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식량안보, 농촌살리기,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코로나19로 인한 식량위기를 공식 경고했다. FAO는 현재까지 식량공급은 적당하고 시장이 안정적이라면서도 4월과 5월에 식량 공급망의 붕괴가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연간 50만t의 쌀을 수출하는 캄보디아가 5일부터 쌀 수출을 금지하기로 했고, 인도·태국에 이어 세계 3위의 쌀 수출국인 베트남도 지난달 24일부터 쌀 수출을 멈췄다. 러시아도 지난달 20일부터 열흘 동안 모든 종류의 곡물 수출을 일시적으로 제한했다. 컨설팅업체인 피치 솔루션스는 식량가격 급등에 가장 크게 노출될 나라로 한국, 중국, 일본과 중동 등을 콕 집었다.(중앙일보·2020년 4월 2일)

하지만 연일 신문 방송에서는 판로를 읽은 농산물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최문순 강원도 지사를 비롯한 광역지자체 단체장들이 ‘지역농산물 헐값에라도 팔아주기’ 캠페인을 벌여 ‘완판’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식량위기가 선뜻 수긍이 안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세계화에 힘입어 수입하던 먹거리가 어느 순간 끊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우리는 그런 현실을 목전에 두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그동안 부족한 국내 농촌일손을 메꾸는 데 도움을 줬던 외국인 계절근로자들도 코로나19로 입국이 제한돼 농사철을 앞둔 농촌은 인력난으로 ‘비상’이다. 법무부 출입국관리국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총 7983명의 외국인 계절근로자가 전국 10개 광역 시도에 배정됐으며, 2020년에는 50개 지자체가 5067명을 신청해 4797명을 배정받은 상태이다. 최근에는 충남 서산시를 비롯해 전국의 농촌 지자체에서 외국인 계절근로자 도입 확대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현상이 장기화되면 무역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도 식료품 사재기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식량대란 위기는 우리가 그간 식량자급, 식량안보, 식량주권을 소홀해온 결과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말 현재 우리나라 농가인구는 231만5000명으로 전년에 비해 약 10만7000명(4.4%)이 줄어 총인구의 4.5%에 불과하다. 이중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거의 절반(44.7%)이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고령인구 비율(14.3%)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농가 경영주의 평균연령은 67.7세이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농촌의 현실이지만 그래도 지금까지는 약 77%의 곡물을 수입해 5000만 국민이 생활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2017년 3년 평균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3%다. 농축산물 무역수지 적자규모도 2017년 181억 300만 달러(약 22조 4000억 원)로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크다.(머니투데이·2020년 4월 2일)

실제로 대부분의 국내 제분업체들은 몇 개월치의 곡물을 선물거래로 확보해 둔 상태이지만 환율이 안정되지 않는다면 결국 밀가루, 전분가루 등의 공급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사료용을 제외한 국내 양곡자급률은 1965년 93.3%에서 1985년 48.4%, 2018년 21.7%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 특히 밀은 1.2%만이 자급될 뿐, 대부분의 밀가루는 미국, 캐나다, 호주에서 수입하고 있다. 수치로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에 속한다.(농수축산신문·2020년 3월 31일)

	코로나19 사태로 미국 뉴욕주 한 가게 생필품 선반이 텅 빈 모습. AFP신화연합뉴스

우리 농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수치들로, 그동안 비교우위론에만 입각해 생산성이 낮은 농업 대신 공산품 수출 지향 경제가 초래한 이면이다. 따라서 이번 코로나19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새삼 놀라운 것은 신자유주의를 지향하는 미국도 농업만은 ‘보수적’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폴 로버츠는 ‘식량의 종말(The End of Food)’(2008)에서 미국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1882-1945)조차도 식품 영역에서 자유시장을 고수하는 것은 국가적 자살행위라고 생각했다고 썼다. 미국 농업은 잉여농산물이 넘쳐났지만 이들 농산물을 WTO의 협조 아래 메이저 식품회사와 함께 개도국에 판매할 전략을 짜고 국가 차원에서 협상을 해왔다는 것이다. 미국이 2005년 곡물보조금으로 지급한 돈이 우리돈 약 26조 원이다. 루스벨트는 뉴딜정책으로 농촌부흥을 위해 척박한 지역의 농민들을 비옥한 농경지대로 이주시키고 대도시의 실업인구를 농촌으로 유도했으며, 가난한 소농을 지원했다고 한다.

반면에 쿠바는 1990년 전후 옛 소련의 지원 중단과 미국의 경제봉쇄로 국가적 재난을 맞아 자급자족 경제체제 구축에 나섰다. 휘발유가 부족하자 트랙터 대신 40만 마리의 소를 길러 우경(牛耕)으로 전환했고, 화학비료와 농약이 부족하자 전국에 230여 곳의 포식·천적재생산센터(CREE)를 세워 천적을 이용해 병충해를 구제하는 농법을 개발했다. 자구책이던 도시농업 덕분에 쿠바는 1992년 당시 40%였던 식량자급률을 10년 뒤엔 110%로 끌어올렸다. 더욱이 육류에서 채식 위주로 식생활이 바뀌었고, 병원 출입 환자수가 30%나 줄어들었으며, 영아사망률은 미국보다도 낮아졌다. 당시 쿠바는 학교에서도 ‘한 손에는 책, 한 손에는 호미를’이라며 농업이해교육을 실시했다.(국제신문·2006년 11월 26일)

우리나라도 한 때 식량안보라는 이름 아래 쌀생산을 중시했다. 새만금사업도 당초엔 식량안보 차원에서 쌀생산기지를 조성한다는 명분에서 추진됐다. 새만금간척사업에 대한 공동조사단이 낸 ‘2000년 경제성분야 결과보고서’는 ‘국제미가의 3배인 국내쌀값보다 2배나 높은 식량안보미가를 적용, 경제학자들이 인정하지 않는 식량안보가치가 새만금간척사업의 가장 중요한 편익으로 계산돼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식량안보미가를 적용하면서까지 새만금사업을 추진했으나 정작 새만금사업은 갯벌을 훼손했을 뿐만 아니라 그 뒤 수질오염으로 농지조성을 하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활용도를 놓고 고민을 하고 있다.

