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플라스틱의 습격, 바다의 비명

해양 쓰레기 가운데 80%는
플라스틱 쓰레기다.

해양 오염은 사실 플라스틱과의 전쟁.
지금도 전 세계 바다로 약 800만t의 플라스틱이 유입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연간 6만7000t의
플라스틱이 해양 유입되는 상황.

이대로 가다간 80년 뒤에는
부산 울산 경남을 포함해 국내 연안
82%는 ‘플라스틱 바다’로 변한다.

지난 8월 부산 가덕도의 자갈해변.

양식장용 스티로폼 부표가 잘디 잘게 쪼개져 눈이 내린 것 마냥 해안가를 덮고 있었다. 페트병·마스크·일회용 숟가락부터 어업용 밧줄까지 쓰레기 더미가 산을 이뤘다.
취재진이 한 시간 동안 수거한 쓰레기의 80%는 플라스틱.
부산 강서구청 의뢰로 쓰레기를 수거하는 이균현 작업반장은 “하루 이틀 치우고 돌아서면 다음날 또 산처럼 쌓인다”고 말했다.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메고 탐사한 경남 통영 사량도 앞바다 풍경도 비슷했다. 바닥에는 폐그물·통발이 가득했다. 마스크나 부표가 떼를 지어 떠다니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이보다 한달 앞선 경남 거제시의 흥남해수욕장. 스티로폼 알갱이는 여기서도 휘날렸다. 양식장에서 사용하는 스티로폼 부표가 쪼개져 떠밀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취재진은 이날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남해연구소 연구진과 함께 가로·세로 50cm에 깊이 2.5cm깊이의 모래를 삽으로 떠서 5㎜와 1㎜ 체를 겹쳐 걸러봤다. 체질을 하자 1~5㎜크기의 미세플라스틱이 두 줌 정도 나왔다. 홍상희 KIOST 연구원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양만 이렇다. 추가 처리를 거쳐 확인할 수 있는 미세플라스틱까지 합치면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부산의 대형마트에서 구입한 조개류의 미세플라스틱 함유량 분석을 의뢰하자 심원준 KIOST 연구원이 두툼한 책 한 권을 꺼냈다. 제목은 ‘해양 미세플라스틱에 의한 환경위해성 평가 최종보고서’. 해양수산부의 용역을 받아 수행한 연구용역 결과물이다.
“2016년부터 올해까지 6년간 해양생물의 미세플라스틱 검출률을 검사했더니 바지락·어류(6종)과 바닷새(11종)에서 각각 100%와 42.1%가 나왔습니다. 성인 수산물 섭취량에 대입하면 1인당 연간 1312개의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실시한 ‘수산물 체내 잔류미세플라스틱 모니터링 및 인체노출량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노량진시장(서울)·자갈치시장(부산)·서부농수산물 도매시장(광주)에서 구입한 국내산 수산물 27개 품목과 수입산 22개 품목의 미세플라스틱 검출 빈도는 각각 98.7%와 95.5%를 기록했다. 국내산 천일염 5개 품목에서도 모두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 미세플라스틱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여전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세포막을 통과해 신체기관에 염증을 유발하거나 함유된 독성물질이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심 연구원은 “풍화와 마모를 통해 잘게 쪼개진 플라스틱은 결과적으로 우리 식탁에 오른다. 이대로 가다간 2100년에는 일주일에 신용카드 50장 분량의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나라의 연간 해양 쓰레기 발생량 14만5000t 중 플라스틱은 80% 수준인 6만7000t. 지난해 수거된 해양 쓰레기는 13만8362t으로 2015년(6만9129t) 대비 200% 이상 증가했다. 500년이 넘어도 완전 분해되지 않는 ‘욕망의 쓰레기’는 어디서 유입됐을까.

