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다리에서 만나요

1. 기획의도

한국전쟁 당시 부산은 전국의 피란민들이 모여들어 들끓었다.

판자집 천지였고, 전쟁 통에 헤어진 가족들의 가슴 저린 사연들에 속절없는,

그야말로 곳곳이 전쟁고통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정을 나누고, 서로의 삶을 지켜주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전쟁이라는 사람이 일으킨 해악 속에서 결국 그것을 극복하고 모진 시대의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것 또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내듯이 말이다.

이 이야기는 ‘한국전쟁’이라는 시대의 비극으로 인해 전국의 피란민을 품에 안았던

부산의 이야기이자, 부모의 생사조차 모르는 소녀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았던

한 소년의 이야기이며, 그 둘의 풋풋한 정으로 엮어진 약속과 재회, 희망으로서의 영도다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2. 등장인물

영도다리 (19/80)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의 애환 등 부산의 굴곡진 근대사를

상징하는 다리. 47년 만에 도개기능을 회복했다.

감순동 (11/72) :부산 머스마. 전쟁으로 엄마를 잃은 수현을 좋아하게 되면서

그녀와 같이 아파하고 그녀의 엄마를 찾아주기 위해 애쓴다.

현수현 (11/72) :전쟁으로 엄마를 잃고 시장 통에 버려지다시피 살고 있다가

순동모의 도움으로 순동의 방에 살게 된다.

김 봉 (11) :수현을 보고 한 눈에 반해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게 되는

말썽꾼이자 순동의 단짝.

순동부 (40대), 순동모 (30대), 소녀(10), 덕이모(30대), 점쟁이, 중년여, 사내,

그 외...

3. 시놉시스

2013년 11월.

영도다리가 47년 만에 개통식을 갖던 날.

영도다리를 찾은 순동은 개통식 이후 영도다리 아래에서 길을 잃은 소녀를

만나게 되고, 한국전쟁 당시 만났던 한 소녀를 떠올리게 된다.

때는 1952년 부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온 순동은 자신의 방에 의문의

소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쟁 통에 부산으로 피란을 와 시장 쓰레기통 옆에 앉아 있는 것을 순동모가

보다 못해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순동은 그 아이에게 자신의 방을 빼앗긴 것이 억울해 부모에게 자신의 방을

돌려 달라 떼를 쓰지만, 수현의 모습을 보고는 그만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만다.

이후 알 수 없는 가슴 속 두근거림을 느끼게 되는 순동.

단짝인 봉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키자, 극구 아니라고 발뺌을 하게 되고,

오히려 수현에게 자신의 방을 빼앗겼다며 그 아이를 싫어한다고 맘에도 없는

얘기를 해버린다.

한편, 봉도 수현을 처음 보자마자 첫눈에 반하게 되는 얄궂은 일이 벌어진다.

이에 봉은 수현에게 점수를 딸 요량으로 순동에게 수현에게 빼앗긴 방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수현의 엄마를 찾아주는 것 뿐이라며, 자신들이 수현의 엄마를

찾아주자는 제의를 하게 된다.

순동은 수현이 엄마를 찾으면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에 그 제의를

거절하지만, 수현이 엄마 때문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 순동은 결국 그 제의를

수락하게 된다.

그렇게 순동과 봉의 ‘수현 엄마 찾기’가 시작되는데,

봉이 생각한 방법에 순동은 또 한 번 주저하게 된다.....

S#1. 영도다리 / 낮

다니는 차들이 한 대 없는 텅 빈 도로.

‘2013년 11월 27일’ 자막이 떠올랐다 사라지면서,

갑자기 터지는 축포.

동시에 사람들의 환호가 들려오고,

서서히 영도다리 상판이 들어 올려 진다.

그러면서 보여 지는 상판 가운데 커다랗게 걸려 있는 ‘영도대교’ 현수막.

그 아래 풍선으로 만들어진 ‘신개통!’ 이라는 글자가 흩어지며 하늘로

떠오른다. 영도다리 입구 앞에서 그 모습들을 지켜보고 있는 구름 인파.

순동(72), 그 틈에 섞여 감동스러운 듯 영도다리를 바라보고 있다.

S#2. 영도다리 밑 생선구이집 앞

순동, 간이 테이블에 앉아 있다.

주인이 노릇노릇 구워진 양미리와 막걸리를 내려놓고 간다.

막걸리를 따라 한 잔 마시고는 생선을 손으로 한 점 베어 먹는 순동.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를 한동안 바라보는데,

영도다리 밑 길에 혼자 쪼그려 앉아 있는 소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 소녀를 바라보다가 막걸리와 양미리를 먹는 순동.

CUT TO / 시간경과

주인에게 계산을 치르는 순동. 시계를 들여다보고는 돌아서 가려는데,

여전히 다리 밑 길에 소녀가 쪼그려 앉아 있는 게 보인다.

가만히 소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동.

S#3. 영도다리 밑 길

소녀, 쪼그려 앉아 자신의 발끝만 바라보고 있다.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순동. 약간의 간격을 둔 채 소녀 옆에 앉는다.

순동:(잠시 바다를 바라보다가 소녀 보며) 여 혼자 머하노?

소녀:(순동 보고)

순동:와? 길 이자뿟나?

소녀:(그저 멀뚱히 순동 본다)

순동:아니믄 누 기다리나?

소녀:... 할아버진 누구세요?

순동:내? 글쎄 머라캐야 하노... (한동안 가만히 소녀를 바라보다가)

참말로 마이 닮았네...

소녀:... ?

순동;... 그때 그 아도 니처럼 참 고왔제...

소녀:누가요?

순동:와? 궁금하나? ... 있다. 그른 아가. 니처럼 이쁘고 백설기맨키로 새하얗던

아가... 그땐 참 무더�뎬쨉�...

순동, 회상에 젖듯 영도다리를 바라본다.

화면 가득 잡히는 영도다리. (DIS)

S#4. 영도다리 밑 길

연습장에 그려지는 영도다리.

그 위로 ‘1952년 부산’ 자막 떴다 사라진다.

순동(11), 진지한 얼굴로 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때, 저만치 영도다리 위에서 누군가 치마를 뒤집어쓰고

바다로 뛰어 내린다.

풍덩! 소리에 놀라 다리 아래 바다를 바라보는 순동.

순동 옆으로 행인들 몇이 다가온다.

행인1:오늘은 와 안 떨어지나캤다. 살라꼬 도망왔드만 살기 힘들어가 죽고

있으니... 쯔쯧.

행인2:그래가 피난살이가 전쟁보다 힘들다는 말도 있다 안카나.

행인3:이거 무신 대책이라도 세워야카는 거 아이가? 무덤이 따로 엄따.

행인2:대책은 무신... 전쟁 끝나믄 다 해결된다.

순동, 연습장을 덮고 책보따리를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S#5. 광복로

“국회는 해산하라! 해산하라!” 정체불명의 사내들이 ‘국회 해산’

‘국회의원 소환’ 이라 써진 현수막을 들고는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다.

순동, 책보따리를 어깨에 두르고 그들을 지나쳐 빠르게 걸어간다.

S#6. 순동부의 가게(청과물) 안

순동부, 과일과 야채들을 살펴보며 장부에 적고 있다.

갑자기 문 앞에 불쑥 나타나는 순동.

순동:아부지, 엄니 있어예?

순동부:아이고, 깜짝이야. 임마야, 기척 쫌 하고 댕기라.

글고 너그매를 와 여 와서 찾노?

순동:집에 있어예, 없어예?

순동부:엄따. 니 싫어가 도망가뿟다.

순동:선생님이 거짓말 하면 잡혀간다�N어예.

순동부:아구야 무서버서 아부지도 도망가삐야겠네.

순동:그라믄 내 밥은 누가 차려주는데예?

순동부:이 노마야, 우리가 니 밥 차려주는 사람이가?

순동:그믄 먼데예?

순동부:절마가 진짜... (포기하고) 퍼뜩 집이 가라. 아부지 일해야 한다.

(돌아서려다) 아, 맞다. 글고...

하며 다시 문가를 돌아보는데, 이미 사라지고 없는 순동.

순동부:(한숨) 이래가 자식새끼 키어봤자 소용없는기라�N다...

그나저나 개안을라나 모르겠네...

순동부, 걱정스레 문가를 바라보다가 다시 장부를 본다.

S#7. 순동의 집 마당

벌컥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서는 순동.

순동:엄니예... (책 보따리를 마루에 집어던지고는) 엄니예.

순동, 대답이 없자 부엌으로 간다.

엄마는 없고 차려놓은 밥상만이 눈에 들어온다.

순동, 밥상을 들고 나와 마루에 걸터앉아 먹기 시작한다.

S#8. 이웃집 마당

순동모, 덕이모에게서 옷 한 벌을 건네받는다.

덕이모:울 덕이 입든 옷인데, 맞을라나 모르겠다.

순동모:(옷을 펼쳐보더니) 이 정도믄 맞겠네예. 고맙심더.

S#9. 순동의 집 마당

순동, 걸신이 들린 듯 우걱우걱 밥을 먹고 있다.

그러다 눈 앞 건넌방 문이 빼꼼히 열리는 것을 본다.

순간, 입 안 가득 음식을 머금고는 정지 상태로 방문을 바라보는 순동.

순동:(꿀꺽 음식을 삼키고는) 엄니라예?

그때, 발밑에서 여자아이 것으로 보이는 신발 하나를 발견하는 순동.

순동:(약간 겁먹은 눈으로 방문 바라보며) 누... 누군... 교?

순동부:(E) 누군지 내도 모른다.

S#10. 순동의 집 안방, 마루 / 저녁

순동부, 바닥에 앉아 장부를 정리하고 있다.

