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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세계 영화제 기행 <17> 이탈리아 `우디네극동영화제`

영화인들이 선호하는 영화제

"나비넥타이는 집에 두고 그냥 오세요" 격식은 없고 영화와 맛이 있는 축제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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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0-05-05 19:58:27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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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일본 홍콩 등 극동아시아 지역 작품 초청 상영
- 분위기는 가족처럼… 풍성한 음식 대접
- 초청받은 영화인들 "언제든 환영해요"

- 1982년 창설된 무성영화제가 모태, 1999년 본격 시작
- 올해 제12회에선 '김씨 표류기' 관객상 차지해

   
우디네극동영화제의 공동집행위원장인 사브리나 바라세티(왼쪽)와 토마스 토마스 베르타체가 필자와 포즈를 취했다.
이탈리아 북부 도시 우디네에서 열리는 우디네극동영화제는 영화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한다. 초청을 받는 영화인 치고 거절하는 일은 거의 없다. 왜 그럴까.

첫째, 우디네는 편해서 좋다. 격식이 없고,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칸영화제처럼 나비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굳이 정장을 챙겨가지 않아도 된다. 상영관은 영화제 기간 중에 본부로 쓰고 있는 '떼아트로 누에보' 한 곳만을 사용한다. 더러는 새로 조성한 '비죠나리오' 건물을 회고전 영화를 틀거나 워크숍 또는 세미나 장소로 활용하지만 이처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떼아트로 누에보에서 모든 영화를 만날 수 있기에 관람이 편하다. 둘째, 영화제의 분위기가 매우 가족적이다. 초청받는 영화인은 대체로 50명 안팎이어서 처음 만난 사람도 곧 친해질 수 있다. 영화제 직원은 물론 임시 채용한 통역을 겸한 안내원들도 매우 친절하다. 셋째, 주최 측은 영화제에 초청된 게스트들을 한 사람도 빠트리지 않고 매일 점심과 저녁에 초대한다. 심지어 심야에 도착하는 게스트들에게는 호텔방에 밤참을 차려 놓는다. 때문에 우디네영화제에서는 배고플 일은 없다. 게스트의 입장에서 이보다 더 풍성한 영화제가 또 있을까.

우디네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맛의 고장'이다. 가는 식당마다 음식이 맛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와인, 특히 화이트 와인은 일품이다. 영화제 측은 매일 식당을 바꿔가면서 대접하는 세심한 배려를 놓치지 않는다. 우디네는 베니스에서 북동쪽으로 차를 이용해 90분 거리에 위치한 인구 10만 명의 작은 도시다. 서기 10세기 오토 2세가 아퀼레이아 주교에게 성을 하사하면서 형성된 이 작은 도시는 14세기 중반과 16세기 초에 두 차례의 지진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1차 세계대전 후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1973년 'CEC'(예술영화진흥센터)라는 기구가 창설되면서 우디네는 '영화의 도시'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CEC는 도시 중앙에 극장(철로 극장)을 짓고, 영화필름과 비디오를 사모으면서 일 년 내내 교사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화 교육과 영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여름 두 달 동안에는 도시 중심에 있는 토르소 가든에 800개 좌석을 마련, 주민과 관광객을 상대로 야외상영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우디네 주변 30여 곳을 찾아다니며 연간 100회 이상 순회상영을 하기도 한다.

   
필자가 한국영화 세미나에서 이재용(왼쪽) 감독, 진행자 달시 파켓 등과 함께 토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영화의 도시에 우디네극동영화제가 태어나게 된 배경에는 1982년 창설된 포르데노네 무성영화제가 있다. 곧 30주년을 맞이하는 이 영화제 기간에는 유럽 각지의 영화광들이 무성영화를 보기 위해 몰려온다. 특히 1986년 이후 매년 '소비에틱 러시아'나 '독일 표현주의 영화' 또는 '유로 웨스턴'과 같은 특정 주제를 가지고 영화제를 개최하며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던 중, 1998년 버라이어티지(誌) 기자인 데렉 엘리가 홍콩영화를 주제로 기획한 영화제가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를 계기로 다음해인 1999년 사브리나 바라체티와 토마스 베르타체가 '우디네극동영화제'를 창설하게 된 것이다.

우디네극동영화제에는 이름 그대로 한국 일본 중국 대만 홍콩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극동아시아 지역의 영화를 초청하여 상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초청되는 영화는 매년 증감이 있지만 대체로 60편 안팎이다. 영화제를 창설한 사브리나 바라체티와 토마스 베르타체는 항상 같이 다니면서 영화를 선정한다. 부산국제영화제에도 해마다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 2002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우디네극동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는 자매결연을 맺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2003년부터 메인 카탈로그에 영화제 광고 교환게재, 프로그래머의 교환 초청이 진행되고 있다. 필자도 2003년에 열린 제5회 영화제부터 거의 매년 우디네를 찾게 되었다.

우디네극동영화제와 한국영화의 관계는 매우 두텁다. 2000년 제2회 영화제 때 남북한 영화를 동시에 초청함으로써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 해 초청된 55편의 영화 중 '씨받이'(임권택>, '그대안의 블루'(이현승), '정'(배창호), '쉬리'(강제규), '주유소 습격사건'(김상진), '처녀들의 저녁식사'(임상수), '가족시네마'(박철수), '내 마음의 풍경'(이용재), '텔미 썸딩'(장윤현), '유령'(민병천), '자귀모'(이광훈) 등 11편의 한국영화와 '홍길동'(김길인), '도라지 꽃'(조경선), '나의 행복'(김영호), '추억 속에 영원 하리'(강용모), '해운동의 두 가정'(장인학), '명령027호'(정기모), '헤어져 언제까지'(박창성), '마지막 임무'(박정주) 등 8편의 북한영화가 우디네에서 상영됐다. 그로부터 매년 10편 내외의 한국영화가 꾸준히 소개되었고 이로 인해 사브리나 바라체티는 2007년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공로상을 받았다.