01플라스틱 섬

‘폐플라스틱 역습’에 부울경 비명 ...
수거 예산 11년째 그대로

지난달 중순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아시아 최대 철새도래지인 부산 사하구 을숙도 남단 갈대숲. 취재진을 가장 먼저 맞은 것은 ‘천연 기념물 제179호 낙동강 하류 보호 안내문’에 걸린 커다란 폐그물. 가까이 다가가자 폐그물 사이에 숨어있던 게 수십 마리가 달아났다. 몇 마리는 그물에 걸려 버둥거렸다. 흙 속에 파묻힌 폐그물은 두 사람이 들어 올리기도 힘들 만큼 무거웠다. 습지로 한 걸음 다가서자 처절한 속살이 드러났다. 바닥은 말 그대로 쓰레기장. 생수병· 라면봉지·스티로폼·로프에 플라스틱 용기까지 생활쓰레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한켠엔 양식장에서 사용하는 어류 영양제 빈통 20여 개가 방치돼 있었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쓰레기가 발에 걸렸다.

취재진을 가장 먼저 맞은 것은 ‘천연기념물 제179호 낙동강하류 보호 안내문’에 걸린 커다란 폐그물.

을숙도는 450㎞ 낙동강의 끄트머리. 을숙도를 마지막으로 바다와 만난다. 강원도 황지에서 수백km를 여행하는 동안 인간이 배출한 쓰레기까지 품고 을숙도에 도착한 것이다. 동행한 환경단체 ‘초록생활’ 백해주 대표는 “생활쓰레기는 물론 어민들이 버린 폐그물과 어구가 낙동강 하구까지 떼밀려와 갈대숲 전체를 덮었다. 먹이를 잡으려다 폐그물에 걸려 죽는 새를 수없이 봤다. 국내 최고 철새 도래지인 낙동강의 현주소” 라고 탄식했다.

수거되지 못한 플라스틱 쓰레기는 그대로 바다까지 흘러 들어간다. 해상을 떠돌던 바다 쓰레기와 만나 거대한 섬을 만들기도 한다. 동남권신공항 예정지인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동 새바지 해안이 그 현장이다. 지난달 태풍 ‘루핏’이 할퀴고 간 새바지 해변은 그야말로 ‘플라스틱 섬’이었다. 500m 남짓한 자갈해변 전체에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페트병은 기본이고 일회용 접시에 냉장고 문짝까지 눈에 띄었다.

부산·경남의 양식장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스티로폼 부표도 수십 개 발견됐다. 자갈을 들어내자 바람과 파도에 잘디 잘게 쪼개진 스티로폼 알갱이가 모래에 파묻혀 있었다. 50ℓ 마대를 들고 플라스틱 쓰레기를 주웠더니 꽉 채우는데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가덕도를 포함해 부산 강서구청이 한 해 수거하는 하천·해변쓰레기는 1만 여t.

강서구 강병욱 수산관리계장은 “평소 낙동강을 따라 흘러온 쓰레기와 바다에 떠다니던 쓰레기가 태풍이나 강풍을 만나면 해변으로 밀려온다. 치우고 돌아서면 며칠 뒤에 또 쌓인다. 자갈해변엔 중장비도 들어올 수 없어 일일이 수작업을 해야한다. 오전 내내 치워도 30%를 못 치웠다” 고 토로했다.

지난달 태풍 ‘루핏’이 할퀴고 간 새바지 해변은
그야말로 ‘플라스틱 섬’이었다.

해양수산부의 제3차 해양 쓰레기 관리 기본계획(2019~2023년)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해양 폐기물 발생량은 총 14만5000t. 초목류를 제외한 8만4000t 가운데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가 6만7000t으로 80%를 차지한다. 쓰레기의 유입 경로는 육상 40%와 해상 60%. 하천과 해상이 만나는 부산·경남은 플라스틱 쓰레기의 집결지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연간 해양 폐기물 발생량

해양 쓰레기 모니터링 유형별 비율

85%

해양 쓰레기가 가장 많이 수거된 5개 시도

해양환경공단 해양환경정보포털이 집계한 ‘2008~2020년 해양쓰레 기가 가장 많이 수거된 5개 시도’에 부산 경남이 포함된다. 영국 맨체스터대 연구진도 2018년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영국 머지강과 인천·경기 해안에 이어 낙동강 하류가 세계에서 미세플라스 틱 농도가 세 번째로 높다고 밝혔다.

