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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고수를 찾아서 <21> 양가태극권 고영근 교수

"부드러움이 극에 이르면 강한 것을 능히 이겨낸다"

무술없는 태극권은 신기루… 어떠한 상대라도 누를 수 있어

몸에 무리 주지않는 전신운동으로 나이 들어서도 수련 가능

  • 국제신문
  • 염창현 기자 haorem@kookje.co.kr
  •  |  입력 : 2008-01-31 19:42:31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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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와 고수. 단지 발음 하나 차이. 학문의 고수라는 표현을 쓴다면 조금 억지스럽지만 연결되는 두 단어. 근데 무술이란 단어가 끼어든다면 연상작용이 쉽지 않다.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무술고수라니. 아하, 하형주 교수나 문대성 교수처럼 운동선수 출신인 모양이지. 알고본 즉 그것도 아니다. 전공은 중국정치. 현재는 중국지역통상학과 학과장. 수십년간 학문의 한길을 걸어온 순수학자다.

고영근(55) 부산외대 교수를 만나러 가는 길. 참 특이한 인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인상은 온화했다. 전형적인 학자풍. 무술가의 인상은 쉬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고 교수는 명실상부한 태극권의 강자. 그것도 중국 전통 태극권의 한 축인 양가태극권의 맥을 이어받고 있다.

고 교수를 다시 만난 것은 다음날 오전 부산 남구 모아파트 앞의 공터. 20명에 가까운 아파트 주민을 대상으로 태극권을 지도하는 자리에서였다. 이날 부산외대의 한 체육관에서는 좀 더 가까이 그를 지켜봤다. 부드러운 동작. 그러면서도 온몸에서 넘쳐나는 기(氣). 전날 연구실에서 봤던 학자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이제서야 고 교수의 실체에 조금이나마 접근한 듯한 느낌이 왔다.


   
부산외대 고영근 교수가 양가태극권 32식검을 선보이고 있다. 아래 사진은 양가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온 양가태극권 49식 동작. 박수현 기자 haorem@kookje.co.kr


긴장하지 않으면 퇴보한다

"경주 남산의 암자에서 2주간 머물렀다 왔습니다. 그동안 강의하랴 운동하랴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기가 다 빠진 것 같아 몸도 추스를 겸 산으로 갔었습니다."

수인사가 끝나자 고 교수가 먼저 자신의 근황을 털어 놓는다. 이어지는 뒷말을 들어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난해 고 교수는 주말을 제외하고는 매일 오전에 두 군데에서 번갈아 가며 태극권교습을 했다. 대학에서는 강의 외에 우슈 동아리 지도교수를 맡았고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중국지역통상학과 내에도 태극권 동아리를 만들어 지도를 계속했다. 그만큼 고 교수는 자타가 인정하는 태극권 전도사다. 이러니 몸이 열개라도 버텨내기 힘들 터.

중국정치를 전공한 학자가 태극권에 빠져든 계기가 궁금했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퇴직 후 소일거리가 없을까 싶어서라는.

"태극권을 처음 본 것은 타이완 유학 때입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나이 마흔이 넘어서부터죠. 학교를 그만둔 뒤 뭘 할까가 걱정되더군요. 그러다 태극권을 접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부산의 도장을 다니다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한 달에 네 번씩 서울로 올라가 중국인 사범에게 전수를 받았습니다."

중국인 사범과의 만남은 고 교수에게 행운이었다. 그는 중국에서 태극권 10대 명인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먼허이펑(77) 노사의 친 딸. 덕분에 고 교수는 톈진으로 가 먼 노사에게 사사하게 된다. 하지만 먼 노사의 태극권은 동작이 크고 기세가 웅장한 무술. 좀 더 부드러운 태극권을 찾던 고 교수는 중국 산시성 타위위엔에 본거지를 둔 양가태극권을 알게 된다. 양가태극권의 대사부는 양전둬(82) 노사. 역시 태극권 10대 명인 중 한사람이다. 고 교수는 양 노사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양 노사를 부산으로 초청해 특별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고 교수는 자신이 우리나라에서는 양 노사에게서 사사한 유일한 제자라는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 교수는 아직도 선수로 활동한다. 지난해에만 세 번이나 중국에서 열린 태극권 대회에 참가했다. 노년조에서 우승도 했다. 뒤로 물러나 있어도 될 나이에 현역을 고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바쁜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운동시간을 내기가 힘든 까닭이다.

