일 다리 끝에서 끝을 수십 번씩 오가며 지나는 사람을 살폈다. 그러다가 보름달이 뜨면 허무한 마음에 파김치가 되어 여인숙으로 돌아왔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알았던지 민수는 보채지도 않았다.

“오늘도 못 만났구먼.”

이제는 여인숙집 아주머니의 인사를 받기도 멋쩍었다. 이튿날 아주머니와 아침 빨래를 하면서 금순은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아주머니, 오전에는 아주머니 일을 거들다가 오후에는 다른 일을 해서 돈을 좀 벌어야겠어요. 민수도 점점 커 가는데……. 이대로 무작정 남편을 기다리다가 막상 만나면 돈이 있어야 살지 않겠어요?”

아주머니가 들을 때 금순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무작정 금순을 붙들어 두고 일만 부려먹는다면 그녀의 장래는 물론 민수의 장래도 보장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무슨 일을 할 것인가 내일부터 한 번 돌아다녀 봐요.”

이렇게 아주머니와 타협을 본 금순은 이튿날부터 오후에는 영도다리 부근을 돌아다니며 돈 벌 일을 찾기 시작했다. 부산 시내도 예전처럼 붐비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금순과 같이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들만 부산에서 빙빙 돌며 살아갈 길을 찾고 있었다. 몇 날 동안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가 영도다리 밑을 지나게 되었다. 그 때 점집이 금순의 눈에 띠었다.

‘그이가 어찌 되었는지 점이나 한 번 봐 볼까?’

금순이 고향을 떠날 때 부모님께서는 감자를 팔아 모아놓은 돈을 쥐어주셨다. 금순은 그 돈이 목숨보다 더 소중해 속치마 속에 꼭꼭 숨기고 실로 꿰매두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절대 축내지 않았던 돈이었다. 그런 금쪽같은 돈을 현민의 생사가 궁금해 일부를 복채로 쓰기로 마음먹었다. 점쟁이 앞에 마주앉은 금순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안 죽었어. 언젠가는 만나겠구먼. 바로는 아니야. 곁에 여자도 보이는데…….”

복채를 건네주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바로 만날 수 없다는 말과 옆에 여자가 보인다는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금순은 날마다 요기를 하기 위해 들르던 풀빵가게에 들어갔다. 길가에 가마니때기를 둘러친 곳에서 풀빵 틀을 놓고 하는 장사이기에 가게라고 하기에는 좀 어설펐다. 그래도 풀빵 몇 개만 먹으면 요기가 되긴 했다. 그래서 금순도 돈을 아끼려고 그곳을 자주 이용하다보니 아주머니와 친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장사는 잘 되시죠?”

“장사가 잘되면 뭐 하누, 서방이란 작자가 자꾸 제 고향인 서울로 가자 난리를 치는데…….”

풀빵 집 아주머니는 남편과 다투었는지 불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서울에 가서도 풀빵장사 하시게요?”

“글쎄, 나도 뭘 해먹고 살아야 할지 걱정이라우.”

아주머니도 부산을 떠나서는 막상 할 일이 마땅치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면 저 풀빵 틀도 가져가시려고요?”

“이 무거운 걸 어찌 가져가겠나. 누가 살 사람이 있으면 팔고, 없으면 고철로 넘겨야지…….”

그 때 금순은 풀빵 틀을 사서 풀빵장사를 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곳에 드나들면서 어떻게 하면 이런 풀빵장사라도 하나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한 적이 있었다.

“아주머니 그 풀빵 틀 저에게 파시죠. 제가 한 번 이 자리에서 장사를 해 보게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금순을 쳐다보았다. 그 눈을 보니 어렵지 않겠냐는 눈초리였다.

“새댁이 장사하면 남정네들이 낄 텐데……. 그런 남정네들한테 버틸 수 있겠나?”

그러나 금순의 지금 처지는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임시로 여인숙 주인을 만나 살고는 있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 수는 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민수는 점점 커가고 몇 년 후에는 학교에도 들어가야 했다. 이제는 방을 얻어 민수와 새 삶을 살아야지 언제까지나 남에게 얹혀 지낼 수는 없었다. 그런 금순의 사연을 불쌍히 여겨 하늘이 도왔는지 금순은 풀빵 틀은 물론 자리까지 얻어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친절한 아주머니는 서울로 떠나기 전 금순에게 풀빵 굽는 기술도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금순을 더 설레게 한 것은 풀빵 장사를 하는 곳에서 영도다리가 훤히 보인다는 것이었다.

Ⅴ. 홀로서기

현민과 영숙은 서울의 변두리에 집을 얻어 신혼생활을 시작하였다. 영숙이는 군부대에서 간호원으로 일했던 경력을 바탕으로 병원에 취직하여 돈을 벌었다. 몸이 불편한 현민은 집 앞에 문방구겸 구멍가게를 내어 다만 한 푼이라도 벌 수 있었다. 나중에는 가게를 넓혀 만화방까지 겸했다. 수입도 짭짤했다. 두 부부의 금실 역시 무척 좋았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도 남달랐다.

“여보, 당신은 내 팔 한쪽이 없는 것이 창피하지 않아요?”

어느 날 현민은 영숙한테 자신의 신체 부위에 대한 물음으로 아내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다.

“당신은 그런 생각 하지 말아요. 3년간 전쟁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만도 다행이 아니에요? 그리고 내가 당신을 선택한 것은 당신의 깨끗하고 때 묻지 않은 아름다운 마음 때문이었어요.”

사실 현민은 온 동네가 산으로 둘러싸이고 하늘만 빼꼼이 보이는 함경도 장진이라는 산골에서 티 하나 묻지 않고 순진하게 자랐다. 남을 해꼬지 할 줄도 모르고 거짓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동네 사람들과 모여 일하는데도 꾀를 부리지 않았다. 그랬던 청년이었기에 동네 사람들은 침이 마르도록 현민을 칭찬했다. 그래서 금순네 집에서도 현민을 사위로 삼는데 아무런 불평이 없었다.

“그깟 팔 한쪽 보다 당신 마음이 더 중요하니까요.”

영숙은 현민을 위해 구멍가게 물건을 정리해 놓고 출근을 하곤 했다. 현민도 영숙이 출근하고 나면 바로 장사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등교하는 시간이면 현민도 무척 바빴다. 학교 앞 구멍가게라는 것이 그러하듯 아침시간 아이들이 한차례 쓸고 지나간 뒤에는 좀 한가했다. 만화방은 오후에 붐볐다. 그래서 하루 중 중간쯤이 제일 한가했다. 밖을 내다보니 비가 오려는지 날이 꾸물꾸물했다. 몰려오는 먹구름을 보고 있자니 흥남부두에서 금순이와 헤어지던 날과 비슷했다.