국내 5대강의 미세플라스틱 연간 해양유입량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도 국내 5대 강 가운데 낙동강을 통한 미세플라스틱의 해양 유입량을 연간 약 9조5000억 개(54t)로 추산 한다. 한강(29조7000억 개·168t)에 이어 두 번째다.

심원준 KIOST 책임연구원은 “낙동강 유역은 인구 밀도가 높을 뿐 아니라 산업시설도 밀집돼 있어 배출량이 많다. 더구나 낙동강 하류는 갇힌 구조가 아니라 바다로 열린 구조여서 쓰레기가 확산하는 통로”라고 말했다.

낙동강 쓰레기는 부산 몫?

플라스틱 쓰레기 감축을 위해서는 플라스틱 생애 주기 관리와 함께 해양 유입 전 수거가 필수적이다. 부산에서도 2009년부터 ‘낙동강 유역 하천·하구 쓰레기 정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2014~2020년 부산시가 낙동강 정화 사업으로 수거한 쓰레기 양은 2만9095t. 경남 거제시가 실시한 ‘낙동강 해양 쓰레기 유입경로 실태조사 및 대처 방안’ 조사에 따르면 2011년부터 거제 동북부 해안에 8000t의 쓰레기가 밀려 들어와 관광·수산업 부분만 150억 원이 넘는 피해를 입었다. 여기에 기수역 복원을 위한 낙동강 하굿둑 개방 사업과 코로나19에 따른 플라스틱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사전 수거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반면 예산은 그대로다. 올해 부산시의 해양 쓰레기 수거 예산은 42억7800만 원. 국비 40%·시비 36%·낙동강수계관리기금 24%로 이뤄져 있다. 이 중 국비 비중은 2010년 50%에서 40%로 낮춰진 뒤 11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적은 예산 탓에 226㎢에 이르는 부산 해안선의 쓰레기를 수거하는 상시 인력은 100여 명에 불과하다. 사각지대가 생기거나 접근이 어려운 곳은 쓰레기가 장기간 방치되는 이유다. 실제로 최근 부산시는 118t 짜리 쓰레기 수거선 청항선이 들어가지 못하는 수심이 얕은 해역을 청소하기 위해 소형 어선 10여 대를 동원하려다 한 달 임대료 7000만 원을 마련하지 못해 포기했다. 집중호우나 태풍이라도 오는 경우에는 더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데 부산시 재원만으로는 한계가 많다. 지난해 태풍 마이삭·파이선으로 다대포해수욕장 일대에 쌓인 3000t 가량의 쓰레기를 치우는데 14억 원이나 소요됐다. 국비 절반을 제외한 나머지는 부산시와 사하구가 지불했다.

해양 쓰레기는 운반과 처리 비용도 만만치 않다. 운반선 임차는 물론 소금기를 머금은 쓰레기를 위탁처리하려면 t당 30만 원이 들기 때문이다. 부산시는 환경부와 기획재정부를 대상으로 국비 비율을 70%로 상향하라고 줄기차게 건의하고 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낙동강은 부산 뿐만 아니라 국토의 23%를 차지하는 국가 하천이다. 해양 쓰레기의 심각성이 세계적으로 대두되는 만큼 정부가 예산 증액을 고려해야 한다. 낙동강 상류에는 쓰레기 차단시설 설치도 필요하다” 고 말했다.

02부울경 앞바다 ‘위험’

해안가 폐플라스틱 관리 안하면
무영향농도 2.8배 초과

2100년이면 우리나라 연안의 82%가 미세플라스틱 무영향농도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이 해양수산부 의뢰로 2016년부터 수행한 ‘해양 미세플라스틱에 의한 환경위해성 평가 최종보고서’ 결과다. 무영향농도는 해양생물에 영향을 주는 기준. 연구진은 미세플라스틱 입자의 크기(20-300㎛)와 형태를 고려하고, 독성자료를 기반으로 무영향예측농도를 12n/L으로 측정했다. 1㎥당 미세플라스틱이 1만2000개 이하여야 영향이 없다는 뜻이다.

