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또는 핵에너지는 인류에 빛과 그림자를 함께 남기고 있다. 원자폭탄(핵폭탄) 투하와 체르노빌·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같은 인류사적 재앙과 더불어 전기생산이나 방사선치료, 가속기, 비파괴 검사 등 의학·산업에서 유용한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상업발전 과정에서 발생한 체르노빌·후쿠시마 원전사고를 통해 인류는 ‘원전 안전 신화의 붕괴’를 목도했다. 탈원전정책을 이야기할 때 먼저 원자력 또는 핵에너지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본다.

인류에게 ‘제3의 불’이라고 하는 원자핵에너지, 소위 원자력은 지구상에 자연상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발명한 것이다. 그것은 인류가 추구해온 과학실험의 결과이자 다른 한편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무기경쟁의 결과이기도 했다.

구니마이 요시아키(國米欣明)는 ‘인간과 원자력 <격동의 75년>(人間と原子力<激動の75年>)(2013)’에서 원자폭탄, 원자력발전, 방사선피폭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데 원자력의 역사를 1938년 ‘핵분열의 발견’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렇게 치면 2018년은 원자력 역사가 80년이 되는 해였다. 최근 필자가 쓴 ‘원자력발전의 사회적 비용-에너지전환으로 가는 길(미세움, 2018)’의 제1장 ‘원자력발전의 빛과 그림자’에 정리된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1938년 독일의 화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오토 한(1879~1968)이 원자핵분열을 발견했다. 그리고 엔리코 페르미(1901~1954)는 자연에 존재하는 원소에 중성자를 조사함으로써 40종 이상의 인공 방사성동위원소를 생성시켰다. 그러한 실험과정에서 열중성자를 발견해 그 성질을 상세히 밝혀냈다. 페르미는 이러한 업적으로 1938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탈리아인인 페르미는 유태인 아내가 박해를 받자 수상식에 출석한 뒤 바로 미국으로 망명해 1939년에 콜롬비아대학의 물리학 교수가 됐는데 한 해 전에 오토 한이 원자핵분열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 뒤 페르미는 미국에서 원자폭탄개발계획에 참여해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오스트리아의 여성 물리학자이자 유대인이었던 마이트너는 30년 이상 한과 일을 해온 연구자였는데 1938년 신변의 위협을 느껴 스웨덴으로 이주한다. 마이트너는 ‘원자핵에 중성자가 충돌해 중성자가 1개 늘어난 결과 물방물이 2개로 나뉘듯이 원자핵이 2개로 나눠졌다’고 발표했고, 이 현상은 나중에 마이트너의 조카였던 오토 로베르트 프리슈에 의해 ‘원자핵분열’로 명명됐다.

마이트너는 이러한 형태로 원자핵이 분열하면 1원자핵당 180MeV라는 큰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또한 이것을 특수상대론의 E=mc2라는 에너지환산식으로 계산하면 감소한 △E가 180MeV와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그러나 마이트너가 유대인이었기에 이 연구논문을 독일인인 한과 함께 발표할 수가 없어 한이 자신의 제자 프리츠 슈트라스만과 함께 더 연구해 핵분열의 발견에 관한 논문을 공표한 것이 1938년의 일이었다. 한은 194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마이트너는 프리슈와 함께 연구를 거듭해 핵분열이 일어난 사실을 증명해 별도 논문으로 발표했다. 한이 핵분열의 발견자라면, 마이트너는 핵분열 개념의 확립자로 기록된다.

그 뒤 얼마 되지 않아 핵분열에 의해 2, 3개의 중성자를 방출하는 사실에 관심이 모아졌다. 유대인이자 폴란드 출신의 미국 수학자 스타니스와프 마르친 울람(1909~1984)이 핵분열이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물론 이론상의 이야기이지만 원자폭탄 제조의 가능성을 보인 것이다. 울람은 제2차 세계대전 전날 밤 형제가 동시에 폴란드를 탈출했다. 남은 가족은 전원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희생됐다. 1940년 울람은 망명 전 미국에서 위스콘신대학 조교수 자리를 얻었지만 1943년 폴 노이만의 요청에 의해 ‘원폭개발계획’에 참가했다. 독일에서는 1941년 폴란드에 건설된 독일 나치 강제수용소에 유태인 수용자가 4년간 200만 명, 트레브링카수용소에서 73만 명 등 모두 400만~600만 명이 이러한 강제수용소에서 집단학살을 당했다.

