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문제 일자리 확충에 치중
- 삶 전반 고민하는 정책전환 필요
- 청년졸업에세이 상영 후 세션
- 스스로 지역의 삶 개척 인상적

이른바 ‘청년 담론’은 IMF 외환위기 이후 시작됐다. 당시 인기 시트콤 ‘논스톱’의 명대사처럼, ‘청년실업이 40만 명에 육박하는’ 때였다. 저 대사엔 늘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나’란 말이 따라붙었다. 대학 졸업이 곧 취업으로 이어지는 ‘표준 인생 모델’이 깨지고 있었다.

	지난달 30일 부산역 유라시아플랫폼 ‘띵-두’에서 정서원 부산시 청년위원장이 ‘2020 부산청년주간’의 의의를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의 해법은 새로운 모델의 모색이 아니었다. 기존 모델에 부합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강요됐다. 청년은 앞선 세대보다 취업에 훨씬 많은 ‘노오력’을 쏟아야 했다. 그러나 모두가 양질의 일자리를 가질 수는 없다.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취업 문은 좁아져 왔다. 청년은 이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말할 수가 없다. 자신이 선택한 인생을 살고 싶지만, 그랬다간 ‘철 들어라’ 식의 ‘충고’를 받아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가 겁나는 세상이 됐다.

그러나 지난달 22~26일 열린 ‘2020 부산청년주간’에서는 잠시나마 ‘딴 세상’이 펼쳐졌다. 기성의 강요 대신 청년의 주체적 관점과 욕구가 한데 모인 것이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구나, 나만 이질적인 게 아니구나’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났다. 지난달 30일 부산역 유라시아플랫폼 ‘띵-두’에서 정서원(22) 부산시 청년위원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 위원장은 이번 행사의 자율 세션을 담당했다.

청년 담론에 대해 정 위원장은 “지금까지 청년 문제는 곧 실업이었다. 일자리 양산이 청년을 위한 정책으로 설계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는 삶의 방식이 보편적이었기 때문이다”고 짚었다. 하지만 “이제는 삶의 방식이 달라졌다. 과거와는 일이나 주거의 개념부터 바뀌었다. 집을 사야만 한다는 기존 관점은 ‘사지 않아도 된다, 빌리면 된다’는 관점으로 전환됐다. 평생직장 대신 프리터(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며 자기만의 시간을 활용하는 사람)가 대두됐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제는 나답게 살아가는 법, 다양한 양태로 존재하는 청년의 삶 전반을 고민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거다.

이런 문제를 기성의 관점으로 풀기는 어렵다. 청년주간은 기성의 관점이 야기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집결한 공론의 장이었다. 청년의 노동, 일상의 격차, 심리적 고충, 커뮤니티 활동 등 다양한 방면의 삶이 조명됐다. 홍보 기간이 짧았음에도, 유튜브 ‘부산청년주간’에 게시된 영상들의 조회수는 총 4000건을 넘어섰다.

행사의 돌발변수였던 코로나19는 전화위복이 됐다. 코로나19가 그간 주목받지 못한 일상의 격차를 들춰냈고, 이에 관한 청년의 생생한 경험이 행사를 통해 공유될 수 있었다. “나부터도 행사 직전에 확진자가 탄 택시에 승차한 탓에 자가격리됐다. 이 시국에 지역에서 행사 개최를 어떻게 바라볼까 염려도 많았다. 오프라인 행사를 온라인으로 전환해야 했다”고 사정을 설명한 정 위원장은 “대신 코로나19 시기에 본인의 삶에서 느껴지는 부분을 끄집어내야겠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그 결과 “코로나19가 청년에게 가져온 다양한 모습의 격차도 들어볼 수 있었다. 코로나가 오히려 ‘내가 이 사회와 어떻게 연결돼 있지’를 자문하게 하고, 서로 간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만들어줬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청년의 참여도 오프라인 행사보다 더 많았다. 현장 행사의 한계에서 벗어나 청년들이 함께 고민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여러 행사 세션 중에서도 정 위원장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기획은 ‘지역공동체’ 세션이었다.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청년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청년졸업에세이’를 상영한 뒤 지역에서 살아가기 위한 상상을 나누는 자리였다.

“부산을 떠나고 남은 청년들이 사는 게 아니라, 이곳에서 나의 삶을 계속 꾸려가고 싶어하는 청년의 메시지가 전달된 세션이었다. ‘청년을 붙잡아 둘 방법’ 같은 행정적 관점에서 탈피해 청년이 스스로 지역에서 살아가는 방법들이 공유됐다. 마을 통장처럼 기존 시스템을 활용해 삶을 꾸려가거나, 마을에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살아가는 청년도 있었다. 다양한 고민과 그 방법이 제시됐다”고 그는 평가했다.

정 위원장은 ‘부산청년정책 전환하기’ 세션에 직접 패널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부산시가 펼친 청년정책 중에는 이미 시행 중이던 일자리 정책을 청년 정책이랍시고 들고 온 게 많았다. 대부분 기업에 인건비를 지급하는 사업이었다. 이걸 청년정책으로 볼 수 있을까. 청년의 목소리를 반영해 어떤 기업을 지원 대상으로 선발할지, 청년에게 들어가고픈 욕구를 갖게 만드는 기업이 맞는지 등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청년이 실감하는 정책이 될 수 없다”며 “적어도 지역사회에 이런 청년정책이 있구나, 내가 지역으로부터 ‘챙겨지고’ 있구나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