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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의 한국미술과 부산 <2> 전쟁, 미술동네를 찢어놓다

6·25로 흩어진 작가들 부산서 새 시대 준비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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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0-08-29 20:4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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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의 '고기잡이'. 문신(1923~1995)은 광복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와 부산과 경남지역에 새로운 미술의 기풍을 진작시켰다.


전쟁은 화가들의 삶과 예술활동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갑작스런 전쟁으로 수도 서울이 함락되자, 일부는 서울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숨어들었고 일부는 피란을 떠나야 하는 신세가 됐다.

북한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통치를 시작하면서 미술인들은 많은 이념적 정서적 혼란은 물론 어제까지 같은 문하에서 배웠던 동학들의 변화된 태도에서 '세상이 변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됐다. 이미 6월 27일 서울 창동지역을 점령한 인민군 탱크는 28일에는 종로까지 진출해 있었다. 삼각지에 살던 조각가 윤효중과 함께 이 사실을 목도한 코주부 김용환(1912~1988)은 '코주부 표랑기'에서 이를 회고하고 있다.

인민군 점령하의 서울에서 피란을 떠나지 못한 화가들은 목숨을 부지할 요량으로 '미술가 동맹'에 가입해야만 했다. 가입 후에는 서울 명동의 마루젠 백화점 건물 1층에 나가 주먹밥을 먹어가며 김일성 초상화를 그리는 등 선전화를 제작하는 일에 동원됐다고 여성작가 이현옥은 회고한다. 그후 7월 16일 정부는 대구로 이전했고 다시 8월 18일 부산으로 이전했다가 인천상륙작전 덕에 10월 27일 다시 환도했지만 이미 한반도 전역은 전쟁터였다.

전쟁초기 피란을 떠나지 못해 서울에 머물렀던 화가들에게 6월 27일부터 다시 서울을 수복했던 10월 27일까지 불과 4개월의 인공 치하는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서울에 남았던 화가들로는 김환기와 한국 화단에 야수파를 정착시켰다고 평가받는 박고석 그리고 유영국 장욱진 이쾌대 등이 있다.

또 고희동 이상범 장우성 김종영 김경승 김병기 등도 소위 '잔류파'에 속했다. 이들 외에도 김기창 김인승 손응성 박득순 박상옥 김흥수 박영선 도상봉 이봉상 이세득 임완규 조병덕 등이 있다. 이들은 수복 후 부역자 심사를 받는 등 '잔류파' 또는 '미도강파'로 지목되어 일정한 고초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미술계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일종의 헤게모니 싸움이기도 했다.

조각가 윤승욱(1915~?)과 이중섭의 스승으로 더 잘 알려진 임용련(1901~?) 류경채 이인성 등은 인민정치 보위부에 체포됐다. 이들 중 임용련과 윤승욱은 납북 도중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고, 이들과 함께 서화협회전을 통해 활동하던 정용희(1914~?)도 납북 도중 사망했다. 하지만 임용련의 아내이자 화가였던 백남순은 남편의 죽음을 알고 부산으로 피란을 떠났다.

전남지역도 전쟁을 비켜갈 수는 없는 운명이었다. 인민군이 광주를 점령하자 허백련은 무등산 동작골로 숨어들어갔고 천경자도 1952년 부산으로 떠날 때까지 광주에서 화가 배동신, 시인 서정주, 김현승 등과 교유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경북에서는 임규삼이 1950년 안동사범학교 발령을 받고 내려와 전쟁 중에도 천막교실에서 수업을 하는 등 4년여간을 교사로 봉직했다. 또 전쟁 와중에도 김은호를 사사한 후소회의 황영준이 서울에서 2인전을 열기도 했다.
   
아무튼 전쟁은 많은 화가들을 조선미술동맹에 나가거나 아니면 은거하거나 유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갔다. 여기에 전쟁을 피해 해외로 빠져나간 화가들도 있었는데 대구에서 경북고 미술교사로 재직 중이던 28세의 손동진은 20여 차례나 일본 밀항을 시도하여 드디어 부산 다대포에서 고깃배를 타고 일본에 건너갔다. 또 경기중에 다니던 백남준도 홍콩을 거쳐 일본으로 가 부산을 거쳐 먼저 일본에 도착해 있던 가족들과 조우한다.

서울이 그리고 전국이 아비규환처럼 들끓던 시절을 전후해서 부산과 경남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작가로는문신을 비롯, 강신석 김경 김남배 김원갑 김윤민 김종식 박생광 서성환 양달석 오영재 우신출 이림 이준 임호 장점복 전혁림 조동벽 등이 있다. 이들은 이후 전란을 피해 부산으로 들어온 화가들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국민대 초빙교수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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