KIOST 연구진이 우리나라 9개 연안(인천·천수·함평·득량·광양·마산·부산·울산·영일) 96개 정점과 3개 외해역(황해·남해·동해) 22개 정점에서 해수를 채취해 미세플라스틱을 측정했더니 다행히 모두 12n/ℓ 이하로 나타났다. 현재는 미세플라스틱이 위험치를 넘지 않는 다는 뜻이다. 마산만(118개 중 5개 정점 평균 0.50n/L) 부산(6개 정점·0.44n/L) 울산만(5개 정점 0.67n/L)도 기준치 이하였다.

문제는 플라스틱 사용량과 폐기물 관리가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경우 2066년에는 연안의 10%와 외해 0.6%가 무영향예측농도를 초과한다 는 것이다. 2100년에는 연안 82%와 외해 22% 미세플라스틱에 오염 된다고 KIOST는 전망했다.

2100년 미세플라스틱 농도는 ▷부산 앞바다가 22n/ℓ ▷마산만 25n/ℓ ▷울산만 33.5n/ℓ로 추산됐다. 무영향농도를 최대 2.8배까지 초과하는 수치다. 연안이 오염되면 해수욕과 같은 일상적인 활동이 어려워진다. 해양생물을 섭취하는 인간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홍상희 KIOST 책임연구원은 “플라스틱 관리에 별다른 변화가 없으면 우리 후손들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플라스틱 저감 정책이 속도 있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 고 말했다.

국내 연안 미세플라스틱 무영향농도(현재)

  • 인천
    1.57
  • 천수
    0.29
  • 황해
    0.19
  • 함평
    0.38
  • 광양
    0.79
  • 득량
    0.43
  • 남해
    0.09
  • 마산
    0.50
  • 부산
    0.44
  • 울산
    0.67
  • 영일
    0.78
  • 동해
    0.52

국내 연안 미세플라스틱 무영향농도(2100년)

  • 인천
    78.5
  • 천수
    14.5
  • 황해
    9.5
  • 함평
    19
  • 광양
    39.5
  • 득량
    21.9
  • 남해
    4.5
  • 마산
    25
  • 부산
    22
  • 울산
    33.5
  • 영일
    39
  • 동해
    26
  • - 80- 60
  • - 40
  • - 20
  • - 0

해양 생물 미세플라스틱 검출율

바지락,어류(6종)

100%

굴,담치

96%

바닷새 (11종)

42.1%

바다거북 (4종)

83%

그렇다면 미세플라스틱의 위해도는 어느 정도일까. 미세플라스틱은 5mm 미만의 유기합성수지를 뜻한다. 생성 과정에 따라 처음부터 작은 크기로 제조된 1차 미세플라스틱과 사용 중 혹은 자연에서 풍화된 2차 플라스틱으로 나뉜다. 미세플라스틱이 생물에 끼치는 영향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물리적 위험이다. 미세플라스틱이 체내에 들어가면 생식·면역 기능 장애나 장폐색과 같은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 화학적 위험도 도사린다. 각종 오염 물질의 ‘칵테일’이기 때문. 플라스틱은 생산 과정에서 성능을 향상을 위해 다양한 화학물질이 추가된다.

KIOST가 경남 거제 흥남해수욕장에서 19개 종 43개 해양플라스틱 쓰레기를 수집해 분석했더니 ▷독성이 보고된 염소화탄산수소 ▷2007년부터 일본에서 생산·사용·수입이 금지된 광안정제 UV 320 ▷내분비계 교란물질 중 하나인 프탈레이트 등 231종의 화학물질이 검출됐다.

이미 많은 생물의 체내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고 있다. KIOST가 국내 연안 12개 정점 에서 채취한 굴·담치와 6개 정점에서 채취한 바지락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대부분 검출됐다. 굴·담치 96%와 바지락 100% 비율이었다. 미세플라스틱의 평균 농도는 1g 당 굴·담치 0.33개, 바지락 0.43개였다. 시중에 유통되는 이매패류에서도 미세플라스틱 이 발견된다. 어류 역시 마찬가지. KIOST가 경남 거제와 창원 마산 해역에서 잡은 어류 6종 200여 마리를 조사한 결과 모든 어종 체내에 서 미세플라스틱이 100% 발견됐다.