그 앞에 앉아 있는 순동.

순동:누군지도 모르는 아를 와 델꼬 온 겁니꺼?

순동부:(장부 보며) 너그매가 델꼬온기다.

순동:와예?

순동부:은제부터가 시장 갈 때마다 쓰레기통 옆에 쭈구리 앉아있는데, 자꾸 눈에

밟혀가 도저히 안 되겠다카더라. 니 엄니가 원래 정에 약한 여자 아이가.

순동:그라믄 거집니꺼?

순동부:거지라카지 마라. 피란길에 부모 잃은 전쟁고아다.

순동:슬마 여 같이 사는 건 아니지예?

순동부:내는 니 엄니 하자는대로 할끼다.

이때, 순동모가 밥상을 들고 마루로 올라선다.

순동모:식사 하세요.

순동:(마루로 나가며) 같이 살 겁니꺼?

순동모:먼 소리고?

순동부:(장부 덮고 마루로 나온다. 건넌방 가리키며) 저 아 말하는기다.

순동모:그럼 어쩌겠노. 아 부모 찾을 때까정 델꼬 있어야제.

순동:그르다 몬 찾으믄예?

생각을 해보지 않은 듯 순동모, 순동부를 한 번 쳐다본다.

순동부, 그저 밥을 먹는다.

순동모:다시 그 지저븐한 시장 통에 내몰 수는 없다 아이가.

(건넌방을 의식한 듯 큰 소리로) 글고 와 몬 찾노? 찾을 수 있다.

순동:그라믄 내 방 저 아가 쓰는 겁니꺼?

순동모:아 부모 찾을 때까정 그리 하자.

순동:안 됩니더. 지는 내 방 저 아한테 몬 줍니더.

순동부:밥 식는다. 얘긴 나중에 하고 밥 묵자. 저 아도 얼렁 델꼬 나와라.

배 마이 고플 낀데.

순동모, 자리에서 일어나 건넌방으로 간다. 순동, 따라간다.

순동:내 방 저 아한테 몬 줍니더.

순동모,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순동, 방문 앞에서 남의 방인 양 들어가지 못한다.

안에서 들려오는 순동모 목소리.

순동모:(E) 밥 묵자... (사이) 괘안타. 나와라... (사이) 개안테도...

순동모, 밖으로 나온다.

순동:(기다렸다는 듯) 엄니예, 내는 이방 저 아한테...

하는데, 순동모 뒤에서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내는 소녀, 수현(11).

순동, 뽀얗고 이쁘장한 수현의 모습에 일순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된다.

순동모, 수현을 데리고 밥상 앞으로 간다.

순동부:(수현 보며) 옷은 잘 맞나?

수현:(조금 경직된 표정)

순동부:겁낼 필요 엄따. 느그 집이다 생각하믄 된다. 여 앉아라.

수현, 밥상을 내려다보다 자리에 앉는다.

순동모:(수현 옆에 앉으려다가 돌아보며) 니 거서 머하노?

순동:(문 앞에서 여전히 얼음 자세로 멍-)

S#11. 순동의 집 안방 / 밤

엄마와 아빠 사이에 끼여 누워있는 순동.

잠이 오지 않는지 눈만 꿈뻑거리며 멍-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S#12. 임시 교사 전경 / 낮

산 중턱에 위치한 판자로 지어진 임시 교사.

S#13. 임시 교사 안

순동, 수업 중 꾸벅꾸벅 졸고 있다.

순동 옆에 앉은 봉. 발밑 바닥에서 지렁이 한 마리를 집더니

순동의 목덜미 안으로 떨어뜨린다.

잠시 뒤, 으악!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동.

일제히 순동에게로 향하는 아이들의 시선.

봉, 킥!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는다.

S#14. 산길

순동과 봉, 걸어 내려오고 있다. 길게 하품을 하는 순동.

봉:요즘 와 그래 만날 조노? 밤새 잠 안 자고 머하노?

순동:디비 잤다.

봉:잤다는 놈아가 와 죙일 졸고 있노?

순동:그를 일이 있다.

봉:먼 일?

순동:나중에 갈키주께.

봉:울아부지가 그랬다. 나중나중 하지 말라꼬. 짐 말해봐라. 먼데?

순동:(말할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벌레... 때매.

봉:벌레?

순동:방에 벌레가 들어와가 한 숨 몬 잤다 아이가.

봉:무신 벌렌데 밤새 잠을 다 몬 자노?

순동:내도 잘 모른다. 첨보는 거였다.

인서트 - 순동의 방에서 나오던 수현의 모습.

순동:백설기맨키로 허옇고 이상하게 생겼다 아이가.

봉:그런 벌레가 다 있나? 내도 함 보고 싶다.

인서트 - 수현의 뽀얀 얼굴.

순동:징그릅다. 안 보는 게 몸에 좋다.

봉:그 정도가?

순동:오늘은 그만 보제. 집에 일이 있어가...

봉:먼 일? 오늘 놀러가자 안캤나?

순동:엄니 심부름 가야한다. 미안타. 낼 보제.

순동, 먼저 뛰어간다. 의아한 듯 멀어지는 순동을 바라보는 봉.

S#15. 순동의 집 마당

순동모, 마루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다.

헉헉대며 마당으로 뛰어 들어오는 순동.

순동모:숨 넘어 가긋다. 천천히 댕기라.

순동:(헉헉)

순동모:먼 일이고? 니가 이래 일찍 다 들어오고.

순동, 대답 없이 건넌방을 확인해본다.

순동모:너무 싫어하지 마라. 마침 니랑 나이도 같고, 친하게 지내믄 좋지 않나.

순동:(짐짓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 마루에 털썩 걸터앉는다)

순동모:있는 동안만이라도 잘해줘라. 알았제?

순동:(벌떡 일어나 수돗가로 가 괜시리 손을 씻는다)

순동모:아 글고 오늘 아부지 늦는다 해가 밥 갖다 드리야 하니까

둘이서 밥 묵고 있어라.

순동:(헉) ... !

S#16. 순동의 집 마루 / 저녁

밥상 앞에 마주앉은 순동과 수현.

숟가락 소리만이 들려오는 가운데,

순동, 밥을 깨작거리며 연신 수현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말을 붙여보고 싶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괜시리 목만 탄다.

주전자를 들어 주둥이에 입을 대고 벌컥벌컥 들이키는 순동.

CUT TO / 시간경과

수현이 밥을 거의 다 먹어가고 있다.

하지만 순동의 밥은 절반이나 남았다.

순동, 수현에게 계속해서 말 붙일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탁! 수저를 내려놓고 일어서는 수현.

순동:... ! ... (다급한 맘에) 저기...

수현:(일어서려다 멈칫하며 순동을 본다)

순동:(눈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 숙이며 작게) 니... 이름이... 머꼬?

수현:(말없이 가만히 순동을 바라본다)

순동:(슥 수현 보다가 다시 숙이고는) 갈켜주기 싫으믄... 안 갈켜...

수현:수현.

순동:... !

수현:... 방 뺏어서 미안해.

순동:(당황해 하며) 아, 아이다. 무신... 내는 괘안타. 그땐 기냥...

가만히 바라보는 수현과 다시 눈이 마주치는 순동.

목이 턱 막힌다. 주전자를 들어보지만 이미 다 마셔버려 비었다.

순동:아, 와 이리 목이 마르노.

순동, 마당으로 내려가 벌컥 수돗물을 들이킨다.

S#17. 임시 교사 일각 / 낮

순동, 바지춤을 내리고 오줌을 싼다. 봉, 그 옆에서 같이 싼다.

순동:(뭐가 좋은지 히죽)

봉:머 존 일 있나? 아침부터 실실 웃고.

순동:(헤-)

봉:와 그라는데? 내도 좀 같이 웃자.

순동:(헤-)

봉:(이상하게 본다) ... ?

순동:(바지춤을 올리고 먼저 간다)

봉:머꼬? 같이 가제.

봉, 재빨리 바지춤을 올린다.

S#18. 자유시장(현 국제시장) 입구

신이 나 뛰어가는 순동. 여전히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마침 지나치는 사람들 너머로 시장 안으로 들어가는 수현을 발견한다.

멈춰서며 수현을 바라보는 순동.

S#19. 자유시장 거리

수현, 사람들로 혼잡한 시장을 걸어가고 있다.

그 뒤로 멀찍이 떨어져 수현을 쫓아가고 있는 순동.

CUT TO / 국밥집 앞

순동, 잔뜩 굳은 얼굴로 뭔가를 바라보고 있다.

수현이 국밥집 쓰레기통 옆에 쪼그려 앉아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순동, 수현의 모습을 훔쳐보다가 잔뜩 화가 난 모습으로 돌아서는데,

그 앞에서 순동을 바라보고 서 있는 봉.

순동:(흠칫) 니 여는 어쩐 일이고?

봉:그건 내 묻고 싶은 기다. 와 여 있노, 집이 간다믄서?

순동:... 그기...

봉:(순동 어깨 너머 수현 보며) 저 아 보든 거 맞제? 아는 사이가?

순동:(뜨끔) 보, 보긴 누가 봤다 그라노? 아이다.

봉:(의심스런 눈으로 순동 본다)

순동:(찔린 듯 봉의 시선을 피한다)

CUT TO / 국밥집 일각

쪼그려 앉아 저만치 수현을 바라보고 있는 순동과 봉.

봉:그라니까 저 아가 느그 집이 산다 이 말이가?

순동:(물끄러미 수현만 바라보고 있다)

봉:느그 엄니는 대단타... 울 엄니는 아부지가 바깥에서 사람 데리와가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을라치믄 눈에 불똥이 튀긴다 아이가.

