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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의 한국미술과 부산 <15> 에필로그

부산미술사 재검증 · 체계적 정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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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0-12-05 20: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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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의 '물고기'(유화·1964)
항도 부산은 항구라는 새로운 문화를 접하기 매우 쉬운 입지에도 유화 등 서양미술에 있어서는 대구나 평양보다 도입과 활동이 늦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리적 조건을 고려하면 분명히 평양이나 대구보다 먼저 새로운 미술의 이입과 그에 따르는 활동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러나 부산미술의 역사를 방증할 자료가 발굴되지않아 그 가능성의 실체를 규명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부산 근대적 미술의 역사는 불행하게도 일제 강점기 일본화가로부터 비롯된다. 하지만 이는 기록과 연구가 부족한 탓이다. 거슬러 올라가 들여다보면 분명히 새로운 자료들이 등장할 터인데 아쉬운 대목이다.

아무튼 일제 강점기 부산을 연고로 출품했던 작가들을 살펴보면 후지이(생몰년 미상), 안도 요시오(생몰년 미상), 도고 세이지(1897~1978) 등의 화가가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그나마 알려진 유명화가는 도고 세이지 뿐이다. 이북에서 6·25 전쟁 중에 남한에 뿌리를 내린 화가들 중 대구에는 전선택, 신석필이 자리 잡고 향토 원로작가로 활동 중이다. 부산에도 지난주 언급한 화가 외에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망각 속에 사라져갔거나 외지에서 들어온 작가라는 이유로 기억되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긴 부산의 근대기 화가인 임응구(1907~1994)나 1930년대 이후 미술교습소를 열어 많은 후학을 배출한 서성찬의 존재에 대한 연구도 미미한 형편이다. 여기에 일본인 이지이다 메치로를 동래중학에서 사사한 김재선 최소암 김종필 김용환 김원갑 김종식 서진달 등도 부산미술사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이들 중 부산출신은 아니지만 당시 경남의 중심이었던 부산에 나와 공부했던 이들까지 포함하여 부산미술의 폭과 깊이를 더하는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또 이들과 함께 조선미술전람회를 중심으로 활동한 양달석 정상복 김용주 우신출 김남배 등도 다시금 새겨보아야 할 작가들이다. 이외에도 임호 김윤민 김인태(이상 오사카미술학교), 김시우(일본대학 법문학부 예술학과 창작부), 김경(니혼미술학교), 천재동(태평양미술학교 중퇴), 이강(니혼대학미술관), 6·25 전쟁으로 부산사람이 된 송혜수(무사시노 미술학교), 한상돈(니혼미술학교) 등에 대한 연구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부산미술사의 외연을 넓혀 부산미술의 자긍심을 고양할 필요가 있다. 너무 대상을 한정시키고 범주를 좁힌 나머지 그리고 일부 향토 미술사가들의 이해와 호불호로 작가들을 선정하거나 배척할 것이 아니라 역사를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허심탄회한 접근이 필요하다. 여기에 이중섭의 존재나 최영림 김환기 장욱진이나 6·25 전쟁기 천경자의 존재도 매우 중요하다.
소정 변관식은 부산미술사에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했고, 정규나 장욱진 그리고 백영수 같은 작가들이 한국미술의 1950년대를 빛나게 장식하는 모더니즘의 기치를 올렸던 곳도 전쟁이란 폐허 속에 오아시스처럼 남았던 부산의 광복동 거리였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부산미술이 새로운 미술과 만난 동시에 새로운 미술의 터전이 돼 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따라서 6·25전쟁은 모든 것을 송두리째 파괴했지만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미술로부터 새로운 미술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창조적 파괴라는 다소 억지스러운 말이 통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제부터라도 부산미술은 부산이라는 스스로 만든 권력을 버리고 또 지역 미술이라는 콤플렉스를 벗어나야 할 것 같다. 부산이 그렇다면 여타의 도시들은 어떻게 자신의 미술을 이야기하고 주장할 수 있을까. 또 부산 미술에 대해서는 부산 사람들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고집도 버릴 때가 됐다. 오히려 더욱 새로운 사실들을 객관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비평적 관점이 아닌 역사적 즉, 미술사학적인 접근법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제라도 본격적인 부산미술에 대한 미술사적인 접근과 기술을 통해 미술사학계 검증과 평가를 얻어야 할 것이다. 외지인의 눈에 비친 부산미술은 전인미답의 보고이자 한국미술사의 금맥이다. 이제 사금 채취를 접고 금맥을 캘 때이다.

국민대 초빙교수·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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