이 밖에도 많은 바다 생물이 플라스틱을 섭취한다. 특히 먹이사슬의 상위 단계에 속하며 넓은 지역에서 섭식 활동을 하는 바닷새의 피해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바닷새는 종 별로 먹이 종류나 소화기관의 특징에 따라 플라스틱 섭식 빈도가 다를 수 있는데 KIOST가 국내에서 사체 형태로 수집한 바닷새 11종 가운데 5개 종에서 플라스틱 섭식이 확인됐다. 개체 수로 따지면 전체 387마리 중 163마리(42.1%)에서 확인됐다. 미세플라스틱과 크기가 유사한 플랑크톤이나 소형 갑각류를 섭취하는 데다 위 내용물을 역류하는 능력이 없는 바다제비는 소화기관에서 플라스틱이 발견된 비율이 97%에 이른다. 바닷새 5종이 섭식한 플라스틱은 주로 파편 조각이 대부분이었다.

국내 바다거북의 플라스틱 섭식 빈도는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에 해당한다.

플라스틱에 취약한 또 다른 해양 생물은 멸종위기에 처한 바다거북. 미세플라스틱은 거북의 소화관 장애를 유발해 영양실조를 일으켜 폐사에 이르게 한다. 특히 바다거북은 체내 구조상 토해낼 수 없어 플라스틱 섭식에 더욱 취약하다. KIOST는 국내 바다거북의 플라스틱 섭식 빈도가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에 해당한다고 확인했다. 전국에서 수집된 바다거북 폐사체 34마리를 수거한 결과 약 83%(28마리)에서 플라스틱 조각이 검출됐다. 빈도가 높은 종은 ▷푸른바다거북(100%) ▷붉은바다거북(81%) ▷올리브바다거북·장수거북(50%)순으로 나타났다. 해당 종을 포함한 전 세계 바다거북 7종의 플라스틱 섭취 빈도는 평균 32%다.

심원준 KIOST 남해연구소 연구원은 “해양생물이 플라스틱을 섭취하면 영양가가 없음에도 포만감이 생겨 다른 것을 섭취하지 않게 된다. 또 미세플라스틱은 입자가 매끄럽지 않은 비정형이 많아 내장을 손상시키고 몸속 관을 막는다. 그럼 자연히 성장률과 생식률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고 설명했다. 또한 “플라스틱에 잔류 혹은 흡착된 화학물질이 생물에 영향을 주는 것은 이미 실험으로 입증됐다” 고 말했다.

03청정해역은 없다

폐어구·부표 ‘죽음의 그물’...
먹이사슬 타고 밥상 덮친다

통영의 푸른 바다에 떠 있는 양식장의 하얀색 스티로폼 부자들은 기하학적인 패턴 때문에 어촌의 운치를 더한다. 그런데 한 걸음만 다가가면 ‘낭만 풍경’은 산산조각 난다. 햇빛과 파도에 부르트고 잘게 쪼개진 스티로폼 알갱이들이 바다를 떠다니다 해양생물의 뱃속으로 들어가기 때문. 양식용 부이(62ℓ) 한 개는 60만~70만 개의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다. 마이크로미터 단위까지 더 쪼개지면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다. 양식장 주변 바다 표층이 스티로폼에서 쪼개져 나온 알갱이로 거대한 막을 형성하는 이유다. 바닷속에선 방치된 폐어구들이 조류와 해류에 이리저리 떠밀려 마모되면서 쉴 새 없이 미세플라스틱을 만들어낸다.

양식용 부이(62ℓ) 한 개
60만~70만 개의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다.