네이버백과에 따르면 1970~1990년까지 매년 평균 농경지면적은 1만 125ha씩, 농경지 이용률은 1.35%씩 감소되어 왔다. 당시 정책입안자들이 갯벌을 간척해 농지를 만든다는 발상이 아니라 기존의 농지를 보호하고 식량안보 차원에서 농정을 폈다면 지금쯤은 식량자급 달성에 한걸음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국가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 지금 논의되고 있는 재난기본소득과 같은 취지의 농민기본소득 지급이 필요하다. 프랑스의 정책연구기관인 프랑스 스트레티지(France Strategie)는 2020년부터 모든 농민에게 8000유로(약 1045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작업량에 따라 보조금을 추가로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은 목초지 유지, 윤작, 생물다양성 보호 등 환경적 편익을 가져다주는 활동에 대해선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신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농약·화학비료를 사용하면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농축유통신문·2020년 1월 3일)

식량자급 차원에서 우리나라 농촌의 가장 큰 문제는 토지와 노동력이 감소되는 반면 노임이나 생산비용이 높다는 것이다. 2018년 기준 농가구당 평균소득(4207만 원)이 도시근로자 가구당 평균소득(6484만 원)의 64.9%로 양자간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기에 농민기본소득으로 그 간격을 줄여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농가부채를 줄일 수 있도록 전폭적인 금융지원을 하고, 무엇보다 농촌의 문화, 복지, 교육 등 사회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하여 도시의 노동자, 실업자, 청년세대, 베이비부머세대가 귀농귀촌할 수 있도록 ‘농촌뉴딜정책’을 세워야 한다. 외국인 계절근로자제도 확대도 중요하지만 ‘귀농귀촌지원금’ 같은 국가 지자체의 매칭펀드를 통해 도시인의 농촌 이주를 촉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귀농귀촌 인력양성제도나 농촌빈집등록임대제도, 마을관리사제도 등 다양한 제도를 마련해 실질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식량위기를 대처한다고 해서 과거 박정희 시대의 통일벼 생산과 같이 양산체제만을 얘기해선 안 된다. 화학비료 농약이 아니라 가능하면 친환경농업을 지향해야 한다. 지산지소, 도농상생을 위해서는 지금의 도시소비자들이 농사를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국내외 도농상생 쌀농사 지원 사례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김종철 녹색평론 대표는 2011년 ‘녹색평론’에 일본 나고야지역의 세계 최초 쌀본위제 지역화폐 발행사례를 소개했다. ‘오무스비(연대라는 뜻)’라는 지역화폐인데 유기농 농민들이 2010년 봄 쌀농사가 시작될 때 지역화폐 1만장을 발행했다. 지폐 한장이 유기농 현미 반홉에 해당한다. 농민들은 가을에 그 지폐를 쌀로 바꿔줬는데 1만 장 중 7000장이 현미 쌀과 교환됐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우리나라에는 ‘맨땅에 펀드’라는 것이 있다. 2012년 3월 지리산닷컴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계좌당 30만 원을 받고 100명의 투자자를 모집했다. 펀드 투자자들은 주말마다 내려와 삽질도 했고 총 5번의 배당을 받았는데 배당품은 밀, 감자, 감, 땅콩, 고구마, 배추, 무와 가공한 김치, 청국장 등 다양했다.(맨땅에 펀드·권산·2013)

오는 15일은 제21대 국회의원 총선 투표일이다. 우리나라 농민단체 중 하나인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농업·농촌의 변화와 혁신을 위한 안정적인 지원 약속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 실현을 위한 제도 확대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 보장과 국내 농산물 수요 확대 방안 마련 △농가 소득 보전 및 경영 안정을 위한 특단의 대책 마련 △청년·후계 농업인 육성을 위한 획기적 대책 마련 등 5대 핵심 기조를 각 정당에 전달했다.(팜인사이트·2020년 2월 27일) 여야 각당도 이에 맞춰 △공익형직불제 조기 정착(더불어민주당) △(가칭)농업인 연금제 실시(미래통합당) △농민기본소득 도입(정의당) 등 농업 관련 공약을 내놓았다. 이러한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지 않길 빈다. 국회가 개원되면 각당의 공약을 바탕으로 국회 안에 ‘식량안보 농촌살리기 특위’가 제대로 만들어져 총체적 대안 모색에 나서면 좋겠다.

식량위기와 관련해 공장식 축산업의 폐해가 심각한데 이 문제는 별도로 다뤄야 할 것 같다. 식량위기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 이제는 텃밭 가꾸기, 학교급식, 도농직거래, 생협 회원 되기 등 도농간 네트워크에도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식량이 곧 생명이자 안보다. 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식량생산을 높이는 것은 물론 농촌공동체를 살리고, 지산지소,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새롭게 인식해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한국 농업의 틀을 세워야 할 때다. 경성대 건설환경도시공학부 교수 hckim@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