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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이동언 교수의 '건축, 시로 쓰다' <14> 부산극동방송

둘인 듯 하나인 듯 암수 서로 정답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9-27 21:07:17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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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극동방송은 왼쪽의 방송국과 오른쪽의 공개홀이 서로 간에 이미지를 주고받는 관계로 엮어있는 등 다양한 건축요소들이 짜깁기돼 건축물이 매우 풍요로운 인상을 준다. 건축사진가 조명환

- 두 덩어리로 분리된 건축물
- 지하층에서 만나고 5층 연결통로에서 또 껴안듯 만나

- 남성 닮은 왼쪽 방송국에 섬세함이 묻어나고
- 여성스러운 오른쪽 공개홀엔 대범함이 인상적

- 기능 형태 맥락에서 조화로움 높은 점수
- '부산다운 건축상' 2010년 대상 받아


건축가 승효상 씨가 설계한 부산극동방송 건물이 최근 심사가 완료된 '2010 부산다운 건축상'에서 대상작으로 선정됐다. 필자는 올해 부산다운 건축상 심사에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공공기관인 부산시가 시행하는 이 상은 건축 부문에서 '부산다움'을 추구하고 발전시키는 데 나름대로 비중 있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상을 탄 건축물은 '부산다움'을 보여주는 상징성이 크다. 이에, 올해 대상작인 부산극동방송 건물을 살펴보고 올해의 전체적인 경향을 독자와 공유하는 것도 의미 있으리라 생각한다.

시인 정현종이 시 '갈증이며 샘물인'을 통해 건축가 승효상 씨의 부산극동방송이 덩어리(매스) 배열을 그렇게 한 이유를 속 시원히 이야기해준다.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다/ 갈증이며 샘물인/ 샘물이며 갈증인/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 갈증이며/ 샘물인/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다'. 이 시의 핵심은 '갈증이며 샘물'로 짜깁기 되어 있는 존재다. 그것은 너와 나인 것이다. '샘물과 갈증'은 짜깁기의 밑바탕인 공(空)에서 놀이하는 한, 대립의 존재가 아니라 환영(幻影)과 연기(緣起), 즉 이미지 주고받기의 존재다. 도장의 '양각'과 '음각'의 관계란 말이다. 갈증이라는 양각이 샘물이라는 음각을 만나고 샘물이라는 음각이 갈증이라는 양각을 만난다. 갈증과 샘물은 이렇게 짜깁기된다. 여기서 명심할 것은 짜깁기의 밑바탕에는 양각과 음각이 어울려 놀이할 빈 공간이 있다는 점이다.

이를 건물에 직접 적용해본다.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다/ 왼쪽 덩어리이며 오른쪽 덩어리인/ 오른쪽 덩어리이며 왼쪽 덩어리인/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 왼쪽 덩어리이며/ 오른쪽 덩어리인/ 너는 내 속에 샘솟는다'. 왼쪽 덩어리라는 양각이 오른쪽 덩어리라는 음각을 만나고, 오른쪽 덩어리라는 음각이 왼쪽 덩어리라는 양각을 만난다. 음각과 양각이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감응하고, 주고받기의 관계와 동일한 방식으로 서로에게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석가탑과 다보탑, 좌청룡과 우백호 등은 이 같은 상호 감응과 주고받기의 좋은 예이다)

건축물의 경우 덩어리를 단일체로 하는 것보다 이분체 혹은 복합체로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너무 심한 복합체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단일체(암수동체)인 경우에는 짜깁기 맛이 거의 없다. 이 경우에는 서로의 모습을 보듬어주고 서로 돋보이게 하는 '환영의 연기' 맛도 거의 없다. 복합체로 갈 경우 환영의 연기가 너무 심해 시각적으로 혼란을 겪는다.

■분리된 두 덩어리의 건물 서로 비추고 보듬어
두 덩어리를 시각적으로만 본다면 왼쪽 덩어리(방송국)는 남성적이고 오른쪽 덩어리(공개홀)는 여성적이다. 두 덩어리를 감각적으로 표현한다면 왼쪽 덩어리는 남성, 섬세함, 닫힘 등으로 표현되고 오른쪽 덩어리는 여성, 대범함, 개방 등으로 표현된다. 그럼에도 조심해야 할 점은 왼쪽 덩어리가 남성의 역동적 모습이라서 무조건 남성에서 발견되는 성질들만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대범함, 개방 등은 남성에 주로 나타나는 성질인데도 왼쪽 덩어리에 나타나지 않고 오른쪽 덩어리에 나타난다. 이는 불교적 표현인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不一而不二) 짜깁기에 적합한 성질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왼쪽 소속이냐, 오른쪽 소속이냐가 중요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지하1, 2층은 암수동체로서 성이 분화되기 이전의 모습으로 주로 지하주차장으로 사용된다. 지상1층은 암수 뚜렷하게 구분되나 일부는 암수분리체이면서 단일체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즉 불일이불이( 不一而不二)적 짜깁기의 모양새다. 서점, 관리실, 출연자 대기실, 체력단련실, 안내실, 친교실, 식당 등이 있다. 지상2층은 더 이상 암수동체가 아닌 이분체다. 다목적홀의 무대, 선교사무실 등이 있다. 3층에는 다목적홀, 숙직실, 사무실, 지사장실 등이 있다. 4층은 암수 덩어리 간에 분리돼 있으나 연결통로로 이어져 있다. 뮤직·영상스튜디오, 조정실, 스튜디오, 송출기기실, 주조종실 등이 있다. 5층도 여전히 암수 덩어리 간의 분리가 있으나 연결통로가 있다. 여직원휴게실, 전도홍보사무실, 정원, 예배실 등이 있다. 6층에는 암수 덩어리간 분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연결통로는 없다. 게스트룸, 기도실 등이 있다.

