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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를 찾아서 <20> 세계화랑검도총연맹 김상학 회장

"맨손 무술의 마지막은 검… 천년 검술의 전통을 잇는다"

신라 진흥왕 때 창시된 화랑검도 복원에 전 무도인생 걸어

진검베기 보급에 주력…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이가 고수"

  • 국제신문
  • 염창현 기자 haorem@kookje.co.kr
  •  |  입력 : 2008-01-17 19:57:59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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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황토색 옷을 입은 한 사내. 보기에도 서슬퍼런 칼을 들고 짚단 앞에 섰다. 가로로 놓인 짚단은 무려 10단. 호흡을 한 번 가다듬는가 싶더니 번뜩 섬광이 일었다.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손놀림. 근데 웬걸, 분명 칼이 스친듯 했는데 짚단은 꼿꼿이 그대로 서 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동작만 그럴싸했지 혹시 짚단은 베어지지 않은 게 아닐까. 의심을 참지 못해 가까이 가보니 칼이 지나간 흔적이 뚜렷이 드러난다. 손으로 툭 쳐봤다. 아, 그제서야 10단의 짚단은 건드리는대로 하나 하나씩 굴러 떨어졌다. 짚단 중간은 말 그대로 일도양단된 상태. 흡사 작두로 힘주어 자른 듯 절단면은 깨끗하기조차 하다. 예전처럼 사람을 살상할 수 없는 현대 검의 세계에서 대나무는 인체의 뼈, 짚단은 근육에 해당한다. 만약 진짜 사람을 향해 그 칼을 휘둘렀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몸에 소름이 돋는다.

"찰나의 기법입니다. 물체를 맞출 때 속도를 더 내야죠. 각도도 정확하게 맞아야 하고요. 그리고 전혀 미동이 없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흔들림이 있으면 베인 짚단은 서있지 않고 그냥 무너지고 맙니다."

김상학(45) 세계화랑검도총연맹 회장. 한때 융성했지만 천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맥이 끊겼던 신라의 화랑검법을 현대에 복원한 인물이다.


맨손 무술의 종착점은 검

   
김상학 세계화랑검도총연맹 회장의 짚단베기. 분명 칼날이 관통을 했지만 짚단은 손으로 밀 때까지 무너지지 않았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경북 경주시 외곽의 한적한 곳에서 만난 김 회장. 외모부터 눈에 띈다. 늘 입고 다닌다는 개량한복에 등 뒤로 흘러내린 머리. 무도인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더라도 평범한 이들과는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고수를 찾아다니면서 여러 무술을 접해 그동안 귀동냥으로 들은 지식이 조금은 쌓였다고 여겼건만 화랑검도라는 건 또 생소한 터. 먼저 김 회장의 설명을 기다려야 했다.

"화랑검도는 신라시대 전통무술입니다. 진흥왕 23년에 만들어졌습니다. 근데 아직 우리 사회가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현존하는 어떤 검술이라도 신라시대 때부터 전해져온 본국검법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검에 대해 논할 수가 없습니다. 명나라 때의 무예서인 '무비지'를 보면 중국이 우리나라의 검을 배웠다는 말도 나옵니다. 즉 화랑검도에는 민족의 혼과 얼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김 회장의 말을 어느정도 수긍한다 해도 전적으로 믿기는 힘든 일. 천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화랑검도를 고증해줄 만한 자료가 없어져 버린 까닭이다. 일부 비법은 알음알음 구전되어 왔다. 김 회장도 이를 인정한다. 그래서 김 회장은 수많은 무예관련 문헌들과 고서를 섭렵하면서 연결점을 찾기 위해 지금도 분주하다.

그렇긴하나 정통여부를 떠나 화랑검도는 그 자체로 상당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 엄연한 실력이 존재하는 이상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무조건 폄훼할 수는 없는 일. 그건 또 다른 편견일 수 있다.

