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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다시 날개 펼칠 새벽은 온다 /정일근

  • 정일권 시인·경남대석좌교수
  •  |   입력 : 2021-01-26 19:40:21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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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여(如如)하신지요’라고 묻기 힘든 시절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우리에게 장기전을 펼치는 ‘코로나19’ 현실은 창살 없는 감옥입니다. 일선의 방역·치료 의료진을 비롯해 치료 중인 확진자, 음성인지 양성인지 맘 졸이며 대기 중인 자가 격리자 등은 물론 모든 국민이 그 감옥에 갇힌 신세입니다. 이렇게 긴 단절의 시간을 경험한 적이 없기에 더욱 더 답답합니다. 답답하다고 포기할 수 없는, 살아가야 할 삶이 있기에 살얼음판 위를 걷듯 하루하루를 조심조심 견디고 있습니다. 누가 만나자고 하면 반가움보다 걱정이 먼저 찾아오는 것이 현실입니다.

2021년의 최다유행어는 ‘혼-’이란 말이 될 것 같습니다. 혼밥, 혼술, 혼행 등의 유행어가 시사 하듯이 혼자서 행동하고 움직이는 사람이 시간이 흐를수록 많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지금은 그 오래된 명제를 잠시 유보하기로 합시다.

이제는 마스크를 쓰고, 비누로 손을 씻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먼 길을 혼자 걸어가는 ‘외로운 동물’일 뿐입니다. 사회가 ‘헤쳐!’란 명령 뒤에 긴 시간 지나간 어느 날 다시 ‘모여!’라는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 우리는 혼자일 때 ‘가장 안전한 동물’입니다.

부탁하노니, 부디 자신에게 익숙해지시길. 이건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힘들기 짝이 없다는 ‘사하라 사막 마라톤’과 같은 고행의 순례일지 모릅니다. VR AI 폰 비디오 오디오 등 우리 주위에 혼자서 즐길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존재해서 감사합니다만.

반면 저에게 이 시간의 교훈은 우리를 ‘나무의 책’으로 돌아가게 하는 기회를 준 것 같습니다. 요즘 책을 꺼내드는 시간이 많아져 고맙습니다. 종이의 질감에서 나무가 오고 숲이 옵니다. 책을 읽다보면 나무와 숲이 전하는 위로를 받습니다. 마치 쉬지 않고 뿜어내는 피톤치드와 같은.

요즘 제가 독락(獨樂)하는 일이 ‘동백’과 흔히 천리향이라 불리는 ‘서향’의 꽃망울을 관찰하고 사진과 글로 기록하는 일입니다. 제가 잠시 거처하는 집과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으로 이웃한 집 마당에 동백나무와 서향나무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있는데 경쟁하듯 서로의 꽃망울을 밀어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동백(冬柏)은 나무에 들어간 겨울 동(冬)자를 자랑하듯 얼마 전 ‘북극한파’ 엄동추위에 당당하게 맞서 방울토마토 크기만한 꽃망울에 붉은 빛을 띠었습니다. 동백꽃은 우리에게 익숙해서 꽃이 오는 시간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이번에 관찰을 통해 꽃이 오는 길을 지켜보았습니다.

방울토마토만한 꽃망울이지만, 그 속에 빨간 꽃송이 5~7장이 서로 감싸고 있습니다. 꽃을 받치는 꽃받침 잎이 5장, 흰색의 수술대, 노란 꽃밥이 숨어 숨 쉬고 있습니다. 꽃을 품은 그 힘으로 북풍한설의 추위와 사람의 귀때기가 꽁꽁 얼어붙는 영하의 날씨를 온몸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요즘 저는 부쩍 ‘동백찬양론자’가 되고 있습니다. 동백 곁을 오가며 인사를 건넵니다. ‘반려견’이 있듯 ‘반려식물’이 있다 합니다. 요즘 동백은, 코로나19 기간의 제 반려식물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책 ‘식물의 사생활’이 기억납니다. 반려식물의 친구가 되기 위해 다시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

이런 ‘병란’(病亂)에 우리 국토의 남쪽 31%가 산지라는 것이 큰 위안이 됩니다. 조용히 숨어들 숲이 있고, 혼자 걸어갈 산길이 있고, 가슴을 활짝 펼칠 산정이 있다는 것 역시 큰 위안입니다. 이건 창살 없는 감옥 속에 ‘비상구’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 비상구는 바다로도 이어지니 얼마나 축복인지요.

요즘 혼캠(솔캠)도 좋은 약입니다.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작은 텐트를 치고 밤에는 별을 보는 일은 약 중에서 보약 같습니다. 커피 한 잔이 더해지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그동안 저와 같은 베이비부머는 얼마나 바쁘게 살았습니까? 가끔은 혼자가 되는 연습이 필요한 시간이니 권하고 싶습니다.

어려운 때에 호사라고 지적한다면 반박하지 않겠습니다. 이건 여유의 문제가 아니라 감성의 문제입니다. 그동안 외면하고 살아온 것에 애정을 가져보자는 말입니다. 라디오 별 등불 연필 공책 등에 다시 사랑을 나눠주며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저는 산다고 격조해진 친구에게 연필로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밤이 깊어진 숲과 나무는 새들의 거처입니다. 날개를 접은 새가 내일을 꿈꾸듯, 우리 잠시 힘들다 해도 꿈은 포기하지 맙시다. 아직 날아가야 할 세상은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시인·경남대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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