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생명의 강 낙동강 수필공모전

생명의 강 낙동강 수필 공모전 대상목록으로

당신의 생명은 동쪽으로 흐른다

최형만

나이를 먹으면 추억이 많은 사람이 행복하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당장은 고통스러워도 시간이 흐르면 그조차 그리운 법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리움이 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일까. 저마다 감당해야 할 몫이 시간만은 아니라는 걸 나는 어머니를 보면서 배웠다. 아흔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척추 수술 후유증으로 심신이 쇠약해진 탓에 이제는 거동도 많이 불편하시다. 그런 어머니가 낙동강 전투 전승 기념행사가 열리면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거였다.

순간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은 서로의 귀를 의심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집에서 낙동강이라는 세 글자는 꽤 오랫동안 금기어로 통했기 때문이다. 가족 중 누구라도 그 이유에 대해 궁금할 법도 한데 우리는 그저 당신께 안 좋은 기억이 있겠거니 여겨왔다. 그러다 보니 TV에서 낙동강 이야기가 나올라치면 습관적으로 채널을 돌리기 일쑤였고, 특히 낙동강 전투에 얽힌 흑백 영상이 나오는 6.25전쟁 기념일에는 숫제 TV를 꺼버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렇게 당신의 기분이 염려되는 일을 피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낙동강’은 입에 담아선 안 되는 단어가 돼버렸다. 그러던 것이 대학 새내기 시절 낙동강으로 생태체험을 가게 됐을 때 당신이 짓던 표정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마치 내가 죽기라도 할 것처럼 느닷없이 소리를 지르며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여차여차 설명을 해도 당신은 막무가내였다. 낙동강이라면 한사코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그때 처음으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몇 년 후 친척 어른들이 다 모인 명절날에 보릿고개 시절 이야기가 나오더니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왔다. 지금은 돌아가신 외숙부가 손아래 누이였던 어머니의 첫사랑 이야기를 꺼낸 게 발단이었다. 어머니가 낙동강이라면 왜 그렇게 싫어했는지 우리는 그날에서야 비로소 알았다. 바로 당신의 첫사랑이 낙동강 전투에 학도병으로 참전해 사망했던 것이다.

외숙부의 말로는 홍역처럼 앓던 제 누이의 첫사랑이 얼마나 절절했는지 사망 소식이 날아든 며칠 뒤엔 숫제 따라 죽겠다며 난리를 피웠다고 한다. 우리는 너무나 오래된 옛날 일이라는 생각에 별생각 없이 큰소리로 웃고 말았다. 나는 그때 슬몃 바라본 당신의 얼굴에서 홍조를 띤 두 볼과 함께 항시 밝은 미소를 짓던 입술이 미세하게 일그러지던 걸 기억한다.

그랬던 어머니가 느닷없이 낙동강 전투 기념행사라니…. 처음엔 그냥 흘려들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예전에도 얼핏 그런 말을 했던 게 떠올랐다. 이제는 가까운 마실도 그렇지만 장거리 외출은 더 힘들 텐데 무슨 바람이 불은 걸까. 어쩌면 당신께 남은 날이 그리 많지 않다고 여겨서인가 싶어 마음 한쪽이 아려왔다. 내가 더 상심이 컸던 까닭은 낙동강 사연을 듣기 몇 해 전에 부산으로 출장을 갔다가 단순히 시간을 때우려 낙동강지구 전승 기념행사를 구경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칠곡군 왜관읍 시내 일원에서 진행된 시가행진이 어찌나 멋지던지 넋 놓고 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참전국 기수단 입장도 있었고 전투 재연도 있었는데 아마도 행사의 하이라이트여선지 많은 사람이 구경에만 그치지 않고 직접 참여하는 식으로 이뤄진 그야말로 축제분위기였다. 그때만 해도 학도병은 교과서에만 배웠기 때문에 실제로 참여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신기해하며 사진 찍기에 바빴던 기억이 난다.

왜관철교를 폭파하는 재연 행사가 이어지고 학도병을 실은 군용트럭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저마다 환호성을 질렀었다. 당시처럼 검정 교복을 입은 채 모조 총을 든 학도병들은 각종 응원가를 불렀는데 나 역시 전투 재연행사를 보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마치 오래전 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 만큼 시각적으로나 음향효과적인 면에서 실제상황으로 보일 만큼 인상적이었다. 그 모든 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음에도 나는 단 한 번도 그들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마음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로만 즐겼던 것이다.

낙동강을 지키느라 숨죽이며 그 밤을 건넜을 어린 목숨들, 모든 게 꿈인 듯 잊히고 이제는 건들건들 부는 바람에도 꽃을 피우고 새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창공을 날아갈 것이다. 노을 속에서 더 붉어지는 낙동강, 앳된 사랑을 앗아간 낙동강이 당신에게 아름답게 보일 리는 만무했을 것이다. 어쩌면 당신의 팔월은 먹먹하게 견뎌온 폐허의 강심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징표가 아니었을까.

본래 낙동강의 명칭은 가락(駕洛)의 동쪽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가락은 삼국시대 가락국의 땅이었던 상주시를 말하므로 낙동강은 ‘상주의 동쪽으로 흐르는 강’일 것이다. 늦었지만 팬데믹이 끝나면 가까운 날에 어머니를 모시고 오랜 시간 외면한 당신의 동쪽을 가보려 한다. 그리하여 반세기도 넘게 멈춰버린 당신의 물줄기에도 숨을 불어넣어 주려 한다. 그때라야 당신의 생명도 동쪽으로 흐를 테니까. 천삼백 리 여정을 지난 물줄기는 오늘도 변함없이 흘러갈 것이다. 꿈틀거리다 사그라진 그 모든 생명을 안고.

생명의 강 낙동강 수필 공모전 수상작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