순동:(수현만 본다)

봉:부자는 역시 다르다. 이래가 울 엄니가 니랑 친하게 지내라�N나부다.

근데 자는 와 여 있노, 느그 집이 안 있고?

순동:(수현만)

봉, 대답이 없자 순동을 쳐다본다.

수현에 빠져 있어 봉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순동.

봉:(대뜸) 좋아하나?

순동:(자기도 모르게) 어... (해놓고 놀라 얼른) 아, 아이다. 좋아하긴 누가...

봉:니 오늘 실실 웃는 게 내 이상타 했다.

순동:실실 웃긴 누가 웃었다 그러노?

봉:글고보이 학교에서 꾸벅꾸벅 존 것도 벌레가 아이라 다 저 아 때매

그른 거 아이가? 맞제?

순동:생사람 잡지 마라. 진짜 벌레 때매 그른 기다.

봉:울 아부지가 그랬다. 머스마가 가스나 좋아하는 건 정상이라꼬.

다른 아 들한텐 말 안 할 테니 내한테까정 거짓말 칠 필요 엄따.

순동:(벌떡 일어서며 버럭) 진짜 아이라캐도! 내 자 안 좋아한다!

시장 안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순동에게 향한다.

수현도 고개를 돌려 순동을 바라본다.

눈이 마주치는 둘.

순동, 에이 씨- 빠르게 도망을 치고,

봉, 수현을 한 번 쳐다보고는 순동을 뒤쫓아 간다.

가만히 멀어지는 순동을 바라보고 있는 수현.

S#20. 영도다리 밑 길

연습장에 아무렇게나 그어지는 선들.

순동, 분풀이를 하듯 연습장에 낙서를 하고 있다. 다가오는 봉.

봉:(옆에 앉으며) 니 울엄니가 세상에서 젤로 싫어하는 게 먼지 아나?

순동:(그저 낙서)

봉:아부지가 집에 사람 데리오는 거 하고, 내 니랑 싸우는 거다.

순동:(연습장을 찢어 구겨 바닥에 내팽개친다)

봉:학교 끝나고 집이 가믄 니랑 잘 지냈는지 젤로 먼저 묻는다 아이가.

순동:(다시 낙서)

봉:울엄니가 쩐번에 느그 집이서 돈 빌린 적 있다�N는데, 그 때매 그른기다.

울아부지가 그랬다. 세상서 제일 무서븐 기 돈이라꼬.

순동:(낙서)

봉:그라니까 내 이대로 집이 가믄 엄니한테 맞아 죽는다.

순동:(낙서 멈추고 봉 보며) 거짓말 하지 마라. 니 쩐번에도 그른 말 했다.

봉:이번엔 진짜다. 니 낼부터 나 몬 봐도 좋나?

순동:그 소리도 쩐번에 했다.

봉:좋다. 낼 내 학교 몬 나오믄 다 니 때매 그른기다.

순동:그기 와 나 때매 그른기가?

봉:니 아니믄 이기 다 그 아 때매 그른 기다. 그 아만 아니믄...

순동:(끊고) 와 그 아를 걸고 넘어지노? 그 아는 잘못 엄따.

봉:니 참말로 그 아 안 좋아하는 거 맞나?

순동:(움찔하다 짐짓 아닌 척 정색) 내 그 아 때매 내 방도 빼앗��다. 그 아

부모 찾을 때까정 방도 엄씨 살아야카는데, 내 그 아를 좋아한다꼬?

봉:니 방 그 아가 쓰나?

순동:맞다. 그 때매 내 잠도 잘 몬 자고 아주 피곤타.

봉:벌레 때매 그른 거라믄서?

순동:그... 그기 벌레도 그릇코... 암튼 그 가스나 때매 내 불편한 게

한 두 개가 아이다.

봉:(안 된다는 듯) 느그 엄니 때매 니가 고생이다.

순동:이제 알겠제, 내 그 아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봉:미안타... 내 몰랐다 아이가.

순동:이자 알믄 됐다. (책 보따리와 연습장을 집어 들고 일어난다)

봉:집이 갈끼가?

순동:그럼 여 살끼가? (간다)

봉:같이 가제.

봉, 재빨리 순동 옆에 가 붙는다. 순동이 밀쳐내면 다시 붙고 밀쳐내면

다시 붙고, 티격태격하면서도 꼭 붙어 나란히 멀어지는 둘.

S#21. 동네 골목 / 해질녘

순동, 툴툴거리며 걷고 있다.

순동:참말로 엄니가 너무 했다. 그 불쌍한 아를 도로 쫓아내는 게 어딨노...

하면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를 신경질적으로 차는 순동.

돌멩이가 날아가 떼구르르 굴러 전신주 앞에 멈춰 서는데,

그 앞에 수현이 전신주에 기대 쪼그려 앉아 있다.

순동, 수현을 보자 움찔하며 멈춰 선다. 수현도 순동을 바라본다.

S#22. 자유시장 국밥집 앞

봉, 수현이 사라진 쓰레기통을 바라보고 있다.

봉:(아쉬운 듯) 그새 간 거가...

쓰레기통 앞에 수현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봉:... 그기 사람이가... 천사제...

S#23. 동네 골목

순동과 수현, 구불구불 이어진 좁은 골목길을 나란히 걷고 있다.

바닥만 보며 뻘쭘히 걷고 있는 순동.

순동:여 동네 첨 오믄 다들 헤맨다... 내도 첨엔 엄청 헤맸다.

수현:... 너 시장서 봤어.

순동:(당황해) 봤나...

수현:뭘 안 좋아한다고... 소리치는 것 같던데...

순동:소, 소리는 무신... (난감해하다 얼른 화제를 돌린다) 근데 와 엄니를

시장서 찾노?

수현:(표정 어두워지며) 꿈속에서 엄마가 그랬어... 찾으러 온다고...

순동:꿈에서 느그 엄니가 시장에 있으라캤나?

수현:(고개를 저으며)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곳이니까...

순동:틀��다.

수현:(무슨 소리냐는 듯 순동 본다)

순동:사람이 가장 마이 있다 해도 거긴 아이다.

사람 찾을라카믄 영도다리에 가야 한다.

수현:영도... 다리? 거기가 어디야? 데려다 줘.

순동:쪼매 있으믄 해 떨어진다.

수현,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면, 붉게 물든 하늘.

이내 순동을 바라보는 수현.

순동:... ?

S#24. 임시 교사 안 / 낮

책을 덮는 교사.

교사:수업 끝내자.

반장인 듯한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반장:차렷. 선생님께 경례!

감사합니다. 일제히 인사를 하는 아이들.

봉:(기지개를 켜고는) 순동아, 내 니한테 할 말이...

하며 순동 보는데, 순동이 자리에 없다.

봉, 재빨리 교사 입구를 돌아보면, 어느새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순동.

S#25. 영도다리

다리 곳곳에 배회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영도다리.

수현,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절실한 듯 지나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걷고 있다. 순동이 그 뒤에서 지루한 듯 따라 걷고 있다.

수현, 다리 끝에 다다르자 다시 돌아서 걸어간다.

순동:또 가나? 벌써 이짝에서 저짝까정 다섯 번째다.

대꾸 없이 걸어가는 수현.

순동, 한숨을 폭 내쉬고는 마지못해 수현을 따라간다.

CUT TO / 시간경과

다리 난간에 기대 서 있는 수현. 표정이 어둡다.

그 옆에 순동이 바닥에 주저앉아 다리를 두드리고 있다.

순동:니는 다리 안 아프나? 억수 걸었다 아이가.

수현:...

순동:만날 멀리 서가 그림을 그리긴 했어도 이리 걸어보긴 첨이다...

(쑥스러운 듯) 니는 모르겠지만 내 그림 좀 그린다 아이가. 내 그르는 게

아이고 아 들이 그른 기다, 잘 그린다꼬. 선생님도 그랬다. 내 커가

훌륭한 화가가 될끼라고.

수현:...

순동:(잠시 망설이다가) 내는 순동이다. 감순동... 모르는 거 같아서...

수현:...

순동:감짜가 이상타고 아 들이 마이 놀리긴 해도, 내는 내 이름이 좋다...

(일어나 수현 옆에 서며) 니는 성이 뭐꼬? 이름은 수현이고...

수현:(눈물이 맺혀있는 듯 눈가가 빛난다)

순동:... ?

수현:(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현... 현수현이야. 내 성도 특이하지?

순동:현이라꼬? 첨 들어보는 성이다... 현수현... 현수현 (혼자 수현의 이름을

읊조리다가 낮게) 이쁘다.

수현:(들었는지 순동 본다)

순동:(급 당황하며) 아, 아이 니 이름 말고... (재빨리 다리 아래를 가리키며)

바다 말이다. 빤짝이는 기 이쁘다고.

수현, 순동이 가리키는 곳을 내려다보면,

바다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다.

S#26. 순동의 집 안방 / 밤

순동, 잠이 오지 않는지 계속해서 뒤척이고 있다.

그러다 눈을 뜨고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는 순동.

순동:(낮게) 현수현... 현수현...

순동, 뭐가 좋은지 헤 웃는다. 이때, 순동부가 몸을 뒤척인다.

흠칫, 얼른 눈을 감고 자는 척하는 순동.

이내 다시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며 헤 웃는다.

S#27. 건넌방

잔뜩 웅크린 채 어둠 속에 누워있는 수현.

희동과 달리 수현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다.

S#28. 순동의 집 마당 / 낮

복숭아를 베어 물자 주륵 입가에 흘러내리는 과즙.

봉, 마루에 걸터앉아 복숭아를 먹고 있다.

그 옆에서 못 마땅한 듯 바라보는 순동.