"시합날짜가 정해지면 연습을 하지 않을 수 없지 않습니까. 당연히 긴장도 하게 되죠. 무술인은 계속 자극을 받아야만 합니다."

태극권 수련은 외도가 아니다

이쯤되면 태극권이 과연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노릇. 단순한 취미 이상이 되어 버린 태극권이 학문연구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고 교수는 중국정치 전공자로서 태극권을 선택한 것은 아주 잘 한 것이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태극권을 수련하는 일반인들이 언어장벽 때문에 무술의 본질에 다가가기 힘들다는 점을 예로 든다. 태극권은 몸으로만 배워서는 안되고 이치를 알아야 하나 중국어를 알지 못하고서는 이런 목적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은 뻔한 일. 반면 자신은 현지의 고수가 가르치는 태극권의 원리를 100% 이해할 수 있다는 것. 고 교수는 이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무기'라고 정의했다. 더 나아가 고 교수는 태극권이야말로 중국문화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접근방법이라고 규정한다.

"태극권은 중국의 전통사상이나 철학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태극권을 '철권((哲拳)'이라고 말하죠. 저도 이 말에 동의합니다. 따라서 중국정치를 연구한 제가 태극권을 하는 것은 절대 학자의 외도가 아닙니다."

무술에 학문적인 시각을 접붙이려는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고 교수는 지난해 '무술연구'라는 중국 학술지에 '태극권에 대한 한국 노인들의 열애와 그 발전방향'이라는 논문을 실어 2등상을 받았다. 올해는 '태극권 이론의 중국전통철학적 기초에 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곧 발표할 예정이다.

고 교수는 바쁜 시간 틈틈히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태극권 보급에도 열심이다. 그 바탕에는 현재의 우리나라 체육제도가 엘리트선수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는데 대한 반성이 깔려 있다. 극단적으로 고 교수는 전국체전 같은 행사는 없어져야 한다고 단언한다. 대안은 생활체육 활성화다. 외국의 경우 올림픽에는 해당 종목에서의 기량이 출중한 일반 직장인이 출전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전부 운동에만 목숨을 거는 전문 선수만이 나온다. 이런 예는 대한우슈협회도 마찬가지라는 게 고 교수의 분석이다. 저변 확대 없이 아시안 게임 등 중요 대회를 겨냥한 선수 위주로 나가다 보니 전통 태극권은 간 데가 없고 경기를 위한 스포츠만이 활개를 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우리나라 체육제도는 잘못되어 있습니다. 이건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것 입니다. 이제는 국민들 삶의 질을 높여야 합니다. 국민건강을 위해서라도 생활체육이 널리 보급되어야죠."

무술없는 태극권은 없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르지만 태극권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대체로 '부드러운 무술'로 모아진다. 중국 등지를 여행할 때 공원에서 본 노인들이 수련 모습도 이런 생각이 굳어지는데 한몫을 했다.

그러나 고 교수는 이런 관념에 대해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태극권을 잘하는 사람은 중국에서도 드물며 공원 등에서 동작은 체조에 불과하다는 논리다. 유희의 일종이라는 평가도 서슴지 않는다.

"태극권은 애초에 무술로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다 보니 무술적 성격보다는 심신수련, 즉 보건양생으로 그 정체성이 넘어 와 버렸지요. 진가태극권만해도 강함과 부드러움이 확실합니다. 반면 양가태극권은 처음부터 끝까지 부드럽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실제는 그게 아니죠. 부드러움이 극에 달하면 결국은 강함에 이르게 되는 겁니다."