‘나를 잊고 잘 살고 있겠지?’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금순이 무척 보고 싶어졌다. 그러다가도 현민은 이내 도리질을 쳤다. 어느새 비가 쏟아졌다. 현민은 마음이 울적했다. 금순이 영도다리에서 보름날마다 기다리는 건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자 갑자기 현민의 잘려진 팔 끝이 가렵기 시작했다. 가끔씩 깊은 생각을 하면 으레 있는 증상이었다.

‘괜히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말자. 나에게는 팔 한쪽이 없는 장애자의 삶이 있고, 금순에게는 그의 삶이 있는 것이 아니던가.’

현민은 금순이 생각날 때마다 결론은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걸로 끝을 맺었다. 그래야 마음이 편했다.

Ⅵ. 자갈치 시장

세월은 덧없이 흘러갔다. 민수도 어느덧 중학생이 되었다. 공부도 무척 잘해서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 하루에 두 번씩 들어 올리던 영도다리도 언젠가 부터는 힘이 부쳤는지 붙박이로 처박혀 일어나지 못했다. 새벽부터 포항 아지매가 찾아왔다. 포항 아지매는 몇 집 건너에서 건어물 장사를 하는 금순 또래의 발 넓은 친구였다.

“자갈치 시장에 가게가 하나 났다던데 장진 아지매 돈 많으니 한 번 잡아보지.”

금순의 돼지국밥 가게에 들렀던 포항 아지매가 던진 한마디에 금순은 하루 종일 심란했다. 그동안 풀빵 장사를 하면서 안 쓰고 아끼며 돈을 모아 간신히 돼지국밥 집을 마련해 나름대로 돈을 벌었다. 남들이 생각하면 그깟 얼마 되겠느냐고 생각하겠지만 맨주먹으로 부산바닥을 헤맬 때에 비하면 엄청난 부자인 것이다. 때론 일수도 붓고 남에게 돈을 빌려줘 이자를 받으며 돈을 늘렸다. 그랬기에 주변 사람들은 금순을 억척스런 장진 아지매라 불렀다. 그들은 장진이 어디에 붙어있는지 알지도 못하지만 금순이 장진에서 왔다하니 그리 불렀다. 자갈치 시장 안에서 장사를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반면 가게를 사려면 돈이 엄청 든다는 것도 금순은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그곳에서 장사를 하려면 두 부부가 나서서 몸을 바짝 붙여 일을 해도 버거운데 금순 자신은 혼자가 아니던가? 가게에 대한 욕심은 있었고, 여건은 맞지 않아, 포항 아지매 말을 금순은 이내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현민이 생각났다. 한 달 동안 현민을 잊고 악착같이 일하다가 보름이 돌아와야만 겨우 하루 가게 문을 여는 둥 닫는 둥 하고 영도다리를 서성이는 것이 낙이라면 낙이었다. 금순은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돈을 좀 변통해서라도 자갈치시장 안의 가게를 잡을까?’

그러다가도 금순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돈은 어떻게 해결이 되겠지만 일을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사람을 두고 장사를 한다면…….’

금순은 머릿속으로 돈의 들고 나감을 계산해보고 있었다.

저녁때가 되어 금순은 포항 아지매와 마주보고 앉았다.

“사람을 두고 하면 되잖아. 성실하고 늙수그레한 남자를 두면 돈도 많이 안 들어. 빨리 결정해라.”

이렇게 시작된 자갈치 시장에서의 장사는 금순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자갈치시장의 아지매들은 한마디로 여전사와 같았다. 새벽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일해도 지치지 않았다. 무거운 물건을 드는데도 남자 못지않았고 물건의 흥정에도 속에 우그려 넣고 우물거리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과의 다툼에도 전혀 물러섬이 없는 억척스런 사람들이었다. 그런 억척만이 자신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금순 역시 촌에서 자라 막일을 해본 경험이 있어 체력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억척스러움도 부산에서 굴렀기에 누구 못지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 갓 스물에 장진을 떠나 흥남을 거쳐 온갖 풍파를 온 몸으로 겪은 사람이 바로 금순이 아니었던가.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의 곁에 현민과 같은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자갈치 시장에서의 억척스럽고 고된 삶은 금순에게 돈을 벌게 해주었는가 하면 외로움도 잊게도 해 주었다. 금순이 이처럼 열심히 돈을 벌어도 그의 주위에는 돈을 쓸 사람이 없었다. 아들 민수가 있긴 해도 공부를 잘해 장학금으로 학교를 그냥 다니다시피 했다. 그러니 금순의 돈은 은행이나 사채로 차곡차곡 쌓일 뿐이었다. 번듯한 집도 마련했다.

자갈치 시장에서의 수십 년 생활도 하루아침에 지나 듯 흘러갔다. 그래도 금순은 보름날은 잊지 않았다. 그 날만 되면 장사는 거의 직원에 맡겨두고 영도다리를 배회했다. 처음 부산에 왔을 때 오포가 울리면 영도다리가 들리던 모습을 이제는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영도다리는 금순에게 지울 수 없는 친숙함 그 자체였다. 멀리서 다리만 쳐다봐도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다리에 서 있으면 현민이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허상도 가끔씩 경험한 곳이 바로 영도다리였다.

“장진 아지매 재혼이라도 해야지.”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수 십 년간 수도 없이 들어온 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금순에게 재혼을 권했고 옆에서 얼쩡거리는 사내도 있었다. 그러나 금순은 현민 말고는 다른 남자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남편은 이미 다른 여자와 살고 있을 테니, 그만 잊고 재혼을 해라.”

해가 바뀔 때마다 주위 사람들의 채근에 금순은 ‘더 기다려 봐야지’ ‘다 늙어가지고 무슨 재혼을’ 이라는 말로 자신을 위로하며 마무리를 짓곤 했다.

세월은 물 흐르듯 한다고 했던가. 아니면 쏜 화살과 같다고 했던가. 어느덧 금순의 나이 환갑을 넘어 칠십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들 민수도 의과대학을 나와 서울에서 유명대학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다. 며느리 역시 같은 의사로 아들과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런 아들 부부는 금순을 볼 때마다 성화를 부렸다.

“어머니, 이제는 고생 좀 그만 하시고 제 집에 오셔서 편하게 사세요.”