순동:(까칠한 눈으로) 와 찾아왔노?

봉:(복숭아를 연신 먹는다)

순동:(복숭아를 빼앗는다)

봉:(태연하게 새 복숭아를 집어 들고는 가지런히 놓여 있는 수현의 신발을

내려다보며) 이기 그 아 신발이가?

순동:(다시 복숭아를 빼앗으며) 와 찾아왔나 묻잖노?

봉:내 또 머 잘못했나?

순동:대답이나 해라.

봉:울아부지가 그랬다. 소뿔도... 뭐라캤드라... 암튼 빼라캤다.

순동:먼 소리고 그기?

봉:내 니한테 미안한 것도 있고 해가 밤새 고민 했다 아이가.

순동:멀?

봉:니 방 찾을 방법 말이다.

순동:(흠칫, 건넌방을 스윽 보고는 낮게) 그걸 와 니가 생각하노?

봉:와 목소리를 낮추고 그러노?

순동:(건넌방을 의식하고는 일어서며) 따라와라.

CUT TO / 순동의 집 뒤뜰

뒷간에서 조금 떨어져 서 있는 순동과 봉.

봉:(뒷간을 보며) 와 하필 여가? (그러면서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문다)

순동:이자 말해봐라. 니가 내 방을 우예 찾아준다는 기가?

봉:(씹으며) 간단하다. 아 엄니만 찾아주믄 된다.

순동:(벙쩌) 그기 다가?

봉:그기 다긴 한데... 그라니까 그기...

순동:(끊고) 밤새 생각해낸 게 그기 다라꼬? (어이없다) 니는 그걸 꼭

생각해야지 아나? 니도 참... 니랑 친구라는 게 억수 챙피하다.

봉:(입안에 든 복숭아를 꿀꺽 삼키고는 짐짓 비장하게) 울아부지가 그랬다.

우리나라 말은 끝까정 들어야한다꼬.

순동:... ?

S#29. 대청동 뒤편 마을

멀리 구덕산 봉오리가 보이는 마을.

판자집들이 늘어선 좁은 골목길에 허름한 옷차림의 어린아이가

바닥에 주저앉아 다 먹은 옥수수를 핥고 있다.

그 앞에서 아이의 사진을 찍고 있는 외국인.

찰칵! 찰칵! 연신 눌러지는 셔터 위로,

봉:(E) 이게 사진기라카는 건데...

S#30. 순동의 집 뒤뜰

봉:이거만 있으믄 금방 찾을 수 있다.

순동:사진기?

봉:울아부지가 그라는데 그 사진기로 (사진 찍는 포즈를 취하며) 이릇케

해가 사진기 단추를 누르믄 사람이 종이 같은데 찍히가 나온다카드라.

순동:말도 안 된다. 거짓말 하지 마라.

봉:거짓말 아이다. 울아부지가 그랬다. 울아부진 거짓말 안한다.

순동:느그 엄니한테 만날 거짓말 하다 줘터진다 안캤나?

봉:울 엄니한테만 그릇코 내한테는 거짓말 안한다.

순동:좋다. 거짓말 아니라카고. 그라믄 그 사진기로 우예 한다는기가?

봉:잘 들어바라.

S#31. 봉의 상상

봉, 사진기를 들고 찰칵! 찰칵! 셔터를 누른다.

그 앞에 서서 수현이 사진기를 빤히 바라보고 서 있다.

봉이 셔터를 누를 때마다 수현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 어디선가

한 장 한 장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순동:(E) 그르케 해가 우예 하자꼬?

S#32. 순동의 집 뒤뜰

봉:안즉 모르겠나? 그릇케 해가 영도다리에서 만납시더 이래 적어가

이짝저짝 붙이는 기다. 그 아 엄니가 여 있다믄 그걸 보게 되지 않겠나.

순동:...

봉:직접 찾는 거보다 찾아오게 만드는 방법이 백배 안 낫겠나 이 말이다.

순동:그럴려믄 그거이 있어야 한다 아이가. 사진기.

봉:그거야 노랑머리 아저씨한테 잠만 빌리달라카믄 되지.

순간, 순동의 머릿속을 스치는,

순동:(E) 그럼 내 방 저 아가 쓰는 겁니꺼?

순동모:(E) 아 부모 찾을 때까정 그리 하자.

봉:그 노랑머리 아저씨가 마이 나타나는 곳을 내 알고 있다.

지금이라도 가자.

순동:(생각에 잠겨)

봉:와 그르나?

순동:(주저하다가) 그 아저씨가 빌리 주겠나? 글고 노랑머리 아저씨들은

우리말 안 쓴다 아이가. 소용없는 짓이다.

봉:울아부지가 그랬다. 몬 묵어도 고라꼬.

순동:그기... 먼데?

봉:그른 게 이따. 일단 가보기나 하자.

순동:됐다. 내는 안 갈란다.

봉:와?

순동:와긴, 말도 안 되는 짓이니까 그르지.

봉:와 말이 안 되는데?

순동:(머뭇거리다가) 그냥... 안 되믄 안 된다. (가버린다)

봉:니 방 안 찾을끼가?

CUT TO / 마당

뒷문을 통해 마당으로 들어서는 순동.

마루에 걸터앉으려는데, 가지런히 놓여있던 수현의 신발이 흐트러져 있다.

건넌방 문을 돌아보며, 방문이 약간 틀어져 문틈이 벌어진 채 닫혀 있다.

이때, 벌컥 대문이 열리며 들어서는 순동부.

순동부:순동아. 엄니 어딨노?

순동:덕이네 댕겨온다꼬 나갔심더.

마침 순동모가 들어온다.

순동모:순동 아부지가 이 시간에 먼 일이라예?

순동부:(돌아보며) 아 방에 있나?

순동모:누, 수현이예? 방에 있을낀데 와예?

순동부:방금 손님한테 들었는데, 요 며칠 떠돌아 다니믄서 계집아를 찾고 있는

여자가 있단다. 생김새를 들어보이 딱 수현이다.

순동모:참말예?

순동:... !!

순동부:아, 얼른 델꼬 나와라. 그 여자 짐 어데 있는지 알아났다.

S#33. 동네 일각

수현을 데리고 바삐 걸어가는 순동부.

S#34. 순동의 집 마당

마루에 걸터앉아 있는 순동. 초조한 듯 의미 없는 발장난을 치고 있다.

순동모, 빨래를 널다가,

순동모:요즘은 그림 안 그리나? 통 그리는 거슬 몬 봤다.

대답 없는 순동. 초조한 발장난.

DIS / 시간경과

마당을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순동.

순동모, 부엌에서 나오다 순동을 한 번 보고는 그대로 지나쳐 간다.

DIS / 시간경과

순동, 마루에 걸터앉아 연습장에 두서없는 낙서를 하고 있다.

그 뒤로 순동모가 마루에서 빨래를 개키고 있다.

문가를 바라보다가 휴- 한숨을 내뱉는 순동.

순동모:니 와 그러노?

순동:머가예?

순동모:와 아까부터 똥매려운 강아지맨키로 그래있나?

순동:내 은제예?

순동모:와 수현이 엄니 찾으믄 가버릴까 서운하나?

순동:(움찔, 이내 발끈) 서운하긴예. 좋아 죽겠심더.

순동모:(피식) 거짓말 하믄 나라에서 잡아간다는 거 알제?

순동:(뜨끔. 벌떡 일어서며) 거짓말 아니라예!

이때, 끼익 문이 열리고 마당으로 들어서는 순동부와 수현.

순동모, 일어나 마당으로 내려선다.

순동모:우예 됐어예?

순동:(잔뜩 긴장한 얼굴로 순동부 바라본다)

순동부:(무겁게 고개를 젓는다)

순동:(휴- 안도하는 표정)

순동모:혹시나 해가 기대하고 있었는데... (수현을 보며) 괘안타.

금방 좋은 소식 있을끼다. 알았제?

수현:...

잔뜩 풀이 죽어있는 수현.

순동, 수현의 얼굴을 보자 좋아하던 표정이 살짝 어두워진다.

S#35. 순동의 집 마루 / 밤

문을 열고 나오는 순동. 반쯤 감긴 눈.

순동, 오줌이 마려운지 급히 마루에서 내려서는데,

어디선가 낮게 흐느낌이 들려온다.

멈칫하며 소리가 들려오는 건넌방을 돌아보는 순동.

S#36. 순동의 집 건넌방

새우 자세로 웅크린 채 누워 울고 있는 수현.

수현:(나직이) 엄마... 엄마...

S#37. 순동의 집 마루

순동, 방문 앞에서 수현의 흐느낌을 가만히 듣고 있다.

이미 잠에서 깬 순동의 표정. 어둡다.

S#38. 하늘 / 아침

낮게 구름이 깔린 회색빛 하늘.

금방이라도 비가 퍼부을 것 같더니 이내 후두둑 쏟아지기 시작한다.

S#39. 순동의 집 안방

쏟아지는 장대비. 순동모, 잠에서 깬다.

방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순동을 발견하는 순동모.

순동모:먼 일이고, 니가 이래 일찍 일나고.

순동:(시무룩하다)

순동모:(자리에서 일어나 옷 입으며) 와 그래 있나?

순동:...

순동모:(대답 없자 순동 빤히 본다)

순동:(마지못해 힘없이) 기냥... 빗소리가 좋아서예.

순동모:(의아하게 바라보며) 이자 밸 짓을 다한다.

순동모, 문을 열고 마루로 나간다.

한숨을 내쉬며 무릎에 얼굴을 묻는 순동.

이내 방문 밖에서 들려오는,

순동모:(E)먼늠의 비가 이리 쏟아지노... (사이) 머꼬? 와 아 신발이 엄노?