씨름선수였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운동을 시작한 김 회장은 사실 합기도의 고수다. 출중한 실력 덕분에 세계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자신의 말대로 젊은 시절에는 '좀 날아다녔다'. 밝히기를 꺼려했지만 여느 무도인과 마찬가지로 적지 않은 무용담도 가지고 있다. 미 하얄리아 부대에서 사범일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맨손 무술에 염증을 느끼게 된다.

"맨손 무술에서 어느정도 수준에 오르게 되자 문제는 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칼에 대한 사용법 등 검에 대한 개념정립을 전혀 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칼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본 검도에는 베기라는 것이 있는데 이걸 우리 기술로써 한번 만들어보자는 욕심도 있었고요."

1980년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한국전통도법연구회란 단체를 만들어 검의 세계에 뛰어든 김 회장은 1986년 한 스승을 만나 '화랑용천검법'을 전수받는다. 용천검법은 비룡 혜성 화랑과 함께 화랑검도의 4대 검법. 이후 화랑검도 복원에 본격적으로 나선 김 회장은 1994년 대한화랑검도협회를 사회단체로 등록했으며 2002년에는 사단법인 세계화랑검도총연맹으로 정식 발족시켰다.

   
"맨손 무술의 마지막 단계는 검입니다. 검을 해야 무술의 경지에 올라선다고 봅니다. 저만 해도 맨손 무술을 한 뒤 검에 입문을 하니 오히려 이론과 실제에 대한 상세한 정립이 가능해지더군요. "

흉내내는 검법은 검법이 아니다

김 회장이 환도, 또는 요도(허리에 차는 검)라 불리는 칼을 내려놓더니 길이가 1m는 족히 됨직한 창을 들었다. 날 모양이 반달처럼 생긴 게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가 쓰던 청룡언월도를 연상시킨다. 김 회장이 대나무를 겨냥하고 섰다. 역시 한 번의 손놀림. 조금 전까지 꼿꼿하던 대나무가 싹뚝 잘린다. 잘린 단면은 손을 베일 만큼 날카롭다. 그 예리한 절단마디를 보니 왜 과거에 죽창이라는 무기가 전장에서 칼 대용으로 사용됐는지를 능히 짐작케한다.

"베기는 바깥에서 안으로 끌어당겨야 효과가 납니다. 미는 식으로 하면 안되죠. 벌초할 때의 낫질을 연상하면 됩니다. 풀을 잡아서 안쪽으로 끊지 않습니까. 근데 이 때에도 검선(劍先·칼끝)과 검리(劍理·검술의 이치와 도리)에 맞춰야 합니다. 흉내내는 검에 머물러서는 안되는 일이니까요."

이 대목에서 김 회장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무도인이라고 자칭하며 떠드는 사람들 가운데는 발도(拔刀·칼 빼기)와 납도(納刀·칼 집에 칼 넣기)법은 고사하고 제대로 칼 잡는 방법도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방법론에서 화랑검도는 다른 검도와의 차별성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진검베기를 특히 강조한다. 초단 이상이 되면 대나무베기 종이베기 짚단베기 봉베기 다량베기 구조물베기 쌍장검베기 진검술대련 등을 순차적으로 배운다. 김 회장 자신도 베기에 있어서 그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감히 자부한다. 지난 1996년부터는 진검베기대회를 열면서 전국에 베기를 보급하고 있다.

복장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일반인들이 검도 도장에서 흔히 보던 검은 도복을 입지 않고 개량한복을 고집한다. 고단자들은 화랑무사복이라 불리는 복장을 한다. 문헌을 근거로 신라시대 화랑의 의복을 본떠 만들었다.

진검을 주로 사용하다보니 수련과정에서 위험한 일도 많이 겪는다. 한순간 정신이 해이해지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아찔한 경우를 여러차례 겪었다. 관원들이 수련 도중 머리카락을 베이거나 옷이 찢어지는 일도 적지 않게 일어난다. 이 때에는 순간적으로 동작을 멈춰야 한다.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진짜 칼이 상대를 향하는 찰나 그것을 멈춘다는 것은 숙달된 사람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어려운 기술이다.