그러나 금순은 부산을 떠날 수 없었다. 아니 영도다리를 떠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료하게 놀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배운 것이 자갈치시장 일이 아니던가. 그래서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도 선 듯 애들 말을 따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일이 힘에 부쳤다. 그래서 가게를 남의 손에 맡겨놓는 일이 잦아졌다. 그 뿐이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현민의 모습도 머릿속에 가물거릴 뿐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보름날이면 영도다리에 나가 서성이던 것도 시들해졌다. 가끔씩 영도다리 밑 점쟁이 집에 들러 사주도 봤고, 손바닥도 내밀어 봤다.

“아직 안 죽었어. 언젠가는 만날 거야.”

이제는 그런 말도 그냥 흘러 들을 뿐이었다.

“영도다리를 다시 놓는다고 하던데…….”

영도다리를 도개식으로 다시 세운다는 소문이 자갈치 시장에 쫙 퍼졌다. 금순은 자신의 청춘과 함께 영도다리도 늙었다고 생각하니 허망함이 밀려왔다. 현민을 만나기 위해 다리 난간을 잡고 눈물을 흘린 것이 몇 해였으며 몇 번을 오갔던 다리였던가. 늙어 힘 빠진 다리를 허물고 다시 짓는다고 생각하니 금순은 마치 자신의 처지와 같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 늙은 물건은 버리고 늙은 사람은 죽어야지. 그래야 새로운 것이 대우 받으며 발전하지 않겠나?”

금순은 평생을 자신과 함께한 영도다리가 허물리고 새로운 다리가 생긴다는 말에 허무감이 들었다. 금순은 그제야 자신이 늙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가게에도 꼭 있어야 할 시간에만 들러 여러 가지 두량만 대놓고 집에서 쉴 때가 많았다.

Ⅶ. 마지막 여행

현민은 아내와 함께 서울의 변두리에 고기 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현민이 문방구와 만화방을 해서 번 돈과 아내의 월급을 합해 알뜰히 저축해서 목돈을 마련했다. 그리고 땅값이 싼 변두리 경치 좋은 곳에 터를 마련하고 집을 지었다. 그리고 요즘 흔히 말하는 가든이라는 상호를 달았다. 가든은 두 부부가 알뜰하게 운영했기에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현민과 영숙 두 부부의 사랑과 금실이 진했음에도 젊어서부터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영숙은 병원에서 근무를 했기에 검사도 손쉬웠고 문제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도 금세 알 수 있었다.

“당신, 어디 가서 여자 하나 친해 봐요. 애를 낳으면 데려다 키우게.”

영숙은 자신의 신체적 결함이 안타까워 현민을 설득해 봤지만 막무가내였다.

“나를 살려준 당신에게 못할 짓이니 앞으로는 절대 그런 말 하지 마시오.”

젊어서는 그런 일로 옥신각신했지만 이제는 그런 다툼도 시들해졌다. 그들의 나이 환갑을 넘어 칠십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도 이제는 나이가 들어 식당을 그만 접고 편하게 살고 싶었지만 너무 무료할 것 같아 사람을 두고 둘이서 오고가며 감독만 하고 있었다. 자식이 없는 것만 빼고는 그들의 행복을 막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행복은 그를 시기하는 악마들의 질투에서부터 무너진다고 했던가.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하면 괜찮다고 하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얼마 전 아내의 혈색이 좋지 않아 종합검진을 한 결과 간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았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으나 현민은 아내를 걱정해 내색하지 않았다. 아내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 그녀는 더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그래서 괜찮다고 격려하며 그녀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식당에도 자주자주 나가 봐야 하는데……. 남에게만 맡겨 놓으면 꼴이 아닐 텐데…….”

“걱정 마시오. 내가 날마다 나가서 돌보고 있잖아요.”

사실 식당이라야 현민의 집과 이웃하여 있는 건물에 있었다. 그러니 잠깐씩 오고가도 물건과 손님이 들고 나는 것을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아내의 병이었다. 의사선생님이 현민만 따로 불러 수술을 해도 살기 어려우니 준비를 하라는 말을 해 주었지만 현민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반면 아내는 수술을 하면 살 수 있겠지 하는 희망과 절망을 함께 갖고 있었다. 현민은 그녀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하루정도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수술할 사람이 밀려있어 틈을 낼 수 없어 다녀온 후 입원을 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젊어서는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아등바등 살았다. 일가붙이 하나 없는 타향에서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식당을 하면서 좀 살만 했는데 그 때는 이미 나이가 칠십을 넘고 있었다. 그러니 단 둘이 여행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오직 서울에서만 평생을 산 것이었다.

“부산으로 가면 어떻겠소?”

현민이 아내의 생각을 물었다.

“당신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좋아요.”

현민은 한쪽 팔로도 운전을 할 수 있었지만 자동차는 두고 기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난생 처음 아내와 여행을 떠나는 현민은 무척 설레었다. 목적지를 부산으로 잡은 것도 설렘을 더하게 만들었다. 나름 한 번은 영도다리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현민은 자신이 금순과의 약속을 어겼다는 죄책감에 부산의 영도다리는 영원히 보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아내의 병이 깊어지며 그 생각을 바꿨다.

‘금순은 아마 죽었겠지. 살았어도 이미 남의 여자가 되어 있을 텐데.’

기차에 몸을 실은 현민은 잠깐 동안 아픈 아내를 잊고 있었다. 부산의 영도다리와 금순의 모습이 가까이 다가오는 듯 했다. 자신이 팔 한 짝을 잃지만 않았더라도 그 때 바로 부산으로 달려갔을 텐데……. 옛날 자신을 흥남부두에서 간첩이라며 잡았던 미군이 원망스러웠다. 그렇다고 지나온 세월을 탓할 수도 없었다. 금순이 행복하게 살아주었으면 하는 바람만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살아왔다.

“여보, 당신은 회를 좋아하니 부산에 내리면 자갈치시장에 가서 술도 한 잔 하시지요. 다녀온 사람들이 그러는데 생선이 아주 싱싱하고 맛이 있다 그러대요.”

몸이 아픈 아내는 자신보다 현민이 좋아하는 음식을 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도 자신의 간암 수술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이번 여행이 둘만의 마지막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그래요. 술도 한 잔 하고 영도다리도 건너보고…….”

현민은 영도다리를 건너보자는 말을 자갈치 시장에 끼워 넣었다. 금순과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어도 꼭 한 번은 보고 싶었고, 건너보고 싶었던 다리였다.

“당신 그 노래 좋아하잖아요.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

그랬다. 그순이와 헤어진 이후 현민은 유독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현인의 노래를 잘 불렀다. 마음이 울적하고 고향생각이 날 때마다 흥얼거리던 것이 바로 그 노래였다. 노랫말속의 주인공도 금순이였고 자신과 혼약을 맺었던 그녀도 금순이였다. 또 둘이 헤어지면서 만나자고 약속한 곳도 영도다리였다. 노랫말과 자신의 처지가 똑같아 젊어서는 가슴속 멍울을 삭이기 위해 자주 불렀던 것이다. 차창가로 지나가는 풍경은 지난 세월보다 더 빠르게 지나갔다.