순동.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마루를 내다본다.

순동모, 재빨리 건넌방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면, 수현이 없다.

S#40. 영도다리 일각

순동부, 우산을 쓰고는 쏟아지는 빗속을 내달린다.

그 뒤를 멀찍이 떨어져 순동이 뒤쫓아 가고 있다.

S#41. 영도다리 위

인적 없는 썰렁한 다리.

순동부, 영도다리를 내달리다 다리 중간쯤 난간에 비를 맞으며 쪼그려

앉아 있는 수현을 발견한다.

재빨리 달려가 수현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순동부.

뒤늦게 달려온 순동이 걸음을 멈추고 그 모습을 지켜본다.

비에 젖어 부들부들 떨고 있는 수현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순동.

S#42. 순동의 집 안방 / 낮

순동모, 물수건을 짜서 수현의 이마에 올려놓는다.

수현 옆에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순동부와 모.

순동은 방문 밖에서 지켜보고 있다.

순동모:(딱한 듯 수현의 손을 감싸 쥐며) 얼매나 엄니가 보고 싶었으믄...

순동부:짐 생각해보이 아를 혼자 저짝 방에 놔두는기 아니었다.

안 그래도 외로운 안데... 앞으로는 여 데리고 같이 자자.

순동모:(순동 보며) 들었제? 오늘부턴 니 방에서 자라.

순동:...

순동모:글고 참말로 니 학교 안 가도 되나?

순동:(앓고 있는 수현만 바라본다)

순동모:와 대답이 없노?

순동:(괜시리 화) 비 마이 와가 안 간다꼬 �� 번을 말했어예!

홱- 건넌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순동.

순동모:저 노마가 갑자기 와 저러노?

순동부:밖에 나가 놀지 몬하니까 그른가보제. (일어서며) 내는 그만 가게 간다.

(순동모가 일어서려하자) 기냥 앉아 있어라.

순동모:(앉으며) 그라믄 댕겨오이소.

순동부, 밖으로 나간다.

수현의 물수건을 뒤집어주는 순동모.

CUT TO / 건넌방

구석에 무릎을 안고 쪼그려 앉은 순동. 이런저런 생각들로 복잡하다.

방 안 가득 빗소리만이 가득하다.

S#43. 자갈치 시장

파란 하늘. 그 아래 사람들로 북적대는 시장.

시장 앞 바다에는 고기 잡는 나룻배들로 어지럽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얽혀 있는 복잡한 시장 거리를 걷고 있는 봉.

누군가를 찾는 듯 시장 주변을 헤매다가 사진을 찍고 있는 외국인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춘다.

봉:찾았다.

그러자 봉 옆으로 다가와 서는 순동.

물건을 팔고 있는 할머니를 향해 셔터를 누르는 외국인을 바라본다.

봉:가자.

순동:(봉을 잡아 세우며) 잠만 기다리바라.

봉:먼데?

순동:가서 우예할낀데?

봉:내도 모른다. 기냥 울아부지 말대로 해보자.

순동:먼 말?

봉:머긴... 몬 묵어도 고!

외국인, 할머니를 찍고는 흡족한 듯 걸음을 옮긴다.

순간 그 앞을 슥 가로막는 봉. 순동이 뻘쭘히 그 옆으로 와 선다.

뭔가 싶어 멀뚱히 둘을 바라보는 외국인.

봉:(씩 웃어 보이며 손으로 사진기를 가리킨다) 이거... 사진기.

외국인, 카메라를 들어 보이며 무슨 말이냐는 듯 봉 본다.

그러자 봉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기한테 달라는 시늉을 한다.

하지만 의아하다는 듯 갸웃거리더니 그대로 봉을 지나쳐 간다.

다시 외국인 앞을 가로막는 봉.

다시 한 번 사진기를 가리키더니 이내 자신을 가리키며 달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조금 벙쪄 바라보다 피하듯 봉을 지나쳐 멀어지는 외국인.

순동:이기 몬 묵어도 고나?

대꾸 없이 재빨리 외국인을 따라가는 봉.

외국인을 가로막으며 과장된 몸짓으로 손짓 발짓을 해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어이없이 바라보다 한숨을 폭 내쉬는 순동.

CUT TO / 시간경과

시장을 돌아보며 걷고 있는 외국인. 그 뒤를 순동과 봉이 따라가고 있다.

순동:첨부터 안 되는 거였다. 고마 돌아가자.

봉:울아부지가 그랬다. 물건을 빌리는데는 두 가지가 있다고...

좋게 빌리믄 젤로 좋지만, 그기 안 되믄 나쁘게 빌릴 때도 있는 거라고.

순동:또 이상한 소리가?

봉:(결심한 듯 멈춰서며) 좋게 빌리기는 틀렸으니 나쁘게 빌리자.

순동:(따라 멈춰서며) 나쁘게 빌리는 기 먼데?

봉:울아부지가 엄니한테 자주 쓰는 방법인데... 몰래 빌리가 나중에 다시

돌려주는 거다.

순동:... !

S#44. 용두산 판자촌

다닥다닥 붙어있는 판자집 골목길.

한 여자 아이가 갓난아기를 포대에 감싸 업고는 집 앞에 서 있다.

외국인이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골목길 한 켠에서 그런 외국인을 훔쳐보고 있는 순동과 봉.

순동:니 알고 있나? 이건 훔치는 거다. 도둑질.

봉:울아부지는 엄니한테 한 번도 돌려주지 몬 했지만, 우린 돌려줄끼다.

그라니까 도둑질 아이다.

순동:당장 돌아가자.

봉:니 방 안 찾을끼가?

순동:...

봉:잠만 쓰고 다시 돌려주믄 아무 문제 없다 아이가.

순동:...

봉:돌아가도 내는 상관 엄따. 내 방도 아이고... 우짤끼가?

고민하는 순동.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CUT TO / 용두산 판자촌 다른 곳

외국인, 힘겹게 판자촌 골목을 오르고 있다.

봉:(E) 저 노랑머리 아저씨는 이상하게 불쌍한 아 들만 좋아한다 아이가.

외국인, 골목길을 빠져나와 조그만 공터에 다다른다.

공터 한쪽에 순동과 봉이 얼굴에 연탄재를 묻히고는 거지꼴로 앉아있다.

외국인이 흥미롭다는 듯 다가와 카메라를 들이미는데,

순동과 봉이 무섭다는 듯 잔뜩 몸을 움츠린다.

그러자 외국인이 괜찮아 괜찮아를 연발하며 아이들을 안심시킨다.

이때 외국인의 카메라를 빤히 바라보는 봉.

외국인, 봉이 카메라에 관심이 있어 하자 카메라를 보여주며 안심시킨다.

결국 외국인에게서 카메라를 받아들고 이리저리 신기한 듯 바라보는 봉.

순간 옆에 있던 순동이 카메라를 뺏어 신기한 듯 바라본다.

다시 카메라를 빼앗는 봉. 순동도 지지 않고 다시 카메라를 빼앗는다.

외국인이 난감한 듯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서로 자기 물건인 양 카메라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순동과 봉.

결국 봉이 카메라를 들고 벌떡 일어나 냅따 도망을 치기 시작한다.

이어 봉을 쫓아 달려가는 순동.

외국인이 깜짝 놀라 그 둘을 쫓기 시작한다.

S#45. 추격 몽타주

1.판자촌 골목골목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뛰어가는 순동과 봉.

2.둘을 뒤따라오는 외국인.

3.갈림길에서 주춤하다가 순동은 오른쪽으로 봉은 왼쪽으로 나뉜다.

이때 봉이 들고 있던 카메라를 순동에게 넘긴다.

4.갈림길에 도착한 외국인, 카메라를 들고 있던 봉을 뒤쫓는다.

5.봉, 골목길을 내달리다 문이 열린 어느 집 안으로 들어간다.

6.뒤따라오던 외국인이 봉이 보이지 않자 마침 문이 열린 집 안을

휘둘러본다. 아무도 없자 다시 골목길을 뛰어가는 외국인.

7.봉, 커다란 항아리 안에서 얼굴을 내밀더니 휴- 한숨을 내쉰다.

그 모습을 콧물 범벅인 아이 하나가 멍 바라보고 있다.

아이를 향해 헤헤 웃어 보이는 봉.

S#46. 용두산 판자촌 골목길

헉헉 숨을 몰아쉬는 순동.

뒤를 돌아보고 아무도 쫓아오지 않자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는다.

한시름 놓는가 싶더니 순간 앞쪽 골목길에서 튀어나오는 외국인.

순동, 외국인을 보자 흠칫 놀라며 일순 숨이 멎는다.

S#47. 광복동 거리 / 해질녘

길게 늘어진 두 그림자. 터덜터덜 나란히 걸어가는 순동과 봉 위로,

봉:(E) 도망칠라믄 사진기를 들고 도망을 치야지 와 그걸 버리두고 도망을

치노?

순동:(E) 그래가 내 짐 여 있는 거다. 안 그랬으믄 짐 그 노랑머리 아저씨한테

머리끄댕이 잡히가 먼 일을 당했을지 모른다.

봉:(E) 됐다. 이래 되았으니 다시 하는 수밖에 엄따.

순동:(E)먼 소리고? 이 지슬 또 하자꼬? 내는 몬 한다.

봉:(E) 그라믄 니 방 안 찾을끼가?

순동:(E) 근데, 와 니가 내 방에 이래 관심을 가지노?

봉:(E) 말하지 않았노. 니한테 미안한 것도 있고... 글고 울아부지가 그랬다.

친구가 어려울 때는 서로 돕는 거라고.

순동:(E) 그 뿌이가?

