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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2010 다이내믹 부산 희망원정대 <1> `5개 큰 눈의 보석` 캉첸중가, 부산사나이들이 왔다-1신

9일 출국 후 보름 만에 베이스캠프 무사 입성

비행기 버스 도보 병행… 포터 40여명과 동행

캐러밴 중 만난 네팔 주민과 '나마스떼' 인사

긴장·여유 뒤섞인 채 차분히 정상 등정 준비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4-01 20:02:00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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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의 용마루 히말라야에는 8000m가 넘는 봉우리 14개가 있다. 그 중 아침 태양이 가장 먼저 정수리에 비치는 산을 현지 원주민들은 예로부터 '캉첸중가'라 불렀다. 티베트어로 'Kang'-'Chen'-'Ju'-'Nga' 4개 단어의 합성어다. 'Kang'은 '눈(雪)', 'Chen'은 '크다(大)', 'Ju'는 '보석(寶石)', 'Nga'는 '다섯(五)'을 의미한다. 즉 '5개 큰 눈의 보석'이란 뜻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오대보장(五大寶藏)이다. 해발 8586m의 캉첸중가는 때로 킹친중가(Kingchinjunga) 또는 쿵찬장가(Kungcanjangha)라고도 했었다. 캉첸중가라 불리어진 것은 다섯 개의 봉이 연이어 솟아 있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그 봉우리가 바로 캉첸중가 주봉(8586m), 중앙봉(8473m), 남봉(8476m), 서봉(8505m·얄룽캉), 캉바첸(7903m)이다. 이 산군은 네팔의 최동단과 인도의 시킴(Sikkim)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 네팔 동부 해발 100m에서부터 8000m 고지로 출발

   
2010 다이내믹 부산 희망원정대 대원들이 캉첸중가 베이스캠프로 이동하는 캐러밴 도중 중간 길목인 람제에서 숙영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 지난달 9일 출국한 대원들은 24일 베이스캠프에 무사히 도착, 정상 등정을 노리고 있다.
원정대는 첫 대상 산인 캉첸중가 등반을 위해 지난 3월 9일 출국, 카트만두에서 등반 준비로 5일간 바쁜 일정을 보냈다. 3월 15일 대원들은 경비행기로 카트만두에서 비랏나가르로 이동, 전날 대형버스에 1t가량의 원정화물을 싣고 14시간 동안 밤새 달려온 현지 스태프들과 합류했다.

네팔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포함해 8000m급 8개 봉우리를 품고 동서 800㎞, 남북 200㎞의 긴 영토를 가진 산악 국가다. 그렇다고 네팔이 높은 산들과 7000∼8000m급 흰 설산들만이 솟아 있는 곳은 아니다. 카트만두에서 출발한 경비행기가 캉첸중가로 향해 가는 기내에서 내려다 본 네팔의 남쪽 땅은 끝도 없는 평원이었다. 테라이(Terai) 지대다. 네팔 영내에서 최저 해발고도는 60m다. 우리가 도착한 네팔의 제2 도시 비랏나가르는 해발고도 100m로 캉첸중가를 오르려는 원정대는 이곳에서부터 8000여 m를 올라야 한다.

이곳 모습을 처음 바라본 우리는 현재 네팔이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생활환경이 낙후됐지만 결코 절망적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19세기 말 영국인 여류 탐험가 엘리자베스 비숍(Elizabeth Bishop) 여사가 인도를 비롯해 동양을 탐험, 여행하면서 한국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녀는 명성황후와 깊은 친분을 맺으면서 한국의 방방곡곡을 두루 살펴본 후 저술한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이라는 명저에서 한국의 잠재력을 피력한 바 있다. 비숍 여사는 한국은 훌륭한 지도자만 만난다면 위대한 국가로 발전할 수 있다고 봤다. 우리는 네팔의 자연과 문화자원 그리고 국민들의 뜨거운 교육열에 그 미래가 캉첸중가 첫 태양의 빛과 같기를 빌었다.

   
네팔 포터들과 야크가 희망원정대의 짐을 베이스캠프까지 옮기고 있다.
테라이 평원 동쪽의 비르타모드에서 방향을 바꾸어 북쪽 인도 시킴과 국경을 마주하는 카카르비타를 거쳐 외(外)히말라야에 속하는 추리아 산맥으로 접어들자 버스 엔진은 파열음을 더 가중시켰다. 해발 1600∼2000m대 능선의 구름 위로 차밭이 끝없이 펼쳐진 일람(Ilam)에 당도했다. 시킴과 일람 차는 히말라야 산자락에서 생산되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차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 우리는 서쪽 계곡에 저녁놀이 질 무렵 목적지 피딤(Phidim)에 당도, 허름한 여인숙에 여장을 풀었다.

