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김동호의 세계 영화제 기행 <22> 러시아의 '거울' 국제영화제

타르코프스키 기려 창설… 올해 전수일에 감독상 안겨

이바노보, 러시아 섬유공업 중심지이자 전설의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의 고향

그의 대표작을 공식 명칭으로 삼은 이 축제를 발판으로

이 고장 사람들은 예술도시로의 변신을 꿈꾼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6-09 20:56:29
  •  |  본지 17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감독상을 수상하는 전수일 감독.
모스크바에서 400㎞ 떨어진 러시아 남쪽에 이바노보라는 도시가 있다. 인구 40만 명에 달하는 이 도시는 1871년부터 '이바노보-보즈네센스코'로 불렸지만 1932년에 이바노보 주로 독립하였다. 지난 200년간 러시아 섬유공업의 중심지였고, 여공(女工)이 워낙 많아 지금까지도 '처녀의 도시'로 불린다. 젊은 여성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지역인 만큼 오늘날 이바노보는 여성의류와 패션의 도시로 각광받는다. 매년 이곳에서 열리는 '텍스타일 살롱'은 러시아의 유일한 섬유 직물 의류와 패션을 다투는 콘테스트다.

패션이 있는 곳에는 예술도 함께 있기 마련이다. 러시아의 국민예술가 라스카토프(1927~1993)는 이곳에서 50년간 연극을 이끌었고, 1913년에 설립된 음악대학은 이바노보의 뮤지컬 코미디, 이바노보 오케스트라, 레트로 재즈 오케스트라, 발레 등을 활성화시키면서 이곳을 '예술의 도시'로 변신시키는 데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주변도시 또한 명품의 산지로 유명하다. 지근거리에 있는 빨랴크 마을은 아이콘과 칠기로 유명하다. 장인들에 의해 그려지고 만들어진 성화와 칠기들은 예술성과 품질에서 최고를 자랑한다.

   
필자가 타르코프스키 기념관에서 핸드 프린팅을 하고 있다.
인근 인구 6만 명이 살고 있는 슈야에서는 이바노보에서 생산된 직물과 의류를 직판한다. 고난의 역사만큼 수난을 겪은 종탑과 바스크리 신스키 성당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슈야박물관은 이 고장의 역사를, 발몬트기념관은 이곳에서 배출한 러시아의 지성을 기린다. 볼가강과 샛강인 잘라떼 리치카(골드 리버)가 마주치는 곳에는 작고 아름다운 미술인의 마을이 있다. 이곳에는 레비딴(1860~1900)을 비롯한 화가들의 그림을 상설 전시하는 '풍경화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바노보는 세계적인 러시아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고향이다. 그는 폭 20m의 넓은 볼가강을 끼고 들어앉은 이 도시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이바노보는 비가 많은 고장이다. 내가 이바노보에 머문 9일간 거의 매일 비가 내렸고, 하루에도 비가 오다 그치기를 거듭했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 '비'와 '물'이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것도 아마 비가 많은 고장에서 넓은 볼가강을 바라보며 유년시절을 보낸 탓일지 모른다. 그에게 물은 구원의 상징이자 유년의 추억이었다. 그의 고향 이바노보에 타르코프스키영화제가 생긴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왼쪽부터 미국 촬영감독인 톰 스턴, 필자, 세르게이 라브렌티에프 영화제 집행위원장.
그의 대표작인 '거울'의 러시아 이름을 붙여 '타르코프스키의 명성을 기린 '거울' 국제영화제(International Film Festival Named After A. Tarkovsky 'Zerkalo')는 2007년 현 이바노보주지사인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멘에 의해 창설되었고, 창설의 실무는 세르게이 라브렌티에프가 맡았다. 집행위원장 겸 프로그램 디렉터를 맡고 있는 세르게이는 1954년생이다. 국립영화학교(VGIK)를 졸업한 후 러시아의 영상자료원인 고스필름폰드에 근무하다가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영화평론가로 변신했다. 1990년대에는 TV프로그램 '키노 마라톤'의 앵커로 활동했다. 1999년부터는 러시아의 소치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아 소치영화제의 튼튼한 기반을 구축해 놓았지만 소치영화제가 국내영화제로 바뀌면서 사임했다. 그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러시아의 원로 인민여배우 이나 츄리코바가 제1회와 제2회 영화제의 조직위원장을 맡아 이 영화제를 이끌었고, 제3회 영화제는 조직위원장 없이 영화제를 개최했다. 올해 초에는 국민 예술가인 영화감독 파블 세메노비치 룽긴이 새로 조직위원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1949년에 출생했고, 모스크바대학에서 작가 및 감독과정을 마친 후 1990년 '택시 블루스'로 데뷔하여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 후 '루나 파크'(1992), '라이프 인 레드'(1996), '결혼'(2000), '타이쿤'(2002), '뿌리'(2005), '차르'(2009) 등을 연출했다. 그의 아버지는 시나리오 작가 겸 감독이고, 장남도 작가 겸 감독으로 3대가 모두 러시아의 영화감독이다.

