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강 낙동강 수필 공모전 장려상목록으로
나의 첫 자가용
신정인그 자전거는 나의 첫 자가용이었다. 아버지는 중학교 입학 선물로 자전거를 사 주셨다. 보리 수매를 한 돈으로 사 오신 것이다. 기억 속의 아버지는 늘 낡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셨다. 새로 샀다고 해서 나가보면 타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중고 자전거가 마당에 있었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지도 못하는 나에게 새 자전거를 사 주신 것이다.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사람은 안장으로 올라가는 게 가장 어렵다. 옆에서 잡아주면 수월하게 올라갈 수 있지만 혼자 하려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나는 궁리 끝에 양동이를 이용하기로 했다. 대문에서 큰길까지 거리가 백미터 남짓, 그 길의 양 끝에 양동이를 엎어놓았다.
안장에 올라만 가니 어떻게 해서라도 바퀴를 굴릴 수가 있었다. 처음에는 발을 움직이기도 전에 넘어지기 일쑤였다. 길 양옆의 콩밭으로 쓰러지거나 논으로 구르기도 했다. 상처가 나는 것도 모르고 오로지 한 번이라도 더 페달을 밟아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일단 앞으로만 가니 내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키가 작아 다리를 땅에 닿고 내릴 수는 없고 적당한 곳에서 넘어졌다. 잠시 숨을 고르고 툴툴 털고 일어나서 자전거를 세우면 내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자전거를 배우는 나를 보던 동네아저씨는, 그렇게 해서 언제 제대로 타겠냐며 평생 못 타겠다고 기를 죽였다. 마음대로 자전거를 조정할 수 있게 되었을 무렵 그 아저씨를 만났다. 나는 보란 듯이 전속력으로 휙 스쳐가면서 소심한 복수를 했었다.
자전거를 잘 타게 되면서 삶의 질이 달라졌다. 토요일 오후는 드라이브를 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집에서 서쪽 방향으로 늘 갔다. 그곳은 서낙동강 둑이 있었다. 둑까지 가는 농로는 울퉁불퉁 경운기와 트럭이 지나간 자리가 패여 길은 엉망이었지만 괘념치 않았다. 뺨으로 스치는 바람에 아직 찬 기운이 있는 사월의 주말 오후. 논갈이를 시작하는 들판을 달리는 기분은 초록의 구름 위를 날아가는 것 같았다. 경운기 소리는 어떤 명곡보다 아름다운 소리로 들렸다. 코끝에 와 닿는 바람의 향기가 좋아 해가 넘어갈 때까지 둑을 오르내리며 노래도 부르고, 영어 단어도 외우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눈을 감으면 그 바람의 느낌과 멀고 가까운 곳에서 들리던 경운기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유난히 초여름의 바람을 좋아한다. 특히 강과 이웃한 길을 자동차로 드라이브하면서 느끼는 바람은 더 좋다. 첫 자가용을 타고 강둑에서 맞던 바람을 다시금 기억하게 해준다.
문학을 향한 꿈에 젖어 있던 사춘기 시절, 나의 감성을 키우고 어루만져 주던 강바람을 맞으면 세월에 찌들어 위축되어 있던 정서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는 것 같다. 이런 나에게 낙동강 강변을 달리는 것은 내 일상 최고의 호사이자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강은 삶의 터전이다.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었기도 했고, 나라의 근간이라는 농사를 짓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지금은 휴식과 힐링, 체력단련의 장소이기도 하다.
내가 보고 자란 강은 들녘을 기름지게 하는 김해평야의 젖줄이었다. 아버지의 부지런함과 어머니의 알뜰함은 낙동강의 영양분과 어우러져 매년 풍년의 기쁨을 누렸다. 가마니 숫자를 세는 아버지의 얼굴에 웃음이 피고 유쾌한 목소리가 높아 가면 가족들은 덩달아 신이 났다.
그런데 지금은 그 땅이 공사장이 되었다. 이러쿵저러쿵 개발에 대한 낭설들이 떠돌더니 결국은 거대한 주거 단지로 탈바꿈을 할 준비를 하고 있다. 마루에서 바라보던 끝이 아득했던 논들도 이제는 볼 수가 없다. 갈잎 소리를 들으면서 목청껏 노래 부르던 강둑도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외가에 추억이 많은 아들은 좌표를 찍어두었다며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기다려 보자고 한다. 그러나 나는 고급 아파트가 기대되지는 않는다. 나무 좋아하던 엄마가, 사철나무를 꺾꽂이해서 울타리 만들어 놓은 옛집이 그리울 뿐이다.
빠르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의 과도기에 우리는 서 있다. 이제는 변화하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능동적으로 적응하면서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
낙동강도 과도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으로 인한 난관들이 있지만 이 또한 극복해야할 시대적 과제라 생각한다. 환경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부각되고 있고, 보존되어야 하는 자연환경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낙동강 천리길은 굽이굽이 비경을 뽐내며 관광과 레저의 중심에 서는 날이 곧 오리라 생각한다.
나는 운명처럼 낙동강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아직 자전거로 낙동강 주변 자전거하이킹을 해보지 못했다. 꼭 한번 해 보고 싶다. 아버지가 사 주신 자전거는 다시 타지 못하겠지. 그러나 사춘기 시절의 자그마한 가시나, 나를 잠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세상 고민을 다 안고 살았던 사춘기였다, 그러나 너 참 예뻤다고 말해주고 싶다. 서낙동강, 내가 자란 동네의 둑길로 가고 싶다. 그 시절 다정하게 지냈던 사람들이 몹시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