3월 16일. 피딤을 출발하자말자 절벽을 타고 도는 연속되는 벼랑길인 피딤~타플레중(Taplejung) 간에는 도로 확·포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더욱이 차량이 교차할 때마다 메마른 먼지가 앞을 가로막았다. 현지인들은 위험을 느낄 때마다 "옴 마니 밧 메훔"이란 진언을 읊는다. 2007년 세계 제2위봉 K2 원정 때 파키스탄 사람들은 같은 상황에서 '인샬라(Inshahalla)-신과 함께 평화를'를 연거푸 중얼거렸다.

네팔의 산간지역은 겨울이 지나면 봄시즌은 건기다. 한 달간 비가 내리지 않아 계곡의 계류를 빼고는 모두 목이 타고 있었다. 식수 부족으로 멀리까지 물을 길어오는 아낙들의 모습이 보였다. 약 4시간을 달려 도보 캐러밴의 출발지 타르푸(Tharpu·1300m)에 도착, 먼지로 뒤덮인 피곤한 몸을 흐르는 맑은 계곡물로 씻어 냈다.

■히말라야 주민 삶 엿보며 도보 캐러밴

   
베이스캠프로 가는 캐러반 도중에 볼 수 있는 네팔의 다랑이 논.
3월 17일. 포터 40여 명과 함께 도보 캐러밴이 시작됐다. 겨울이 막 지난 초봄에 한국을 떠나온 우리는 후텁지근한 아열대 기후에 적응하며 서서히 고도를 높였다. 무더운 날씨 탓에 이내 땀방울이 맺혔다. 건조한 대지의 공기는 우리의 입술을 태웠다. 쉴 때마다 콜라를 마시며 가끔 샘물이 흘러나오는 곳에서는 연신 물을 들이켰다.

네팔에는 100여 개의 소수 부족이 살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키가 작고 야위었으며 검게 탔다. 네팔 동부 캉첸중가 계곡에는 림부(Limbu) 사람들이 주 종족을 이루는데 이들을 림부완(Limbuwan)이라 한다. 이외에 라이(Rai), 체트리(Chetri), 구룽(Gurung), 타망(Tamang), 그리고 높은 산쪽에는 셰르파(Sherpa)족이 섞여 산다. 가끔 지나는 마을에 네팔 국기가 아닌 림부족만의 깃발이 펄럭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중간 중간 마을 사면에는 인간 집념의 승리라고 일컬을만한 다랑이 논밭(Terrace Field)이 계곡 바닥부터 산봉우리의 8부 능선까지 개간해 농사를 짓고 있었다. 힘든 노동일에도 지나는 마을마다 주민들은 우리에게 맑은 웃음으로 인사를 건넨다. "나마스떼(Namaste)-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에게 인사드립니다."

우리는 도반(Dohban·990m)에서 하룻밤을 머문 뒤 다음날 케왕(Khewang)을 지나 엑차나 고개(Ekchana La)를 올랐다. 오르내림의 힘겨움은 마치 백두대간의 문경새재 구간이나 박달재를 넘는 것과 같은 고행길이다. 엑차나 고갯마루에 학생이 10여 명쯤 되는 작은 학교에는 선생님이라고는 여교사 한 명뿐이었다. 쉬는 시간 서성호 대원이 여교사를 대신해 아이들에게 영어로 네팔 숫자를 가르치는 여유로움을 부렸다. 해질 무렵 얌푸딘(2080m)의 포터 사다 치링의 집인 얌푸딘 게스트하우스에 도착, 50㎏은 됨직한 흑돼지 한 마리를 잡았다. 어두워질 무렵 포터들이 하나둘씩 도착했고 그들에게 돼지고기를 나눠줘 피로를 가시게 했다.

캉첸중가를 등반하려는 대부분의 원정대는 대규모로 팀을 구성한다. 이러한 원정대는 100~150명의 로컬포터들을 동원했었다. 포터들은 10~12일간 30㎏의 짐을 베이스캠프까지 운반하는 대가로 150~200달러의 보수를 받는다. 길이 워낙 험해 중간에 임금을 올려달라는 포터들의 요구로 곤혹을 치루며 대부분 15여 일만에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고 한다. 우리 팀은 50여 명의 소규모 원정대였지만 이를 염려해 카트만두에서 특별히 고용한 5명의 포터들을 데리고 왔다.