봉:(E) 그라믄 또 머가 있겠노?

멀어지는 둘.

S#48. 영도다리 위

순동모, 수현의 손을 잡고 영도다리 위를 거닐고 있다.

순동모:이자 그만 드가자. 내일 또 오제.

수현:(끄떡)

순동모, 수현을 데리고 돌아서 걸어가는데,

눈 앞 난간에 서 있던 여자가 순식간에 다리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경악하던 순동모가 재빨리 수현의 시야를 가리며 감싸 안는다.

난간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또 떨어졌네.’ , ‘피란민이겄제?’ , ‘그라믄 피란민 말고 여서 뛰 내리는

사람이 어딨겠노’ 하며 한 마디씩 쏟아낸다.

순동모, 얼른 수현을 데리고 그 자리를 피한다.

그 모습을 다리 한쪽에서 지켜보고 있는 순동.

S#49. 순동부의 가게 안, 밖

수현, 가게 안 한 켠에 고개를 숙인 채 힘없이 앉아 있다.

그 너머 문 밖에 서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순동부와 모.

순동모:아를 데리고 나오는 게 아니었어예.

순동부:그르타고 아를 방에만 가둬둘 수도 없는 일 아인가. 그만 잊아라.

순동모:아가 지 엄니도 뛰 내리 죽었다고 생각하믄 어쩌지예?

순동부:(수현을 돌아보며) 저 아가 그리 말하드나?

순동모:(걱정스레 수현을 보며) 그른 건 아인데...

순동부:아는 부몰 포기할 수 있어도 부몬 아를 포기 몬하는 뱁이다.

살아 있다믄 즈그 혼자 뛰 내리 죽는 짓은 안 한다. 넘 걱정 마라.

순동모:그라믄 점집이라도 가볼까예?

순동부:점집은 와?

순동모:요즘 피난민들이 젤로 마이 가는 곳이 점집이다카데예.

가족들 생사만이라도 알까해가.

순동부:내도 그 얘긴 들었다. 근데, 거 간다고 사람이 찾아지겠나.

다 씰데 없는 짓이다.

순동모:하도 답답해가 하는 소리라예.

가게 옆 골목. 벽에 기대 두 사람의 얘기를 엿듣고 있는 순동. 어둡다.

S#50. 점집 전경 / 저녁

영도다리 아래 불을 밝히고 있는 수많은 점집들.

S#51. 점집 안

점쟁이, 벙찐 표정으로 탁자 위를 내려다보고 있다.

봉지 안에 들어있는 사과 몇 개.

점쟁이, 재밌다는 듯 그 앞에 앉아 있는 순동을 바라본다.

점쟁이:그라니까 짐 내보고 요 과일 몇 개 묵고 니 점을 비달라 이거가?

순동:(끄떡)

점쟁이:(어이없지만 호기심에) 그래, 머가 알고 싶은데?

순동:(잠시 뜸을 들이다가) 수현... 현수현이라꼬 아가 한 명 있어예.

점쟁이:그게 눈데?

순동:있어예, 그른 아가... 근데 그 아가 짐 마이 아픕니더.

점쟁이:병이가?

순동:(고개 젓고) 엄니를 잃어가 찾아 댕기는데, 몬 찾아가 마이 아픕니더.

점쟁이:(알겠다는 듯 고개 끄덕인다)

순동:근데, 지도 마이 아픕니더. 와 이라는지는 모르겠고 (가슴을 만지며) 기냥

여가 아픕니더. 그림 그리기도 싫고, 밥도 묵기 싫고, 그 아가 다리 우에

쭈구리 앉아가 있으믄 여가 아픕니더... 억수 아픕니더... 그라니까 점쟁이

아줌마가 그 아 엄니 좀 찾아주믄 안 되겠심니꺼?

점쟁이:(귀엽다는 듯 웃으며) 그 아 엄니를 찾아주믄 니 거그가 안 아프겠나?

순동:(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젓는다)

점쟁이:근데 와 그 아 엄니를 찾아주고 싶나?

순동:... 그 아가 아프니까예... 아프니까 찾아주고 싶어예.

점쟁이:머스마가 그래 정이 깊어가 우예쓸꼬.

순동:(점쟁이를 간절하게 바라보며) 찾아주는 겁니꺼?

점쟁이, 가만히 순동을 바라보다가 봉지를 들어 순동 앞에 내려놓는다.

순동:... ?

S#52. 영도다리 밑 길

과일이 든 봉지를 가슴에 안고 힘없이 걸어가는 순동.

점쟁이:(E) 니 점이 먼 줄은 아나? 여는 사람 찾아주는 곳이 아이다. 사람을

찾을라카믄 지서에 가야제. 글고 피난민 찾는 기는 지서에 가도 소용

엄따. 이기 도로 들고 돌아가라.

순동, 꺼질 듯 한숨을 내쉰다. 이때, 봉지 밑이 터지면서 사과가 바닥을 구른다.

그것을 보고는 또 꺼질 듯 한숨을 내뱉는 순동. 주우려다 말고는 그대로 간다.

어깨를 늘이고 힘없이 걸어가는 순동 너머로 영도다리가 어둠 속에 잠겨 보인다.

S#53. 산길 / 낮

지서 순경, 산길을 오른다.

그 뒤를 쫓아 따라가는 외국인과 통역인.

외국인은 카메라 없이 빈손이다.

S#54. 임시 교사 안

수업 중인 교사 안.

순경이 들어서자 교사와 아이들 모두 그를 돌아본다.

순동과 봉도 뭔가 싶어 바라보는데,

교사:먼 일이라예?

이내 교사 안으로 들어서는 외국인.

순동과 봉, 외국인을 보자 놀란다. 봉은 재빨리 고개를 숙인다.

순동과 봉을 보자 손을 들어 둘을 가리키는 외국인.

외국인:(통역에게, 영어) 저들이요.

통역:(순경에게) 저 아 들이랍니더.

그러자 순동과 봉에게 다가가는 순경.

S#55. 지서 안

벌컥 문이 열린다. 지서 안으로 들어서는 순동부와 모.

지서 한 켠에 쪼그려 앉아 있던 순동과 봉이 부모를 보자 고개를 숙인다.

둘을 보다 순경에게 다가가는 순동부와 모.

순동부:먼 일입니꺼?

순경:누군교?

순동부:(순동 가리키며) 저 노마 애빕니더. 대체 먼 일입니꺼?

순경:(옆에 앉아 있는 외국인을 가리키며) 이자 사진기를 도둑맞았는데,

이자 말로는 그 사진기를 저 노마들이 가져갔다 하네예.

놀라 순동과 봉을 바라보는 순동부와 모.

순동:아입니더. 아부지 지는 안 훔쳤어예.

봉:아저씨 지도 아입니더. 참말 아니라예.

순경:이노마야. 얼마 전에도 니들이 카메라 훔치가 달아나다 걸��다믄서?

순동과 봉, 당황하며 말을 하지 못한다.

순동부:그기 먼 말입니꺼? 훔치다니예?

S#56. 순동의 집 안방 / 저녁

철썩! 순동의 종아리에 가해지는 회초리.

순동의 종아리가 시퍼렇게 멍이 들어 부어올랐다.

잔뜩 화가 나 순동의 종아리를 내려치는 순동부,

순동부:비싼 밥 멕이가 공부하라�N드니 도둑질이나 해?!

순동:(울며) 아부지, 아입니더. 훔친 기 아입니더. 참말입니더.

순동부:그라믄 용두산 판자촌에서 니가 한 짓은 머꼬? 그기 도둑질이 아이면

장난이가? 요즘 아 들은 다 그래 논다드나?

순동, 내려치는 회초리에 결국 주저앉고 만다.

순동부:똑바로 스지 몬하나? 아직 멀었다. 퍼뜩 일나라!

방 앞에서 보고 있던 순동모가 참다못해 방안으로 들어와 순동을 감싼다.

순동모:이마하믄 됐어예. 그만 하이소.

순동부:자네는 나가 있으라캐도.

순동모:훔치지 않았다잖아요. 이르다 아 잡겠어예.

순동부:훔치지 않았어도 훔치려 했으믄 똑같은기다. 글고 이번에 똑띠 하지

않으믄 이 노마 이거 커서 길거리에서 싸움질이나 하꼬 시위나 해쌌는

땃벌떼 같은데 드간다. (순동에게) 퍼뜩 안 일나고 머하노?

CUT TO / 건넌방

구석에 무릎을 접고 앉아 있는 수현.

철썩!.. 철썩!.. 방문 밖에서 들려오는 회초리 소리.

잘못했다며 우는 순동의 울음소리.

수현, 가만히 그 소리를 듣고 앉았다.

S#57. 순동의 집 전경 / 밤-이른 아침

회초리 소리와 순동의 울음소리가 겹쳐 들리다가 점차 잦아든다.

이내 고즈넉해지는 순동의 집 밤풍경.

그 너머로 서서히 날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S#58. 순동의 집 건넌방 / 이른 아침

엎드려 자고 있는 순동. 양 종아리엔 물수건이 얹혀 있다.

누군가 물수건을 걷어내자 시퍼렇게 퉁퉁 부은 종아리가 드러난다.

이내 수건에 물을 적셔 종아리에 얹는 손.

순동이 부스스 깬다.

순동:... 엄니예... 지 살았어예?

대답 없이 다른 종아리 수건을 물에 적셔 다시 얹는다.

순동:엄니예...

순동, 고개를 돌려 다리 쪽을 바라보면, 그 앞에 앉아 있는 수현.

순동:... !

CUT TO / 시간경과

다리를 위로 뻗어 벽에 기대 누워있는 순동. 그 옆에 앉아있는 수현.