자갈치시장 회집에 마주앉은 현민과 영숙은 주변의 생동적인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상인들과 조금이라도 싼 회집에 들려는 관광객이 뒤섞여 말 그대로 도떼기시장 이었다. 정말 역동적인 모습이었다. 현민도 고향인 장진에서 이처럼 역동적인 삶을 살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한쪽 팔을 잃고는 의욕도 낭만도 모두 자신의 팔 한쪽과 같이 떠나보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영숙이 그 팔 한쪽을 대신해 주었기에 오늘이 있었던 것이었다.

“술 한 잔 하세요.”

영숙은 현민에게 두 손으로 공손하게 술을 따랐다.

“왜 이리 격식을 차리는 게요?”

“언제 죽을지 모르니 마지막으로 예의를 갖춰보려고요.”

“원 별 소리를 다하고 있네, 당신은 절대 죽지 않아요. 내가 있는데…….”

갑자기 울컥한 마음에 현민은 소주 한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자 안주를 상추에 싸서 기다리던 영숙이 현민의 입속에 넣어주었다. 어느새 현민의 눈에 눈물이 촉촉했다.

Ⅷ. 해후

아침결에 시장에 나가 물건을 떼어 점원에게 이것저것을 지시해 놓고 집으로 들어왔던 금순은 몸이 뻐근해 낮잠을 잤다. 얼마를 잤는지 모른다. 눈을 뜬 금순은 지금 시각이 아침인지 저녁인지 통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멍하기만 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시계를 보니 점심도 굶고 잠을 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난 금순은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가게로 나갔다. 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고함소리가 들리며 시끌벅적했다. 손님을 부르는 소리, 물건 값을 흥정하는 소리, 자신의 가게를 선전하는 소리, 귓전이 따가웠다. 평생 듣고 살아온 소리이건만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금순은 가게에 들어오자 홀을 먼저 살폈다. 손님은 남녀 단 둘 뿐이었다. 생선을 다루는 주방장도 홀을 담당하는 아주머니도 그냥 멍하니 앉아있었다.

“아니, 왜 이렇게 손님이 없어?”

금순이 짜증 섞인 소리로 나무라듯 말하자 둘이 동시에 대답했다.

“글쎄 오늘은 참 이상하내요. 다른 집도 마찬가지예요.”

금순은 고개를 빙 돌려가며 다른 집도 그런지 살폈다. 역시 다른 집도 손님은 없고 주인들의 떠드는 소리만 들렸다. 순간 금순은 생각했다.

‘이제 장사를 접어야 할 때가 온 것인가?’

혼란한 마음에 홀에 앉아있는 두 사람에 눈을 돌렸다. 이런 때 지신의 가게를 찾아준 것이 내심 고마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앉아있는 사람의 옆모습이 눈에 익었다. 비록 안경을 썼지만 예전의 현민과 그 생김이 비슷했다.

‘옆모습이 저리 닮았다니 참 별 일도 다 있구나.’

금순이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돈을 지불하러 카운터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같이 온 여자도 남자 뒤를 따랐다. 남자의 얼굴 모습이 확실하게 보였다. 순간 금순은 오금이 저리고 심장이 멎는 듯 했다. 분명 현민이었다. 금순은 이런 자리에서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할지 몰라 엉거주춤하는 사이 남자가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행동이 부자연스러웠다. 왼쪽 팔이 없는 것 같았다. 긴 점퍼를 입었지만 왼쪽 점퍼의 팔이 호주머니에 그냥 끼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남자가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김군, 여기 얼마야?”

금순의 목소리가 떨렸다. 김군이 달려와 계산을 했다. 금순은 다시 한 번 얼굴을 확인하려고 고개를 들어 보는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현민의 두 눈이 갑자기 커졌다. 금순의 눈 역시 깜박이지도 않았다. 현민의 눈 속에 말이 담겨져 있었다.

‘금순이, 살아있었구나.’

찰나의 순간이었다.

“여보, 어서가요.”

앞서 나가던 여자가 현민을 향해 여보라고 부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현민은 머뭇머뭇하더니 카드를 받아들고 그 여자 뒤를 따랐다. 금순은 혼이 나간 듯 현민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한참을 서 있었다. 여자는 현민의 오른쪽에 서서 팔짱을 끼고 걸어가고 있었다.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린 금순은 아들 민수의 얼굴이 그려졌다.

“엄마, 우리 아버지는 어디 계셔요?”

민수의 물음에 어릴 때는 아버지가 전쟁 통에 돌아가셨다고 대답을 했다. 그 후 민수가 커 철이 들었을 때는 전쟁 통에 헤어져 만나지 못했다고 솔직히 대답을 했었다. 금순의 생활이 안정되었을 때는 광고를 내거나 찾아 헤매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만약 결혼해서 행복하게 산다면…….’

금순은 현민을 찾는 자신의 꼴이 우습기도 할 것 같았고 남의 가정에 돌을 던지는 것 같아 찾는 걸 포기했다. 다만 현민 자신이 영도다리로 스스로 찾아 올 날만 기다린 것이었다. 그랬으니 어찌 아들 민수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았겠는가. 얼마 만에 정신을 차렸는지 모른다. 머릿속에 만감이 교차하며 현민의 옛 모습과 지금 보았던 모습이 번갈아 지나갔다.

Ⅸ. 죽음

단 하루 부산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영숙은 수술을 위해 대학병원에 입원을 했다. 여러 가지 검사를 끝낸 의사는 현민을 불렀다.

“지금 상태로는 수술을 할 수 없습니다. 그냥 퇴원을 하시죠.”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아니, 수술을 하면 어느 얼마정도는 살 수 있다고……. 이제 와서 무슨 말씀입니까?”

현민은 말을 잇지도 못하고 의사를 붙잡고 애원하고 있었다.

“암의 전이가 너무 빨라요. 폐에도 위에도……. 수술을 해도, 그냥 두어도, 똑같아요. 괜히 환자분이 고생만…….”

현민은 의사에게 매달리기도 하고 사정도 했지만 뜻을 이룰 수 없었다. 뒤돌아가는 의사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언젠가 아내가 한 말이 생각났다.

“저런 친절하고 상냥한 의사가 우리 아들이었으면 좋겠다.”

“…….”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저런 아들 하나 있었으면 좋겠죠?”