사량도 연안 수중으로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에 쌓인 폐그물들이 보였다. 오랜 세월 방치된 폐그물은 형태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채 조류에 흐느적거린다. 바닷속에서 폐그물을 만난다는 것, 특히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곳에 방치된 폐그물은 위협적이다. ‘앗차!’ 하는 순간 그물에 몸이 뒤엉켜 버릴 수 있다. 바닥면에 몸을 붙이고 퇴로를 확보한 채 조심스레 그물을 들추자 그물에 엉킨 채 부패한 어류들이 눈에 들어왔다. 죽은 어류들을 포식하기 위해 모여든 다른 물고기나 저서성 해양동물 역시 그물에 걸리면서 죽음의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 이를 두고 유령어업이라 한다.

버려진 폐그물은 오랜 세월 바닷속에 방치되면서 상당 부분 마모된다. ‘질량보존의 법칙’은 바닷속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플라스틱 재질의 폐그물은 마모된 양만큼 잘게 쪼개져 미세플라스틱 형태로 바다로 흩어져 나간다. 양식장 부자와 바닷속에 가라앉은 폐어구에서 잘게 쪼개지거나 마모되어 나간 조각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잘게 쪼개진다. 바다생물이 흡수한 미세플라스 틱은 분해되지 않은 채 축적돼 고스란히 우리 식탁에 오른다.

폐그물은 형태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채 조류에 흐느적 거린다.

얼마나 많은 폐어구들이 바속에 가라 앉아 있을까.

국립수산과학원의 ‘동·서·남해안 실태조사’에 의하면 연안통발과 자망어구는 연간 사용량의 50%, 근해통발과 자망어구는 20~30%가 바다에서 유실된다. 어림잡아 연간 5000t 이상이 되는 엄청난 양이다. 국가 해안쓰레기 모니터링(2018~2021)을 살펴보면 스티로폼 부표 비율이 해양 쓰레기의 27.2%를 차지한다. 양식업이 활발한 경남에서도 스티로폼 부표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

쉽게 부서지는 부표는 미세플라스틱의 주요 발생원이다. 독성 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환경 오염원으로 꼽힌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의 ‘경남 굴 양식장 스티로폼 부자 쓰레기의 발생량 추정과 저감 방안’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경남 굴 양식장에서 발생한 스티로폼 부자 쓰레기가 연간 66만7922개에 달했다. 전국적으로는 지난해 말 기준 양식장 부표 5500만 개 중 스티로폼 재질은 72%인 3941만 개에 달한다.

김경신 KMI 연구원은 “양식장 쓰레기 처리는 어업인의 자발적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 강제적인 방법을 쓰기보다는 어구보증금제처럼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정책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고 말했다.

마스크 생산량 피크를 찍은 시기는 지난해 8월 4째 주.
2억7000만 개가 생산된 이후 최근까지 매주 1억 개 정도의 마스크가 유통된다.

설상가상. 코로나19는 바다를 더욱 심각한 위기로 몰아간다. 비대면 활동의 증가로 배달음식 및 일회용품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강이나 바다로 유입되는 생활쓰레기가 늘어난 데다 일상이 된 마스크 사용량 증가는 미세플라스틱 사용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린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마스크 생산량 피크를 찍은 시기는 지난해 8월 4째 주. 2억7000만 개가 생산된 이후 최근까지 매주 1억 개 정도의 마스크가 유통된다.

시급한 폐어구·부표 관리

어구는 누가 쓰고 버렸는지 알 수도 없어 단속이 쉽지 않다. 어구 생산부터 소비·회수·폐기·재활용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5월 ‘제1차 해양폐기물 및 해양오염퇴적물 관리 기본계획(2021-2030)’에 어구 관리 방안을 담았다.

주요 내용을 보면 ▷체계적 어구 관리를 위해 생산·판매 기록을 보존하고 부정 영업을 막는 ‘생산·판매업 신설’ ▷일정기간 동안 특정 구역의 어업을 제한한 뒤 폐어구를 집중 수거하는 ‘어구 일제회수제’ ▷어구 과다사용 방지를 위해 판매량 등을 제한할 수 있는 ‘어구 관련 실태조사’ ▷어구 소유자를 표시하는 ‘어구 실명제’가 담겼다. 폐어구를 반납하면 보증금을 제공하는 어구부표 보증금제도 도입될 예정이다.