   
영화제 개막식장
그리스의 거장 테오 앙겔로플로스가 첫해의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타르코프스키영화제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 등 4개 부문과 별도의 관객상 등을 시상하고 있다. 국제경쟁부문에는 대체로 10~14편의 영화를 초청하여 심사하게 한다. 특히 새로운 러시아 영화와 러시아 다큐멘터리 및 애니메이션, 그리고 국립영화학교(VGIK)를 비롯한 학생들 작품(주로 단편)과 타르코프스키회고전을 주요 프로그램으로 구성하고 있다. 개회식과 폐회식은 '예술의 궁전'의 대극장(1200석)을 사용하고 있고, 영화들은 주 상영관인 280석의 '이스크라'(불꽃을 의미하는 러시아어로 100년 전 레닌그라드에서 발간되다가 폐간된 동명의 신문 이름)를 포함하여 5개의 스크린을 사용한다. 3회 영화제에는 전도연, 하정우가 주연한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가 처음으로 초청되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대략 상영 편수는 100편 정도의 규모이다.

필자는 올해 5월 24일부터 30일까지 개최된 제4회 영화제에 영광스럽게도 심사위원장으로 초청받았다.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부문' 심사를 마치고 시상식이 끝난 직후 니스에서 모스크바까지는 비행기로, 모스크바에서 이바노보까지는 자동차로 6시간을 달려간 끝에 이바노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국의 촬영감독 톰 스턴, 불가리아의 영화평론가이며 영화진흥기구 회장인 알렉산더 야나키에프, 러시아 영화감독 알렉세이 미스기레프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특히 톰 스턴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전속 촬영감독으로 '미스틱 리버'(2003),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 등 여러 편의 영화를 함께 만들었고, '체인질링'(2008)으로 아카데미 촬영 감독상 후보에 올랐던 인물이다.

   
심사결과 핀란드와 스웨덴의 합작영화 '금단의 열매(Forbidden Fruit)'가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전수일 감독의 '바람이 머무는 곳, 히말라야'가 감독상을, 타지키스탄의 '윗마을 아랫마을 그리고 국경선(True Noon)'이 남우주연상을 탔다. 전수일 감독은 스폰서가 주는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폐막을 하루 앞둔 지난달 29일, 영화제 게스트들은 유람선을 타고 볼가강을 거슬러 올라가 타르코프스키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유레베츠카를 방문했다. 그날 유레베츠카에서는 축제가 열렸다. 선착장에서는 무용공연을 곁들인 환영행사가 벌어졌고, 부두에서 성당에 이르는 500m의 거리는 전통 차와 먹거리, 가면무도와 춤으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타르코프스키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집인 '타르코프스키기념관'의 정원에서는 기념식수, 기념타종, 핸드 프린팅 행사가 진행되었다. 섬유공업도시에서 문화도시로 변모시키겠다는 미하일 멘 주지사의 확고한 의지와 파블 룽긴 조직위원장의 영화제 개혁에 대한 의욕, 그리고 주민들의 열의에 비추어 볼 때 타르코프스키의 후광을 업고 출범한 타르코프스키영화제는 해가 다르게 변모해 갈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예술 거장의 명성에 걸맞게 모스크바 영화제와는 차별되는 모습을 어떻게 보여주고 성장해 갈지 기대가 된다.


■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 심오한 독자적 영화세계 구축, 작품 수 적지만 만드는 족족 세계 유수 영화제 수상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사진)는 영화사조에 편승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만의 영화세계를 추구해온 대표적인 러시아 영화감독이다. 그는 1932년 4월 4일, 러시아의 최대 직물공업도시인 이바노보시의 자브라이에 마을에서 시인이자 모스크바 대학교수인 아버지 알렉세이 타르코프스키와 어머니 마리아 이바노브나 비슈나코바 사이에서 태어났다.

집을 인근 유레베츠카로 옮긴 타르코프스키는 어머니와 누이동생인 마리아 아르세니에바 타르코프스카야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 그의 어머니는 틈나는 대로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읽어 주었고, 이것이 그의 인생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타르코프스키는 미술과 지질학을 공부했지만 1956년 모스크바로 가서 국립영화학교(VGIK)를 졸업했다.

타르코프스키의 데뷔작 '이반의 어린 시절'은 1967년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두 번째 장편 '안드레이 루블레프'(1969)는 칸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당시 구 소련정부에 의해 5년간 개봉이 금지됐다. 1972년 제작한 '솔라리스'도 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1975년 그는 대표작으로 꼽히는 '거울'을 제작했다. 이 영화는 타르코프스키 영화 중 가장 난해하면서도 심오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타르코프스키는 1979년에 '스토커', 1982년에 '향수'를 만들었고 두 편 모두 칸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소련정부로부터 끊임없이 억압받았던 그는 1984년 로마로 망명했고 이곳에서 1986년에 유작 '희생'을 발표한 후 그해 12월 28일 파리에서 폐암으로 타계했다. '희생'은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건강한 부산을 위한 시민행동 프로젝트
많이 본 뉴스 RSS
  •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