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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문학기행 <97> 양평 황순원 소나기마을

국어교과서에 눈물얼룩 배게 했던 그 소녀도 여기 있나요

소년과 소녀가 비를 피하던 수숫단까지…

소설 소나기가 양평 두물머리로 옮겨와있다

  • 국제신문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10-05-25 20:20:17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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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주 시인에게 들은 얘기다. 황 시인은 피스프렌드(www.peacefriend.or.kr)라는 모임을 이끌고 있다. 이 모임은 아프리카를 돕는 민간단체다. 가난한 탄자니아에 우물을 파주고, 케냐의 고아원에 축구공을 선물하고, 마사이족을 위해 학교를 짓고,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문화활동을 펼쳐왔다. 몇년 전 황 시인은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친해진 현지 마사이족 주민들을 서울로 초청했다 한다.

아프리카의 일행을 데리고 한강 유람선을 타러 갔을 때였다. 배에 올라 한강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아프리카의 족장이 갑자기 하늘을 향해 울부짖더란다. "신이시여! 어찌하여 우리에게는 물을 아주 조금밖에 주시지 않아 우리 부족민들이 물 한 양동이를 얻기 위해 메마른 대지를 몇 시간 동안 걷게 하시면서, 이 종족에게는 이렇게 많은 물을 주셨단 말입니까."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황 시인도 눈물이 글썽거렸더란다.

지난 21~22일 제97회 신문학기행 일행은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에 다녀왔다. 일행이 먼저 간 곳은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兩水里), 그러니까 남한강과 북한강 물줄기 두 개가 만나는 두물머리였다. 수향(水鄕)에 온 것 같았다. 물이 많았다. 왜 한국이 '물부족국가'로 거론되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 일대는 수도권을 위한 상수원보호구역이어서 자연도 있는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다.


황순원문학촌이 양평에 자리잡은 사연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 풍경. 소설 '소나기'도 이 속에서 잉태됐을 것이다.
황 시인에게 '한강 유람선을 탄 아프리카 족장의 눈물' 이야기를 함께 들었던 일행에게 말을 건넸다. "황 시인이 아프리카 주민들을 두물머리로 초청하지 않았던 건 잘한 일 같죠?" 그가 답했다. "한강이 아니라 두물머리로 왔다면 족장은 말할 것도 없고 아프리카 일행 전체가 눈물바다를 만들 뻔 했겠네요." 익히 봐왔던 한강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풍성한 두물머리의 물과 자연 풍경은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압도했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양평군 서종면 수능리에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www.소나기마을.kr)이 있다. 경기도까지 올라간 김에 식물원인 석창원과 남양주종합촬영소, 다산 정약용 유적지까지 돌아본 뒤에야 일행은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로 들어섰다. 전체 땅 면적이 3만7315㎡(약 1만2000평)에 달해 문학공간으로는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에 드는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은 지난해 6월 개장했다.

소설가 김용성 황순원문학촌장이 일행에게 들려준 문학촌 탄생의 과정이 꽤 흥미롭다. "황순원 선생께서 타계하신 것은 2000년 9월 14일이었습니다. 선생께서는 1915년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나셨죠. 고향이 양평이 아니라 이북인 것입니다." 대개 문학관 같은 시설은 해당 문인의 고향에 서는 경우가 많다. "선생은 창작에서는 '소나기' '목넘이 마을의 개' 등 숱한 작품으로 한국 단편소설의 최고봉을 이루신 한편, 경희대 국문과에서 23년 6개월 재직하면서 많은 제자들도 길러내 우리 문단을 살찌웠죠."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문학사의 거봉인 황순원 작가와 그를 사랑하는 국민들을 위한 문학공간을 찾던 도중 '국민단편소설'이라 해도 좋을 '소나기'에서 이런 대목이 재발견됐다. 소설의 말미, 소년이 아직 소녀의 운명을 모르고 있을 때였다. '개울물은 날로 여물어 갔다. 소년은 갈림길에서 아래쪽으로 가보았다. 갈밭머리에서 바라보는 서당골 마을은 쪽빛 하늘 아래 한결 가까워 보였다.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 거기 가서는 조그마한 가겟방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주머니 속 호두알을 만지작거리며, 한 손으로는 수없이 갈꽃을 휘어 꺾고 있었다'.