내가 처음 방문했던 2003년 제5회 영화제에서는 전체 52편의 영화 중 한국영화가 무려 18편을 차지했고, 4만여 명의 관객들로부터 열띤 호응을 얻었다. 현남섭 감독의 '굳세어라 금순아'가 개막작으로 상영되었고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가 관객상을 받았다. 특히 '1960년대의 한국영화 황금기'라는 주제 아래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 이만희 감독의 '마의 계단', 유현목 감독의 '막차로 온 손님들', 김기영 감독의 '하녀', 김수용 감독의 '안개', 권철휘 감독의 '월하의 공동묘지', 정진우 감독의 '하숙생' 등 7편을 특별 상영하면서 이에 관련한 기자회견과 토론회가 함께 열렸다.

우디네극동영화제는 상영되는 영화마다 관객들의 의견을 모아 3편의 관객상을 수여하고 있다. 유일한 시상제도다. 첫 영화제에서는 두기봉 감독의 '더 히어로'(홍콩), 리홍 감독의 '개인교사'(중국)와 함께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이 관객상을 받았다. 제2회 영화제에서는 배창호 감독의 '정'이 장양 감독의 '샤워'(중국), 두기봉 감독의 '암전'과 함께 관객상을 받았다. 특히 2001년에 열린 제3회 영화제에서는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과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가, 다음해인 2002년에 장진 감독의 '킬러들의 수다'와 박철관 감독의 '달마야 놀자'가 각각 공동수상했다.

2004년 이후도 매년 10편 안팎의 한국영화가 꾸준히 소개되었고, 관객상도 해마다 수상하고 있다. 필자 또한 거의 매년 참석해서 한국영화에 관한 패널에 참석해왔다. 한국영화의 선정과 해설은 창설 때부터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을 중심으로 이한나 정우정 조은정 등이 차례로 참여해왔다. 2004년에는 56편 중, '말죽거리 잔혹사'(유하), '싱글스'(권칠인), '와일드 카드'(김유진) 등 10편이 초청되었고,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가 관객상을 받았다. 2005년 제7회 영화제에는 일본영화가 집중 조명되어 닛가츠 영화사가 제작한 액션영화 16편을 포함하여 모두 27편이 선보였고, 상영영화 65편 중 한국영화는 촬영감독특별전에 초청된 '살인의 추억'(봉준호), '박하사탕'(이창동)을 포함하여 12편이 초청되었다. 이 해에는 장진 감독의 '박수칠 때 떠나라'가 관객상을 받았다. 2006년 제8회 영화제에는 '너는 내 운명'(박진표), '연애의 목적'(한재림), '사과'(강이관) 등 14편이 상영되었고 '웰컴 투 동막골'(박광현)이 관객상을 받았다.

특별전에서 상영된 패트릭 탐 감독의 영화 30편을 포함해 모두 62편의 영화가 선을 보였던 2007년의 제9회 영화제에서도 '다세포 소녀'(이재용), '가족의 탄생'(김태용), '괴물'(봉준호) 등 14편의 한국영화가 초청되었고, 박철희 감독의 '예의 없는 것들'이 관객상을 받았다. 10돌을 기념했던 2008년에도 14편의 한국영화가 초청되었지만 관객상은 모두 일본영화에 돌아갔다.

   
지난해에는 '놈, 놈, 놈'(김지운), '미쓰 홍당무'(이경미), '영화는 영화다'(장훈) 등 10편의 한국영화가 초청되었고, 강형철 감독의 '과속 스캔들'이 일본 다키타 요지로 감독의 '굿,바이', 인도네시아 리리 리자 감독의 '무지개 분대'와 함께 관객상을 받았다. 올해 제12회 영화제에서는 '여배우들'(이재용), '해운대'(윤제균), '의형제'(장훈) 등 8편의 영화가 상영되었으며, 필자와 함께 이재용 이용주 장훈 감독이 참여했다. 그리고 이해준 감독의 '김씨 표류기'가 관객상을 차지했다.

우디네극동영화제는 3년 전부터 유럽연합 미디어프로그램의 지원을 받는 'EAVE'와 공동으로 공동제작과 투자·마케팅에 관한 '프로듀서 워크숍'을 운영하고 있다. '협력 맺기'란 제목의 이 사업은 아시아와 유럽 지역을 연계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는 점에서 부산과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EAVE, 우디네 그리고 부산이 연합하여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첫 번째 모임을 열었고, 올해 우디네영화제에서 10개의 유럽 및 아시아 프로젝트가 참여한 가운데 제1회 워크숍을 가졌다. 제2회 워크숍은 오는 10월 부산에서 개최된다. 이 프로그램의 목표는 보다 현실적인 네트워크와 아이디어의 마당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디네는 아주 큰 마켓을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고유의 색깔을 지닌 독특한 프로그램을 통해 조금씩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곳은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주는 새로운 교량 중 하나이다. 이곳과 가까운 물의 도시 베니스가 170여 개의 운하를 잇는 것으로 유명하듯이 극동 아시아의 영화들은 우디네를 통해 유럽으로 나아간다. 영화제는 넉넉한 인심과 여유를 지닌 거대한 곤돌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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