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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동해 大 트레일을 연다 <11> 호미곶~감포(약 59㎞)

[창간 63주년 특집] 통일전망대 ~ 부산 650㎞

호락호락지 않은 호랑이 꼬리 모양 지형, 한반도 든든한 방향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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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푹 들어간 영일만, 툭 튀어나온 호미곶
- 발길 닿는 곳마다 지리 · 역사 · 문화적 얘깃거리 수두룩

- 생산량도 맛도 으뜸, 과메기 고장 구룡포
- 일제시대 가옥 20채, 영화 속 장면 연상

- 바다향해 억새 군무, 해안길 따라 가니 천년고도 경주 감포, 문무왕릉 감은사지
- 주변 곳곳 공사현장, 난개발 생채기 우려

동해안 해안선은 단조롭게 남쪽으로 달음박질치다 포항 어귀에서 거대한 만과 곶을 형성한다. 움푹 들어간 곳은 영일만, 불쑥 튀어나온 곳은 호미곶(虎尾串)이다. 호미곶의 지명변천사는 국토지리사이자 지역향토사다. 원래 생김새가 '말갈기와 같다'하여 장기곶(長鬐串)으로 불린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식 표현인 갑(岬)이 붙여져 장기갑으로 불리다가 1995년 장기곶으로 바뀌었고, 2001년 호미곶으로 변경됐다. 올초에는 대보면 역시 호미곶면으로 바꾸었다. 숨죽여왔던 말과 호랑이가 마침내 신나게 뛰놀게 된 모습이다. 호미곶을 걷는 의미가 각별할 수밖에 없다.

■토끼 꼬리가 호랑이 꼬리로

   
포항시 장기면 모포리 언덕에서 바라본 모포리 해안 풍경. 절로 걷고 싶은 생각이 드는 해안길이다. 아래 사진은 국보인 경주 감은사지 3층 석탑.
나이든 어른들 중에는 아직도 호미곶을 우리 국토의 토끼 꼬리라고 일컫곤 한다. 일제가 남긴 그릇된 인식의 소산이다. 일본인 지리학자인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는 '택리지' 등의 일부 내용을 빌미로 삼아 조선의 형세를 토끼에 견줬다. "이탈리아는 외형이 장화와 같고, 조선은 토끼가 서 있는 형국이다. 그러니 장기갑은 토끼 꼬리에 해당한다…." 그것은 한민족을 열등한 존재로 왜곡시키기 위한 술수였다.

우리의 전통적 지리 인식은 이와 달랐다. 조선 명종 때 풍수지리학자인 남사고는 '동해산수비경'이란 책에서 '한반도는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형상'이라며 지금의 호미곶을 '호미등(嶝)'이라 불렀다. 육당 최남선 역시 우리 국토의 형상을 호랑이에 비유하고 호미곶 일출을 '조선 십경'중 하나로 꼽았다. 조선 중엽에 그려진 '근역강산맹호기상도' 속의 포효하는 호랑이는 금방이라도 대륙으로 뛰쳐나갈 기세다.

이곳에 등대가 들어선 것은 1903년(고종 7년). 1901년 일본수산실업전문학교의 실습선이 호미곶 앞바다에서 침몰하자 한반도 침략을 노리던 일본은 조선 조정을 압박해 등대를 세웠다. 돈은 우리가 대고 일본이 공사를 맡았다. 등대 옆에는 현재 국내 유일의 등대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호미곶은 이야기 밭

   
포항 동해면에서 929번 지방도를 따라 호미곶 방향으로 걷는다. 나아갈수록 영일만이 가슴을 한껏 넓히며 동해를 품는 모습이다. 포항 위쪽으로 동해안의 해안선이 아스라히 멀어진다.

흥환 해수욕장을 넘겨보며 한달비, 장내를 지나자 호미숲 해맞이터다. 인도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지방도지만, 풍경 하나는 압권이다. 구만리 독수리바위를 지나 대보항을 끼고 해안도로를 따라가자 호미곶 해맞이광장이다. 이곳에 등대박물관과 새천년 기념관, 연오랑 세오녀 상, 호랑이 상 등 다양한 조형물이 있다.

"호랑이 꼬리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구먼."

"이 호랑이 꼬리가 한반도의 방향키 역할을 한다잖아. 여기에 힘을 줘야 추진력이 생긴다는 말도 있어요."

   
경주 봉길리의 문무대왕 수중릉.
"호미곶 앞바다의 '상생의 손' 조각은 볼 때마다 섬뜩해. 혹시 저게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의 손이 아닐까 싶은거야. 능지처참된 김옥균의 왼팔이 호미곶 앞바다에 버려졌다고 하잖아. 어쨌든 이젠 상생을 해야지."

탐사팀원들이 호미곶의 지형을 놓고 한마디씩 늘어놓는다. 호미곶은 지리적으로, 역사 문화적으로 얘깃거리가 많은 곳이다. 동해의 거센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는 배들이 한반도 꼬리에 힘을 불어넣는 것 같다.

929번 지방도를 따라 송림촌→다무포→두일들→삼정 해수욕장→구룡포 해수욕장을 지나자 구룡포 읍내다. 약 16㎞가 넘는 거리지만 도통 지겹지가 않다. 바짝 다가선 바다가 눈과 코, 귀를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다.

구룡포(九龍浦)는 과메기의 고장이다. 생산량이 많기도 하지만 맛도 최고다. 한마리도 아닌 아홉 마리의 용이 과메기로 환생했나 싶을 정도로 겨울철 구룡포는 온통 과메기 판이다.

