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 파악해 적절한 창구 안내
- 한장 표준 계약서 중기 보급계획
- 지역 기업 문제에 지자체 나서야

대기업으로부터 대금을 받지 못한 중소기업이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면 쉽게 지급받았을 것인데, 이 회사는 방법을 몰라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2년째 사건을 끌어왔다.

이경만 공정거래지원협회장이 지난 22일 중소기업이 불공정 거래로 피해를 입었을 때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용우 기자

하지만 최근 사단법인 공정거래지원협회의 상담을 받은 지 15일 만에 이 회사는 대금 5억 원을 받을 수 있었다. 사건은 공정위 신고 절차 없이 협회의 중재를 통해 단시일에 해결됐다. 사실 공정위 신고가 접수되면 대기업은 5억 원 대금 외 과징금 5억 원을 더 내야 하고, 중소기업도 대금을 받는 데 1, 2년을 기다려야 할 상황이었다.

공정거래지원협회 이경만(55) 회장은 지난 22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가진 국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사례를 소개하며 “대기업은 대금을 지급해 과징금을 피하고, 중소기업은 5억 원을 더 빨리 받을 수 있었다”면서 “서로 ‘신고의 실익’을 알 수 있도록 상담하고 해결한 일이 가장 보람된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공정거래지원협회는 중소기업이 불공정거래 문제에서 신속 정확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올해 6월 발족한 협회는 공정위 출신이면서도 대형 로펌이나 대기업으로 가지 않고 중소기업을 위해 봉사하기로 뜻을 모은 이들과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이 회장은 “우리나라는 공정위, 지자체, 법원, 국회, 민간단체까지 불공정거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창구가 정말 잘 구성돼 있는데 그것을 중소기업이 잘 모른다”며 “사건 내용, 기업 재무상황을 파악한 뒤 적절한 곳으로 찾아가도록 정확하게 상담하는 것이 우리 협회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이어 “분쟁에 대비한 증거자료를 남기는 등 방법을 알려주면서 상황관리를 하도록 지원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남 하동이 고향인 그는 부산대를 졸업하고 1994년 행정고시에 합격, 1996년부터 부산시에서 재직 중이었는데, 7남매 중 큰 형이 1997년 대기업 갑질로 인해 부도가 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불공정거래의 문제점을 체감했다. 센텀시티개발계장, 정보기획계장, 국제교류계장 등 부산 경제 분야 업무를 도맡아 하던 그는 2003년 공정위로 전입한 뒤부터 공정의 가치에 한 발 더 다가섰다. 중소기업 몫을 대기업이 어떻게 가져가는지 들여다보면서, 이를 끝까지 파헤쳐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공정거래협약을 맺으면 공정위 직권조사를 1, 2년 정도 면제하는 당근을 주는 ‘공정거래협약’을 도입한 것도 이 회장이다.

이 회장은 요즘도 전국을 다니며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불공정거래 관련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수출중단, 거래중단, 납품중단의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지역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는 현장도 적지 않다고 한다. 얼마 전 부울경에서는 매출액 70억 원 규모의 회사가 매출액이 더 적은 회사에 납품 계약을 했지만 소비 부진으로 납품한 물건을 가져가지 않은 사례가 있었는데, 협회가 말끔하게 해결했다.

이 회장은 “개발을 의뢰했는데 수출중단으로 납품중단이 된 경우도 있었다. 중소기업은 납품을 위해 설비투자를 했는데 납품이 무산된 것이었다”며 “이는 ‘부당발주취소’가 된다. 중소기업의 ‘책임 없는 사유’로 인해 발주가 중단되면 부당한 수령거부가 된다. 이 문제도 공정위로 가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상담한 사례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중소기업을 다녀보면 아직도 기본계약서를 쓰지 않는 곳이 많은데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앞으로 우리 협회가 ‘한 장 표준 계약서’를 만들어서 보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서울시, 경기도 같은 지자체는 분쟁 발생 시 적극 개입하고 있는데, 부산 같은 경우도 지역 기업의 문제에 지자체가 적극 나서야 한다”며 “지역업체가 대기업과 분쟁이 있으면 대기업을 불러서 적극 해결하고, 중소기업 간 분쟁도 조정위원회를 만들어서 해결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지역문제는 지역에서 해결한다는 마음으로 부산시나 다른 지자체가 의지를 갖고 해야 지역 중소기업이 살아남는다”고 강조했다.

2014~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한민국정책센터에서 경쟁정책본부장으로 근무한 이력이 있는 그는 17개국으로 구성된 아시아비즈니스동맹(ABA, Asia Business Alliance)을 설립, 아시아 국가의 오피니언 리더들과 공정거래를 위한 네트워크도 만들어 운영 중이다. 김태경 기자 tgki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