순동:참말 이르케 하믄 빨리 낫나?

수현:나도 잘 몰라.

순동:그라믄 와 이르케 있으라캤나?

수현:(대답 않고 대뜸) 정말 사진기 훔치려고 했어?

순동:... !

수현:훔쳐서 뭐하려고?

순동:(머뭇대다가) 니는 몰라도 된다.

수현:(낮게) 바보들.

순동:머라캤노?

수현:바보들이라구.

순동:(서운한 듯) 암것도 모르믄서...

수현:(낮게) 아무 것도 모르면서...

인서트 ? 마당 뒷문 앞에 서 있는 수현.

뒷간 앞에 서서 얘기를 하고 있는 순동과 봉을 훔쳐보고 있다.

순동이 다가오자 재빨리 신발을 벗고 건넌방으로 들어가는 수현.

수현:고마워.

순동:... ?

수현:그리고 미안해... 나 때문에...

일어나 방을 나가는 수현.

순동, 뭔 말인가 싶어 멀뚱히 나간 문을 바라보는데,

문가 옆에 놓여있는 그림 연습장이 눈에 들어온다.

가만히 연습장을 바라보다 불현 듯 뭔가 떠오르는 순동.

S#59. 봉의 집 뒷간

문이 열리고 봉이 들어선다.

한쪽 눈이 시퍼렇게 멍들었고, 품속에 뭔가를 감춘 듯 볼록하다.

봉, 바지를 입은 채 주저앉아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면, 사진기다.

사진기를 신기한 듯 살펴보다 버튼을 눌러본다.

찰칵! 찰칵! 아무런 변화가 없자 실망한 듯,

봉:얼른 쓰고 다시 돌려줘야카는데... (다시 버튼을 눌러보다가) 대체 어데서

나온다는 거가...

그러다 갑자기 헤 웃는 봉.

인서트 ? 봉의 상상. 봉과 마주 서 있는 수현.

수현:고마워. 니가 도와줘서 엄마 찾았어.

쪽! 봉의 볼에 뽀뽀를 해주는 수현.

봉, 넋이 나간 듯 입을 벌린 채 헤- 좋아하는데,

봉의부:(E) 안에 누 있나?

봉:(화들짝) 아, 아부지. 저 있어예... (사진기를 품에 넣으며 힘주는 척)

아, 와이리 안 나오노...

S#60. 보수천 / 낮

빨래를 하는 아낙들, 물놀이 하는 아이들로 정겨운 냇가.

그들과 멀찍이 떨어진 곳 바위 위에 다소곳이 수현이 앉아있고,

그 앞에서 순동이 바닥에 주저앉아 연습장에 뭔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다.

정성 들여 꼼꼼히 그림을 그려나가는 순동.

CUT TO / 시간경과

해가 기울고 있다. 활기찼던 냇가도 어느덧 한산해졌다.

여전히 반듯이 앉아 있는 수현.

순동, 마지막 선을 마무리하고는 수현을 보며 웃는다.

수현:다 됐어?

순동:(끄덕)

수현, 바위에서 일어나 순동에게 다가간다.

순동이 내민 연습장을 들고 바라보면,

자신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똑같다.

수현:진짜 잘 그리는구나.

순동:(쑥스러운 듯 머리 긁적인다)

수현:(걱정스런) 근데, 이거 한 장 붙인다고 엄마가 볼 수 있을까?

순동:한 장 아이다.

수현:... ?

순동:그거 보고 앞으로 백 장, 이백 장 계속 그릴 끼다.

수현:... !

순동:그래가 여 있는 사람들 다 보게 할끼다.

수현:그걸 언제 다 그려?

순동:와 몬 하노? 할 수 있다. 내만 믿으라.

수현:(고마움에 가만히 순동을 바라본다)

순동:아, 맞다. 줘바라.

순동, 연습장을 빼앗아 들고 그림 밑에 뭔가를 적는다.

순동:이기 아이지. (슥슥 지우고 나머지 글자를 쓰고는 수현 보며) 맞나?

수현:(연습장을 보더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순동, 만족한 듯 연습장을 들어 바라본다.

수현의 초상화 아래 새겨져 있는 문구.

‘영도다리에서 만납시(X표) 만나요.’

S#61. 몽타주

순동, 수현의 초상화를 보고 똑같이 베끼기 시작한다.

방에서.. 학교에서.. 영도다리 아래에서.. 보수천에서.. 그리고 밤낮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현의 초상화를 그리고.. 또 그린다.

그렇게 낮이 밤이 되고, 밤이 낮이 되면서 시간이 흐른다.

파랗던 나뭇잎들이 붉게 물들고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수현의 초상화도 낙엽처럼 점점 쌓여간다.

S#62. 국밥집 / 낮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고 있다.

“이른 날씨엔 뜨끄한 국밥이 최고제.” 하며 손님 둘이 들어온다.

주인:어서오이소.

손님1:(주인에게) 아줌마, 국밥 두 그릇예.

손님2:(문가를 바라보며) 근데, 저 문짝에 붙어있는 게 뭡니꺼?

주인:(문가를 보며) 아, 저그...

S#63. 순동의 집 마당

문이 열리고 마당으로 들어서는 덕이모.

덕이모:순동네 있나?

순동모, 부엌에서 나와 밖을 본다.

순동모:오셨어예?

덕이모:(손에 든 종이를 내밀며) 이거 그 아 아인가?

순동모:그기 뭐라예?

순동모, 받아들고 보면 순동이 그린 수현의 초상화다.

S#64. 순동부의 가게 안

수현의 초상화를 보고 서 있는 순동부.

덕이모:(E) 온 동네에 다 달라붙어 있다 아이가. 누꼬, 이 엄청난 짓을 한 게.

S#65. 영도다리 입구

봉, 벙한 표정으로 다리를 바라보고 있다.

양쪽 다리 난간을 따라 수현의 초상화가 주욱 달라붙어있다.

신기한 듯 초상화를 바라보며 지나쳐 가는 사람들.

봉:슬마...

S#66. 영도다리 위

난간에 나란히 쪼그려 앉아 있는 순동과 수현.

순동은 수현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수현:이제 안 보고서도 잘 그리네?

순동:하도 그리가 이제 니 얼굴 다 외웠다.

사람들 몇몇이 초상화와 수현을 번갈아보며 지나쳐간다.

수현:엄마가 정말 이걸 보실까?

순동:볼끼다.

수현:정말?

순동:내는 그래 믿고 있다. 그라니까 니도...

하는데, 연습장 위로 똑 떨어지는 코피.

순동, 입에 닿은 코피를 쩝쩝거리다 손가락을 찍어보고는 코피임을

알아차린다. “에이” 울상을 짓는데, 수현이 순동의 머리를 뒤로 젖히고

자신의 소매로 순동의 코피를 닦아준다.

순간 얼음이 되는 순동.

말없이 순동의 코피를 닦아주는 수현의 행동에 얼굴에 발그레해진다.

다리 한 켠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봉. 실망스런 표정.

S#67. 봉의 집 뒷간

문이 열리고 봉이 힘없이 들어선다.

주저앉아 품에서 카메라를 꺼내는 봉.

봉:써묵지도 몬하고... 돌려주지도 몬하고... 이제 이걸 어데 쓰노...

(한숨 푹 내쉬고는) 갖다 버리야겠다.

S#68. 순동의 집 안방 / 저녁

순동모, 수현의 초상화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순동.

순동모:이거 참말 니가 그린 거가?

순동:(쑥스럽다는 듯 웃으며) 진짜 똑같지예? 엄니 아들 그림 솜씨 직인다

아입니꺼.

순동모:그동안 공부 안 하고 이거만 그린 거가?

순동:공부도 했씹니더. 숙제도 꼬박꼬박 하고...

순동모:(끊고) 와 씰데 엄는 짓을 하노?

CUT TO / 안방 문 앞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서 있는 수현.

순동:(E) 이게 와 씰데 없는 짓입니꺼?

안방.

순동모:이런다꼬 수현이 엄니가 나타날 거 같으나?

순동:와예? 나타날 겁니더.

순동모:이리 해가 나타날 거 같았으믄 고아가 와 있겠노?

순동:...

순동모:니가 수현일 위하는 맘은 알겠지만, 이르케까지 해야겠나?

순동:그리고 싶은 그림 맘대로 그려도 된다 하지 않았습니꺼?

순동모:이건 그 문제가 아이다.

순동:엄니예 지는예 지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린 거 뿌입니더.

순동모:(답답하다) 날 밝으믄 당장 동네에 붙여 놓은 그림 다 떼라.

순동:와예?

순동모:떼라믄 떼라.

순동:싫습니더. 절대 몬 뗍니더.

순동모:니... 이 노마를 진짜...

하는데,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순동부:(E) 먼 일인데 그리들 싸우노?

순동부 목소리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동모. 방문을 연다.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올라 방으로 들어서는 순동부.

순동모:오셨어예.

순동부:와들 그러노?

순동모:순동 아부지도 보셨어예?

순동부:멀? (바닥에 놓인 수현의 초상화 보고) 아 저거 말하는 기가?

순동:(잔뜩 긴장한다)

순동모:지가 저 노마 때매 죽겠심더.

순동부:와?

순동모:와긴예. 동네 창피해가 얼굴을 못 들겠심니더.

순동부:그라니까 와 창피한데?

순동모:(뜻밖의 반응에) 예?

순동부:머스마가 가스나 엄니 찾아줄라꼬 잠도 안자고 밤낮으로 노력해가 만들어

논 건데 자랑스럽게 생각해야제 와 창피하냐 이말이다. 나쁜 짓을 한

것도 아인데.

순동:(반색)

순동모:순동 아부지...