3월 19일. 타르푸에서 고용된 대부분의 포터들은 되돌아가고 얌푸딘 주민들이 포터로 나섰다. 해발고도 2000m대의 밤은 한국의 초겨울처럼 싸늘했으나 태양이 떠오르자 후텁지근했다. 다행히 원시림의 숲속이라 시원했고 떨어지는 땀을 훔치려 고개를 들면 히말라야의 여왕 랄리구라스(네팔 국화)가 만개해 이방인을 맞았다. 순간 코끝이 알싸해 온다. 분명 랄리구라스의 향기는 아니었다. 길섶으로 마치 이른 봄 개나리와 같이 잎도 나기 전에 꽃을 피운 낮은 키의 관목 천리향(千里香)의 유혹이었다. 무엇을 유혹하려 천리까지 그 향을 퍼뜨리는지, 먼 동쪽에서 찾아온 우리는 캉첸중가의 천리향에 이끌려 몽유병자처럼 이끌려 왔는지도 모른다.

지리산 장터목과 같은 고사목 군락이 나타나더니 같은 고도를 유지하며 횡단, 그리 넓지는 않으나 평평한 라시야 고개(3330m)에 발걸음을 멈췄다. 돌로 벽을 막고 지붕은 나무를 쪼개어 덮은 오두막 한 채, 거기에 보테족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원정대 대원들이 캉첸중가 베이스캠프에서 안전 산행을 기원하고 있다.
3월 20일. 포터들은 아침식사도 거른 채 자기에게 배당된 짐을 챙겨 떠났다.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서쪽으로 2008년 김창호 서성호 대원이 오른 마칼루(8463m)가 머리만 내밀고 있었다. 북쪽으로 히말라야 미봉 자누(Jannu·7711m)의 남벽이 나타났다. 잔설이 남아 있는 북쪽 사면을 곤두박질쳐 내려올 때 숲 사이로 멀리 캉첸중가가 스치듯 사라져 버린다. 토롱딘(Torongdin·2980m)을 거쳐 심부와 계곡 깊숙이 들어간다. 흰 포말을 일으키는 격류, 길을 벗어나면 한 발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우거진 숲은 원시 그대로다.

점입가경이라 했던가. 우거진 숲을 벗어나자 넓은 초지 뒤편으로 설산이 앞다퉈 나타난다. 숨이 턱 막힌다. 체람(Tseram·3870m)에서 바로 배낭을 내렸다. 체람은 얌푸딘과 군사 주민들의 여름 야크 방목지다. 포터 사다는 이러한 모습에 한마디 덧붙인다.

"트레커와 등반가들이 떠나는 겨울시즌이 오면 방목됐던 야크와 조(Zho·수컷 야크와 암소 사이에 태어난 잡종)들도 얄룽계곡을 떠납니다. 그런데 여행자들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암 야크와 어린 새끼들은 따뜻한 얌푸딘 마을로 데리고 내려가지만 수컷 야크는 야생의 동물들처럼 겨울에도 이곳에 머뭅니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수컷들은 그 옛날 동굴에 살 때 먹이를 찾아 사냥하던 시절의 습성으로 지금도 떠남을, 그리고 저 높은 산 너머 미지의 세상을 동경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포터들의 고마움 절감하며 고소 적응 돌입

3월 21일. 체람을 출발해 얄룽(Yalung)를 거쳐 람제(Ramze·4580m)로 향하는데 앞쪽으로 라통(Ratong·6679m)이 솟아 있다. 캉첸중가 내원에 위치한 람제는 넓은 분지 안에 한 채의 집이 있다. 호수는 얼음으로 덮였다. 우리는 고소적응과 베이스캠프까지 원활한 수송을 위해 광활한 평원 위에 이틀 동안 머물 보금자리 텐트 한 동을 설치했다.

우리의 염려와는 달리 셰르파족 포터들은 우호적이었다. 고소증세가 있는 포터 10여 명만 하산하고 베이스캠프까지 짐을 운반할 포터 30여 명이 남았다. 다음날 짐 운반은 계속됐다. 포터들은 빙하지대에 있는 중간캠프(4800m)까지, 우리는 캉첸중가 트레커들의 마지막 기점인 옥탕(Okthang·4730m)까지 올라 고소적응을 했다.

3월 23일. 캉첸중가 남서면에서 흘러내리는 얄룽빙하를 옥탕에서 내려다본다. 잡석으로 뒤덮인 혼돈의 지대다. 옥탕에서 낙석이 있는 모레인 절벽을 표고차 100여 m를 내려섰다. 가끔씩 3~4개의 돌로 쌓은 케른을 표식 삼아 발디딤이 불안한 잡석 위로 나아간다. 자누쪽의 바위 절벽에서는 끊임없이 낙석의 소리가 쿵쾅거리고 카브루 쪽에는 세락 붕괴가 불규칙하게 일어난다.

