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계올림픽과 러시아월드컵·아시안게임에 이어 올해 마지막 빅이벤트인 전국체육대회가 18일 폐막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 조선체육회가 개최한 제1회 조선야구대회가 전국체육대회의 기원이다. 엘리트 스포츠의 성장은 1988 서울올림픽이나 2002 부산아시안게임 성공 개최의 밑거름이 됐다.

최근엔 체육 정책의 무게 중심이 생활체육으로 이동 중이다. 1차 원인은 학령기 인구 감소에 따른 엘리트 선수층의 부족이다. 아이 한 명을 둔 학부모 상당수는 자녀가 운동선수가 되길 원치 않는다.

또 하나는 ‘공정’이라는 시대정신이다. 체육특기자에 대한 입시·학사관리 특혜가 드러나자 국민은 분노했다. 전문가들은 학사관리 시스템 개선과 스포츠 클럽 활성화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운동‘만’ 하는 선수가 아니라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육성해야 한다는 의미다.

미국은 대학스포츠연맹·고교체육연맹 모두 교과 성적이 미흡한 선수의 공식경기 출전을 제한한다. 일본의 중등체육연맹과 고교체육연맹도 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스포츠 활동을 금지한다. 일본의 인기 만화 ‘슬램덩크’에선 주인공 강백호가 농구대회에 출전하려고 밤새 공부하는 장면이 나온다.

독일은 생활체육을 통해 국가대표를 발굴하는 대표적인 나라다. 우리보다 10년 앞선 2006년 엘리트(독일올림픽위원회)와 생활체육(독일스포츠연맹)을 통합해 스포츠클럽 육성에 집중했다. 현재 인구의 30%인 2300만 명이 10만여 개의 클럽에서 활동 중이다. 생활체육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유소년은 베스트팀(란더스카다)에서 훈련하는 기회를 부여받는다. 여기서 성장하면 최상급 엘리트 체육인 ‘분더스카다’에 선발돼 국가대표로 활약할 수 있다. 초·중·고 운동부에서 강도 높은 ‘합숙 훈련’을 견뎌야 전문선수로 성장하는 우리나라와는 시스템부터 다르다. 프랑스 또한 전체인구의 26%가 생활체육인이다. 스포츠클럽은 16만 개에 이른다.

2012 런던·2016 리우올림픽에서 각각 종합 2위와 3위에 오른 영국은 어떠한가. 영국은 2016년 ‘스포팅 퓨처’ 정책을 마련하면서 “스포츠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세 나라의 공통점은 생활체육을 강조한 스포츠 선진국들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엘리트 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다. 스포츠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도 ‘금메달 경쟁’에서 벗어나 전인교육 또는 진정한 복지국가로 가는 수단으로 변화하는 추세다. 국민도 이제 국제대회 1등보다 역경을 극복한 선수의 ‘스토리’에 집중한다.

프로농구 유재학 울산 현대모비스감독은 ‘슬램덩크’를 인생의 책으로 꼽은 적이 있다. 그는 한 언론 기고문에서 “사춘기 사내아이들의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이다. 이성보다 감성이 먼저 움직이는 통제 불능의 시절이다. 말썽꾸러기고, 사고뭉치고,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다(중략). ‘우리들은 강하다’는 명대사가 나온다. ‘나는 강하다’라고 쓰지 않았다. 대신 ‘우리’가 주는 시너지 효과를 힘주어 말하고 있다. 1등의 결과보다는 이를 향해 가는 충실한 과정을 얘기한다. 그래서 ‘우리’가 중요하게 다가온다. 또 포기하지 않는 청춘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적었다.

유 감독의 말에 스포츠가 지향해야 할 지점이 모두 담겨 있다. 공정한 과정과 포기를 모르는 열정. 하나 더 보태면, 남녀노소가 삶의 역경을 이기는 힘이 되는, 땀 흘리며 희망을 얻는 공간, 그것이 스포츠의 존재 이유다. 우리나라도 운동선수의 학사관리나 대학진학 시스템이 스포츠의 본질에 더 다가가는 방향으로 개선되길 바란다.

영산대 태권도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