순동부:열심히 안 하는 게 문제지. 열심히 한 건 문제 아이다. 글고 머스마가

이 정도는 되야제 머를 하든 하지 않겠노?

순동모:...

순동부:글고 순동이가 수현일 위하는 맘이 자네는 안 이쁘나?

내는 저 노마가 부러버 죽겠다.

순동모:... (잠시 생각하다가) 지가 생각이 짤�R어예.

순동부:됐다. 자네 나부라는 거 아이다. 순동일 이해해주자는 거지.

순동:아부지, 그라믄 그림 안 떼도 되는 겁니꺼?

순동부:힘들게 그리 논 걸 와 떼노?

순동:(신나) 고맙심더.

순동부:그래도 니가 젤로 먼저 해야할 일은 공부다. 알제?

순동:그라믄예. 공부도 열심히 할 겁니더.

순동모:저녁 차려 올게예. (밖으로 나가려는데)

순동부:아 근데 수현인 어데 갔나? 안 보이든데?

순동:... !

S#69. 영도다리 위

한산한 영도다리. 바람이 분다. 양쪽 난간에서 펄럭이는 그림들.

그 가운데 수현이 쓸쓸히 걷고 있다.

바람에 그림 한 장이 떨어져나가자 급히 뛰어가 제자리에 붙여놓는다.

하지만 이내 바람에 다시 떨어지는 그림.

수현, 이번엔 날아가는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CUT TO / 시간경과

난간 한 켠에 기대 쪼그려 앉아 있는 수현.

바람이 쌀쌀한지 몸을 잔뜩 웅크린다.

잠시 뒤, 수현 앞에 드리워지는 검은 그림자.

수현, 뭔가 싶어 올려다보면, 수현의 초상화를 들고 선 중년 여인.

중년여:(수현의 초상화와 수현을 번갈아보다가) 맞네.

수현:... ?

S#70. 영도다리 입구

종이로 감싼 사진기를 들고 바삐 걸어가는 봉.

봉:다리에 가 떨어뜨려 버리믄 암도 모를 기다.

이때, 다리에서 수현이 중년 여인과 손을 잡고 걸어 나오는 것이 보인다.

멈춰서 의아한 듯 둘을 바라보는 봉.

순동부:(E) 수현아!

S#71. 영도다리 위

이름을 부르며 수현을 찾는 순동부.

다리를 뛰어 다니며 찾아보지만 수현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맞은편에서 순동모와 순동이 다가와 멈춰 선다.

순동부:엄뜨나?

순동모:(고개를 끄덕인다)

순동:(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엄니가 그른 말을 해가 아가 나간기라예.

순동모:(면목이 없다) 어쩌지예?

순동부:멀 어째? 자네는 시장에 가봐. 순동이하고 낸 여 근철 더 댕겨볼 테이까.

순동모, 둘을 지나쳐 뛰어간다.

순동부와 순동은 수현의 이름을 부르며 반대쪽으로 뛰어간다.

이때, 쿠르릉-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하늘에서 들려오는 전조.

S#72. 거리 / 밤

인적 없는 거리.

중년여, 수현의 손을 잡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서 있다.

잠시 뒤, 둘 앞에 사내 하나가 나타난다.

긴장한 듯 바라보는 수현.

중년여:와 이제 온나?

사내:(수현을 보고) 이 안가?

중년여:좀 있으믄 퍼불끼다. 빨랑 델꼬 가라.

사내:(웃으며 수현에게 손을 뻗는다)

수현:(경계의 눈으로 바라본다)

사내:엄마 안 볼끼가?

수현:... !

수현, 불안한 듯 사내를 바라보다 그의 손을 잡으려는데,

봉:(E) 그 아 델꼬 가봤자 소용 없심더.

놀라 돌아보는 사내와 중년여.

맞은편에 봉이 사진기를 들고 서 있다.

수현이 봉을 알아본다.

사내:니는 머꼬?

봉:그 아 친굽니더.

사내:친구? (피식 웃으며) 이 전쟁고아가 니 친구라꼬?

봉:그동안 울 집서 같이 살았다 아입니꺼. (수현에게) 맞제?

수현:(긴장한 듯한 봉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맞아요.

사내:그래 알았다. 니는 그만 가보래이. 이 아저씨가 이 아 엄니 찾아가

데리다 줄라꼬 하는 거니까.

봉:거짓말 마이소. 다 압니더. 그 아 데리가 팔라고 하는 거 아입니꺼?

당황한 듯 서로를 바라보는 사내와 중년여.

봉:근데 어쩝니꺼. 그 아는 병이 있어가 얼마 몬 삼니더.

수현:... !!

사내:(웃으며) 거짓말 하믄 혼난다꼬 학교에서 안 그드나?

봉:거짓말 아입니더. 울아부지가 그랬심더. 얼마 몬 살 꺼라고.

사내:... !

봉:몬 믿겠으믄 병원 데리가가 확인해 보이소.

사내:(중년여에게) 진짜가?

중년여:그걸 내가 우예 아노?

봉:아저씨, 아줌마.

둘:(봉 본다)

봉:(종이를 벗겨 사진기를 들어 보이며) 이거 무지 비싼 겁니더.

사진기를 보고 놀라는 사내와 중년여.

수현도 사진기를 보고 놀라는 눈치.

봉:이거 드릴 테이까 그 아픈 아 돌려주이소.

사내:니 그거 어데서 났노?

봉:주었습니다.

사내:참말이가?

봉:참말입니더. 이거 아저씨 가꼬 대신 그 아 돌려주이소.

서로를 바라보며 고민하는 사내와 중년여.

봉과 수현도 서로를 바라본다.

그들 위로 툭툭 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S#73. 다른 거리

비가 퍼붓고 있다. 그 비를 맞으며 나란히 걷고 있는 수현과 봉.

수현:고마워.

봉:(쑥스럽다) 울아부지가 그랬다. 아 들을 팔아가 돈 버는 나쁜 아저씨들이

있다고.

수현:(끄덕이고) 근데, 사진기 니들이 훔친 거였어?

봉:(움찔, 고개를 숙인 채) 순동인 모른다. 내 혼자 했다.

수현:... !

봉:쓰고 돌려줄라캤는데... 쓰지도 몬하고... 그 노랑머리 아저씨도 안 보이가

어쩔 수 없이...(수현 눈치를 살피며) 그라니까 이 사실은 순동이한테는

비밀로...

하는데, 대뜸 자리에서 멈춰서는 수현.

봉:(따라 멈춰서며) 안... 되겠제?

수현:그림!

S#74. 영도다리 위

빗속을 뚫고 빠르게 달려오는 수현과 봉.

다리 가운데서 우뚝 멈춰 선다.

비에 젖어 떨어진 그림들을 줍고 있는 순동의 뒷모습이 보인다.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는 순동.

수현과 봉을 발견한다.

품안에 젖은 그림들을 잔뜩 그러모은 채 수현을 바라보는 순동.

순간, 울컥 참았던 눈물이 터진다.

그러다 점점 소리 내어 크게 울기 시작한다.

떨어진 그림 때문인지, 수현을 찾았다는 안도감인지 알 수 없는

울음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러자 수현도 울기 시작한다.

순동과 수현이 울자 봉도 따라 울기 시작한다.

그렇게 퍼붓는 빗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엉엉 우는 셋.

그들 너머로 순동부와 순동모가 어둠 속에서 뛰어오는 게 보인다.

수현:(E) 그때 참 많이도 울었었지.

S#75. 영도다리 밑 길 / 현재, 낮

놀라 돌아보는 순동.

눈앞에 백발만 성성할 뿐 고운 자태가 흐르는 늙은 수현(72)이 서 있다.

벌떡 일어나 뛰어가는 소녀.

소녀:할머니.

수현:(소녀를 품에 안으며) 잃어버린 줄 알고 한참 찾았잖아, 욘석아.

다시 순동을 바라보는 수현.

순동, 가만히 수현을 바라보다 믿지 못하겠다는 듯,

순동:니...

수현:(웃으며) 많이 늙었네.

순동:니 참말로... 수현이가?

수현:이럴 땐 뭐라 해야 하나... 그동안 잘 살았냐 물어봐야 하나?

순동:... 니 참말로 수현이 맞나? 현수현이?

수현:(말투 따라하며) 니는 순동이 맞나? 감순동이?

순동:... ! ... 참말이네... 이기 먼 일이고...

수현:거자필반이라 하더니 이렇게 또 보네 그려.

웃으며 순동을 보는 수현.

놀란 얼굴이 점점 웃음으로 번지는 순동.

그렇게 마주 보는 둘 너머로 저만치 바다 위를 가로질러 길게 뻗은

영도다리가 보인다.

순동:(E) 내가 고맙다는 얘기 했나?

순동:(E) 갑자기 그기 먼 소리고?

노모:(E) 내가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건 다 니 덕분이었어. 니 그림

덕분에 엄마를 찾을 수 있었으니까... 정말 고마웠어.

순동:(E) 됐다. 육십 년도 더 된 얘기 갖고 쑥스럽게...

S#76. 영도다리 위 / 1952년

텅 빈 다리.

양쪽 난간에 줄지어 붙어 있는 수많은 수현의 초상만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그 다리 가운데 서 있는 수현.

저만치 맞은편에 수현의 엄마가 손에 초상화를 들고는 수현을 마주보고

서 있다.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바라보는 두 모녀 위로,

수현:(E) 정말 영도다리는 헤어졌던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하는 힘이 있는

거 같아. 육십 년 전엔 엄마를 만났고... 오늘은 너를 만나고...

순동:(E) 니 손녀도 찾았제.

노모:(E) 죽어서도 잊을 수 없는 곳이야... 이곳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