구룡포 우체국을 돌아 골목으로 들어가면 영화 속 장면처럼 일본풍이 물씬 풍겨난다. 100여 년 전 일본인들이 살았던 흔적들이다. 1938년 구룡포어업조합장을 지낸 하시모토 젠기치(橋本善吉)의 2층 가옥 등 20여 채가 남아 있는데, 일본인들이 더러 찾는다고 한다.

■개발에 포위되는 문무대왕릉

   
구룡포 해안을 끼고 하정리, 장길리 쪽으로 걸어간다. 하정리 해안은 아늑하고 정겹다. 언젠가 한번쯤 와본 듯한 느낌. 낯섬과 낯익음이 세찬 파도에 뒤섞인다. 먹을거리가 많은 지 갈매기들이 하나같이 통통하다.

하정3거리를 지나 31번 국도로 오르자, 억수같은 억새들이 바다를 향해 춤을 춘다. 매혹적이다. 장기면 모포리의 마을 속 농로는 이뻐서 발길이 절로 그쪽으로 간다.

"나폴리가 따로 없군!" 모포리를 벗어나 31번 국도 오르막길에서 바라본 해안 풍경은 정말 장관이다. 바다와 해안, 마을과 농토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삼척 장호 해변보다 경치가 더 나은 것 같다.

양포리 해안공원도 인상적이다. 포구에 비해 큰 옷을 입은 듯하지만 쉬어가기엔 그만이다.

장기면 계원2리를 지나다 '손재림 문화유산 전시관'이란 안내판을 발견했다. 경북 영천에서 한의원을 하는 분이 폐교 부지에 사재를 넣어 개인 전시관을 꾸며 놓았다. 수석과 화폐, 농기구 등 볼거리가 제법 쏠쏠하다. 지난 14일 문을 열었다니 새로운 명물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운동장 중간에 자신의 동상을 세운 건 '오버'가 아닐까.

오류 해수욕장을 지나 송대말 등대로 무심코 걸어가다 막다른 길을 만났다. "이런!" 터져나오는 실망을 안고 돌아나온다. 돌아나오며 걸어온 길을 반추해본다.

경주시 감포에 닿는다. 다소 시끌벅적한 감포항을 돌아 전촌, 나정 해수욕장을 지나자 해변 산자락에 대형 공사현장이 보인다. 경상북도가 2015년 조성 목표로 추진 중인 감포관광단지다. 사업 부지가 무려 401만㎡(120만 평). 인근의 문무대왕 수중릉, 이견대, 감은사지 등 역사자원을 염두에 둔 개발사업이지만, 난개발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벌써 그럴 조짐도 보인다. 문무대왕릉 바로 아래인 경주 봉길리에는 방폐물 처분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문무대왕릉이 양쪽의 개발 사업장에 끼인 꼴이다.

길 걷는 나그네들은 이래저래 고민이 깊다. 길다워야 할 길이, 지켜져야 할 역사 현장이 어떤 가공할 자본의 힘에 의해 짓눌리고 있는 것 같아서다.


# 호미곶 장기 목장성 길

- 굽이굽이 아기자기, 옛 石城 따라 20리 산길, 정상에선 영일만 한눈에

"포항에 걸을 만한 곳은 없나요?"

"…아 호미곶에 한 곳이 있죠. 장기 목장성 올레라고 하죠."
포항시청에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대답의 끈을 잡고 수소문해 찾아갔더니 충분히 흥미로운 길이었다.

출발지는 포항시 남구 동해면 흥환리. 동해초등교 흥환분교를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너 우회전, 산쪽으로 향하다 보면 흥환리 경로당이 나온다. 경로당에 들어갔더니 살아있는 얘기들이 쏟아졌다.

"옛날엔 이 길로 윷판재를 넘어 구룡포 장까지 왔다갔다 했어. 약 20리 길이야."(최금선·90)

"우리 아들은 지금도 오토바이 타고 이 산길을 다니고 있구만. 넓다란 임도가 좋아요."(조난이·82)

주민들은 옛날 이곳에 호랑이가 어슬렁거렸다는 얘기며, 목장성의 '말못하는' 말들이 일제에 끌려갔다는 얘기 등을 풀어놓았다.

마을을 벗어나자 임도가 나온다. 길은 구절양절 이어지고 산세는 갈수록 깊어진다. 호미곶, 그 작은 호랑이 꼬리 속에 이처럼 복잡한 산세가 들어앉았을 줄이야! 오르내리기를 몇차례 반복하다 보니 '장기 목장성'옛 길이 나타났다.

구룡포향토문화연구회의 조사에 따르면, 장기 목장성은 구룡포읍 창주리 돌문에서 눌태리 계곡을 거쳐 응암산을 서쪽으로 돌아 동해면 흥환리에 이르는 길이 25리, 높이 10척에 달하는 장성이다. 그러니까 호미곶을 가로질러 쌓은 석성의 동쪽, 바다 쪽이 전부 말을 키운 목장이었던 셈이다. 목장은 신라시대부터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장기목장은 1894년 갑오경장 후 일시 없어졌다가 부활했지만, 1905년 을사늑약 후 일제의 압력으로 결국 폐지되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말 300여 마리는 일제에 징용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목장성 정상부는 전망좋은 '구룡포 봉수대'(발산봉수대)가 자리한다. 올라서니 호미곶 일대는 물론 멀리 영일만까지 눈에 들어왔다. 흥환리에서 구룡포까지는 대략 10㎞, 길 중간에서 호미곶으로 빠져나오면 약 14㎞의 거리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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