그 무렵 나치 독일이 원자폭탄 개발계획을 추진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고 그것을 안 미국 거주 망명 유대계 물리학자들은 초조했다. 이들은 뜻을 모아 레오 시라드, 에드워드 테일러, 유진 위그너 등이 1939년 10월 미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 앞으로 ‘독일보다 먼저 원자폭탄 개발을 추진하도록 요망하는 서신’을 보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도 그 서신에 서명을 했다. 1940년 6월 국방연구위원회(NDRC)가 설립됐으며, 1940년 10월에 농축우라늄 총량 17㎏을 보유하게 됐고, 12월에는 플루토늄239가 발견됐다.

1942년 9월 ‘S-1계획’을 수립했는데 이것을 글로비즈 준장이 책임지게 됐고 ‘맨해튼계획’이라 부른다. 그는 당시 20억 달러(지금의 금액으로 치면 약 300조 원)라는 막대한 예산을 사용해 연 54만 명을 통원해 원폭투하까지의 최고지휘관을 맡았다. 1945년 7월 16일 트리니티실험을 했다. 사상 최초의 원자폭탄이 폭발했다. 이 트리니티실험의 주요한 의미는 원자폭탄이 개발된 것만이 아니다. 원자폭탄의 제조나 관리, 사용의 의지결정권이 실험성공을 계기로 과학자들의 손에서 정치가의 손으로 옮아갔다는 사실이다.

히틀러는 이미 그해 4월 30일 저택 지하에서 자살했고, 5월 8일 독일정부가 연합국에 항복했고, 폴란드의 강제수용소들도 소련에 의해 해방됐다. 트리니티실험의 가공할 결과를 앞에 두고 개발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이것을 절대 인류에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으나 사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갔다. 발명의 결과가 이미 과학자의 손을 떠나게 된 것이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15분 일본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됐다. 원자폭탄 ‘리틀보이’는 1000만 분의 1초의 핵분열의 연쇄반응으로 우라늄235 60㎏ 중 1㎏이 핵분열을 일으켜 핵에너지를 방출했다. 이때 리틀보이의 중심부는 섭씨 5500만 도의 고온과 수십만 기압의 압력이었다. 이는 태양 중심부의 3배 이상의 고온이며, 태양표면온도 6000도의 약 1만 배에 상당한다. 원폭투하 사실은 16시간 뒤 트루먼 미 대통령이 공식발표했다. 1946년 2월 유엔사령부는 히로시마 원자폭탄에 의한 사망자가 7만8150명, 행방불명 1만3983명, 중상자 9428명, 경상자 2만7997명으로 발표했는데 이것은 직접피폭자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2분 플루토늄형 원자폭탄 ‘팻트맨’이 나가사키 상공에서 투하됐다. 당시 나가사키 인구는 24만 명이었는데 그해 12월 나가사키시 발표에서는 사망 7만3884명, 부상자 7만4909명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는 동서냉전에 접어들어 핵무기개발에 혈안이 됐다. 1952년 11월 미국은 세계 최초의 수소폭탄 실험을 에니위탁환초에서 실시한 데 이어 본격적인 실용무기로서의 수소폭탄 실험이 1954년 3월 1일 비키니환초에서 이뤄졌다. 그 폭발력은 히로시마형 원자폭탄의 약 1000배(TNT환산으로 1만5000㎏=15메가톤)에 상당하는 위력이기도 했다. 소련은 1953년 수소폭탄 실험을 한 이후 1961년 10월에 인류사상 최대의 TNT화약환산 50메가톤급(히로시마현 원폭의 약 3400배)의 수폭실험을 했다.

원자폭탄이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투하 결과 일본의 항복으로 우리나라는 일단 식민지에서 해방되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원자폭탄이 사용될 뻔했다. 바로 한국전쟁에서였다. 중국이 인해전술로 한국전쟁에 참가해 후퇴를 거듭할 때 당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맥아더가 트루먼 대통령에게 만주 월경지역 폭격과 만주의 주요군사기지와 중국 본토의 원폭투하 허가를 구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배후 소련의 한국전쟁 참전 유발을 우려해 단념했는데 맥아더가 트루먼 대통령의 우유부단을 비판했다. 이에 트루먼이 결단한 것이 원폭사용이 아니라 맥아더의 해임이었다. 귀국 후 미 의회의 증언대에선 맥아더가 남긴 말이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이었다. 인류 사상 세 번째 원폭투하를 가까스로 피한 것이었다(國米欣明, 2013, pp.146-147).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의 전사(前史)에는 이러한 아찔한 역사적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김해창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