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강 낙동강 수필 공모전 장려상목록으로
너를 만나러 가는 길엔 강이 흘렀지
김경준서편에 강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물결 위로 내려앉는 저녁놀은 일상적인 풍경이다. 하지만 인생 굽이에서 마주친 강변 노을은 그 순간을 강렬한 주홍빛으로, 찬란한 금빛으로 채색한다. 그렇게 물든 기억은 늦가을 감나무 가지에 달린 마지막 홍시들처럼 우리와 함께 여물고 물러져 간다.
아내는 결혼 전까지 하단에서 살았다. 임신테스트기에 나타난 선명한 두 줄을 봤을 때, 아내가 친정 근처 산부인과를 떠올린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처형이 출산한 병원이었다. 나긋한 목소리에 호리호리한 체구의 원장선생님이 두 살 터울로 태어난 세 조카를 모두 받았다고 했다.
구서동 신혼집에서 병원까지 지하철을 타면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한 달에 한두 번, 임신한 몸으로 다녀오기엔 부담스러운 거리였다. 나는 진료일마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운전대를 잡았다. 공기에 살얼음이 낀 것처럼 사늘해지던 12월, 여덟 달에 걸친 아기 맞이 드라이브가 시작됐다. 산성터널을 나와 강변대로를 타고 화명에서 낙동강 하굿둑까지 이어지는 코스였다.
구포철교가 시야에 들어올 즘 낙동강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전설 속 거대한 물고기의 비늘처럼 반짝이는 강의 표면으로 탁 트인 하늘이 포개졌다. 삼락생태공원으로 접어들면 강은 갈대 품으로 몸을 감췄다. 간간이, 숨겨놓은 보물처럼 빛나는 물길이 습지를 가로질렀다. 그러다 어느새 다시 강이 세상을 가득 메웠다. 종착지가 가까워지면 줄지어 선 거인들 같은 낙동강 하굿둑이 우리를 맞이했다.
오전 진료를 마치면 점심으로 남원식 추어탕을 먹었다. 그릇을 비울 때마다 아내의 배는 불러왔다. 청둥오리와 큰고니가 떠난 자리에는 제비가 찾아왔다. 가끔 흩뿌리던 진눈깨비 대신 낙동제방 벚꽃길에는 하얀 꽃잎이 휘날렸다. 햇살이 단단해진다 싶더니 장마가 시작됐다. 흙탕물로 변한 강은 공원 가로수 밑동까지 몸집을 불렸다. 와이퍼 속도를 최대로 해도 자꾸 빗물에 번지는 앞차 비상등 불빛을 따라가느라 등허리가 축축해졌다. 겨울과 봄, 여름의 변화무쌍한 계절 속에서 아기는 엄마 배가 비좁을 만큼 무럭무럭 자랐다.
“모레 입원하셔야 합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예정일은 2주 정도 남아있었다. 평소와 달리 오후에 병원을 찾은 날, 다른 산모들의 분만 일정이 겹쳐 대기하느라 진이 빠진 상태였다. 담당 의사는 아기가 더 커지면 자연분만이 힘들다고 했다. 간호사는 산모수첩을 펼쳐 입원 시 준비할 물품 목록을 설명했다.
병원을 나왔을 땐 근 반나절이 지나있었다. 말 그대로 하늘이 노래졌다. 아내는 퇴근 시간도 피할 겸 저녁을 먹고 가자고 했다. 메뉴는 역시 추어탕이었다. 밥이 좀처럼 넘어가지 않아 숟가락으로 애꿎은 시래기만 뒤적거렸다. 아내 쪽 뚝배기도 사정은 비슷했다. 어느덧 강 너머 산봉우리에 걸린 구름 조각이 후식으로 나온 곶감 수정과처럼 붉어졌다.
둘이서 돌아오는 마지막 길이었다. 코로나가 심해 남편도 조리원에 들어갈 수 없었다. 다음은 혼자서, 그리고 그다음은 꼭 셋이서. 기대와 걱정이 뒤얽힌 복잡한 침묵이 차 안을 채웠다. 아내 표정이 궁금해 신호 대기 중 조수석을 흘끔 돌아봤다. 아내의 시선은 강물 위 석양이 닦아놓은 금빛 길을 쫓고 있었다. 그 길이 어린 시절로 이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아내는 아련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내가 초등학교 1, 2학년이던 무렵의 일이다. 하루는 집에 왔는데 가방에 열쇠가 없었다. 아내는 옛날 복도식 아파트 현관문 옆에 쭈그려 앉아 엄마를 기다렸다. 이따금 까치발을 들고 난간 아래 주차장으로 자주색 세피아가 보이는지 살폈다. 엄마가 빨리 왔으면 싶다가도 한편으론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혼날까 봐 겁이 났다. 아웅다웅하던 두 마음은 하늘을 보자 잠잠해졌다. 노을빛이 아내 인생으로 처음 스며든 순간이었다. 그맘때 장모님은 뉘엿뉘엿 해가 지는 강변을 따라 사상에서 모라까지 차를 달리고 있었다. 사업가 기질을 타고난 장인어른은 자주 집을 비웠다. 어린 두 딸과 생계는 장모님 몫이었다. 장모님은 형부가 운영하는 철강 회사에서 경리로 일했다. 딸들이 눈에 밟혔을 젊은 엄마는 퇴근 시간을 기다렸다. 장모님은 낙조로 물드는 퇴근길 풍경이 어찌나 황홀하던지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고 한다.
칠월의 한가운데, 아이는 건강한 울음과 함께 우리를 찾아왔다. 작은 소녀는 엄마가 돼 불그스름한 딸을 품에 안았다. 조리원을 퇴소하던 날 우리는 셋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차에 아기 한 명 더 탔을 뿐인데 온 세상이 달라졌다. 굉음을 내며 달리는 화물차, 움푹 팬 도로,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뙤약볕. 아기가 작은 만큼 위험은 더 크게 느껴졌다. 몇 번을 오간 길인데도 식은땀이 났다. 강은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 우리 곁을 묵묵히 흘렀다. 너무도 당연한 자연의 섭리가 나를 안심시켰다.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낙동강을 보며 우리 가족의 첫 드라이브를 떠올린다. 엄마를 기다리던 딸의 마음과 딸을 만나러 가던 엄마의 들뜸이 지류가 되어 아기를 맞이하던 우리의 여름과 합쳐진다. 태백에서 안동을 돌아 대구를 거쳐 저 먼 하구까지, 사람들은 어떤 사연을 강물 위로 띄워 보냈을까. 저무는 풍경이 그토록 아름다운 까닭은 흘러가는 우리 인생 순간순간이 윤슬처럼 반짝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