3월 24일. 베이스캠프로 입성하는 날이다. 우리들 육신의 안위보다는 30㎏의 짐을 옮기는 포터들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빙하를 횡단, 오후 늦게 얄룽빙하에 섬처럼 솟아오른 언덕 위 해발 5400m 지점의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포터들은 어두운 시간까지 짐을 운반했다. 그래도 많은 짐이 절벽 밑에 남아 있었다. 높은 임금을 받는다지만 포터들에겐 너무나 힘든 여정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꼭 정상에 오르길 기원한다는 말을 잊지 않고 베이스캠프를 떠났다.

힘들었던 10일간의 캐러밴을 마친 우리는 긴 시간을 머물 베이스캠프를 구축했다. 대원들 모두 건강하고 얼굴도 밝다.

3월 27일. 무사 등반을 기원하는 푸자(Puja)를 마치고 우리는 본격적인 등반을 위해 피켈을 움켜잡았다.


# '다이내믹 부산 희망원정대' 그간 발자취
- 국제신문 부산시 등 지원 2006년 발족
- 8000m급 14좌 목표… 7개 봉 완등 성과

   
베이스캠프에 선 홍보성 대장과 김진태 서성호 김창호 대원(왼쪽부터).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 프로젝트'.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처음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시도하고 있는 이 획기적인 사업은 부산광역시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성공리에 진행되고 있다.

'다이내믹(Dynamic Busan)'이란 슬로건 아래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을 위해 (사)대한산악연맹 부산광역시연맹(이하 부산연맹)이 파견하는 '다이내믹 부산 희망 원정대'는 지난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간 히말라야 8000m급 8개봉에 도전, 7개봉 등정에 성공했다.

부산시와 국제신문 등 지역 민관단체의 지원을 받으며 프로젝트에 돌입한 첫 해인 2006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50m) 등정을 이뤄내며 출발이 좋았다. 이후 2007년에는 파키스탄 카라코람에 있는 '죽음의 산'으로 불리는 세계 제2위봉 K2(8611m)와 제12위봉 브로드피크(8027m)를, 2008년에는 네팔 히말라야에 있는 제5, 4위봉인 마칼루(8463m)와 로체(8516m)를 연속 등정하는 성과를 거뒀다.

2009년 봄시즌에는 마나슬루(8163m), 다울라기리1봉(8167m), 안나푸르나1봉(8091m) 등 네팔 히말라야 등반사상 처음으로 한 시즌에 3개봉을 연속 등정한다는 계획 아래 4명의 대원을 파견, 마나슬루와 다울라기리1봉 연속 등정에 성공한다. 그러나 예년보다 빨리 찾아온 몬순의 영향으로 안전을 고려, 안나푸르나1봉 등반을 포기하고 조기 귀국했다. 이에 부산연맹은 가을시즌인 같은 해 9월 3명의 대원으로 구성된 소규모 원정대를 안나푸르나1봉에 파견한다. 원정대는 안나푸르나1봉 북면에서 한 달가량 등반활동을 펼쳤지만 대설과 제트기류에다 정상부에 시속 100m가 웃도는 강풍이 계속돼 7200m 지점까지 진출한 후 등반을 포기하고 철수한 적이 있다.

'다이내믹 부산 희망 원정대'는 그동안 부산광역시를 비롯하여 부산지역 기업 그리고 부산 산악계의 성원에 힘입어 4년에 걸쳐 8000m급 8개봉을 등반하면서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그 등반능력을 인정받아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강의 원정대로 성장했다. 또한 원정대는 국제 산악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다이내믹 부산'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민간 외교의 일익을 담당해 왔다.

올해는 8000m급 4개봉에 도전한다. 봄시즌(3~5월) 네팔 히말라야에 있는 캉첸중가(8586m)와 안나푸르나1봉(8091m), 여름시즌(6~7월)에는 파키스탄에 있는 낭가파르바트(8125m), 가을시즌(8~10월)에는 중국 티베트에 있는 시샤팡마(8012m)가 그 봉우리들이다.

원정대는 홍보성(부경대학교산악회·54) 대장을 비롯해 김진태(상봉산악회·47), 신용우(청봉산악회·46), 김창호(부경대학교산악회·41), 서성호(부경대학교산악회·31) 등 5명의 정예대원으로 구성됐다.

히말라야의 설산으로 부산시민의 희망을 품고 떠난 '부산 갈매기들'의 힘찬 비상을 지켜보자.

네팔 히말라야=홍보성 원정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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