김 촌장은 "소설의 흐름으로 보아 소년과 소년의 식구들이 '양평읍'을 익숙한 장소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과 소설 '소나기'의 무대가 양평군 안이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죠." 이런 근거를 갖고 제자들은 양평군과 협의를 했고, 양평군은 흔쾌히 이 제안을 받아 국비 도비 군비 120억여 원과 3년여 공사기간을 들여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을 열게 된 것이다.
세월은 흘러 세대마다 기억도 달라지고

   
청소년들이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영상실에서 애니메이션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황순원의 '소나기' 내용을 다시 불러올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1960년대부터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노년층부터 지금의 중학생들까지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순수하고 설레는 사랑 이야기. 요즘 스타들에게 '국민~'이라는 꾸밈말을 붙이는 게 유행이지만, 원조 '국민소녀'와 '국민소년'은 바로 '소나기' 속 소녀와 소년이 아닐까.

"그런데 참, 이번 계집앤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아?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아직도 국어시간에 이 대목을 읽고는 이유 없이 교실 창밖 하늘을 올려다 본 기억, 여전히 이 대목이 귀에 쟁쟁거리는 독자들이 꽤 계실 것이다. 시골소년과 도시에서 전학온 소녀가 애틋하고 순수하게 그려낸 수채화 같은 사랑은 '소나기'라는 제목으로 숱하게 영화로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세월은 역시 모든 것을 바꿔놓는 걸까. 이번 문학기행에는 중학생이 스무명 채 못 되게 동행했다. 이들을 모아놓고 '소나기'에 대한 감상을 물어봤다. 뜻밖에 '소나기'를 읽으면서 가슴 떨리는 설렘과 순수한 사랑 느낌을 진하게 받은 중학생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열명에 서너명 꼴로 '그 소설이 (아주) 좋았다'고 답한 학생들을 만날 수는 있었다.

"징검다리에서 '이 바보야!'하고 소녀가 외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시골소년과 도시소녀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느낄 수 있었어요."(배혜진·김해 봉명중2) "순수한 사랑이야기이니까요. 나는 무를 먹는 장면이 좋았어요. 시골소년에겐 친근한 것이지만 도시소녀의 입맛엔 맞지 않았나봐요."(김대익·김해 내동중2)

이보다 덜 뜨거운 반응으로 이런 것이 있었다. "보랏빛에 대해서 말하는 장면이 강했어요. 그런데 막상 보랏빛이 왜 그런 뜻(죽음 등의 불길한 징조)을 갖는지는 잘 모르겠고 또 소설에 푹 빠져들지는 못했어요."(정동주·김해 임호중2) "저는 해피엔딩을 좋아하는데 그게 아니어서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요. 해피엔딩이 아니니까."(한종윤·김해 경운중2) '해피엔딩이 아니어서 별로였다'는 소감은 그만큼 '이 소설이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는 말도 되니 오히려 강한 인상을 받은 것으로 여길 수 있기도 할 것이다.


소나기마을에서 뛰노는 소녀들과 소년들

   
소나기마을 마당에서 뛰노는 아이들.
예상대로 어른들 반응은 달랐다. 일행 김지현(여·65) 이상금(여·63) 씨는 "아까 문학촌 안에서 '소나기' 애니메이션을 볼 때 떨림이 되살아났다. 하얀색의 순수, 그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 알퐁스 도데의 '별'이 내 어깨에 내려앉는 환상, 내가 소녀가 된 감상에 젖었다"고 말했다. 동행한 교사 이혜원(중앙여고) 씨가 정리해줬다. "나를 포함한 어른들에겐 '소나기'가 수채화나 파스텔톤의 그림 같은 순수하고 아련한 사랑 느낌을 주지만, 워낙 개방돼 있고 주위에 재미있는 것들도 많고 이성끼리 사귀는 데도 스스럼 없는 요즘 청소년이 그런 강렬한 느낌을 받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싶어요."

어쨌거나, 소나기마을에 있는 관람시설을 다 보고 난 뒤 문학촌 마당으로 나온 중학생들은 '소나기' 속에서 소년과 소녀가 소나기를 피한 수숫단을 재현해놓은 전시물 앞에서 '둥글게 둥글게' 게임을 하면서 신나게 뛰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환호가 순식간에 소나기마을 마당을 채웠다. 문학촌 전체가 살아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래. 너희들이 주인공이다. 비록 '소나기'에서 받는 느낌은 어른과 다르지만 결국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같은 공간도, 우리 문학도, 우리나라도 더 잘 가꾸고 빛낼 주인공들은 바로 너희들이다."

신문학기행 참가 문의=부산문화연구회 (051)441-0485 동보서적 (051)803-8000 http://문학기행.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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