부산극동방송에서 암컷(오른쪽 덩어리)-수컷(왼쪽 덩어리) 사이의 환영(幻影)이 서로 간에 연기되면서 다양한 건축요소들이 짜깁기되어 더욱 건축물이 풍요로워졌다. 덩어리를 단일덩어리로 처리할 때보다 훨씬 다채롭다. 하나 아쉬운 것은 방송국은 고층아파트가 위치한 북측에 배치하고 공개홀은 저층건물이 위치한 미디어 산업단지 측으로 배치했다는 점이다. 환영을 연기로 주고받는 입장에서는 거꾸로 배치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또한 맥락 대응방식이 너무나 1차원적이다. 단순히 원인-결과의 대응방식이다. 높은 쪽에는 높이 대응하고 낮은 쪽은 낮게 대응한다는 식의 맥락대응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아래의 기술이 참고가 될 듯하다.

'장/단, 고/저', '밝음/어두움', '유/무'들은 이 세계의 모든 현상이 그 자체 자신들의 고유한 의미소를 갖고 있는 자존적이고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고 자신들의 존재가 성립하기 위하여, 자기 것들이 아닌 다른 것들의 존재와 성질이 자기 것들 속에 이미 스며들어 와 있고 침식되어 있고, 상감되어 있음을 말한다.'(김형효, '철학나그네'·2010)

건축가 승효상의 최근작들을 보면 양각과 음각이 놀이하듯이 동일한 크기의 여러 개 사각덩어리를 일정한 간격을 띠우고 유무(有/無)의 관계를 통해 배열하여 환영의 연기를 행했다. 또한 빈 공간(無)을 통해 주위 맥락을 조절적으로 받아들였다. 아주 근래의 몇 작품은 두 개의 다른 크기의 사각덩어리(암컷과 수컷)를 양 쪽에 두고 연결통로로 결합된다. 이로 인해 유/무의 공간이 형성되고 그것을 통해 주고받기를 한다. 또 다른 시도이다. 그러나 동일한 패턴의 반복인 듯하다. 매너리즘에 빠진 듯하다. 그의 시도가 매너리즘인가, 또 다른 시도인가 두고 볼 일이다. 건축가 승효상의 갈 길이 멀다.

■'부산다운 건축'이 다양하게 출몰하려면

전체적으로 올해 '부산다운 건축상'은 여느 해와 같이 '부산다운'이 뭔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되었으나 결국에 가서는 건축적으로 완결성이 갖는 것이 '부산다운' 것으로 최종 결론지어졌다. 기능, 형태, 맥락 등이 어우러지는 것, 즉 건축적 상식이 매우 중요했다.

주거부문에서는 도면 등이 미비된 경우, 공사가 진행 중인 것을 출품한 경우, 프리젠테이션의 효과가 영 아닌 경우 등을 제외하고 나니 금상은 없었다. 공공 부문의 경우 동남권 원자력의학원이 다른 것들에 비해 발군이었다.

일반 부문에선 새항운병원, 김성식치과, 부산극동방송 등이 심사위원들의 눈에 들어 왔다. 안타깝게도 새항운병원은 수상대열에서 탈락하고 부산극동방송이 대상에, 김성식치과가 금상을 탔다. 한 심사위원이 말하길 "부산극동방송 설계자는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분으로 세계를 상대할 인사다. 그런데 우리나라 부산의 '부산다운 건축'상이 과연 그에게 걸 맞는가를 고려해 봐야한다. 우리나라라는 좁은 공간에 이런 분이 뱅뱅 돌고 있으니 부산건축, 더 나아가, 우리건축이 발전하겠는가"라고 비평했지만 나머지 심사위원들은 그 의견에 동조하지 않았다.

   
이동언 부산대 건축학과 교수
건축가 승효상은 '부산다운 건축상 대상'을 움켜쥐었다. 그의 대상이 부산건축가에게 남기는 의미는 무엇일까? 부산건축가들은 부산이라는 지역성을 자신들에게 맞도록 하여 브랜드화시켜야 되지 않을까? 지역성의 건축적 브랜드화 가능성이다. 부산에서 병원건축을 브랜드화시키는 건축가의 사례도 있음에 비춰 보면 '부산다운'의 브랜드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부산의 건축이 브랜드화하기 위한 전략은 기본기에 대한 충실이다. '기능=형태=맥락'에 충실하고 매너리즘에만 빠지지 않으면 저절로 '부산다운'이 무엇인지 '나'만의 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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