현민 역시 살아오면서 영특한 아이를 보면, 모양 번듯한 젊은이를 보면, 그런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아내의 담당 의사 역시 너무 잘 생겼고 듬직한데다 상냥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나름 현민도 탐이 났다. 그러나 애를 낳지 못했던 아내를 생각해 그녀가 하는 말을 웃음으로 받아 넘긴 것이 얼마 전의 일이었다. 그러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의사가 야속하기만 했다. 환자에게 고통을 주기보다는 그냥 편하게 보내주자고 했다. 화가 나서 의사에게 욕이라도 해주고 싶었으나 아내 때문에 참았다. 이제는 수술도 할 수 없다니 병원에 있는 것도 무의미했다. 그냥 죽는 날만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의사의 권고로 현민은 어쩔 수없이 영숙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영숙도 이제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다.

“당신, 나 죽으면 어디서 참한 여자 하나 얻어서 같이 살아요.”

영숙이 늘 하던 말을 어제도, 오늘도, 되풀이하고 있었다. 현민은 말없이 그녀의 팔과 다리만 주무를 뿐 대답이 없었다.

“대답해 봐요.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지요.”

아내는 숨을 헐떡이며 현민을 재촉했다. 현민은 그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알았어요. 내 그리 할게요. 걱정 말아요.”

현민의 대답을 듣고서야 영숙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얼마 후 조용히 눈을 감았다. 현민의 나이 일흔을 넘겼음에도 그 울음소리는 아이들이 우는 소리와 똑같았다. 이 세상에서 현민이 오직 믿고 의지하며 살았던 단 한 사람이 다시는 오지 못할 곳으로 떠났다. 이제 현민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서러움이 복받쳐 울고, 울어도 눈물은 계속 쏟아졌다. 장진의 산골짝에는 선산이 있어 뫼 자리를 쓸 곳이 남고도 처졌지만 혈혈단신 남으로 내려온 현민에게는 영숙을 묻어줄 변변한 땅 한 조각이 없었다. 하는 수없이 공원묘지를 사 영숙의 유택을 마련했다. 영숙의 운명 역시 현민 만큼이나 기구했다. 당시에는 그리 흔치않던 간호원 자격증을 가졌다면 나름대로 좋은 혼처를 만나 행복을 누렸을 것이다. 그런데 우연히 현민을 간호하다 정이 들어 박복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더구나 여자로써 자식을 낳고 키워보지도 못하고 마지막 주검 앞에 자식들도 없이 달랑 팔 병신인 남편 혼자만 애달파하고 있으니 말이다.

현민은 몇 날 며칠 동안 밖에도 나오지 않고 방안에 웅크리고 있었다. 식당의 팔자도 부동산에 전화로만 연락을 해 두었다. 세수도 않고 수염도 깍지 않았다. 배도 고프지 않았다. 배고픔을 참기 어려우면 라면으로 밥을 대신했다.

Ⅹ. 인생정리

우연히 현민을 마주했던 금순은 천만 가지 생각이 교차해 지나갔다. 살아있으면서 왜 영도다리에 나타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제일 앞에 자리를 잡았다. 또 팔 한쪽은 어찌하여 잃게 되었나 하는 생각이 뒤를 이었다. 그러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여러 의문과,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별별 생각이 다 아른거렸다. 그 날 가게에서 언 듯 본 부인의 행동으로 보아 현민이 불행하게 살지는 않은 듯 보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금순 자신이 현민을 원망하기는커녕 그가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안심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팔 하나 없는 삶을 살았을 그가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영도다리에 나가 하루 종일 현민을 기다리다 지친 몸을 끌고 집으로 돌아오던 젊은 시절……. 그리도 야속하던 그 남자가 결혼을 해 앞에 나타났는데도 어쩐 일인지 미운 감정이 생겨나지 않았다. 현민의 없는 팔을 보고 쌓였던 앙금이 녹아 흘러내린 것 이었을까? 문득 금순의 눈이 달력에 머물렀다. 보름은 아직도 멀었다. 금순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충 얼굴을 고치고 가게로 나갔다. 여전히 손님은 많지 않았다. 일을 거들어주는 주방의 김군과 심부름하는 아주머니는 손님이 없는 것이 자신들의 죄인 양 무척 미안해했다.

‘이제 가게를 정리하자.’

금순은 결심을 굳히고 가게를 나와 멀리 영도다리를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발걸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빨라졌다. 영도다리 중간에 이르자 겨울의 찬바람이 귀때기를 때렸다. 다리 끝 노래비에서 현인의 금순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이 노래비를 둘러싸고 있었다. 흥남부두라는 노랫말을 듣는 순간 목에서 큰 덩어리 하나가 올라왔다. 금순이라는 가사에서는 부모님 얼굴이 그려졌다. 뒤이어 엊그제 보았던 현민의 얼굴이 떠오르며 그의 없는 팔을 싸고 있는 잠바가 눈에 아른거렸다.

‘팔을 잃고 나서 얼마나 어려웠을까.’

금순은 분명 전쟁터에서 현민이 팔을 잃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전쟁이 현민의 팔은 물론 금순의 청춘을 앗아간 것이었다. 그 전쟁의 상처로 괴로움을 겪은 사람이 현민과 자신뿐만이 아니란 것을 생각할 때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쟁이란 자신과 같은 기다림으로 일생을 보내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현민과 같은 사람도 생기는 것이다. 이처럼 전쟁의 후유증은 수십 년에 걸쳐 갚은 상처를 남기는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부동산에 들렀다.

“그래 얼마에 내 놓으시게요?”

얼마 전 다른 사람이 판 가게가 있어 금을 그에 얼추 맞추었다.

“좀 싸게 내 놓으셔야 빨리 팔리는데…….”

“그리 급한 것은 아닙니다.”

금순은 자신이 처음 부산에 왔을 때 머물렀던 여인숙이 있던 자리로 가 보았다. 이미 도시계획에 의해 여인숙은 허물리고 고층 건물이 들어섰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꼭 그 자리에 가보고 싶었다. 처음 부산에 와 갈 곳이 없을 때 자신을 품어준 곳이 바로 여인숙이었다. 또 그곳에서 아들 민수를 낳았다. 금순은 그 집을 잊을 수 없었다. 그 후 주인집 아주머니가 어려울 때는 돕기도 했고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슬피 울기도 했다.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무작정 너무 오래 기다렸어.”