관원들은 가급적 김 회장이 직접 지도한다. 부산 서구 괴정 1동에 있는 연맹 본관에서다. 그래야만 검에 대한 큰 흐름을 잊지 않을 수 있다. 또 서로 몸을 부대끼는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제자들에게서도 배우는 것이 많다.

"우리 세계에서는 '검도 3배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검도 초단이 맨손 무술 3단과 맞먹는다는 뜻이죠. 검도는 정신통일과 속도, 집중력 배양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게다가 눈도 빨라지고 강약조절에도 능해집니다."

김 회장이 한 예를 들었다. 어느날 길을 가다가 아는 사람의 여자친구가 어려운 처지에 처한 것을 봤다. 상대는 다수였고 자신이 가진 것이라고는 손에 든 신문지뿐.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 회장은 둘둘 만 신문지로 모두를 가볍게 제압했다. 상황에 따라 상대의 뼈를 부러지게 할 수도 있고 그냥 멍만 들게 할 수도 있었다. 검도에서 터득한 속도를 바탕으로 힘조절을 가미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극단적으로 볼펜 한 자루만 있으면 상대의 목을 관통시킬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을 다스릴 수 있어야 고수

작은 소품 하나로 상대를 누를 수 있다는 말. 검도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익히 들었던 것이지만 괜한 용심이 생긴다. 그래서 짖궂은 질문을 던졌다. 검도하는 사람 손에 칼을 대신할 수 있는 무기가 없으면 허사가 아니냐는. 즉답이 돌아왔다.

"검도하는 사람이 칼을 놓치면 어떻게 하는가,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흔히들 생각합니다. 그러나 검도에도 맨손 무술 있습니다. 단도제압술 장검제압술 등이죠. 칼이 없더라도 상대의 칼 공격을 막아야 하니까요."

김 회장은 건강에 대한 강의도 많이 한다. 지난 2004년에는 '빼면 살고 안빼면 죽는다'라는 부항요법에 관한 책을 출간한 적도 있다. 운동을 하다보니 자신을 포함해 관원들이 이런저런 부상을 입는 일이 많아지자 아예 그 처치법을 개발했다. 평소 하던 생각에 '왜?'라는 단어를 세번 붙이면 자연스럽게 해답이 나온다는 게 김 회장의 지론. 예를 들어 피는 왜 탁해질까, 왜 비만이 될까하는 식으로 스스로 의문을 던진 뒤 해답을 찾는 식이다.

김 회장은 검도를 하는 무도인을 바라보는 이상한 시선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검도에서 베기를 하는 것은 자기수련의 과정. 김 회장은 짚단 16단을 한 번에 벤 적도 있다. 그러나 결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니다. 베기에 열중한 것은 이를 통해 화랑검도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한 뜻이었다. 그런데도 일반인들은 진검으로 검도를 한다고 하면 다짜고짜 짚단을 어느정도까지 벨 수 있는가를 먼저 물어온다. 또 유명 무도인의 이름을 줄줄이 대면서 그들과 비교해 누가 더 많이 베는가를 꼭 알고 싶어한다. 이는 검도인들 사이에 자존심 싸움으로 치달아 한 때는 불필요한 베기 경쟁이 일기도 했다.

세계화랑검도연맹과 함께 부산무예단체협의회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김 회장은 앞으로 화랑검도가 문화재무술이 될 때까지 노력을 계속할 작정이다. 여기에는 민족의 앞날은 전통과 미래가 적절하게 어우러져야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또 우리 옛 무술에 담겨 있는 정신과 기예를 최대한 발굴해 후대에 전수하는 것이 현재를 사는 이의 사명이라는 책임감도 포함된다. 나아가 진검베기에 관한 이론서도 펴낼 요량이다. 검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조차 없는 얼치기 무도인들에게 '최소한 검(劍)과 도(刀)의 차이점' 정도는 알려주고 싶다는 게 이유다.

"고수요? 진짜 고수란 자기의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명경지수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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