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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책과 세상 <25> 도서관 십진분류법 속의 '비밀'

철학 첫 분류한 까닭 '자아성찰'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1-24 20:22:58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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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빼곡히 꽂혀있는 도서관 서가 모습. 이렇게 많은 책들도 십진분류법에 따라 나름의 질서와 구조에 속에 배열돼 있다.
계절별로 옷이 잘 정리되어 있는 옷장, 제목을 일목요연하게 붙여 누구라도 원하는 정보를 알아볼 수 있는 문서파일…. 일상생활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미국 작가 알렉스 라이트는 저서 '분류의 역사'에서 "인간은 태초부터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정보 홍수 속을 헤매었고, 그런 홍수를 잘 헤쳐 나오기 위해 본능적으로 분류법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아무렇게나 뒤죽박죽인 물건 더미를 보면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고, 수납이며 냉장고 정리에 대한 각종 아이디어가 인터넷에 넘쳐나는 걸 보면 인류의 유전자 속에는 정말 정리하고 분류하는 DNA가 있는가보다. 백화점에서 작은 가게까지 일정한 규칙에 따라 모든 상품이 분류돼 있는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오늘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나누고 분류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같은 분류법 중에서도 도서관 등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도서를 정리하는 십진분류법은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다. 멜빌 듀이가 고안한 도서 분류 체계(Dewey Decimal Classification·DDC)를 바탕으로 한국 실정에 맞게 변형한 자료분류법이 바로 한국십진분류법(Korean Decimal Classification·KDC)이다. 인터넷 검색방식이 계속 발전해가는 것처럼 전통적 분류법도 시대에 맞게 발전해가고 있지만, 십진분류법의 큰 얼개를 알아두면 원하는 정보가 저 거대한 지식체계 안의 어느 자리에 있는지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도서관 등의 서가에는 '000 총류'에서 '900 역사'까지 10개 대분류 항목이 있다. 이것만 알아도 KDC 체계를 이해할 수 있다. 그 체계 속에는 독특한 구조와 질서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먼저 깊이 생각하기 마련다. '나'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부터 시작한다는 뜻이다. 십진분류법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가장 먼저 나오는 번호인 100번은 철학이다(100 철학).

그런 질문 끝에 자신이 나약한 존재란 것을 인간은 깨닫는다. 더 강한 힘에 의존하려 한다. 그래서 종교가 두 번째다(200 종교). 그러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 그것이 사회과학(300 사회과학).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다. 자연과 우주라는 광대한 환경이 있다. 그 질서와 이치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순수과학이 그 다음에 온다(400 순수과학). 순수과학은 실생활에 맞게 응용할 필요가 있다. 기술과학이 뒤를 잇는다(500 기술과학).

이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됐으니 즐겁고 아름답게 살고 싶어진다. 600번 대는 예술(600 예술). 이렇게 삶의 지평이 넓어지면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때 서로 말이 통해야 한다. '700 어학'이다. 말과 글자를 알고 나니 재미있는 이야기도 만들고 싶다. 문학이 800대에 오는 이유다. 이렇게 뭔가를 이루면서 살았으니 그 흔적도 남겨야 한다. 그래야 다음 세대가 더 발전한다. '900 역사'다. 사전이나 정기간행물 같은 복합적인 건 000 번으로 분류해서 맡기자. '000 총류'다.

책이라는 방대한 지식과 정보의 체계가 어떻게 얽혀 상호작용하는지 어렴풋이나마 보이지 않으신가. 그 많은 책들을 어떻게 분류하고 어디에 꽂을 것인가 고뇌하고 연구했을 듀이의 성과에 바탕을 둔 분류법은 시대 발전과 학문 변화 추세를 반영하고자 조금씩 변해왔다. 오늘날 학문은 더 세분화되며, 새로운 복합주제 분야가 등장한다. 도서분류법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주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인터넷 검색기능이 발전하면서 원하는 책을 찾아가는 루트는 더 편리해져갈 것이다.
   
그래서 전통적 도서분류법은 시대에 뒤떨어져 보일 수 있다. 굳이 몰라도 별 문제는 없다. 하지만 도서관 등에서 책이 어떤 체계를 통해 제 자리에 꽂히는지만 알아도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검색기능이 뛰어나다 해도 책이 제자리에 꽂혀있지 않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분류법은 지식의 바다를 항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지도다.

동의대 문헌정보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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