한숨을 크게 내쉰 금순이 여인숙이 있던 주변 이곳저곳을 둘러봤지만 예전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다. 마치 현민의 모습에서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듯이……. 그런 생각을 하니 자신의 모습도 무척 초라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다하는 결혼이라는 것도 해보지 못하고, 평생 돈과 민수만 바라보며 홀로 살아온 자신을 남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함경도 장진이라는 촌구석에서 부산의 영도다리만을 향해 내려왔던 풋풋했던 시절. 가만히 생각하니 그 시절의 사진을 한 장도 남기지 못했다. 금순은 그런 자신의 주변머리를 탓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방문을 여니 냉기가 밀려와 얼굴을 때렸다. 그런 냉랭한 방안 공기가 쓸쓸함을 더했다. 보일러를 켜고 자리에 누우니 지나간 세월의 활동사진은 아직도 멈추지 않고 여전히 머릿속에서 돌고 있었다.

?. 결심

아내를 떠나보내고 몇 날을 꼼짝 않던 현민이 일어난 것은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기 때문이었다. 현민은 외출을 하기 위해 얼굴의 수염을 깎았다. 면도기에 묻어나는 하얀 수염이 지난 세월을 말해 주는 듯 했다. 거울을 보니 하얀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다. 영숙이 있었다면 가르마를 타 깔끔하게 빗겨주었을 텐데 혼자서 머리를 빗자니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대충 옷을 걸치고 식당으로 나갔다. 주방장과 카운터를 보는 이양이 다가와 인사를 했다.

“장사는 형편없었지?”

“그런대로 괜찮았어요.”

주방장은 대답을 하며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 듯 현민의 눈치를 살폈다.

“사장님 식당 내놓으셨어요?”

“그래, 혼자서 해낼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동안 수고들 했어.”

현민은 부동산에 들러 도장을 찍었다. 식당을 팔고나니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다. 부동산을 나온 현민은 아내가 있는 공원묘지를 향해 택시를 탔다. 뫼를 쓴지 얼마 되지 않아 황토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여보, 오늘 식당을 팔았어요. 당신도 없이 나 혼자 꾸려나갈 수 없을 것 같아서요.”

현민은 맨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지난 세월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그 기억 속에는 자신과 영숙이 둘만의 모습이 아닌 금순의 모습도 함께 보였다. 현민은 고개를 흔들며 금순을 떨쳐내려 해도 더 바짝 다가왔다. 현민은 자신의 삶속에 금순을 지우기란 결코 쉽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현민은 자리에 엎드렸다.

“여보, 내가 지은 죄가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당신한테 지은 죄요. 또 하나는 당신도 알지 못하는 어떤 여자한테 지은 죄랍니다. 당신한테는 내 과거를 털어놓지 못한 것이 죄요. 그리고 다른 여자한테는 약속을 어긴 것이 죄랍니다. 이를 빨리 털어내야 내가 이승에서 마음 편히 살다 갈 것 같아요.”

현민은 아내의 묘소 앞에 한참동안 무릎을 꿇고 나름대로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내 다녀오리다.”

집으로 돌아온 현민은 달력에 손을 짚어가며 음력의 작은 글씨를 찾았다. 달이 환한 보름날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보름이 되려면 무려 닷새나 기다려야 했다. 내일 당장 금순의 식당으로 찾아가고 싶었으나 그녀와 만나기로 약속한 곳이 영도다리였기에 닷새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다가도 혹시라도 금순이 나오지 않으면 어찌할까 하는 마음에 불안하기도 했다. 막상 만나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기다리자니 일각이 여삼추와 같았다.

현민은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 수염도 밀었다. 그리고 늘 입던 잠바도 벗고 신사복으로 말끔히 차려 입었다. 넥타이도 매고 싶었지만 한쪽 손으로 잘 되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리고 난생 두 번째로 기차를 타고 서울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서너 시간 후 현민은 영도다리의 난간에 기대 지나는 사람을 헤아리고 있었다. 그러다 지루하면 현인의 노래비 앞에서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를 들으며 시간을 죽이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 재회

가게에서 우연히 현민을 본 후 세 번째 맞는 보름이었다. 지금까지 금순의 일생에서 보름날마다 영도다리를 잊거나 놓친 적이 없었다. 가게에서 현민을 만난 후 지나간 두 번의 보름날에도 금순은 영도다리에서 서성거렸다. 아내가 있는 그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금순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보름만 되면 금순은 저도 모르게 영도다리를 향해 걷고 있는 것이었다. 이처럼 영도다리는 언제부터인가 현민과의 만남보다도 자신의 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전에는 점쟁이가 살아있다 하기에 행여나 하는 마음에 다리를 찾았는데……. 이제는 살아있는 것을 알고도 볼 수 없으니…….

현민을 만난 후 세 번째 보름이 돌아왔다. 미장원을 찾은 금순은 하얀 머리에 염색을 할까 하다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몸과 마음은 늙었는데 머리만 검게 만들기가 싫었다. 그래도 옷은 깔끔하게 입었다. 그게 혹시나 만나게 되는 현민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여인숙에 머물 때나, 풀빵 장사, 돼지국밥 장사를 할 때나, 자갈치 시장에서 한참 억척스럽게 일할 때는 일 바지에 전대를 맨 채 달려가기도 했는데……. 늙을수록 잘 가꾸어야 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생각났기에 좀 모양을 냈다. 영도다리 초입에 들어선 금순은 예전처럼 가슴이 두근거리지도 않고 떨리지도 않았다. 늘 걷던 다리이기에, 항상 왔던 곳이기에, 산책이라도 하는 듯했다. 언젠가부터 눈으로는 가까이서 멀리, 멀리서 가까이로 한 번에 사람을 훑어보는 기술이 생겨났다. 그러다가 현민과 모습이 같다싶으면 다시 한 번 자세히 보곤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다리 중간을 지나면서부터 금순은 어떤 한 곳을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안경을 치키며 다시 한 번 자세히 보았다. 분명 현민이 보였다. 그가 현인의 노래비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몇몇이 둘러서서 노래를 감상하는 듯 서 있었다. 예전 같으면 가슴이 콩콩 뛰었겠지만 어쩐지 덤덤했다. 금순이 바짝 다가가도 그는 노래만 들을 뿐 돌아보지 않았다. 금순은 가만히 그의 옆에 섰다. 그때서야 현민은 옆에 사람이 와 서 있는 것을 알아챈 듯 고개를 돌렸다. 둘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순간 그는 눈만 크게 뜰 뿐 말이 없었다. 둘 다 놀라지도 않고 그냥 서로 바라보고 한참을 서 있을 뿐이었다. 둘의 행동으로 보면 몇 달, 아니 며칠 만에 만나는 그런 덤덤함이었다. 흥남부두에서 스무 살에 헤어졌으니 얼마만인지 계산도 되지 않았다. 이처럼 둘의 만남은 너무나 건조했다. 금순은 아무 말도 없이 돌아서 영도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현민도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한참을 걸어도 현민은 금순의 옆에 서지 않았다. 그냥 뒤만 따를 뿐이었다. 금순 역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걸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는지 모른다. 앞에 찻집이 보였다. 금순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현민도 뒤를 따랐다. 찻집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금순이 구석 자리를 골라 앉자 현민이 따라와 마주 앉았다.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주인이 물을 따르며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차를 시키라는 뜻이었다. 그 때 둘의 눈이 마주쳤다. 서로 무엇을 먹겠냐는 나름의 대화였다.