국내 연간 플라스틱 쓰레기 발생량

플라스틱 쓰레기발생량 : 총 67,000t

어구 연간 적정 사용량

어구 연간 적정 사용량 : 37,600t

이러한 방안이 실제로 이뤄지려면 입법화가 시급하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해양 폐기물 관련 법률은 모두 5건. 이 중 더불어민주당 어기구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해양폐기물관리위원회 신설 관련 법률 개정안 1건만 현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태다.

민주당 김영진 의원이 지난 2월 대표 발의한 ‘수산업법 개정안’은 해수부의 제1차 해양폐기물 기본계획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나 아직 통과되지 못했다. 2016년 발의된 비슷한 내용의 어구관리법은 어민들 반발에 부딪혀 20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폐기됐다. 어구부표 보증금제 근거 마련을 위한 해양폐기물관리법 개정은 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지난 7월 대표 발의해 시행까지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어구관리법처럼 관련 법안이 묻히지 않기 위해서는 어민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세밀한 정책 수립과 기술 개발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어구도 자산이기 때문에 어민들이 일부러 유실하려 하는 것은 아니다. 친환경 부표는 기존 부표보다 비싼 경우도 있어 보조금을 준다 해도 망설이는 어민이 많다”“이런 상황을 반영해 더욱 적극적인 어구 개발과 보급이 필요해 보인다” 고 설명했다.

어구·부표보증금제를 추진 중인 해수부 최성용 해양보전과장은 “해양폐기물관리법 및 하위 법령 개정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어민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설문조사를 통해 폐어구 문제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된 것을 확인한 만큼 지속적인 의견 수렴 과정을 통해 합리적 제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2025년까지 친환경 부표로 100% 대체...
부산선 ‘드론 모니터링’ 시범사업

정부는 지난해 12월 생활폐기물 탈 플라스틱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30년까지 플라스틱 30%를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전환하고 2050년까지 생활플라스틱을 제로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에 따라 플라스틱을 포함해 해양에 유입·투기·방치된 쓰레기 처리의 체계화가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다양한 연구와 기술을 해양 쓰레기 문제에 접목하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존 생분해성 그물보다 강도와 유연성이 향상된 고품질 생분해성 그물이 개발돼 올해부터 현장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생분해성 그물은 분해되지 않는 기존 나일론 그물과 달리 시간이 지나면 미생물에 의해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되는 그물이다. 수산과학원은 2005년 전 세계 최초로 석유에서 추출한 고분자 화합물 원료 PBS(폴리부틸렌석시네이트)로 만든 생분해성 그물 개발에 성공한 뒤 2007년부터 대게 자망을 시작했다. 그러나 PBS로 만든 그물은 대게 어업에는 적합했으나 유연도나 강도가 낮아 다른 어종 어획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현장 보급이 원활하지 않았다. 수산과학원은 2016년부터 민관협력으로 새로운 원료 PBEAS를 개발해 그물 제작과 시험 조업에 성공했다. 새로 개발한 생분해성 그물은 기존보다 강도 10%, 유연성 20%가 향상됐으며 원가도 5%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앞으로는 부진했던 생분해성 그물 보급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진다.

부표의 경우 어구보다 다양한 제품이 존재한다. 전체의 72%를 차지하는 스티로폼 부표는 미세플라스틱의 주범인 만큼 해양수산부는 2015년부터 친환경부표 보급 지원을 시작했다. 또 2025년까지 친환경부표로 완전 대체한다는 계획을 세우면서 친환경 부표를 찾는 어민이 점차 늘고 있다. 이에 따라 보조금 등 관련 예산이 지난해 200억 원에서 571억 원으로 늘었다. 친환경 부표는 재질, 부유 방식 등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한다. 스티로폼 부표라 불리는 일반 발포스티렌(EPS)부표보다 강한 고분자 스티로폼 부표부터 내구성이 강화된 플라스틱, 알루미늄, 에어셀 부표 등이 있다.

해수부 이광호 양식산업과 사무관은 “초기 친환경 부표의 경우 비싸고 내구성이 약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발전된 제품들이 나왔다. 현재 64개 업체가 인증을 받아 460여 개 종류의 부표를 생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