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년간 쓴 서문·비평 등 모아
- 부산지역 미술계에 쓴소리
- 공공미술관 상업성에도 일침
- “사회에 저항해야 할 예술이
- 그저 소비하는 것으로 탕진”

‘예술이 불이 아닐 때, 그것이 저항이 아닐 때, 예술은 그저 ‘불의 우울’일 뿐이다. 아무것도 태우지 못하는’.

14번째 비평집 ‘불의 우울’을 낸 강선학 미술 평론가가 책에 담긴 부산 미술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미술 평론가와 화가를 겸하는 강선학(66) 씨가 최근 14번째 비평집 ‘불의 우울’을 펴냈다. 2016년 8월부터 2019년 6월까지 그가 쓴 전시 서문이나 잡지 기고글, 비평문 등을 모은 책이다.

그동안 비평집을 14권이나 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지역 미술에 애정을 갖고 부지런히 집필 활동을 해왔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방정아 김한나 안창홍 이경희 정철교 정혜련 제제 최소영 등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새롭게 발견하고, 비판도 주저하지 않았다. 작가 비평 외에도 공공미술관의 역할, 지역 미술에 대한 시선, 전시 연출, 전시장을 보는 관점에 대한 입장 표명도 담고 있다.

최근 부산의 한 미술 전시장에서 만난 그에게 왜 책 제목이 ‘불의 우울’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예술은 불처럼 낡은 것을 태워 세상에 저항하고 세상을 성찰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예술은 현실의 반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소비하는 것으로 탕진되거나 버려지는 게 대부분입니다. 예술 작품의 역할, 작가로 산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불의 우울’로 지었습니다.”

특유의 시니컬하고 툭툭 내던지는 말투로 자신의 철학을 가감 없이 쏟아내는 그의 직설적인 성격이 이번 책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미학적 비전 없이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공공 미술관의 운영, 유료 전시, 아트숍의 상업적 운영에 대해 쓴소리를 던졌다. “공공 미술관은 과잉이 아닌 숙려의 시간과 공간이며, 상업적 생산성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관람객 수로 전시 성과를 평가하고, 블록버스터급 전시에 치중하는 미술관의 행태는 공공자산을 투자재로 삼아 유락 시설화하고 이윤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에 초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강 평론가의 비평 기준은 ‘작품이 새로운 상상력과 사유의 확장을 보여주는가’이다. 그는 책에서 지역 젊은 작가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소재, 형식, 내용 면에서 반복되고 안주하고 있는 점에 대해 신랄하게 나무란다. “지역 작가들이 질적인 성숙은 보이지 않고 감각적인 즐거움, 시각 이미지에만 치중해 있는 점이 아쉽습니다. 차이가 없는 반복은 그저 기계적인 생산일 뿐 의미의 차이를 만들면서 세계를 생성하지 못합니다. 자기 복제이거나 키치로서 대중적 요구에 맞춰지는 패턴이 되고 맙니다.”

경남 마산 출신인 그는 부산대 미술교육과와 동 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한 후 30여 년 넘게 전시와 평론집 발간을 교대로 진행해오고 있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학예연구실장을 지내는 등 10년 가까이 재직했고 이제까지 ‘부산미술의 조형적 단층’ ‘불면’ ‘질문들’ 등 14권의 평론집을 냈으며 꾸준히 전시를 열고 있다. 내년에도 수묵화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지금은 사실 비평이 힘든 시대입니다. 많은 비평가와 작가가 전시 기획, 출판까지 맡으면서 서로 비평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꾸준히 전시를 보러 다니며 매일 부산미술에 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부산을 주 무대로 현장 비평과 담론 생산에 역할을 다하겠습니다.” 그가 펜과 붓을 벗 삼아 지역 미술계에 어떤 궤적을 그려나갈지 기대된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