“인삼차 주세요.”

금순이 차를 시키자 현민도 주인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인삼차를 달라는 뜻이었다. 차가 배달된 후에도 둘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서로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부인도 없이 어떻게 혼자서…….”

먼저 입을 뗀 것은 금순이였다.

“…….”

현민은 아내 이야기가 나오자 일단 미안함에 금순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내가 죽었다고 해야 할지 어쩔지 대답을 망설이고 있었다. 또 침묵이 흘렀다.

“팔은 어쩌다가…….”

“그 때 흥남부두에서 미군한테 잡혀 간첩으로 몰리면서 남으로 오지 못했지. 그래서 강제로 인민군에 편입되어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자세히 말한다면 정말 기가 막힌 일이 아니던가. 어찌 그런 인생의 긴 이야기를 이런 자리에서 순간에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금순은 그 때 흥남에서 남으로 오지 못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현민의 어려움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금순은 고개만 끄덕였다. 현민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음을 알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남편은?”

이번에는 현민이 물었다.

“오래전에 죽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혼자 살아요.”

“애들은 다 여위었고?”

금순은 당신의 아들이 하나 있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꾹 참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네, 서울에서 살아요.”

여기까지 이야기하고는 한참동안 말이 또 끊어져 이어지질 않았다. 둘 다 식은 찻잔만 손으로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부산에 다녀간 후 아내가 세상을 떴어. 그 때 부산에 내려왔던 것도 더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한 번 여행이라도 하려고…….”

현민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안경을 벗고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

금순은 이런 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선 듯 생각나지 않았다.

“자식들이 서러웠겠네요.”

금순이 간신히 찾아낸 말이 자식이란 말이었다.

“애들은 없어. 아내가 애를 낳지를 못했지. 그래서 둘이서 의지하며 여태 살아왔다오.”

“…….”

금순은 이제 더 할 말이 생각나질 않았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당신은 이리도 박복하게 살았나하는 생각에 눈물이 날 것 같은 걸 간신히 참았다. 금순은 현민이 너무도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생은 기다림이었지만 혹시나 하는 희망은 있었다. 반면 현민의 삶은 말 그대로 굴곡이었다. 또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

“앞으로는 어떻게…….”

금순은 현민의 앞날이 걱정되었다.

“혼자서 살다가 힘이 없을 때면 양로원에 들어가야지. 다행히 아내가 열심히 벌어 남겨준 돈이 좀 있어요.”

끝까지 이어지는 대화가 아닌 단말로 이어진 대화였다. 감정도 실리지 않고 사무적인 대화였다. 그래도 둘은 서로 떨어져 살아온 수 십 년의 삶을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약속을 못 지켜서 정말 미안해요. 젊었을 때의 자존심에 당신에게 팔 없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소. 또 어쩌면 이런 모습이 당신에게 영원히 짐이 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오.”

“…….”

금순 역시 그랬으리라 예상은 했었지만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따지고 싶은 걸 꾹 참았다. 한쪽 팔을 잃은 현민의 처지를 생각하고서…….

“자 그만 일어납시다. 나도 서울에 올라가 정리할 일도 있고……. 당신이 살아 있는 모습도 보았고……. 내 변명도 했으니……. 무거운 짐을 벗은 것 같다오. 그리고 모두 내 책임이니 나를 욕하며 어려웠던 지난 세월일랑 잊구려.”

“당신 탓만은 아니오. 전쟁 탓이지요.”

“그리 생각해주니 고맙구려.”

둘은 나란히 걸었다. 조금 전 앞뒤로 떨어져 걷던 모습과는 달리 옆에서 서서 나란히 걸었다. 영도다리를 가로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그동안 쌓였던 앙금을 모두 털어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의 세월이 너무 길었기에 단 한 번에 삭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금순은 현민이 탄 택시가 부산역 방향으로 가는 것을 한참동안 지켜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방안에는 온기가 돌았다. 얼마 전부터 외출할 때도 보일러를 끄지 않았다. 텔레비전도 켜놓았다. 외출한 후 돌아와 문을 열면 냉기가 도는 것이 빈집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금순은 옷도 벗지 않고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다 보니 서글픈 마음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현민을 마주하고 앉았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막상 보내고 나니……. 영도다리를 걸으며 받아 저장해 둔 현민의 전화번호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갑자기 그가 한 말이 생각났다.

‘양쪽 집 어르신들은 다 돌아가셨겠지?’

금순은 그 때 그 말을 무심코 흘려들었지만 이렇게 혼자 앉아있자니 돌아가셨을 부모님 생각이 간절했다. 그렇다고 그리움과 미움을 가슴에 영원히 담아놓고 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 저 민수예요. 어디 편찮은 데는 없으시죠?”

“그래, 괜찮다. 그런데 어쩐 일이냐?”

“어쩐 일이긴요. 오늘이 전화 드리는 날 아니에요? 토요일이니까.”

그랬다. 아들이 토요일마다 정기적으로 전화를 하는데 요즘 금순의 마음이 들떠 요일이 가는 걸 잊고 있었다.

“내가 다음 주중에 서울에 갈 일이 있는데 아범이 점심 좀 사 주겠나? 병원 근처로 갈 테니.”

금순은 갑자기 아들이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종합병원의 유명 의사여서 짬을 내기가 무척 어려웠다. 단 한 번 흥남부두에서 현민과 정을 나눈 후 생긴 아들이었다. 그 아들의 아버지를 오늘 만난 것이다. 그래서 금순은 아들이 더 보고 싶었다. 그런가하면 현민에게 민수의 모습만이라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오시면 며칠 집에서 쉬시다 내려가시죠.”

금순은 부산의 일이 바빠 그럴 수 없다고 일갈하고 민수가 시간이 나는 날 잠심 약속을 했다. 막상 약속을 하고 나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현민과 민수 그리고 자신이 같이 만난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의 타래를 풀어야 할지 심장만 벌렁거렸다.

ⅩⅢ. 천륜

현민과 금순은 대학병원에서 가까운 양식집에 마주앉아 있었다. 여전히 말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점심에 초대한 금순이 말을 꺼냈다.