전통양가 49식과 32식 검술. 마흔아홉가지와 서른두가지의 동작으로 이뤄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고 교수가 시연에 들어갔다. 예상한 대로 시종일관 부드럽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부드러운 것만은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힘과 기, 그리고 절도있는 동작들. 한 시대를 풍미한 극진가라테 최영의 관장이 패배에 이를만큼 고전했다는 소문이 도는 태극권의 위력이 어렴풋이나마 느껴진다. 최 관장은 후일담에서 때려도 때려도 정확한 타격을 할 수가 없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부드러움은 강함을 능히 이기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태극권은 방어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닐까. 탁구에서 공격형 선수가 수비형 선수와 맞붙으면 철벽수비에 지쳐 제풀에 무너지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듯이. 고 교수는 이 의견에 대해서도 손사래를 친다. 태극권에도 공격과 방어를 포함해 서로 맞대련을 하는 추수(推手)라는 형이 있으며 이 추수를 습득해야 온전한 태극권을 완성할 수 있다고 언급한다.

고 교수가 추수를 선보였다. 발차기 공격이 들어오자 그 것을 막음과 동시에 팔이 상대방의 가슴을 번개같이 후려친다. 얼핏 보기에는 단순히 미는 동작. 하지만 그 공격에는 디딤발에서부터 시작해 다리와 어깨 팔을 거쳐 모아진 힘이 숨어 있었다.

"발경(發勁:힘을 집중해 큰 위력을 발산)입니다. 공력이 쌓이면 몸 자체가 태극이 됩니다. 즉 내경(內勁:내재적 기운)이 온몸에 순환되면서 상대방의 허점을 만들어 내는 거지요. 팔힘이 아니라 모든 부위의 힘으로 밀어내는 겁니다. 체격이 큰 사람도 능히 넘어 뜨릴 수 있습니다. 이게 고수가 하는 일입니다. 그러려면 지극히 평정심을 가져야 하고요. 물론 이렇게 되려면 체력적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단언하건대 태극권으로 어떤 상대라도 충분히 제압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태극권 지도라자면 반드시 무술적 측면을 강조해야 합니다. 무술이 없는 태극권은 말이 안되는 겁니다."

이같은 무술적 요소가 있음에도 고 교수가 보는 태극권의 장점은 누구나 수련을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연령과 체력에 구애받지 않고 늙어서도 가능한 유일한 운동이라고 단언할 정도다.

"우리나라도 이제 고령화사회로 들어섰지 않습니까. 태극권은 몸에 무리가 없는 전신운동입니다. 그 자체로 움직이는 선(線)이지요. 노인들은 태극권을 통해 '이무회우(以武會友)' 즉 무술로써 친구가 됩니다. 앞으로 태극권이 널리 보급됐으면 합니다."


■ 양가태극권이란

- 유연함 뒤에 숨은 강함이 장점

태극권은 현대 태극권과 전통 태극권으로 나뉜다. 현대 태극권은 지난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때 중국이 우슈를 정식종목에 포함시키기 위해 새롭게 정립한 것이다. 수련자의 수준에 따라 8식 16식 24식 32식 42식 태극권 태극검 등이 있다.

전통 태극권의 유파는 셀 수 없이 많으나 대체로 진가 양가 손가 오가 무가를 5대 문파로 본다. 이 가운데 원조는 진가태극권이다. 동작이 화려하고 역동적이며 아주 강력하다. 따라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가 높다. 체격조건이 동양인에 비해 뛰어난 서구인들도 진가태극권을 선호한다. 하지만 양가태극권은 수련인구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가태극권에 비해 좀 더 부드러운 강력한 면을 강조한다.

태극권은 격렬한 동작을 요구하는 것이 적어 다른 무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상위험이 적다. 태극권 관계자들은 반사신경과 집중력 강화 효과가 있어 청소년에게도 적합하다고 장점을 제시한다.

고영근 교수는 인터넷에서 '고 교수의 태극권아카데미(www. kohtcc.com)라는 무술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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