“일이 있어 서울에 다니러 왔다가 아들한테 전화를 했더니 우리 애가 점심을 사 준다기에 나오시라 했어요.”

“모자지간 오붓한 자리에 내가 같이 있어도 되는지…….”

현민은 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옛날 어려서 같은 동네에 살던 사람을 만났다고 말 해 두었어요.”

금순은 아들 민수에게 현민이 아버지라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그 충격이 클 것 같아 조심스러운 것이었다. 사실 아들 민수는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갑작스런 아버지의 등장은 나름 충격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점진적으로 민수 자신이 알아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충격을 줄이고 싶은 것이 금순의 생각이었다. 반대로 현민에게 지금 오고 있는 민수가 당신의 아들이라 말해 주고 싶었지만 그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현재 상태에서도 현민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데……. 그 때 민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머니, 집에서 며칠 놀다 가시라니까요.”

민수가 금순 옆에 앉으며 어리광을 부리듯 말했다.

“앞에 계신 어르신한테 인사부터 해야지.”

금순이 나무라듯 말하자 민수가 고개를 들어 꾸벅 인사를 하다가 깜작 놀라는 것이었다.

“아니, 선생님은 그때…….”

현민 역시 깜짝 놀랐다.

“의사 선생님은…….”

두 사람 사이에 잠깐의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한 사람은 수술을 해 달라고 매달렸던 환자의 가족이었고, 한 사람은 이를 거절한 의사였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금순은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해 눈만 휘둥그레졌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두 사람이 미리부터 아는 사이란 말인가’

세 사람 모두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 때 현민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 때 의사 선생님 말이 맞았어요. 퇴원하고 며칠 만에 떠났어요.”

“아! 네……. 그 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아닙니다. 어차피 갈 사람이었는데요, 뭐.”

민수는 금순에게 전후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그 때서야 금순은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 현민이 부산에 내려와서 처음 만났을 때 아내가 죽었다며 눈물을 훔치던 걸 기억했다. 금순은 세상은 참 넓고도 좁다는 것을 느꼈다. 이 넓은 세상에서 어쩌면 제 아비와 이렇게 인연이 닿을 수 있었는지…….

집에서 쉬었다 내려가시라는 민수의 부탁을 뿌리치고 금순은 부산으로 돌아왔다. 금순은 이제 모든 걸 밝히고 서로의 원망과 미움을 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현민의 어려웠던 세월을 이해하고 금순도 자신의 가슴에 박힌 멍울을 푸는 것이 민수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안타까운 일이 비단 자신들에게만 있었던 일은 아닐 것이라는데 생각이 이르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현민이나 자신이나 세상의 흐름에 떠밀려 다녔을 뿐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금순은 다시 한 번 현민의 전화번호를 열어보았다. 틀어 논 텔레비전 속에서는 여전히 남북 간 이산가족 상봉문제로 밀고 당기는 줄다리가가 계속된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래 다음 달 보름에는 현민을 집으로 초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밥도 차려주고 잠도 같이…….’

거기까지 생각하자 금순은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늙은이들이 무슨 잠을…….’

현민에게 전화 연락을 해 놓고 기다리는 보름은 영영 올 것 같지 않았다. 예전에도 기다림이 이렇게 지루했더라면 이 나이까지 살지 못했을 것 같았다. 세월이 쏜살같다더니만 그렇지만은 않은가보다. 보름을 하루 남기고 도우미 아주머니를 불러 집안을 말끔히 청소했다. 집에서 해운대까지는 무척 멀었다. 그래도 온천물이 피부에 좋다기에 멀어도 오늘은 마다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백화점에서 옷도 한 벌 샀다. 보름날 아침 일찍 미장원을 찾아 머리에 염색도 하고 파마도 했다.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다잡느라 수도 없이 돌고 돌았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 영도다리로 나갔다. 현민 역시 깔끔했다. 넥타이도 매고 있었다.

“오시느라 어려웠지요.”

“아니오, 당신이 보름날 만나자고 하기에 옛날 장진에서 만나던 생각이 나서 몇 날 며칠 잠을 못 잤다오.”

스무 살일 때는 금순도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설레지 않는 것이 늙어서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둘은 영도다리를 건너면서 다정히 얘기를 나누었다. 영도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기 위해 택시를 탔다.

“두 분께서는 곱게 해로하셨네요.”

택시기사의 너스레에 현민과 금순은 이내 말을 멈추고 겸연쩍게 웃었다. 둘은 영도를 산책하며 그동안 잃었던 젊음도 찾아봤고, 지난 이야기로 웃기도 하고 때론 눈물도 흘렸다. 어색할지언정 손도 잡고 팔짱도 껴 봤다. 누가 보면 노부부가 오후 한 때를 즐기는 것으로 보았으리라, 영도를 돌아 나올 때는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보름달은 전보다 일찍 뜨는 듯했다. 어느새 둘은 영도다리 위에 서 있었다.

“옛날 장진에 뜬 달과 똑 같은데…….”

“서러우세요? 늙은 것이…….”

현민은 늙은 것이 서럽다기보다 곧게 왔어야 할 길을 전쟁이라는 높은 산을 돌아 이제야 만났음을 탓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그 길을 돌아오느라 입은 상처가 너무 깊기에 그를 탄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 자신들과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이 없기를 현민은 빌고 있었다. 금순 역시 마음이 착잡했다. 자신의 인생 모두를 이 영도다리와 같이했는데 이제 없어져 새롭게 태어난다니……. 이제 금순 자신도 영도다리처럼 낡고 때 묻은 지난 세월을 잊고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 같았다.

“영도다리를 다시 세운다면서요?”

“그런다고 하대요.”

현민 역시 정말 오래도록 기억했었고 와보고 싶었던 다리였다. 장진에 있을 때 말로만 듣고 영도다리에서 금순과 만나자고 했는데 60여 년이 지난 후에야 만났다. 그리고 만나자 마자 약속했던 다리는 없어지고 새로운 다리를 세운다니……. 현민은 마음이 심란했다. 자신들도 이제는 다리와 함께 사라져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자, 그만 집으로 가시죠. 내일은 아이들이 내려온다고 했으니 인사도 받으셔야 하고…….”

아직 현민에게도 민수에게도 사실을 말하지 않았지만 금순은 민수 내외와 손자들을 부산으로 부른 것이었다. 이제 모든 걸 밝히고 제 아비에게, 제 할아버지에게, 큰절이라도 올리게 하려고…….

영도다리를 걸으며 팔짱을 낀 두 노인의 모습을 보름달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